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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한국교회의 수치의 역사(1)
2022년 06월 08일 (수) 16:00:56 김태복 목사 www.cry.or.kr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 1:11~13)
 
분열의 추태
 
우리가 성인(成人)이 되었을 때, 우리는 선배 신앙인들을 경멸했다. 독선과 완고로 굳어진 인간들이며, 손톱만치의 양보도 모르는 편협한 그릇으로서, 십계명(十誡命)만 강조하지, 십자가에는 무식한 유대교 추종자들이라고 조소했다. 그들은 그들이 입버릇처럼 늘 강조하는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다는 성전에서, 우리가 중·고등부 시절 친교회 시간에 명곡(名曲)을 부르는 것마저 ‘경건한 예배당에서 세상 잡(雜)노래를 부른다.’고 호통을 치던 그 성소(聖所)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자행했나?
 
한참 교파가 분열하던 시절, 그 거룩한 곳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다 못해서 목사이건 장로이건 구별 없이 자기 교리(敎理)에 맞지 않는 자이면 멱살을 잡고 강대상에서 끌어내고, 심지어는 예배 도중에 자기 혈기를 참지 못해 똥오줌을 뿌려 댄 장본인들이다. 아, 그 짓으로도 화가 덜 풀렸는가, 어제까지 돈 몇 푼 내는 데도 벌벌 떨던 작자들이 홧김에 일부 교인들을 찢어 가지고 나가서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선뜻 거액을 내는 데는 서슴지 않는 그 몰염치함, 그래도 그것은 좀 나은 편이다.
 
얼마나 얼굴이 두꺼운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여봐란듯이 새 교회당을 건축하지를 않았는가? 같은 교회당에서 두 패로 나누어 위층에서는 목사 패가, 아래층에서는 장로 패가 차지하고 서로가 마귀 취급하며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환장하다 못해 미친 것이지, 미치지 않고 맑은 정신에 이런 철따구니 없는 짓을 자행할 수가 있는가? 그뿐이던가. 그 때부터 어제까지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하며 웃고 돕던 사이가 서로 원수가 되어 기도도 원망의 기도, 저주의 기도를 한다.
 
서로 교인을 뺏기 위해 혈안이 되어 밤낮없이 돌아다니며 중상모략을 한다. 그 목사의 과거가 어떠니, 설교가 냄새가 난다니, 사모님이란 욕심쟁이라니-.
 
“혀는…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8)
 
그 혀를, 잘라야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 세대(世代)는 그러한 독소(毒素)가 배인 자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했다. 성인(成人)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속았다는 사실에 얼마나 큰 분노를 느끼었던가? 그들의 교훈은 사랑과 희생, 겸손과 온유를 가르치면서도 사랑과 온유를 찢고 있었다. 희생과 헌신을 부수어 버리고 있었다. 오직 겸손의 가면, 온유의 마스크를 쓴 채, 혀, 그 회칠한 혀로만 경건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설교하고, 기도하고, 동정의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런 위악자(僞惡者)일수록 십자가(十字架) 보혈은 왜 그리 자주 언급 하는지, 성경은 왜 그리 자주 인용하는지, 회개 타령은 왜 그리 내세우는지 역겹기 그지없다.
 
회칠했건만
 
세월은 이 추태를 잊어버리게 했다. 사회(社會)는 교회를 회칠한 것만 의식하게 되었다. 약방과 술집만큼이나 흔해진 교회당의 숫자도 다 부흥의 소산으로 슬며시 넘어갔다. 재와 티끌을 뒤집어쓰고 호곡하며 회개해도 감당키 어려운 저 엄청난 범죄는 교묘히 매장되어진 것 같았다. 오히려 겉에 아름답게 단장한 회칠에 감탄하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번창하고 있었고 쩍하면 교인은 1,200만 이상을 돌파하고 있다고 자랑하기 바쁘고 갖가지 선교 단체가 발산하고 있는 열기가 대단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지금 1,200만 성도라고 자랑하면서도 사회 앞에 아무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계속 추태의 뉴스거리만 제공하고 있는가? 뻔하지 않는가. 회칠한 무덤은 여전히 무덤에 불과할 뿐이다. 아벨의 피가 땅속에서 호소로 뿜어 나오듯이 드디어 송장 썩는 악취가 회칠한 외면 벽으로 배어 나와 얼룩지게 했고, 그 냄새가 표출(表出)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미장해도 잠시뿐, 다시 얼룩이 나타난다.
어쩌겠는가, 다시 얼룩을 가리기 위해 기만의 붓으로 회칠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 된다. 이제 한국교회는 과거 역사의 송장을 내어놓아라. 네 기름졌던 배를 가르고 저 검은 덩어리를 하늘 앞에 드러내라. 그래야 하늘이 새 생명 주신다.
 
수난의 의미
 
우리는 한국교회의 역사에 관한 귀한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 그 책 속에서 위대한 혼을 만나면 감동의 눈물을 흘렸으며, 배신자를 만나면 주먹을 불끈 쥐고 치를 떨기도 했다. 역사의 그 길고 험한 골짜기를 더듬는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심각한 의문들, 즉, ‘왜, 일제 36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으며, 왜 저 동방의 성지(聖地)였던 북한 땅이 시랑(豺狼)의 거처가 되고 말았으며, 왜 한국의 수난의 암운(暗雲)은 이 땅 위를 덮고 걷히기를 거부하고 있는지, 또한 분단된 조국은 70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굳어지기만 하고 있는지’에 대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한다.
 
세계 교회사이든, 한국 교회사이든 우리에게 뚜렷이 교훈 하여 주는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서 성경 연구와 기도 ·봉사 · 선교의 열이 강렬할 때는 교회는 연합하는 기운이 왕성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때는 조그마한 신앙의 견해차나 교리의 차이, 인간의 감정들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직 타오르는 불길처럼 기독교의 영향력들이 힘차게 사회 속에서 번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교회가 어떤 안일 속에서 타성에 젖어 들기 시작하거나 세상 권력의 자리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또는 세상 권력의 탄압에 의한 두려움 때문에 교회의 사명인 개인 구령 사업과 사회 정의 구현을 회피할 때, 혹은 그 중에 하나에만 치우칠 때, 묘하게도 어느 구석에서 서식하고 있던 독버섯이 여기저기서 돋아나서 교회 분열의 위기를 초래하고는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독버섯은 교리논쟁이든가, 교권(敎權) 다툼이든가 하는 따위였다. 논에 물이 넘칠 때는 잡초가 있든지, 올챙이든, 거머리든, 물뱀이 서식한다 할지라도 풍성한 열매로 가득 차지만, 생명수가 고갈되고 인간들의 주의 주장들이 판을 칠 때는 교회라는 논은 바닥이 갈라지고 곡식은 자라지 못해 쭉정이만 가득해진다는 사실을 교회 지도자들은 깨달았어야 했다.
 
초창기 한국교회
 
초창기 한국교회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이 당시 교회는 비탄(悲嘆)과 암영(暗影)이 깃들인 구한말(舊韓末)의 사회 속에서 교회로서의 빛(구령의 사명)과 소금(사회 정의 구현)의 역할을 행하고 있었다. 그런 교회 위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임하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샤머니즘과 불교와 유교로 굳어질 때로 굳어진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기 위하여 교육과 신문, 병원과 사회사업을 펼치었고, 그 정지(整地)되어 가는 심령의 밭에 지칠 줄도 모르는 듯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 힘을 다하였다.
 
성경을 번역하고, 신학교를 세우고, 노회(老會)를 설립하고, 사경회(査經會)를 개최하여 평신도의 양육에 힘을 기울이고는 했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교육가는 교육가대로, 재력가는 재력가대로 조국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사재(私財)를 털어 가며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일제의 만행에 저항하며 민중을 계도(啓導)하는 데 솔선수범했던 것이다.
 
<교회는 사회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 열렬히 민중을 교화, 계몽하고 때로는 강연회, 토론회를 비롯하여 한글 강습회, 야학, 연극회, 문예활동 등으로 민족주의 운동에 적극적 자세를 보여 주었다.>
(정하은 「한국근대화와 윤리적 결단」42페이지)
 
우리는, 때로는 매를 맞으며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발이 부르터서 절룩이며 험한 산골길을 수십 리씩 걸어서 전도 여행을 하였던 초대교회의 위대한 주(主)의 종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또는 왕궁(王宮)의 불의에 대해 그 잘못을 지적하며, 혹은 일제의 탄압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교적 각오로 항거하며 선도했던 저 위대한 선각자(先覺者)들을 생각하며 의연히 용기가 솟구침을 금할 수가 없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죽(竹)대처럼 곧기만 하던 저 신념들을 보며 가슴에 또 하나의 죽대의 순(旬)이 발아됨을 느끼게 된다.
 
‘이 민족에도 저런 위대한 혼이 살아 계셨었구나.’라는 감동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런 지도자들 밑에서 교회는 일제의 압제에도 굽힘이 없이 교회를 골짜기마다 세우기 시작했으며, 목사의 수가 증가되어 가고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하여 주의 사업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도 수가 20만도 못되는 미약한 처지에도 제주도, 해남, 만주, 동경, 중국에까지 선교사를 파송하던 저 왕성한 선교열을 보면서 2000년 전 성경의 초대 교회의 모습과 다름이 없음에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 당시의 교회의 모습은 절정에 이른 순간처럼 보일 만큼 대단해 보인다. 교회의 첫째 사명인 개인구령사업에는 1907년을 기점으로 해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선교사들의 기도 모임에서 발화된 성령의 역사는, 길선주 목사와 방위량 목사가 장대현교회에서 인도하던 선교사와 한국인 교역자 합동 사경회(査經會)에서 강한 불로 임함으로 오순절 다락방의 역사가 재현되었던 것이다. 그 불길은 멈추지 않고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삼천리 반도를 행해 번져 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교회들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평양 장대현교회당 모습)
 
<1900년경 한국에는 4만의 가톨릭과 2만의 프로테스탄트가 있었다. 1907년 가을 평양 중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독립된 장로회가 조직되었을 때 이에 참가한 회원은 외국인 선교사 33명에 한국인 장로 36명이었다. 그날 6명의 신학교 졸업자가 목사로서 안수를 받았다. 그 당시 장로교에는 목사 7명, 장로 53명이 있는데 불과했지만, 벌써 장로교 신자는 7만에 달했다. 감리교에는 4만 5천의 신자가 있었다. 이 당시 얼마나 교세 확장이 대단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지명관 저「한국인과 기독교」67페이지)
 
또 하나의 교회의 사명인 사회 구원 사업도 초대교회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평신도들의 강렬한 사회 참여는 정치, 교육, 사회, 외교를 통해서 민중 계몽과 조국 광복에 그 초점을 맞추고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 활발한 움직임이 마침내 이 나라 역사상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쾌거(快擧)를 장식했으니 1919년의 3·1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가 과연 무엇인지 보여주는 운동이었다.
 
한국 초대교회는 실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동시에 실현하려고 애쓰던,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을 동방의 예루살렘을 만드시고 아시아의 복음 센터, 더 나가서는 최후의 시대의 세계의 복음 센터를 만드시기 위해서 큰 능력을 부어 주시므로 신앙의 뼈대, 교회의 지반을 바르게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세계 선교 협회는 한국을 오늘의 성지(聖地)라 불렀으며, 그 선교의 성공은 근대사의 불가사의요, 그 신앙은 초대교회와 같이 소박하며 성경에 대한 열의는 세계적이라 찬양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민경배 저 「한국 기독교회사」88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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