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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1)
2022년 06월 24일 (금) 12:47:52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2~7)

 
8·15 해방
 
홀연히 해방이 하늘로부터 내리었다.
저주를 받아도 그 죄가(罪價)를 감당키 어려운 이 땅 위에 해방이라는 은총의 빛이 임한 것이다. 암흑으로만 가득 차던 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순교자(殉敎者)들의 피 탓이리라.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남은 백성의 기도, 성도들의 눈물의 간구 탓이리라. 교회 지도자들이 압제자들과 음행(淫行)하고 있는 동안도, 교회 민중은 묵묵히 인고(忍苦)하며 골방과 굴과 무너진 교회당을 숨어들어 울면서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간구하고 있었다. 해방의 선물을 받을 공로가 있다면 그들 외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해방은 순전히 은혜였다. 누구 하나, 내노라 할 사람이 없었다. 자유(自由)가 중앙청 위에 태극기처럼 펄럭이고, 평화(平和)가 시청 위에 비둘기 떼처럼 창공을 나른다.
 
<해방의 날 장안에 태극기가 물결쳤다.
옥에 갇혔던 이들이
인력거로, 도라꾸로 몰려나올 제
종로 인경은 목이 매여
울지를 못하였다.
 
어른들은 아무나 악수를 하였다.
소경들은 구경을 나왔다가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해방의 감격을 윤석중 씨는 동시(童詩)로 표현했다.
온 백성들은 ‘이 지지리도 못난 백성에게 해방의 은총을 주시다니’ 하나님께 감격하면서 허리가 휘도록 경배하고, 목이 터지도록 영광을 하나님께 찬양을 해야 했다. 이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이 귀한 조국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그러한 거룩한 일을 위해 앞장을 서야 했다.
 
그런데 교회는 무엇을 했나? 슬프다.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해방이 되자, ‘출옥 성도(出獄 聖徒)네, 배신자네’하면서 일본에게 끝까지 저항하면서 신앙의 순결을 지켰던 무리들과 일본과 야합(野合)했던 무리들과의 큰 암투(暗鬪)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신사 참배를 끝까지 거절하며 버티었던 지조 있는 종교인들이 자기 교만에 빠져서 스스로 성자(聖者)연 하면서, 일제에 굴종했던 목사 · 장로들을 향해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 정죄의 돌을 들고 회개하라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어 고생하던 70여 명 중 주기철 목사와 채정민 목사 등 50여명은 감옥에서 순교했고, 나머지 20여명은 출옥했다. 그리고 출옥 성도로 자처했다. 이들은 출옥 후 평양의 장대현교회에 모여 한국교회 재건에 관해 기도하고 숙의한 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 원칙을 발표했다. 곧 신사 참배를 한 교직자들은 2개월 동안 근신하고, 그 뒤 교회 앞에서 공개 참회할 것, 교직자들의 근신 기간 중에는 평신도가 교회의 예배와 치리에 임할 것 등이었다.> (민경배:「한국의 기독교사」106 페이지)
 
반면, 신사 참배했거나 일본과 타협한 쪽은 낯 두껍게 자기변명, 자기 합리화에 여념이 없었다. 머리를 깎으라면 깎고 재를 쓰라면 재를 써야지, 변명은 무슨 놈의 변명이요 합리화인가? 입이 열 개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또한 아무리 출옥 성도일지라도 정죄의 돌을 들고 치려는 것은 바른 성경적 자세일 수가 없다. 오히려 고난을 받은 자가 야합한 자를 십자가 사랑으로 포용했어야 옳았다. 거룩한 손이거나 배신의 손이거나 하나같이 손을 붙들고 울면서 교회와 민족의 죄과를 회개하며 이 수난이 자기들의 범죄 탓임을 고백했어야 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으랴.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배신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을 탓하며 회개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무덤에서 나오신 후,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탁하신 것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라 하신 것이다.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도 책망보다는 평강을 말씀하셨고, 아직도 의심에 젖어 있는 지지로도 못난 도마에게도 ‘이 악한 자야.’ 꾸짖으시기 전에 자기의 쓰라린 고통과 배신이 배어 있는 상처를 보여 주셨다.
 
디베랴 바닷가에서는 사람 낚는 어부를 포기하고 다시 바다를 향해 절망의 그물을 던지고 있던 제자들을 위해 숯불로 떡과 생선을 구우시고 부르시던 주님이셨다. 조반 후, 주님은 자기를 세 번이나 부인하던 베드로를 향해 근신하라고 정죄하시기보다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씩이나 부탁하시던 주님이셨다.
 
그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눈물로 감격할 수밖에 더 있었겠는가?
지옥 불에 제일 먼저 던져질 이 꼬락서니들을 다시 어루만지시며 다시 포용하시는 주님의 모습 앞에 어찌 회개가 아니 터지랴. 어찌 죽는 한까지 그 크신 은혜 갚기 위해 헌신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님은 가룟 유다가 자살하지 않고 예루살렘 거리 어느 귀퉁이에서 고뇌를 이기지 못해 술에 취한 채 살아만 있었더라도, 주님은 분명히 그 어두운 거리를 찾아가셨을 것이 분명하다.
 
스데반을 살해(殺害)하는 데 동참했던 사울이 또 다시 주님의 제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다메섹을 향해 넘어가고 있을 때, 주님은 저주의 벼락 대신에 무엇을 하셨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목매 인 어조로 부르셨다. 그 사랑의 부름이 사울을 감복하게 하여 바울이 되게 했던 것이 아닌가?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때 자고(自高)하려고 인고(忍苦)했던가?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로서 매 맞고 조롱당하고 수난을 겪음으로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으려는 것 아니었던가? 하물며 생명을 다시 주시고 조국의 자유까지 주셨다면 감격하여 주님의 은혜 찬송하며 형제의 허물까지 대신 십자가를 지는 것 옳지 않은가?
 
출옥 성도들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듯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는 것을 자제하고 오히려 실족했던 형제들의 범죄의 손을 붙잡고 함께 흐느끼면서 '우리가 다 연약하여서 그렇지요.'라고 용납하였다면, 어느 누구인들 양심에 화인(火印)맞지 않고야 회개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랬다면 한국교회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크리스천은 불의를 자행하는 강자(强者)에게는 언제나 무저항주의로 항거해야 하지만, 일단 그 자가 약자(弱者)의 자리로 내려앉았을 때에는 용납하고 감싸주어야 마땅한 것이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0)
 
또한, 해방 후에 이승만, 김규식, 함태영, 김 구, 윤보선, 신흥우 등등,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기독교의 물을 먹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의 높은 권좌에 앉아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하늘의 뜻을 이루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었다.
 
<해방 후, 한국교회가 일종의 집권층의 종교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감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형무소의 형목(刑牧), 군대에 군목(軍牧)을 둘 수가 있었다. 국민 대다수의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가 관리로서 성직자를 둘 수가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기독교에 대한 우대라고 할 수 있다.>
(지명관: 「한국인과 기독교」113페이지)
 
하늘은 해방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권한도 주신 것이다.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정치인들이 운영하던 나라는 어찌되었는가? 데모, 테러, 경제 공황, 반란 사건 등등이며 5년도 안 되는 사이에 귀한 거목(巨木)들이 계속 암살되는 비극 앞에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의 연이은 암살에 이어, 그처럼 조국 광복 하나만 위해 전생을 바쳐 희생했던 우리의 지도자 김구(金九)마저 암살당했을 때 우리는 울고 울었다. 그것도 바로 주일날 당한 일이었다.
 
아, 조국이여. 어찌 이 모양인가.
슬프다. 아프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교회 안에서 이건, 밖에서 이건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하늘을 무서워할 줄 모르고 참담한 행악(行惡)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무서운 채찍이 하늘로부터 임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백성이기에,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연단의 채찍을 드시는 것인가.
 
<주여, 내가 북방을 보오니, 피의 아우성을 부르는 시한폭탄이 거기 있나이다. 누가 우리를 저 번뜩이는 칼날과 창검에서 구할 수 있나이까. 내가 귀를 막아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저 살기어린 거친 군화 소리를 막아낼 수 없으며, 내가 깊은 잠 속으로 숨으려 해도 꿈속에서마저 피를 부르는 카인의 군가(軍歌)소리가 들리어 오나이다. 주여, 어찌하여 저희를 패망시키려 하나이까.>
 
교단(敎團) 분열(1)과 6·25 동란
 
1950년 6월 25일 주일(主日) 새벽.
역사는 역류(逆流)하는가?
 
<패망이로다. 내 조국 한국이여.
네가 불러들인 하늘의 진노가 삼천리강토 위에 임하였도다.
붉은 해가 동산에 솟아나서 피처럼 붉게 노을 진 서산으로 몰락할 때까지 창검의 번뜩임이 땅 위에 가득 차고, 비명과 아우성 소리가 종일 거리 위에 차고 넘치도다. 강이여, 네가 피로 물들었구나.
산이여, 너의 골짜기에서 시체 냄새를 씻을 수가 없구나.>
 
저 비명 소리, 저 들판과 산골짜기마다 쌓여 뒹굴던 시체들마다 눈을 홉뜬 채 원한에 차 있으며, 여인들의 흰 치마가 찢기고 강간당하던 날의 비극을 누가 잊을 수 있으랴. 파괴된 대동강(大洞江) 인도교를 구더기처럼 데룽데룽 매달리며 기어 넘어오던 모습들을 어찌 우리의 안막(眼膜)에서 지울 수 있으랴.
   
파괴된 대동강 다리를 통해 피난하는 장면들 
<병사 하나가 옆구리로 비어져 나온 창자를 한 손으로 움켜잡은 채 고지를 내려 왔으나, 고지를 다 내려 왔다고 알아차리자, 죽어 버렸다. 어떤 병사는 등뼈가 달아나고 어떤 병사는 두 눈이 몽땅 후벼 내어지고 어떤 병사는 두 개골을 절반 이상이나 날려 버리고 나서 미친 듯이 악을 쓰고 비명을 지르고 지렁이처럼 꿈틀대다가 맥없이, 혹은 꼬르륵 소리를 내며 숨져 갔다. 인간 도처에 무덤이라더니, 이야말로 도처에 죽음이요, 도처에 부상자였다.>
(강용준: 「밤으로의 긴 旅路」94페이지)
 
이 무서운 저주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이 멸절당하기 직전의 위기 속에서 한국교회는 과연 무엇을 하였나? 재를 뒤집어쓰고 땅을 치며 회개했나?
아, 어찌 이리도 무지몽매했던가!
모든 지역을 다 빼앗기고 부산까지 쫓기어 가면서까지 한국교회는 싸움질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임진왜란 시, 북쪽으로 쫓기어 피난 가는 빗속에서도 노론, 소론, 북인, 남인으로 작당을 짓던 그 꼬락서니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1951년 7월에 출옥 성도를 중심해서 마침내 「고려파(高麗派)」가 분열되어 졌고, 1953년에는 신학 문제로 「기장파(基長派)」가 분열된 것이다. 하늘의 몽둥이를 맞아 순진무구한 백성들이 처참히 죽은 가는 그 틈바구니에서 교회는 분쟁에만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이유야 있겠지만, 그러한 행위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나 민족 앞에서 악의 밭을 가는 자요, 독을 뿌리는 자요, 저주를 부르는 자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어찌 그 뿐이랴.
교회는 혼란한 사회를 향해 빛과 소금이 되어야 마땅한 데도 더 썩고 썩은 부패의 온상지(溫床地)가 되고 있었다. 우방(友邦) 국가들의 기독교가 정성 들여보내 오는 구호물자를 놓고 얼마나 교회는 추잡을 떨었던가? 교역자들은 구호물자를 팔아 교회 건축이나 교회 재정으로 유용하기 일쑤였고, 혹은 사리사욕에 도용(盜用)하는 이가 허다했다.
또 이 때 사회사업가라 자칭하는 자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의 상당수가 고아를 이용하여 구호물자를 노렸으며 한 밑천 잡고 지금까지 기름지게 사는 이들을 보게 될 때 분노에 앞서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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