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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2018년 08월 12일 (일) 16:08:16 김태복 목사 webmaster@cry.or.kr
(마6:25-34)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설교하실 때에 듣는 회중은 가난하고 병들고 직장을 잃고 소외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역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검은 보리 빵이라도 한 조각 먹고 나온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헤아릴 정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장 초조한 입장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정과 직장을 떠났고 예수님과 함께 오늘은 이 동리에서, 내일은 저 동리로 이동하면서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엄청난 기적의 고기를 낚게 하신 예수님, 수많은 난치병을 고치게 하신 예수님, 이 분만 따라가면 놀라운 축복이 활짝 열릴 줄로 처음에는 많은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한 주간, 한 달이 흘러가도 기대했던 것들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회계를 맡은 가룟 유다의 주머니는 항상 달랑달랑하고 자는 곳도 형편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달이 지나고 수고비를 주는 일도 없으니 두고 온 식구들은 어떻게 살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농사철이 되었는데 농사는 누가 지어야 할지, 고기는 누가 잡고 있는지, 세금 낼 때가 되었는지 그 돈은 준비나 되었는지, 답답합니다.
 
그러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앉아 있는 무리들과 제자들을 향해서 오늘 예수님은 너무나 의외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도 자녀 문제, 건강 문제, 사업문제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오셨을 줄 압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은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실 것입니다. 모든 염려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염려하지 않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첫째 이유는 염려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1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아무리 밤이 맞도록 수백 번 염려한다고 할지라도 키는 자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놓고 아무리 고민하고 염려해도 한 자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넬슨 L 프라이스 목사님은 자기가 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이란 책에서 강조하기를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염려는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우리의 생명을 좀 먹고 여타의 생산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것 중에는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소설가 마크트웨인은 노년에 말하기를 ‘나는 나이를 먹은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많은 염려에 쌓이고는 했다. 그러나 그것들 중 대다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안개와 같습니다. 지금은 굉장히 커 보이나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둘째 이유는 염려함으로 건강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좀벌레와 같아서 우리 속에 그냥 놓아두면 우리의 건강을 갉아먹습니다. 우리 몸 전체는 ‘교감신경계’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신경계는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때에 신체적 증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즉 부신(副腎)에서 분비하는 두 가지 화학물질 작용에 의해 교감신경이 일시적인 장애를 일으킴으로 소화를 방해하고 그것이 누적되면 위장에 혹이 생기거나 암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표돌스키라는 의사는 항상 염려를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피부 온도 저하, 식은 땀, 동공확대, 경미한 수전증, 맥박 및 호흡의 상승, 소화 기능 저하, 구토, 설사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염려라는 좀벌레를 과감히 내어쫓으십시오. 그러면 나빠 가던 건강도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3)셋째 이유는 염려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다는 뜻을 가진 ‘워리(worry)'는 사전에서 찾아보면 ’동물이 이빨로 물고 흔들어 찢는다‘는 풀이가 발견됩니다. 항상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 같은 나쁜 영향을 주기 쉽습니다. 염려에 매여 지내는 아내는 남편에게 똑같은 나쁜 영향을 줌으로 그의 삶을 찢어 놓기 쉽고, 염려가 많은 어머니는 자녀들의 마음에 어두운 구름이 끼게 만들므로 우울한 사람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4)넷째 이유 는 염려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염려하고, 혹은 두려워할 때, “왜 염려하느냐, 왜 두려워하느냐”하시면서 반드시 뒤따르시는 책망은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는 것입니다. 걱정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걱정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불신하는 죄입니다. ‘염려’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림나오’인데 이는 ‘메리죠’라는 말에 ‘누우스’라는 접미사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메리죠’란 ‘나눈다’는 뜻이요, ‘누우스’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라는 말은 나누어진 마음입니다. 한쪽으로는 믿는 마음이 있고 한쪽으로는 의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두 가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끝없이 염려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명령을 거역하는 죄를 짓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책망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이니 마음으로부터 염려라는 좀벌레를 과감히 쫓아내십시오. 아무리 산더미 같은 염려의 파도가 몰려온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염려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러면 염려가 밀려올 때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 방법을 본문에서는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고 했고, 28절에서는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공중의 새나 들에 핀 백합화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에게 솔로몬의 옷보다도 더 화려한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모든 문제, 모든 어려움을 알고 책임져 주고 해결해 주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 뿐입니다. 그런데 왜 어느 분은 그러한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합니까?
 
믿음이 없는 탓입니다. 30절 하반절에 보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닙니다.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자기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안타깝고 답답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 하나님께 와서 낱낱이 아뢰고 다 맡겨 버리십시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아무리 산더미 같고 너무나 암담하여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라도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오히려 평안과 감사를 가질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염려를 맡으사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으셔야 합니다.
유명한 저술가인 데일 카네기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손수 의복이나 비누를 만들었고 1년에 한 번 돼지를 팔 때나 돈을 만져 볼 정도였고, 겨울에도 1마일 떨어진 학교에 눈 속으로 걸어 다녔지만 장화나 덧신을 신어보지 못했습니다. 부모님들은 매일 16시간씩 일했지만 빚만 쌓였습니다. 10년의 농사 끝에 결국 농장을 저당 잡혔으나 그 이자도 지불 못해서 은행에서는 농장을 차압한다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47년의 생애는 빚과 굴욕으로 덮였고 염려 때문에 식욕을 잃게 되고, 의사는 아버지가 6개월밖에 못 산다고 할 정도로 병들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농장을 차압하겠다는 은행의 통지를 받고 귀가하는 길에 강 위의 다리에서 뛰어 내려 자살할까 망설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고백에 의하면 그때 투신자살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깊은 신앙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면 모든 것이 올바로 된다는 것이 그의 어머니의 신앙이었습니다. 그처럼 고생이 계속되던 때에도 어머니는 모든 고민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그의 가족들은 무릎을 꿇고 성경 말씀을 암송했으며 그 참담한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일하면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라고 친송을 불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를 42년이나 더 사시고 89세에 돌아가시도록 도와주셨고, 자녀들은 다 훌륭하게 자라서 큰 인물이 되도록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 앞에 있는 염려의 문제를 보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에게 간절히 기도하신 후에 다 맡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해석하면 ‘너희는 하나님 나라의 확산과 성취를 먼저 구하라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의 의의 표준과 인격적 일치를 구하라’는 내용입니다. 더 간략히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부터 먼저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앞세우라.’는 말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먹을 것, 입을 것, 학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어떻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까?’에 힘씁니다. 그럴 때 부모님들은 더욱 기분이 좋아서 아이들이 구하지 않는 옷도 사주고 싶어하고 용돈도 주고 싶어하고 때로 좋은 구경과 외식도 시켜주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인 의식주 문제는 물론이고 많은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 실업인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 아더디마스 장로님입니다. 그 장로님은 CCC회관 건립을 위해 엄청난 거액을 헌금했고 유산정리를 해서 5,600억원 정도를 선교재단을 위해 헌금한 분입니다. 그 분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이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데 문제는 원칙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6가지의 원칙을 소개하기를 <① 주일성수 ② 하루의 첫 시간에 기도하는 것 ③ 온전한 십일조 ④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을 주님을 위해 쓰는 것 ⑤ 주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 ⑥ 사업의 모든 문제와 필요를 주님이 해결하시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 장로님이 아무리 사업이 바쁘더라도 오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힘쓸 때 하나님이 그 가정과 자녀, 그 사업을 강하게 붙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힘쓰는 자들이 다 되심으로 영육 간의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내일 걱정은 접어두고 오늘 일에만 충실한 것입니다.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염려는 하루치 뿐입니다. 염려에 대한 두 가지 어리석은 사람은 ① 과거에 실수한 것에 대해 염려하고 후회하는 자입니다. 즉 과거에 잘못한 결혼, 실패한 사업, 과거에 원한 관계, 용서하지 못한 일 등에 매여서 사는 자입니다.
 
② 미래에 대해 미리 염려하는 자입니다. 어느 분은 오늘 염려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지 내년, 5년 후, 10년 후, 더 나가서는 늙은 후의 문제까지 끌어다가 미리 염려하며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사업이 망하면 어쩌지’ ‘남편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병이 들면 어쩌지?’라는 온갖 염려의 감옥에 스스로 갇히어 죄수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걱정도 팔자’입니다. 더 심한 경우, 염려와 걱정에 너무 빠져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가령 남편에 대해서 ‘내가 죽으면 남편은 몇 달도 못 되어 새장가를 가겠지’라는 염려로 남편에게 트집을 잡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네놈이 지금부터 속을 태우니 내가 늙으면 내어 좇겠지’라면서 공연히 열불이 나서 아이들을 두둘겨 팹니다.
 
오늘 걱정도 감당키 어려운데 5년 10년, 노년의 염려까지 미리 끌어다가 쌓아놓고 한숨 쉬고 두려워하며 밤잠을 자지 못하니 너무나 한심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일입니다. 윌리암 오슬러 경은 예일대학생들에게 자기의 성공의 방법은 매일의 칸막이라는 생활양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매일 하루의 칸막이 안에 살되 과거나 미래는 닫아버리는 것이요, 내일을 생각하되 즐거운 것, 희망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오늘의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한 기도가 우리의 생활법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일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전혀 모릅니다.
 
직장을 잃을지도, 무슨 병고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할지, 혹은 지진이나 전쟁의 위험이 닥칠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할 일은 눈앞에 광야길이 있든지, 사나운 폭풍이나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가 있든지 하나님이 반드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줄 믿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면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고 찬송을 부르며 좁은 길을 따라 나가는 것입니다. 이 찬송을 즐겨 불렀다고 하는 분은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책을 쓴 안이숙 여사입니다. 그분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무려 세 번이나 일경에 붙잡혀서 감옥에 간 분입니다.
 
그 무서운 고문 속에서, 그 형편없는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내일 일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날 그날을 하나님께 맡기면 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찬송하고 감사하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 순교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의 삶에 비하면 우리는 천배 만배 편안한 속에서 신앙 생활함에도 조금만 어려우면 근심하고 염려합니다.
 
더 나가서는 낙심하고 원망한다면 너무나 부끄러운 믿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이 명심할 것은 오늘 본문 중에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는 것입니다. 나무에 가만히 앉아서 먹이만 기다리는 새가 아니라 오늘의 먹이를 찾아 공중을 날고 있는 새입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백합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열심히 땅으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고 햇빛을 통해서 동화작용을 하고 있는 식물을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왜 많은 분들이 공연히 오늘 염려를 넘어서서 내일까지 염려하게 됩니까?
 
일하지 않기 때문에 공연히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굴러가는 돌에게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염려를 이기는 길은 오늘 일에 충실한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는 염려라는 좀벌레가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일하다 보면 염려에 대한 해결의 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오늘 무슨 염려를 안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명령대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를 보는 대신 (1)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기도로 맡기십시오. (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3) 내일 일은 내일하고 오늘 주어진 일에 힘쓰므로 하나님의 크신 도움을 통해서 염려의 문제를 해결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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