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9.22 토 14:00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고난의 골짜기에서도
2018년 08월 31일 (금) 12:04:12 김태복 목사 webmaster@cry.or.kr
(시23:1-6)
 
저는 요즈음처럼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마음에 닿은 적이 없을 정도로 시간들의 귀중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시간들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얼마 전까지 여드름투성이의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나타나 군대 간다고 인사 오기도 하고,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 갑자기 입원했다고 연락이 와서 가보니 병석에 노인이 누워 있다는 느낌을 금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월이라는 바다를 따라 항해하다 보면 어느 때는 잔잔한 바다 위에 낭만처럼 떠 있는 달과 보석처럼 뿌려진 별들을 보기도 합니다. 그때 가슴 차오르는 시정(詩情)을 견디지 못하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라는 찬송을 행복감에 젖어서 부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는 갑자기 하늘이 캄캄하여지면서 사나운 비바람과 풍랑이 엄습함으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일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두려운 때라도 우리 성도들은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평안한 때보다도 무서운 뙤얕 빛이 내리쪼이는 광야에서 오히려 시원한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비바람이 부는 밤에 따스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을 만날 때에 “오, 하나님, 이러한 고난의 밤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줄로 믿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모세가 가시떨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불길을 본 것처럼, 지금 가시떨기가 가득 찬 내 인생 속에서 주님의 불길을 만나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자, 그러면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습니까?
1. 육신의 고난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어느 분은 하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고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로만 인도받는 줄 믿고 있습니다. 그런 신앙관을 가진 신자는 너무나 잘못된 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나 스데반, 야고보,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는 다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에도 낮이 오고 밤이 오듯이, 때가 되면 고난의 밤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아니, 더 깊은 의미로는 기독교는 육신으로 보면 고난의 종교입니다. 왜냐면 우리 기독교인은 언제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좁은 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육신과 영의 함수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육신의 고난을 감내하면 영혼은 평안과 기쁨이 임합니다. 반대로 육신의 요구에 따라 주님을 위해 육신의 수고를 피하면 육신은 편할지 모르나, 이상하지요, 점점 내 영혼은 불안하고 초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평안만을 위해 애쓰지 마십시오. 또한 육신의 평안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때가 위기입니다.
 
군대에서 무기를 쓰지 않고 그냥 놓아두면 녹이 쓸 듯이, 우리의 육신이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평안하게 놓아두면 어느 날 녹이 쓸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충성하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에게 평안과 기쁨도 주시고 동시에 의식주 문제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고난이 오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신적으로는 고달픈 것이지만 오히려 영혼에게는 은혜받을 기회입니다.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 즐거워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하기에 성경은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언제 순교 당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에게 ‘기뻐하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인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 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처참한 시간에, 천사가 그에게 영안을 열어줌으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께서 그 우편에 서 계신 것이 보았습니다.
 
그 순간, 영적인 기쁨이 너무나 커서, 돌에 맞아 죽는 육신의 참혹한 아픔도 잊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인이 맛볼 수 있는 신비한 맛입니다. 육신은 비록 고난의 음침한 골자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오히려 영은 그 고난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럼브랜트 목사님은 14년간 캄파넬 감옥소에서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이유로 수감되었다가 출감했습니다. 그 때 그는 간증하기를 “나는 감옥생활 가운데서 이 세상에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특이한 황홀경과 같은 기쁨을 맛보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기독교인만이 할 수 있는 간증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너무 육신의 안일만 바라고 그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니 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육신이 평안할 때는 오히려 신앙의 위기인 줄 아시고 이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평안과 기쁨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진정한 평안과 위로를 주실 분은 하나님뿐인 줄 믿어야 합니다.
영적인 평안과 기쁨은 인간이 결코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내 마음을 평안하게 가져보자’ ‘담대하게 살자’ 혹은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지’라고 힘쓴다 할지라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잠깐은 가능하나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영적인 평안과 기쁨이 임하는 것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했고, “빌4:7에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했으며, 갈5:22에서 성령의 열매 중 희락이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환경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셋방살이하던 사람이 자기 집을 구입하면 몇 달은 기쁘기 그지없으나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랑하던 남녀가 결혼하면 1년 가량은 기쁘고 자녀가 없던 사람이 자녀를 낳고, 직업이 없던 사람이 직업을 얻으면 당분간은 기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진정한 평안과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일 할 때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좋은 환경에서나 좋지 못한 환경에서나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행27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죄수의 몸으로 끌려갈 때, 그를 호위하는 군인들 선원들 등, 276명의 일행과 함께 로마로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산산이 파선된 후 바다 위를 정처 없이 떠다니는 14일 동안 모든 일행들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일생동안 바다 위에서 살았던 선원들이나, 일생동안 전쟁터에서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는 군인들이나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75명 모두가 벌벌 떨면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담대함의 평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러한 담대함은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러한 담대함의 평안은 어젯밤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일기」에는 이런 체험담이 나옵니다. 웨슬리는 어느 날, 엄청난 전염병으로 6개월 동안 무려 아들 딸 여섯을 잃었고 남편마저 바다로 나갔다가 죽은 비운의 여인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처럼 참담한 일을 당한 가정에 가서 무엇이라고 위로할 수 있습니까?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웨슬리는 그 가정에 가서 오히려 큰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비극의 여인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식구들이 죽었다는 고통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나의 모든 가족을 위해서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그들을 하늘나라에 영접하였으니 안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들에게 좋은 때나 어려울 때나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담대함의 평안과 기쁨을 소유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본문 시23편은 한 마디로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 성도들은 양이라는 내용입니다. 양이라는 짐승은 아무 무기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짐승은 무기가 있습니다. 어느 짐승은 뿔이 있고, 어느 짐승은 사나운 이빨이나 발톱이 있고, 어느 짐승은 무서운 독이 있습니다. 어느 짐승은 아무 무기가 없어도 토끼나 사슴처럼 잘 도망칠 수 있는 빠른 발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뿔이나 발톱, 이빨이나 독이 없습니다. 잘 도망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맹수에 걸렸다 하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양은 한 가지 무기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목자를 따르는 것이요, 함께 모여 사는 군집성(群集性)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을 양으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 적절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세상의 무기를 다 버렸습니다.
 
믿기 전에는 거짓말도 곧 잘 하고 수틀리면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나니 때려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하게 살다 보니 손해도 많이 봅니다.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만 하도록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최고의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승리하도록 역사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큰 무기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할 일은 이 약속을 믿고 우리 성도들끼리 흩어지지 말고 함께 양 무리를 이루면서 하나님만 무조건 따라 가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든지,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시든지,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인도하실 지라도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은 친히 인도하셔서 평안할 때든지 역경 가운데서든지, 친히 보호하시면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마침내 승리하게 하십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원수 앞에 상을 베푸시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말씀은 원수에게 승리하게 하신 후에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실 뿐 아니라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신다는 것은 왕같이 높이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시23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이는 다윗이 친히 체험한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여 주심을 믿었습니다. 특히 그가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그의 엄청난 키와 막강한 무기, 혹은 천하 장수라는 이름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의 약속만 믿고 담대히 나가 돌을 던질 때에 천하무적의 골리앗이라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강준식이라는 분이 쓴 「주님의 은혜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라는 책에는 이런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김현자이라는 분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86년도부터입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신문사 기자였는데, 수유리 사글세방에서 전셋집으로 옮길 때 빌린 목돈을 다달이 갚다 보니 한 달 살림살이가 빠듯했습니다. 이럴 때 인근에 살고 있던 어떤 권사의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비록 우유배달 하는 분이었으나 아주 신앙적으로 열심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과 함께 그녀는 작은아이를 들쳐 엎고 큰 아이는 손목을 잡은 채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예배, 금요 철야, 구역예배를 빼놓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다니는 동안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생활이 빠듯해서 십일조를 못하지만 아빠가 승진하면 십일조하고 싶습니다. 아빠가 차장으로 승진하게 꼭 도와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과연, 얼마 후에 남편은 차장으로 승진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십일조를 봉투에 드리려고 하니까 너무 아까워서 드릴 수 없더랍니다. 그래서 계속 핸드백에 십일조를 넣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남대문시장에 아이들 옷을 사러 갔다 돌아오다가 핸드백을 그냥 버스에 두고 내림으로 잊어먹고 말았습니다. 그때야 크게 깨닫고 큰 결심을 하고 십일조를 시작했고, 교회 건축 때도 400만 원을 희생적으로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점점 집안 형편이 나아지게 하셨고 1990년도에는 은평구에 단독주택까지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은행융자금으로 구입했기에 다달이 융자금을 갚아나가느라고 고전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 남편이 새로 창간된 여성지의 편집장에 1억 원의 스카우트비를 받고 옮김으로 융자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때도 큰돈이었으나 그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십일조로 1천만 원을 바쳤습니다.
 
그 후 남편은 다니던 출판사를 나와 「웨딩」이라는 잡지를 1998년에 발간하게 되었는데 그 때 하필이면 IMF가 터졌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함으로 기도를 대단히 많이 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 잡지가 잘 되었고 2002년도에는 평창동에 고급주택을 구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은 어떠한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결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푸른 초장이나 잔잔한 시냇가의 삶 속에서는 물론이고,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가 있는 기회인 줄 아시고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순종의 좁은 길로 가심으로 큰 은혜와 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명성교회의 세습에 관한 예장통합 서울
명성세습 ‘헌법대로 수습’ 촉구예장목
한경직 목사와 김삼환 목사
명성교회 손 들어 준 헌법위 보고 '
괴롭히고도 잘 되는 사람은 없다
잠언18강 8:22-36 지혜와 창조
고난의 골짜기에서도
전 세계 한국인만 먹는 음식
잠언19강 9:1-18 누구의 초대에
그대로 전했더니
최근 올라온 기사
죽을 쓴 설교가 히트가 된 경험
잠언20강 10:1-16 의인의 길 ...
캄보디아 소원이네 기도편지(소용섭, ...
힘이 없으면
멋쟁이 스카프 할머니와 소매치기 38...
예수님이 필요하다(門)
만군의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평양공동선언, ‘되돌릴 수 없는 평화...
한경직 목사와 김삼환 목사
잠언19강 9:1-18 누구의 초대에...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