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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2)
2022년 07월 02일 (토) 10:33:54 김태복 목사 www.cry.or.kr
교단 분열(2)과 학생·군인들의 혁명
 
두 번의 혁명이 발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정치, 경제, 사회의 큰 위기에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독재의 횡포와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고 실업자가 늘어가고 깡패와 사기꾼이 판을 치는 사회 속에서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제 구호물자 대신에 선교비라는 명의로 바꾸어서 이국(異國) 땅에서 막대한 금액이 송금되어 오고 있을 때, 그것을 서로 갈라 먹으려고 눈이 벌게져 있지 않았던가? 먹은 자와 못 먹은 자가 아옹다옹 다투다가 결국 분열이 되지 않았나? 명목이야 WCC 가맹 문제라고 했지만 그 분열의 밑바닥에는 감투싸움과 이권 다툼이라는 것이 세상이 다 아는 일이 아닌가?
 
1959년 예수교 장로회는 제 44회 총회에서 통합(統合)측과 합동(合同)측으로 두 쪽이 났다. 교단 이름마저 장난기가 깃들인 분열이었다.
 
이들에게는 민족의 통렬한 아픔을 감지할 촉각이 마비되었다는 것인가? 못 살겠다고 외치는 저 백성의 굶주린 소리, 저 청계천 하류민(下流民)의 한숨 소리, 깡패들의 주정 소리, 인권을 유리하는 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먹어리가 되었다는 것인가?
 

베데스다 못가의 모습이로구나.

오만가지 각색 병자가 모여서 냄새피우고 욕설을 퍼붓고 아귀다툼하는 곳.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 귀먹어리, 중풍병자, 정신병자, 혈루증 등등, 지지리도 못난 병신들만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물이 동하면 먼저 뛰어들어 가보겠다는 일루의 소망을 가진 채, 그 뜨거운 태양, 그 추운 냉기, 쏟아지는 폭우, 뇌성벽력 속에서 지치도록 기다리며 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물이 조금만 바람에 흔들려도 너나없이 먼저 뛰어들어 밀고 찢고 욕하고 소란을 피우는 곳, 그곳이 베데스다 못가였다.
 
한국교회가 바로 그 모양, 그 꼴이었다.
백성들이야 유리하는 양떼처럼 고난의 길을 가고 있건 말건, 장로교는 네 쪽으로 갈라져서 헐뜯고 욕하고 멱살잡이하고 심한 경우에는 그 거룩한 성전에 오물을 던지는 저주받을 일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교단이 통합 측과 합동 측으로 분열이 되자, 이에 대한 여파가 전국 교회로 번지면서 교회들마다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교인들은 베데스다 못가 오만가지 병신들처럼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정통(正統)이라고 우기며 서로 자기들만 구원이 있는 양 주장질 했다.
 
어찌 그 뿐이랴.
그들이 그처럼 거룩 거룩하게 여기던 성전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대고, 설교하는 이에게 똥, 오줌이 뿌려지고, 담벼락 사이를 두고 교회당을 세워 놓고 한쪽이 설교하면 한쪽은 찬송으로 방해하고, 한쪽이 기도하면 한쪽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악을 쓰면서 찬송을 부르는 아귀다툼을 나타내고 있었다.
 
베데스다 못가의 재판(再版)이었다. 그러한 한국교회에 대한 채찍이 두 번에 걸친 혁명을 일으키게 한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편견일까? 아니다. 그러한 생각은 오히려 성경적이다.
 
<예수쟁이를 때려죽이라는 4·19의 함성은 한국 기독교회에 내린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예수쟁이를 때려죽이라는 소리는 기독교를 질시하여 온 타종교나 비종교적인 학생들이 부르짖는 구호가 아니었다. 4·19를 주도하다 시피 한 기독 학생들의 부르짖음이었다.> (최종고:「영락교회의 부흥」135페이지)
 
교회가 사회정의를 구현 못하고 있으니 엉뚱하게 학생들과 군인들이 이 사회를 바로 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60년대 70년대의 길고 어두운 유신시대(維新時代)를 몰고 온 것이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한없이 떠밀려갔고 불교를 크게 흥기시키었고, 기독교는 그 정권하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자초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다.
 
교단 분열(3)과 광주학살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분열증 환자였던가.
1979년 다시 큰 분열이 있었다.
 
당시 군소 교단들을 흡수함으로 합동측은 가장 큰 교단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단 신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신복음주의(新福音主義)에 대해 보수주의 입장에서 우려의 소리가 높고 점점 거센 반발이 점증(漸增)되더니, 마침내 1979년 9월 제 64회 총회가 대구 동부교회에서 양분되고 말았다.
 
총회를 앞두고 주류 측과 비주류 측끼리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서로를 방해하는 등, 추잡한 암투(暗鬪)를 계속하다가 결국 갈라서고 만 것이다. 이름하여 합동 측과 합동 보수 측의 양분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는 앞에서 열거했던 것처럼, 거룩한 성전에서는 감히 입에 담기 어려운 추잡한 욕설과 멱살잡이와 폭력들이 자행했던 것이다.
 
이처럼 최대 교단이 교권 싸움, 명분 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때는 유신 독재에 항거하는 데모가 온 나라를 가득 메우고 있던 위기의 상황이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검은 구름이 다시 한국 사회 위에 덮이고 있었다. 1979년 10월 16일에 부마(釜馬)사태가 터지었다. 그리고 그 압력에 의해서 10월 26일 저녁 7시 30분 궁정동 한 밀실에서 20년을 독재해 온 대통령이 부하의 손에 저격되는 큰 국난(國難)을 당하게 됐던 것이다.
 
불행은 이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어서 12·12 사태, 그 다음 해에 5월에는 광주학살이라는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국민의 군대가 수도 없는 많은 국민을 향해 잔인하게 총격을 가해 살해한 참담한 사태를 남긴 것이다. 그 피 위에서 또 하나의 군사 독재 공화국인 제 5공화국이 탄생되었고, 가지가지 얼룩진 실책(失策)들만 빚으로 남긴 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무능한 문민 정치가들 탓인가? 처음에는 의기(義氣)로 밀어붙여서 정권을 쟁탈했으나 후에는 더 부패했던 군사 독재자들 탓인가?
 
아니 된다.
다른 이들에게 책임 전가해서는 옳지 않다.
바로, 너 한국교회 탓이다.
너의 연고로 백성들이 역사적 풍랑을 만났고, 체포와 구금, 고문과 살해를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가슴 아픈 것은 그처럼 암울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합동측은 끝도 없이 사분오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 연합주소록’을 보면 정식으로 교단을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는 교파만도 무려 130여 개가 된다. 대부분 군소교단인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교단명에 ‘합동’이란 명칭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합동측이 계속 분열되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통합이네, 합동이네, 이름을 붙여가며 계속 분열하고 있다니, 그러기에 한국사회가 한국교회를 향해 조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지도자들의 저 끈질긴 종교적 아집(我執)들이여.
화인(火印) 맞은 양심들이여.
 
그래도 이 민족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계속되는 것은 지도자들 탓이 아니라, 오늘도 새벽을 열고 나아와 교회 바닥을 눈물을 적시며 민족과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저 교회 민중들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빛과 소금으로 희생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거룩한 이들 때문이리라. 그들에 의해서 저 베데스다 못가처럼 온통 악취가 진동하고 그 추잡한 욕망이 얼룩진 속에서도 맑은 물이 솟구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여,
한국교회여,
아니 된다.
이대로는 아니 된다.
이제는 가슴이 무너질 때다.
가슴이 무너져야 도덕이 세워진다.
회개로 가슴이 무너질 때, 북한도 무너진다.
한국교회야. 하늘 앞에서 맛 잃은 소금을 토하며
회개로 가슴을 찢으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여.
하늘 앞에서 그 진한 욕망을 토하며
가슴을 무너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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