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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삶
2018년 11월 04일 (일) 12:58:14 김태복 목사 webmaster@cry,or.kr
(골3:15-17)
 
지금 우리 사회는 점점 감사의 소리는 줄어들고 불만의 소리만 높아 가는 느낌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대단히 어려운 때를 만나고 있습니다. 경제가 너무 어려워서 모두가 사업이 안 된다고 아우성입니다. 요즈음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도 많아서, 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지금부터 40년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나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40년 전에는 경기도 마석에서 10리 떨어진 가곡이라는 시골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 당시는 선풍기도 없어서 여름 삼복더위에 설교하면 나면 와이셔츠가 다 젖을 정도인데 샤워시설도 없습니다.
 
버스도 하루 서너 번 다닐 정도이고 흑백 텔레비전도 200호 되는 동네에 두 집 만 가지고 있어서 저녁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모여들므로 극장으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주인집이 신이 나서 간식도 내는 등, 으스댔지만 나중에는 밤12시가 넘어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음으로 신물을 낼 정도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냉장고는 한 집도 없었습니다. 땔감도 전부 산에서 나무를 해서 때야 함으로 교회 사택에도 겨울이면 남자 교우들이 나무를 해오는 봉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집사람은 그 마을에서 15리 떨어진 수동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는데 어느 때는 운동회나 학예회 등, 학교 행사 때문에 밤늦게 퇴근할 때가 있습니다.
 
어두운 길을 여자 혼자 걸어온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마중 나갈 때가 많습니다. 저는 종종 그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 같았다면 별로 고생을 안 했을 것이라고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처럼 승용차가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승용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니 연락받는 대로 학교까지 차를 타고 가서 실어 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다면 “어디까지 왔어요?” “지금 산모퉁이를 돌고 있어요.”라면서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전화도 동네 이장 집에 비상 전화 한 대가 고작이었습니다. 자, 그 때에 비해서 40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들이 얼마나 잘 살고 있습니까?
 
집집마다 컬러 텔레비전, 전화, 세탁기, 냉장고는 물론, 김치 냉장고, 에어컨, 화려한 주방, 목욕실, 승용차 등등은 물론이요, 먹는 것도 지천이어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요, 멀쩡한 옷을 밖에 내어놓아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전화기는 초등학생들까지 소유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아마, 40년 전에 비하면 우리가 100배는 잘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100배는 감사의 소리가 높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100배는 더 불만이 많은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혼율, 자살율이 세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가 되고 있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아마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한심하여 더 주시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됩니다. 감사하지 않는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기 쉽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부터라도 하나님이 이 민족을 보호해주시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의 언어 중에 '감사'란 말처럼 아름답고 존귀한 말은 없습니다.
 
영국의 종교가요,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한 월리암 로우는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만족과 행복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를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때는 큰 역경을 만날 때는 당장에 큰 재난 같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때 그것이 도리어 축복의 결과가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하셨고 17절에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교인 중에는 늘 감사와 찬송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늘 불평과 낙심. 원망에 매여 지내는 자가 적지 않습니다. 꽃이 있는 곳에 향기와 꿀이 있지만,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 파리나 벌레가 임합니다.
 
마찬가지로 늘 감사와 찬송하는 밝은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만,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자에게는 마귀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감사할까?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1. 마음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감사의 시작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 생활이 감사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눅6:45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마음에 감사가 있도록 지키어야 합니다. 잠4:23에서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으니 불평 불만이 깃들이지 않고 감사가 언제나 있도록 지키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에 감사로 가득하도록 지킵니까? 마음을 감사로 지키려면 언제나 우리 눈이 감사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캄캄한 방도 창문을 달면 환해집니다. 감사의 눈이 되면 감사의 마음이 됩니다. 우리는 똑같은 눈을 가졌지만 어느 분에게는 불평할 조건들만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분은 감사할 조건을 찾아냅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가 열두 명의 지도자를 가나안 복지에 몰래 보내서 40일 동안 정탐하게 한 후 보고하게 하였더니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복지에서 온통 불평할 조건만 보고 왔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축복으로 약속한 땅이란 것이 거민을 삼키는 저주의 땅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로 보였던 것입니다.
 
속된 말로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격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의 눈은 믿음의 눈이요, 감사의 눈이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눈임에도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있을까요?
 
그 결과, 불평의 눈을 가졌던 자들은 결국 그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으나 감사의 눈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축복의 땅을 차지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저 감사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불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만투성이지만, 감사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감사할 것 투성임을 보게 됩니다.
 
어느 남편이 언제나 자기 아내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합니다. "우리 마누라는 너무나 잠이 많아서 내가 늦게 퇴근하면 잠에 빠져서 한참 초인종을 눌러야 나오고 낮에도 잠만 자니 살만 미련하게 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직장에서 옆에 있는 동료가 대단히 근심에 싸여서 말하기를 "우리 집사람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네."
 
"처음에는 불면증 노이로제더니 이제는 더 심해져서 정신이상 징조가 나타나니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지경이네. 앞으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지, 그 많은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할지 근심이 태산같네."라고 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날 저녁에는 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와 말하기를 "여보, 피곤하면 늘 편히 자구려. 밥 잘 먹고 아이들 잘 기르고 살림 잘하는 당신에게 왜 불평했는지 모르겠구려. 특히 당신이 잠 잘 자는 것 너무 감사하구려."라고 하니 부인이 평소와 다른 남편 모습에 어리둥절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로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여. 불평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점점 불평의 가라지로 가득 차게 되지만 감사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 점점 더 큰 감사의 알곡으로 넘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말로 감사해야 합니다.
만물 중에 말을 하는 자는 유일하게 인간뿐입니다. 그래서 말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의 말로 하는 고백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고 감사할 때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어느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이가 열 살이 되면 대략 6천 개의 낱말을 알게 되는데 그 중에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하는 말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5천 단어를 알게 되는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도 역시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제일 기뻐하셔서 그러한 자들에게 기쁨과 축복을 부어주시기를 즐겨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말은 우리의 삶의 운전대와 같습니다. 감사하는 말은 우리를 감사의 땅으로 인도하게 합니다.
 
그러나 불평, 원망의 말을 하면 불평의 조건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불평으로 가득 찬 땅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누에가 자기 입으로 내뱉은 명주실 집에 들어앉아 살게 되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얽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언제나 하는 말이 '나는 고생할 팔자인가 봐. 나는 인덕이 없어서 남편의 덕도, 자식의 덕도 못 보고 살 팔자인가 봐' '하나님도 내게는 손을 드셨는가? 왜 기도 응답을 해 주시지 않는가?'고 나오는 대로 떠듭니다. 그는 자기가 시인한 팔자 타령하는 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조금만 무엇이 안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회자를 원망할 때 좋아하는 것은 마귀요, 마귀가 주장하는 삶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성도는 말할 수 없는 어려운 형편에도 하나님 앞에나 사람들 앞에서 믿음의 말을 나타냅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여보, 근심하지 마세요. 내가 기도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에요' '얼마나 감사할 것 투성이예요. 예전에는 우리가 얼마나 못살았는데 이 정도로 집칸이나 마련하고 사는 것도 너무 감사할 일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믿음으로 시인하는 대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에 직접 불구의 모습으로 출연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타기도 한 헤롤드 러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공수부대원으로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져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그는 차츰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불구의 몸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직접 출연해 정성을 다해 연기도 합니다. 결국 그 해에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탔고 상금도 받았습니다. 그때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 질문 앞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은혜로 여길 때 행복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 풍성한 것을 가진 사람이 감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그 안에서 작은 것을 얻을 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우리의 입에서 언제나 감사와 찬양의 말이 가득한 지언정 불평, 원망의 말이 깃들이지 않도록 지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행함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누구나 말로는 감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마음과 말뿐 아니라 감사의 행함이 따를 때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귀한 식구들도 받았고 건강도 받았으며 물질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귀한 자유를 주셔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받은 바 건강과 물질과 시간을 바쳐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감사를 씨앗으로 인정하셔서 우리에게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바 물질이 너무 많은데 물질을 바치는 것은 인색하면서 물질 축복을 받겠다고 바라는 것은 씨앗을 심지도 않고 가을에 많은 곡식을 거두겠다는 어리석은 농부와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적게 심은 자에게 적게 거두게 하시고 많이 심은 자에게는 반드시 약속대로 많이 거두게 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옛날 아라비아에 신앙심이 깊은 유스후라는 신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생면 부지의 나그네가 찾아와 간청하기를 “나는 어떤 사람에게 쫓기는 몸입니다. 나를 숨겨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나그네는 언제인가 유수후의 아들을 죽인 원수였는데 아직도 이 가정에 무슨 원한이 남았는지 또 몰래 잠입해 들어온 것입니다. 유스후는 그것도 모르고 평소 나그네들에게처럼 친절히 대하면서 ”좋습니다. 들어와 편히 쉬십시오. 내가 하나님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으므로 당신도 나의 것을 마음대로 쓰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나 후하게 대접하는지 나그네는 크게 감동 받고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을 합니다.
 
“나를 죽여주십시오. 사실은 제가 당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입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스후는 그 사람의 손을 다정히 잡고 말하기를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돈을 3배나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이때까지 나의 사랑하던 아들을 죽인 사람을 미워하던 그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나는 사랑으로 원수를 갚겠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닮은 모습입니까? 유수후는 받은 바 은혜를 감사로 행할 때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마음을 괴롭히던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여. 일년 동안 많은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말과 행함으로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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