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2.7.4 월 15:27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신학
     
제 2 장 한국교회의 현주소와 진로
2022년 06월 01일 (수) 20:10:11 김태복 목사 www.cry.or.kr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16~21)

 
한국 교회의 현주소가 어디인가?
 
지금 한국교회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한국교회 역사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1900년대 초기 한국교회는 10여만 신자에 불과했다. 그런 아동기에 불과한 한국교회가 어떻게 3·1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는가? 그에 비해서 100여 년이 지난 한국교회는 120배의 신자로 성장했음에도 사회를 선도하기는커녕 사회로부터 병들었다고 지탄받는 위치에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굳이 변명한다면, 3·1운동 당시 한국교회는 성숙한 교회였던 서구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의 온상 안에서 과보호를 받고 있었을 뿐이다. 그 선교사들에 의해서 학교, 병원, 사회사업이 기초를 닦기 시작했고 독립운동에 대한 지도를 간접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의 한국교회는 진정한 자립된 교회라고 볼 수 없고 다만 아동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25 사변 후에 북한교회가 남한으로 대 이동하면서 한국교회는 아동기를 벗어나 청소년기를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소년기의 특징은 성장이다. 때로 중·고등부 수련회 때 가보면 식사량이 대단한 것을 볼 수 있다. 얼마나 먹어대는지 식사 봉사하러 간 분들이 혀를 둘러댈 정도이다. 그들은 배불리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픈 것처럼 먹어댄다. 그때는 돌을 먹어도 삭힐 것 같은 기세이다. 그런 만큼 놀랍게 성장한다. 중 3학년이나 고 1학년 쯤 되면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큰다.
 
한국교회의 청소년기는 6·25 사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50년 이후부터 한국교회는 놀랍게 성장해 왔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교회는 10년마다 그 숫자가 배가 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상류층으로 갈수록 기독교인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크리스챤 뉴스위크」라는 주간지에 보면 불교신문에서 조사한 내용을 게재(揭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42명, 카톨릭이 20명, 불교가 9명, 무종교가 26명, 기타가 3명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막강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 중에 가장 가슴 아픈 것이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이 25%나 되고 상류층으로 갈수록 기독교인이 42%나 되고 천주교까지 계산하면 62%나 되는 데도 한국 사회의 도덕이 이처럼 썩었는가?’라는 점이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종교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바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종 대형비리 사건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독교 중직(重職)들이니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한국교회가 그 동안 오직 성장위주로만 주력해 왔기 때문이다.
마치 청소년기에는 기걸 들린 것처럼 먹어대듯이, 한국교회는 그 동안 오직 은혜와 복과 능력을 받기 위해서만 전력해 왔다. 그래서 기도원이나 각종 다양한 성경공부나 성장세미나 마다 만원 사태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1960-1980년대 당시는 얼마나 한국교인들이 은혜를 사모했는지, 여름철 휴가도 기도원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설날 연휴 때도 금식기도원에서 금식하는 사람들로 대만원을 이룰 정도였던 것이다. 그때의 한국교인들은 은혜와 복을 받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사모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한껏 몸집을 불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조정기(調停期)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급성장하던 한국교회가 1990년대 후반부터 30년 동안 거의 성장이 멈추고 있다. 아니, 오히려 많은 교회들이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 급속도로 성장하던 한국교회가 잠시 멈추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조정하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본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한국교회가 한없이 성장으로 치닫던 청소년기를 벗어나 청장년기에 들어서는 전환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장년기에 들어서면 우선 먹는 것부터 줄어든다. 고등학교 때는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더니 23, 24살이 되니 먹는 양이 현격히 줄어든다. 이제는 키도 잘 자라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청장년기에 들어서니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약해졌고, 외형적인 성장도 멈추었다.
 
그러나 청장년기에 달라진 점은 책임을 질 줄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취직도 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제 청장년기에 이른 한국교회는 성장위주에서 성숙위주로 대 전환해야 한다. 급성장하면서 커진 몸집에 충실한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에는 열심을 나타냄으로 은혜와 복, 능력을 많이 체험했지만, 그 받은바 은혜를 움켜쥐려고 할뿐, 어리석은 부자처럼 나누어주지 않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된다.
이제는 끝없이 은혜와 복만 받으려는 개교회 성장위주에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려는 신앙의 생활화(生活化), 섬김과 나눔으로 나타나는 성숙한 삶으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국교회는 또 한 번 도약을 할 것입니다. 이제는 농어촌의 미자립교회들과 불우이웃기관들, 그리고 북한선교와 세계 선교를 향해 나누어주고 섬기는 교인들과 교회들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비대증 환자가 되고 말 것이다. 한국교회가 병든 이유가 그 동안 열심히 복과 은혜를 받기 위해서 헌신하고 기도는 했지만, 복과 은혜를 받은 후에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몰랐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같이 도덕적으로 병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미국 교회로부터 배워야 한다. 어느 자료집에서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미국의 신학자 칼 두들(Carl Dudly)의 조사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60년까지 20년 동안 미국교회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라고 한다. 1940년대 미국의 주요 개신교, 장로교,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인이 미국 전 인구의 49%였다고 한다. 그 뒤 20년 동안 전 인구의 15%가 증가했다고 한다. 이토록 왕성하게 성장하는 기간 미국교회가 한 일과 그 당시 선포된 메시지의 내용을 일반적으로 총괄하여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미국 교회가 한 일
(1) 미국 교회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 예배당을 크게 지었다. 교회가 성장하는 기간에 가장 중요하게 한 일이다. 지금 도심 가운데 비어있는 교회들이 그때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2) 미국 교회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 신학교를 많이 세웠다. 각 교단 신학교들이 미국 곳곳에 세워졌다. (3) 미국 교회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 깊은 산 속을 찾아다니며 캠프장이나 기도원을 세웠다.
 
2. 선포된 메시지
(1) 예수를 믿은 것과 중산층이 되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즉, 예수를 믿으면 잘 살게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2) 예수를 믿으면 좋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고 강단에서 선포했다. (3) 예수를 믿으면 좋은 가정을 갖는다고 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일치하는 메시지였다. 1960년부터 이런 소망이 실제로 실현되면서부터 미국인들은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가정이 안정되고, 지위가 안정되면서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1964년 이후부터 1974년까지 감리교인이 1백만 명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4년까지 920만 명이 줄었다“고 했다.>
 
이런 자료를 보면서 마치 70년대, 80년대 한국교회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서구교회와 미국교회가 밟았던 실패의 전철을 한국교회는 피해 갔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40년대, 50년대의 미국교회의 모습을 한국교회는 70년대, 80년대 그대로 답습했다는 사실 이다. 그 결과, 성장이 둔화되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고 있지 않는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이대로는 안 된다.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교회는 새로운 변화기를 맞고 있다. 사실, 그 동안 한국교회 성장을 주도해 왔던 대표적인 선두주자들이 일선에서 거의 은퇴했거나 은퇴시기를 맞고 있다.
 
2001년도「월간목회」지(誌) 4월호 대담란에서 주간 박종구 목사는 말하기를 ‘5년 내지 10년 후에는 현재 대교회 담임 목회자들의 80% 정도가 전부 은퇴하게 될 것입니다. 100개 교회를 선정해 놓고 보아도 5년 내지 10년 후에는 담임목사의 약 80%가 현역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오게 될 것인가 할 때 대교회에 소물급 목회자가 담임목사로 가면서 한국교회의 대표성이라든지 연합운동에 구조적인 개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진정 한국교회는 새로운 조정기, 변화기를 맞고 있는데 그것은 청장년기에 맞는 성숙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성장의 주역들, 결자해지(結者解之) 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처럼, 한국교회의 급성장의 주역은 지금의 대교회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교회들이 전력투구한 결과 오늘 한국교회 5만 교회, 8만 교역자, 1,200만 신자들을 가지게 되었고, 세계 2만 여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됨으로 미국에 이어서 제2위 선교대국이 됨으로 세계교회가 놀라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교 100년이 겨우 넘은 한국교회가 세계 대형교회 25개 중에 10개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교회 역사에 유례가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베푸신 기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러므로 대교회들의 공로를 아무리 극찬(極讚)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급성장의 주역들이 대부분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은퇴한 분들 중 대표적인 분들을 나열해 본다면 1928-30년생: 최해일, 홍순우, 이만신, 장기천, 김선도, 김소영, 1932-38년생: 김충기, 곽선희, 김의환, 은준관, 오관석, 배동윤, 김창인, 김기수, 박조준, 김장환, 박태희, 지 덕, 석원태, 김호식, 장광영, 조용기, 피종진, 김홍도, 이호문 목사 등이다.
 
그들이 바로 한국교회를 세계 앞에 우뚝 서도록 급성장 하는데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한 분들이다. 그들의 나이로 보면 6·25 사변 당시 사춘기의 강을 건넜거나 군인으로 끌려가 전쟁의 강을 건너면서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다. 어느 의미에서 그러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분들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분들이다. 그러므로 생에 대한 집착, 성공에 대한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바로 그런 일사각오의 투쟁정신으로 산 결과, 오늘의 성공, 오늘의 대교회가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가 이룩한 모든 성업(聖業)들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계속 움켜쥐려는 모습은 추하게 보인다. 오늘 대기업들도 계속 움켜만 쥐려고 하다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을 교훈 삼아야 한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재벌기업들도 창업 1세대가 물려주는 경영권을 2세대에게 세습할 때 비판이 쏟아지고,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것이 가업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국민에게 기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의 길을 증거 하는 목사직을 자기 아들에게 세습한다는 것은 말 자체가 우선 추하기 짝이 없다. 교회의 지배권을 세습까지 하다니,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사랑하고 부패하고 죄 많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십자가에 사형 당한, 집도 절도 없는 나그네였으며, 그 자신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 진리 자체였다. 이런 예수의 길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또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라면 무엇을 세습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세습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상황 자체가 벌써 그리스도와 인연이 먼 길로 빠지고 있음을 뜻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죄악이다. 왜? 자기 혈통에게 세습하려고 몸부림치는 목사들은 자기 왕국을 건설했고, 거대한 부를 축적해 놓고 있으며, 권력과 부를 자기의 뜻대로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고, 그가 장악하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본인이 죽은 후에도 행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한용상:「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213페이지)
 
한국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앞장섰던 목사 그룹 중에 가장 선두주자는 조용기 목사이다. 이는 그를 비판해 왔던 분들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조용기 목사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교회를 이룩했고 세계 모든 나라를 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할 정도로 영적인 능력이나 어학 실력이 뛰어난 분이다.
그를 통해서 1970-1980년대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에 큰 영적 사역을 이룩했던 분이 길선주 목사에 이어 김익두 목사이고 해방이후는 1950-1960년대 한경직 목사가 그 바톤이 이었다면 1970대-1980년대는 조용기 목사가 그 뒤를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그 당시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력이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부터 한국사회는 산업근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모든 시민들이 황금주의에 깊이 매료되면서 소비성 사회의 짜릿한 쾌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 민중들도 삶의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삶의 쾌락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1970년대는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시대가 지나가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시대였다. 이와 때를 맞추어 성경을 보는 시각도 적극적인 관점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기에 맞추어 경제성장기에 사는 교회민중의 구미에 맞는 설교자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조용기 목사였다. 수많은 인파가 세상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방법을 들으려고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성경을 적극적인 방향에서 해석해 줌으로 영적인 구원뿐 아니라 사업의 형통과 건강의 축복을 설교해주고 있었다. 그는 1950년대-1960년대 설교자들이 지나치게 강조했던 ‘엄위하신 하나님’보다는 ‘좋으신 하나님’을 더 강조함으로 많은 기성교인들이 여의도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한국교회 모든 강단들도 그의 설교를 인용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한 강한 바람 속에 필자도 휘말려 있었다.
 
조용기 목사의 공헌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성경을 긍정적인 면에서 보게 함으로 한국교회로 하여금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하게 한 것이다. 반면, 그가 한국교회에 남긴 큰 오점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기복주의에 깊이 물들게 함으로 탐욕에 물든 교인들을 만든 것이요, 도처에 지성전을 만들어 닥치는 대로 교인들을 끌어들임으로 맘모스교회를 이룩하여 구경꾼 신자들을 양산했을 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만들므로 한국사회가 점점 도덕적으로 병들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용기 목사가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여의도에 있는 본 교회 말고 전국에 31개의 지 교회를 거느리고 있다. 교인이 자그마치 78 만 명. 안양에 본당을 둔 동생 조용목 목사는 21개의 지 교회에 30 만 명. 형제가 연합하여 인구 100만의 종교왕국을 건설한 셈이다.
4형제 목사로 유명한 감리교의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김건도 목사도 세계적인 빅브라더스 목사다. 장남 김선도는 7만의 광림교회,차남 김홍도는 10만의 금란교회,삼남 김국도는 1만이 넘는 임마누엘교회를 세웠다. 그 세가 20만이니 왕국에는 못 미치나 군벌(軍關)이 되고도 남는다. (中略)
대형교회는 소형교회를 잡아먹는 공룡이다. 슈퍼마켓이 하나 들어오면 500여 개의 구멍가게가 문을 닫는다. 대형교회가 한 개 생길적마다 300여 개의 소형교회가 문을 닫는다. 대형교회는 소형교회를 잡아먹는 공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교회가 늘어나면서 전체 기독교인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이계선 목사:「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136페이지)
조용기 목사를 포함한 성장의 주역이 되신 분들이여, 이제는 자기가 섬기던 교회를 중심으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노욕(老欲)을 과감히 벗고 후임자로 하여금 과감히 나눔과 섬김에 앞장서도록 해야 한다. 그 때 한국교회는 선한 싸움으로 믿음을 지킨 그 모든 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리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자기가 이룩한 대교회라는 노욕에 매인다면 자기들이 쌓아 놓은 공든 탑을 자기들이 허무는 우행(遇行)을 저지르므로 온 한국교회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받을 것이 불을 보듯 환한 일인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 교회는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월남한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한국교회 기초확립기를 이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초에 「월간목회」지(誌)로부터 필자에게 은퇴하신 목회자 중에 존경받는 분들을 탐방하여 인터뷰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2년여 동안 12분의 원로 목회자들을 찾아 다녀본 때가 있었다.
 
한경직 조동진 임택진 정규오 박용익 조향록 방지일 정진경 한병기 이상근 박명수 최동진 등, 오늘의 한국교회의 기초를 닦는데 큰 힘이 되었던 목회자들이었다. 전국 여기저기 다니면서 한 분, 한 분을 찾아뵙고 두세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동안 큰 감동을 받았고, ‘저 분들의 목회적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너무 보잘 것 없구나’는 생각으로 부끄러움을 안고 돌아오고는 했다.
 
그들은 성자적인 목회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은퇴한 후에도 검소 그대로였다. 그들은 자기의 전생을 바친 목회지도 조금도 주저 없이 물러섰고, 무슨 흥정 따위의 추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분들이 남한교회의 기초를 확립했다면, 지금 막 은퇴하는 분들이 한국교회의 급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은퇴한 분들 뒤를 이어 후임자가 된 분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주소가 청장년기인 줄 알고 나눔과 섬김에 힘써야 한다. 청장년기의 자세는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이룬 풍성한 열매로 사회를 향해 힘차게 봉사하고 세계를 향해 선교해야 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한국교회가 이 대전환기에서 이룩해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시대정신인 나눔과 섬김보다는 여전히 성장주역의 선배들을 따라 성장과 기복주의 목회방식을 답습하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한 교회에 대한 하늘의 분노이시인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인해서 거의 2년 동안 교회가 회집하지 못한 채 온라인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비극에 당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기에 한국교회는 과감히 나눔과 섬김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코로나19 이후의 한국교회 대토론회’에서 김기태 교수(호남대 신문방송학)는 “한국교회는 다양한 변화와 개혁을 요구받고 있지만 결국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일시 닫혔다가 다시 열린 과거의 그 예배당으로 돌아가는 단순히 물리적인 회구 차원이 아니라 그동안 잃어버렸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외형적인 성장과 부흥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버리고 사회윤리적인 책임 의식과 실천에 적극적인 공교회성 회복을 위한 실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기태 교수는 ‘대사회적 소통과 공감 능력 제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회가 일방적으로 세상을 끌고 가려는 태도를 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는 존재로서의 자세 전환이 시급하다고 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항상 외롭고 소외 받는 사람들이나 계층과 함께하는 교회의 따뜻한 모습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늘뜻담은교회’ 이창훈 목사는 “국가 복지시스템이 미처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를 찾는일을 교회가 감당하고 좋은 이웃이 된다면 한국교회에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마을목회가 한국교회 목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참다운 인간상을 가르치셨다. 반면,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탐욕스런 부자를 강력히 비판하셨다. 따라서 교회는 처음부터 구제를 자신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로 이해하며 실천했다.(중략) 초대교회는 곤경에 처한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주일 예배 때 구제헌금을 거두었고,기름, 곡식, 계란, 치즈, 고기, 올리브, 빵, 포도주도 수집했다. 교회는 예전적 필요 외의 모든 것을 가난한 자, 포로된 자, 죄수에게 분배했다.>(배덕만: 「교회사의 숲」 275페이지)

 

<1. 구제는 교회의 고유한 사명이다. 예수를 만났던 사람은 이웃의 고통에 민감하게 되었다. 이후, 구제는 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뿌리내렸다. 교회가 국가와 갈등 속에 있었을 때뿐 아니라,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서도, 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꾸준히 도왔다.

2. 교회의 구제활동은 단지 소극적 선행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개선과 변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기능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종류와 범위도 확대되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해법도 함께 확장 •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3. 교회가 복음을 전하면서 학교, 고아원, 복지관 등을 세워서 가난, 질병, 무지를 추방했을 때, 교회는 성장했고 사회도 발전했다. 하지만, 교회가 건축과 성장에 집착하여 이웃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교회와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역사적 • 신학적 교훈이다.> (上書: 283페이지)

그렇다. 청장년기에 한국교회의 사는 길은 나눔과 섬김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제 3 장 한국교회의 수치의 역사(2
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1
제 3 장 한국교회의 수치의 역사(1
"예나 지금이나 현명한 임금을 만나야
꽃 벙긋, 장마와 무더위에 짜증 내지
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2
[정달영 장로] 적인가? 동포인가?
한번이라도
(소리지 캠페인) 5. 기복에서 나눔
인생의 광야
최근 올라온 기사
주간 뉴스
시편53강 97편 악을 미워하라
땀 흘린 산행 후에 달콤한 복숭아로 ...
땀 흘린 산행 후에 달콤한 복숭아로 ...
성전 사랑
사랑방 소풍
왕만 되려고 했다.
한 번도 앙망!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제 4 장 한국교회의 분열의 역사(2...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