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2.7.4 월 15:27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신학
     
제 3 장 한국교회의 수치의 역사(2)
2022년 06월 11일 (토) 15:41:33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수치의 역사
 
그러나 성령의 역사 뒤에는 사탄의 역사가 비등하게 일어나는 법인가. 3·1 운동 후에 닥쳐오는 일제(日帝)의 압제는 교회의 거센 불길을 주춤거리게 만들었고,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교회의 선도적인 역할에 집중적으로 소화기를 들이댐으로 굽힐 줄 모르던 뜨거운 열심을 쇠퇴하게 만들었다. 일제에 타협하고 아부하는 목사가 늘어가고 민중 지도자들은 하나둘씩 망명이나 도피, 은둔하므로 조직과 체재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교회는 그 방향을 바꾸어 영적 구원이나 능력, 천국에 대한 소망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애끊는 묵시적 환상에 머물게 했다고 정하은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한국 근대화와 윤리적 결단」45페이지). 개인 구원에만 전념하고 사회 구원에는 외면하는 교회, 그것은 절름발이지,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었다. 장애자가 된 교회, 바로 그것이었다.
 
그 결과, 살인자 카인, 공산주의가 생긴 것이 아닌가? 교회가 사회를 외면하니 우리 공산당이 사회를 구원하겠다고 붉은 깃발을 들고나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상기서 47페이지). 백번 옳은 지적이지. ‘죽으면 죽으리라’ 해야 했다. 신약이 증언하는 초대교회는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굽힘이 없었다. 원형극장에서 검투사와 야수(野獸)에게 찢기면서도 찬송을 부르면서 고난을 감내했고 환희에 차서 순교했다.
 
우리인들 못할 게 무엇 있었나? 그저 목숨이 아까워서 비굴하게 굴종했지. 동방의 예루살렘, 하나님이 그처럼 기대하셨고, 세계교회가 기대하였던 한국교회는 그렇게 쉽게 일제의 채찍 앞에 두려워 벌벌 기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군화에 묻은 똥을 핥으라면 핥는 꼴이었다. 사회 구원을 외면하고 개인 구원, 내세(來世) 소망에만 전심하더니 과연 어찌 되었나? 마침내 더 큰 올무가 덮치지 않았던가?
 
사탄은 야금야금 한국교회의 바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신사참배(神社參拜) 강요. 이 엄청난 시련을 이미 절름발이가 된 교회는 극복할 수가 없었다. 이미 목회자들이 병든 신앙을 심어 놓았기에 소수자 외에는 거의가 항거할 신념이 없었다. 초대교회가 로마의 살인적인 박해를 받을 때에 지도자이거나 교회 민중이거나 하나같이 순교적 각오로 임함으로 결국 로마를 복음으로 점령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 모습이다. 그로부터 한국교회가 1930년대까지 보이던 추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한번 이기지 못한 시험, 한 번 빠진 진창,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인가?
 
<신사참배 하라면 허리가 부러지게 하고 성(性)을 고치라면 기일을 놓쳤다가는 안 될 것 같이 분주히 고치고, 시국강연 하라면 침을 말려 황국신민을 부르짖고, 영미(英美)를 욕하고 전향을 하라면 참 차라리 전향을 하고, 공개만 할 수 있다면 성경도 맘대로 개편을 하며, 교회당도 맘대로 팔아먹고, 신용을 얻기 위해서라면 네 발로 기어도 보고, 개소리도 짖어 뵈인 정치가, 사상가, 종교가, 교육가, 지식인, 문화인…> (함석헌 저 「성경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226페이지)
 
돌아도 보통 돌아버린 게 아닌 모양이었다.
 
<성경 중에서도 내세사상이나 민족사상이 들어 있는 모세 오경과 요한계시록은 뽑아 버렸고, 나중에는 신약성경 중 사복음만 보라고 제한시켰다. 1943년 9월부터는 주일 아침 예배 한 시간만 교회에서 모이도록 제한을 하였고, 밤 예배와 삼일예배는 폐지시켰다. 설교도 일본말로 하라고 강요하였다. 각 교파는 모두 그의 고유한 명칭을 버리고 조선교단이란 이름 아래 당국에 순응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김광수 저 「한국교회사」)
 
박 완의 「한국기독교 100년」을 읽다가 계속 울화가 터져 나왔다. 이것이 픽션(fiction)이라면 좋으련만, 사실이라니 기가 차다. 숭실전문학교 맥퀸(尹山溫) 교장이 신사참배를 거부할 때, 일제의 편에 서서 열심히 설득하던 자가 최 목사란 자요, 평북 노회장 김일선 목사는 ‘기독교 친목회’를 만들어 각 교회 소식과 동태, 설교 내용을 알리는 첩보원 노릇을 했고, 주기철 목사를 설득시키려 다니던 자들도 바로 그런 족속들이었다.
 
또한 1938년 9월 10일은 한국교회사 중 가장 치욕적인 날이었다. 예수교 장로회 제 27회 총회 시 당시 총회장 홍택기 목사란 자가 사회를 보면서 어이없이 신사참배를 하기로 가결했다니 이 무슨 변괴인가. 이 작자는 완전히 정신병자라 치더라도 그 회장(會場)에는 분명히 내로라하는 목사와 장로, 선교사 총대가 193명이 있었다는 데, 고작 반대 의사를 낸 이는 선교사 한 분뿐이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노회다, 총회다 할 때는 쉴 사이 없이 정의니, 불의니, 법(法)이니 떠들어대던 그런 자들이 총 앞에는 왜 그리 쥐 죽은 듯이 엎드리어 있었나? 동방의 예루살렘은 저주의 검은 구름이 덮이고 있었다. 주일(主日)이면 방방곡곡에서 거룩한 종이 울리고, 상가(商街)는 모두 문이 닫히고, 온 교인들이 흰옷을 입고 교회를 향해 구름 떼처럼 모이던 땅, 성수주일(聖守主日)이 일반화되던 신기한 땅, 그 복지(福地)에 이제 저주의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예언자의 경고
 
1942년 2월 첫 주,
주기철 목사는 산정현교회에서 최후의 설교를 했다. 그는 설교 중에 무엇엔가 붙잡혔는지, 감동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 말씀이 한국을 향한 예언이 될 줄 자신도 알지 못했다.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 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그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북녘땅은 저주의 땅, 황폐의 땅, 여우의 굴이 되지 않았나?
위대한 교회당들이 우뚝우뚝 서 있던 그 거룩한 터전들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살인자(殺人者), 카인의 후예들이 점거하여 판을 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일제(日帝)는 그래도 종교는 인정했고, 무엇을 강요하기 전에 설득이라도 시키려 들고, 재판 제도라도 있지 않았나?. 그러나 북한 공산당은 실로 카인 그대로였다. 피에 굶주린 이리처럼 눈이 충혈된 채, 시퍼런 살기(殺氣)가 번뜩이고 있다.
 
설득이 어디 있는가? 반대하면 살상(殺傷)으로 응징할 뿐, 저 잔인한 조소를 보라. 짐승과 무엇이 다르랴. 소름이 끼친다. 실로 저주로다. 어찌하여 거룩한 성도들의 땅, 가장 축복을 받았던 저 북녘땅이 세계에서 가장 진저리를 내게 하는 공산당의 굴혈이 되었는가는 자명하지 않나? 일제 당국은 주 목사를 투옥하고 나서도 무엇이 부족하였는지, 평양노회장 최지화 목사를 불러 주 목사를 파면하라고 강요하였다.
 
최 목사는 마지못해 주 목사를 면회하고 ‘주 목사가 사면하면 주 목사도 살게 되고, 산정현교회도 평안하게 되고, 평양노회도 말썽이 없어지니 제발 사면하여 주시오.’'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내 목사직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이 그만두라고 하시기 전에는 사면 못하겠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평양노회는 그 후 주 목사의 목사직 파면을 결의하였다. 그렇게도 목숨이 아까웠는가? 저주를 퍼붓고 싶은 분노가 목에까지 차오른다.
 
<과연, 이 소식을 들은, 후에 순교의 반열에 오른 채정민(蔡廷敏) 목사는 통탄하여 외치기를 ‘평양노회야, 주기철 목사를 파면한 평양노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했다.>
(김광수「한국기독교 인물사」 157페이지).
 
그 말씀, 또한 예언이 되었다. 우리 탓이다.
우리 한국교회 탓에 민족이 분열된 채, 저 숱한 백성이 살육되고 흩어지고, 매장도 못한 채, 골짜기마다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하게 된 것이나 70여년 세월 동안 천만 이산가족의 피눈물을 흘리며 두고 온 식구들은 그리워하게 된 것도, 북한 성도들의 저 무덤 같은 카타콤의 삶도 전부, 우리 한국교회 탓임을 알아야 한다.
 
“그 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육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렘 25:33)
 
그러므로 북한 공산당을 욕하고, 지역 이기주의를 조장하여 자기의 정치 기반을 세우는 정치가들의 작태나 악덕 재벌들과 철딱서니 없이 나대는 젊은 세대를 욕하기보다 우리 한국교회가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죄, 교회의 죄, 민족의 죄를 대신 회개하여야 우리 민족의 가나안 땅, 저 북한이 열리는 것이다. 아, 그 때,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순교적으로 버티었다면 얼마나 위대한 국가가 되었겠는가?
 
순교는 못 할망정,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앉아서 고작 결의한다는 노릇이, 십자가 지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매질을 가하는 것뿐이었다니, 너무나 기가 막히다. 그들의 후예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그러나 네 놈은 별거 있겠는가.
이렇게 평안한 때는 누가 너처럼 마음대로 주절거리지 못하겠는가? 아마, 네 놈은 일제의 고문실에 끌려가 욕 몇 마디와 매 몇 대만 맞아도 벌벌 떨면서 예수님의 사진에 침을 뱉을 놈이 아닐지 의문스럽구나. 맞는 소리인지 모른다. 사실, 예수님 때문에 욕 한마디, 매 한 대 맞은 경험이 없는 내가 아닌가.
 
그러므로 누구를 욕하기 전에, 내가 그들의 허물을 지고 회개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성경 속에 나타난 위대한 이들은 민족의 범죄를 대신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반역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다.
 
그 때 모세는 ‘옳습니다. 이 악한 자들을 강하게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소서.’라고 했는가? 아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 기도 하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급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옵소서’라고 간구했다. 그 때 여호와께서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라고 하셨다.
 
사울왕은 처음에는 신앙이 좋고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뒤에는 점점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사무엘의 명령을 거역하기를 자주할 때에 하나님은 마침내 진노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하셨다. 그 때 사무엘은 하나님께 아뢰기를 ‘하나님, 옳습니다. 저도 사울왕에 대해서 큰 실망을 했나이다. 이제는 저를 폐하시고 새 왕을 세우소서.’라고 했는가, 아니다. 삼상 15:11에서 보면 사무엘은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으로 위대한 모습이다.
 
느헤미야는 포로의 생활 중에 자기 조국의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자기 민족의 죄를 회개했다.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 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들어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 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다.
 
다니엘도 예루살렘을 향하는 문을 열어 놓고 기도하기를 ‘우리는 이미 범죄 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나 모든 지도급에 있는 자들을 향해 비난하기에 앞서 나의 연고라.’면서 하나님 보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바른 자세이다. 그때에 하나님이 홀연히 한국의 가나안 땅 북한을 열어 주실 줄 믿는다.
언제, 저 북녘땅에 다시 찾아가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할꼬.
언제, 저 위대한 스승들이 다니던 길을 감격을 눈물을 흘리며 걸어 볼꼬. 붉은 이리들이 살기 어린 눈으로 날뛰던 더럽혀진 땅에 다시금 자유(自由)의 종을 높이 달고 울려 볼꼬.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은 후에야 가나안 복지가 열리듯, 이 땅에 고난을 불러들였던 장본인들이 무덤으로 간 후에야 저 거룩한 땅이 열릴 것인가?
 
“주여, 우리 교회가 죄를 범한 탓이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어서 속히 그날을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기다림이 너무 길어 지치고 지쳐 있나이다.”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제 3 장 한국교회의 수치의 역사(2
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1
제 3 장 한국교회의 수치의 역사(1
"예나 지금이나 현명한 임금을 만나야
꽃 벙긋, 장마와 무더위에 짜증 내지
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2
[정달영 장로] 적인가? 동포인가?
한번이라도
(소리지 캠페인) 5. 기복에서 나눔
인생의 광야
최근 올라온 기사
주간 뉴스
시편53강 97편 악을 미워하라
땀 흘린 산행 후에 달콤한 복숭아로 ...
땀 흘린 산행 후에 달콤한 복숭아로 ...
성전 사랑
사랑방 소풍
왕만 되려고 했다.
한 번도 앙망!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2...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