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9.22 토 14:00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기독교인의 삼단계
2018년 03월 10일 (토) 18:18:23 김태복 목사 webmaster@cry.or.kr
(마16:24)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로 다시금 주님의 수난과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크게 둘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1)영어로 표현하면 처치 맨(church-man)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으로 형식적인 기독교인, 쭉정이 교인을 말합니다. (2)성숙한 성도로서 그리스도화 된 교인, 알곡 기독교인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만 출석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직책을 받았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진정한 기독교인, 알곡 교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그 해답이 나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려면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 단계는 자기를 부인하여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첫 번 단계는 자기를 부인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부인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팔레사스도’로 그 뜻은 ‘포기한다’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자존심과 자랑, 자기의 주견과 혈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포기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9:27에서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더 나가서는 자기의 육신의 욕심을 죽인다는 의미가 깊습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는 첫 번째 단계는 자기k의 자아와 욕심을 철저히 포기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세례식을 베풀게 되는데 기독교인 되는 첫 번 예식은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원래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침례는 물속에 들어가 머리까지 몸을 담갔다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내가 못 박힌다는 의미요, 다시 물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주님의 것으로 다시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례를 받았지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 나와서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자기의 욕심대로 물질축복, 건강축복, 출세축복을 받으려고 하는데서 결정적인 실패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초장부터 출발점이 잘못됨으로 기독교인으로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집니까? 지나친 자기 욕심을 이루려는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기독교와 역행하는 행위요, 성령의 역사보다는 사탄의 역사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청년들이 결혼할 때에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는 데 목적을 둔다면 분명히 그 결혼은 불행해 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자취하고 하숙하는 것이 지긋지긋합니다. 이제는 아내를 얻어서 편안히 살고 싶습니다.’라든지, 우리 직장 다니는 처녀들이 ‘이제는 직장생활이 지긋지긋하니 시집이나 가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안히 살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그 결혼은 보나마나 실패가 될 것이 뻔합니다.
 
우리 여자 분들이 시집을 가서 잘 행복 되게 살려면 자기의 욕심을 버리어야 합니다. 신부가 결혼하는 순간부터 나의 방식과 나의 욕심을 과감히 포기하고 남편의 집안의 삶에 길들이기 시작할 때에, 다시 말하면 ‘자기 길들이기’에 성공할 때에 거기에서 생겨지는 새로운 행복을 체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남자 청년들은 무엇이 뜻대로 안되면 한다는 소리가 ‘군대나 가 버릴까?’라고 말합니다.
 
군대를 임시 피난처로 압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군대를 갔다가는 큰 코를 다칩니다. 군대에 가려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는 밤 한 시 두 시 되어야 잠을 자고 아침 10시 넘어서야 일어나는 습관이 있던지,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무슨 음악을 좋아하던지 다 버리고 군대에서 6시에 기상하라면 하고 10시에 자라면 무조건 자고 무슨 음식을 주든지, 무슨 음악을 틀어 주든지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청년은 군대에 가서 내내 자기 식을 고집하고 자기 이론을 내세우다가 기압을 지독하게 받습니다. 심지어는 군대 교도소인 영창(營倉)에도 들어갑니다. 그러나 어느 청년은 사회에서는 일류 대학, 일류 직장인이었으나 군대 가는 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집에다가 벗어 놓고 떠납니다. 그리고는 군대에서 시키는 대로합니다. 뛰라면 뛰고 보초 서라면 섭니다. 무슨 궂은일을 시켜도 ‘예’만 하고 ‘아니오’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은 조금 고달파도 마음은 한없이 편합니다. 살이찝니다. 유능한 군인의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자기 식의 삶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식의 삶을 살려고 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세상적인 삶의 자세를 완전히 버리고 대장되시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절대 순종하려는 자입니다.
 
베드로가 초기의 기독교적인 삶에서 실패한 이유는 자기의 주장, 자기 식의 삶이 강한 탓이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냐?”고 물으실 때에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라고 대답함으로 칭찬을 들은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계획이라는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을 붙잡고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런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책망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베드로는 너무나 인간적이었습니다. 내 생각, 내 주견, 내 열심은 대단했지만 바로 그것이 십자가의 장애요소가 되었고 오히려 사탄이 좋아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없어 질 때에 하나님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내 중심, 내 소욕 그대로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고 전도해 보세요. 거기에는 내 열매, 육신의 열매만 열리고 오히려 잘못하면 십자가의 방해꾼이 되기가 일수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철저히 나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에 거기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을 먼저 십자가 안에서 못 박으십시오. 나의 욕심을 포기하십시오. 그 다음 그리스도의 신부와 군사로서 헌신해 보십시오. 그 때에 그리스도의 평강, 그리스도의 능력,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는 자가 다 될 줄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기 십자가를 바로 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 자기 십자가가 주어집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결코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결혼을 하면 누구나 자기가 져야 할 임무가 주어집니다. 여인이 결혼했다고 해서 남편이 잘 해주는 것만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해 주어야 할 여러 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임무를 잘 감당할 때 부부의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남자가 군대에 가면 누구나 주어지는 임무가 있습니다. 소총수이든, 박격포 사수이든, 탱크병이든, 포병이든, 공군이든, 해군이든 어떠한 임무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감당할 때에 성공적인 군대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청년은 군대에 가서 힘든 일은 피하려고 요령만 피다가 고생을 더 많이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각각 주어지는 ‘자기 십자가’를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로 크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1) ‘자기 십자가’는 인생살이에서 주어지는 임무를 말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자녀의 책임, 직장에서의 책임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은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책임도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해서 눅23: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을 핑계하고 가정의 일, 직장의 일을 등한히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의 일도 잘하고, 교회의 일도 다 잘해야 합니다. 어느 분은 부모 때문에 당하는 고통, 어느 분은 자식 때문에, 어느 분은 일생 건강 때문에, 어느 분은 남편, 어느 분은 아내, 어느 분은 이런 고통, 저런 고통이 각각 있습니다. 어느 엄마는 지체부자유아가 있어 일생 고통을 당합니다. 그 자녀는 그 부모에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잘 감당하여야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2) ‘자기 십자가’란 예수님 때문에 생긴 직책이나 은사를 말합니다.
교사이든, 성가대이든, 구역의 일이든, 혹은 집사나 중직, 또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 등을 말합니다. 그 직책이나 은사를 바로 지고 주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성도는 조그마한 교회에서 주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너무나 지칩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다 팽개치고 큰 교회에 가서 등록도 안하고 예배만 드리고 돌아옵니다. 그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편할지 모르나 영혼은 평안치 않습니다. 점점 기쁨이 사라지고 나중에는 요나처럼 풍랑을 만나는 날이 올까 우려가 됩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란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당하는 핍박, 예수님을 때문에 당하는 손해를 말합니다. 십자가는 신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로 믿게 되면 필히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핍박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원수 같은 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내 시간, 내 건강, 내 물질을 희생하여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바로 지십시오.
 
그런데 자기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질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채, 자기 열심만으로 주님을 따를 때에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가장 부끄러운 날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날마다 자기를 죽이어야 했다고 간증했습니다. 그 때마다 큰 능력이 강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피하면 풍랑이 일어나지만 나를 버리고 주님을 위해 십자가 바로 지면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십자가의 길은 힘들지만 그 끝에는 부활의 승리가 반드시 있습니다. 요나가 십자가 피하다가는 풍랑을 만났지만, 회개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니느웨성에서 말씀을 외칠 때에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회개하는 대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에스더가 주님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바로 질 때에 자기도 살고 민족도 사는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목회 길은 갈 때에 보람 있을 때도 많지만 어느 때는 너무 힘이 듭니다. 어느 때는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는 밤도 있고, 어느 때는 심한 오해를 받아서 다 버리고 어디 먼 곳으로 가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어느 때는 전력을 다해서 일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뒤에서 은근히 비난하는 느낌이 들 때는 사표를 내고 다른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받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직도 내가 살아 있는 탓입니다.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내 자아를 부숩니다. 나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다시 ‘내 십자가’를 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강하게 붙드시고 능력을 나타내 주시며 기쁨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독일 어느 작은 마을에 드보라라는 가난한 소작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워낙 가난한데다가 2년 동안의 가뭄으로 인해 남은 것이 전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주인으로부터 소작 일까지 내놓으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들었습니다. 앞이 캄캄해진 그는 식구들을 불러 모으고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주님, 저희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희의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도를 끝나자, 그들이 기르던 새가 창문에 매달려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창문을 열자 새가 들어왔는데 그 입에는 다이아몬드 반주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그것을 팔아 쓸려는 유혹을 받았지만 드보라는 자기 욕심을 과감히 버리고 그 반지의 주인을 찾아서 수소문해 보았더니 그 지역의 부자가 반지를 잃고 사방으로 찾고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즉시, 돌려주었더니 그 부자는 너무나 고마워하면서 답례의 표시로 집과 땅을 마련해 주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드보라가 욕심의 유혹에 빠져 그 반지를 팔았더라면 잘못하여 도둑으로 몰렸을 번하였으나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 때에 일생 살 수 있는 집과 토지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바로 지십시다. 그 십자가는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는 못 집니다.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그 십자가를 바로 짐으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세 번째 단계는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본문 24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다음에 무엇이라 했습니까?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 기독교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신랑 예수님, 대장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군인은 오직 대장만 따라 갑니다. 서부전선으로 가면 그 전선으로, 동부전선으로 가면 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현모양처는 남편을 따라 갑니다. 그가 남으로 피난가면 같이 갑니다. 그가 이민가면 같이 따라 갑니다.
 
그러나 어느 분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길을 갑니다. 어느 분은 어떤 이념을 따라갑니다. 어느 분은 자기 명예만 따라 살고, 어느 분은 돈만 따라 삽니다. 어느 분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자기 신학이론을 따라 살고, 어느 분은 자기 교파를 따라 삽니다. 또 어느 분은 어느 목사님을 따라 이 교회로 저 교회로 옮기며 따릅니다. 또 어느 분은 자기 교주를 따라 삽니다. 안됩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오직 주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직 날마다 자기 욕심대로 살고 싶은 자아를 포기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그가 갈리리 가면 그리로 가고 그가 벳세다로 가면 그리로 가고, 그가 골고다 언덕으로 가면 그리로 따라 갑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만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평강, 예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혹 명예가 아닙니까? 재물이 아닙니까? 아니면 자녀가 아닙니까? 그러한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반성하여 보십시요. 공연히 교회나 왔다갔다하는 쭉정이 신자가 아닌가? 안됩니다. 스스로가 형식적인 신자, 쭉정이 신자로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이번 사순절 기간에 방향을 과감히 바꾸어야 합니다. 공연히 교회만 들락거리는 형식적인 신자, 쭉정이 신자에서 알곡 신자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바로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의 강한 능력을 받게됩니다.
 
국민일보에서 서혜경이라는 유명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녀는 과거에는 어머니가 아무리 기도타령, 신앙타령, 하나님의 능력을 말해도 비웃고 반항하는 자였답니다. 그리고 자기의 능력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다고 믿었답니다. 그러다가 팔에 이상이 와서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건강 악화의 지경이 되고, 큰 장래의 문제에 봉착해서야 금식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동안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앞으로 자기의 모든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때에 팔의 건강이 회복되므로 다시금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번 사순절 기간을 통해서 철저히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자기 십자가를 바로 지십시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진정한 알곡 신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명성교회의 세습에 관한 예장통합 서울
명성세습 ‘헌법대로 수습’ 촉구예장목
한경직 목사와 김삼환 목사
명성교회 손 들어 준 헌법위 보고 '
괴롭히고도 잘 되는 사람은 없다
잠언18강 8:22-36 지혜와 창조
고난의 골짜기에서도
전 세계 한국인만 먹는 음식
잠언19강 9:1-18 누구의 초대에
그대로 전했더니
최근 올라온 기사
죽을 쓴 설교가 히트가 된 경험
잠언20강 10:1-16 의인의 길 ...
캄보디아 소원이네 기도편지(소용섭, ...
힘이 없으면
멋쟁이 스카프 할머니와 소매치기 38...
예수님이 필요하다(門)
만군의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평양공동선언, ‘되돌릴 수 없는 평화...
한경직 목사와 김삼환 목사
잠언19강 9:1-18 누구의 초대에...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