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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십자가
2018년 03월 08일 (목) 09:27:40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요19:17-22, 28-30)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가장 큰 죄인을 처형하는 최악의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죄의 그림자도 없으신 예수님이 왜 그런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했을까? 그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난해한 사실이요, 역설(逆說)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시오, 지극히 선하시고 의로우신 예수님이 가장 악한 죄인만이 지는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되고 터무니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것만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런 잔인한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까? 그 이유가 오늘 본문 17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예수님만이 져야할 십자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질 수 있는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만이 지실 수 있는 십자가는 어떠한 십자가입니까?
 
1.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의 죄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너무 기뻤다”고 하실 정도로 인간을 참으로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 편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나 상하셨고 마침내 분노하셨습니다.
 
엄위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가 창조하시고 그처럼 사랑하시던 인간이 배신하고 자기의 원수 편으로 넘어갔을지라도 잊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간절한 권유에도 재산을 뺐다 시피한 후 세상으로 나가는 배신행위를 했을지라도 끝까지 기다린 것처럼 인간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창조주요, 영적 부모이십니다.
 
진정한 부모는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 뿐 아니라 모든 교육, 모든 보호 등, 그들의 일생을 책임지는 분입니다. 때로 자녀들이 실패의 길을 갈 때라도 끝까지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집의 귀여운 딸이 중3이 되더니 어느 날 나쁜 친구의 꾐에 넘어가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그날부터 아빠 엄마는 딸을 찾아 헤맵니다. 나중에는 그 아빠가 직장도 사표를 내고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찾아다닙니다.
 
그러다가 1년 만에 학교 친구들을 통해서 수소문한 결과 사창가(私娼街)에 팔려가 있더랍니다. 그렇게 예쁘고 귀엽던 딸이 짙은 화장을 하고 몸을 파는 모습을 보는 순간, 엄마는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제 포기하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얼마나 깊은지, 모든 빚을 다 갚아주고 딸을 찾은 동시에 딸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생명의 주시요, 자비하신 영적 부모이십니다. 구약에 보면 호세아라는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 부인 호멜이 다른 남자와 음란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 음란한 여인을 다시 데려와 자기 아내로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기를 반역하고 날마다 마귀와 함께 죄를 짓는 인간들을 무조건 벌만 주기를 원치 않으시고 그들의 죄까지 책임지시고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지은 영적인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서 영적으로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당하셨을 뿐 아니라, 육신의 죄를 대신 하여 무서운 형벌을 그 몸에 받으심으로 상하시고 찢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도 만족하시고 사랑도 충족하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용서하는 것은 사랑의 입장에서는 만족한 일이지만, 공의의 입장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죄 값은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받아야 할 죄 값을 아무 죄도 없으신 대속제물인 어린양 예수님 위에 지우신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유일하게 죄 없으신 예수님만 지실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옛날에 아소카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나라에 음란이 가득함으로 법령을 내리기를 ‘이제부터 누구든지 음란을 저지르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두 눈을 뽑겠다.’고 공포했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음란죄를 저지르다 붙잡혀 온 자가 바로 자기의 아들 왕자였습니다. 왕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만약 왕이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그냥 용서해 준다면 온 백성은 왕의 공정치 못함을 비웃을 것입니다.
 
동시에 어느 누구도 왕의 명령을 듣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법령대로 한다면 아들의 두 눈을 뽑아야 하는 것이니 사랑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왕은 많은 고민 끝에 마침내 공과 사를 분명히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왕자를 끌어오게 하고 두 눈을 뽑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아버지,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할 터이니 용서해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부하들도 간곡히 건의했으나 왕은 단호히 뽑으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신하들은 시퍼런 칼을 들고 한 눈을 뽑았습니다. 아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며 피가 낭자하게 뿌려집니다. 이번에는 다른 눈을 뽑으려고 합니다. 그 때 왕은 “칼을 이리 내라. 내가 뽑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습니까? 왕의 공의도 중요하지만, 아버지의 사랑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왕은 예리한 칼을 들고 아들의 눈을 뽑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한 눈을 뽑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두 눈알과 함께 피가 낭자하게 뿌려졌습니다. 왕의 공의도 살고 아버지의 사랑도 살게 된 것입니다. 그 뒤부터는 온 나라가 음란이 사라지고 바로 잡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자기의 눈동자와 같은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모진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영적 아버지의 사랑을 동시에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통해서 죄 값이 얼마나 무섭다는 사실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다는 사실을 알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로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에덴동산은 기쁨과 평안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가 끼어들므로 그 때부터 인간에게 고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고 여인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당하게 되고 식물도 가시나 엉겅퀴를 내게 되고 짐승도 사나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죄가 인간에게 병이나 기근과 전쟁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어느 분은 묻기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병과 기근과 전쟁을 주시는가?’라고 합니다. 이러한 고통은 인간이 죄를 지은 탓에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 형벌을 대신 받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 수제자 베드로의 세 번씩의 부인, 거짓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흉계, 빌라도의 무능하고 마비된 양심, 군중의 무지와 살인적인 고함들, 로마병정의 잔인함과 강포 등이 독한 살이 되어 예수님을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게 했습니다. 또한 멸시와 학대를 당하게 할 뿐 아니라 채찍으로 태장을 맞으시고 무지스러운 주먹으로 뺨을 맞으셨으며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마침내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두 손과 두 발에 날카로운 못이 박혀서 6시간 매달려 있는 동안에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참담한 고통을 당하신 것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진노와 저주와 심판과 형벌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대신 마음의 평안을 얻고 고난을 이길 능력을 얻으며 병으로부터 고침 받게 하기 위하심인 것입니다.
 
사53:3 하반절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습니다.
 
더 나가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 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고난의 불인 지옥의 형벌로부터 벗어나 기쁨의 나라 천국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신 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죄와 고통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는 큰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한 십자가 은혜는 우리 눈에는 아무리 악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모두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미국 시카고의 한 작은 예배당에서 다섯 살 된 어린 소녀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파하며 마지막 순서로 관 앞을 지나면서 아이와 작별할 때였습니다. 매우 초라하고 더러운 옷차림의 한 남자가 일어나 앞으로 나갔습니다. 찢어지고 때 묻은 옷에 바지는 질질 끌리고, 눈은 술기운으로 충혈 되었으며, 몸은 알코올에 찌든 냄새로 썩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 남자가 죽은 소녀의 아버지로 알코올중독 주정뱅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딸의 관 앞으로 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죽은 딸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겨 자기 옷 속에 감추고는 얼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훔친 신발을 가지고 그 길로 술을 사서 마시려고 죽은 딸의 신발을 35센트에 팔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전혀 변화 받을 수 없는 인간쓰레기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선 그에게 복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 해가 흐른 후에 그는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시카고의 복음 전도자 멜 트래더였다. 알코올 중독으로 쓰레기같이 된 인간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임하자 이런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구원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가 판단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는 십자가 은혜를 받지 못할 자가 없는 줄 믿으시고 모든 자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인류의 죽음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인간이 범죄 함으로 죄가 되었고 죄가 고통을 가져왔고 마침내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함으로 영이나 육이나 죽음이 오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우주와 인간에게 가장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대신 양이 죽음으로 이삭이 살았고, 구약에서는 짐승이 인간 대신 제물이 됨으로 인간이 용서받는 길이 열리게 되었지만 이러한 제사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달려 계시는 동안만은 인류의 죄짐을 진 가장 추악한 죄인이었으므로 하나님으로 외면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죽음의 고통, 죽음의 처절한 고독, 죽음의 권세가 너무나 두려워서 외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바다니” 즉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처럼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와 고통의 짐을 지고 죽으신 후에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간들에게 영원히 사는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1)십자가의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면서까지 우리의 죄 문제, 고통문제, 구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랑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저 희생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전혀 불쌍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믿음으로 받는 자마다 누구든지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무슨 죄든지 사해주십니다. 고통 가운데 기쁨을 주시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더 나가서는 잠깐 육신으로는 죽음을 맛볼지라도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길을 통해서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런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주시려고 애를 쓰시는 분이십니다.
 
마틴 루터는 어느 날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한 고학생이 어느 집 문턱에 서서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 집에서 체격이 큰 사나이가 무엇인가 큼직한 물건을 들고 나왔습니다. 고학생은 자기를 쫓아내기 위하여 몽둥이를 들고 나온 것으로 알고 도망쳤습니다. 그 사나이는 물건을 흔들며 학생의 뒤를 계속 쫓았습니다. 그럴수록 학생은 더 빨리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행인들은 이 모습을 보고 웃었습니다.
 
사나이가 들고 있는 것은 큰 치즈 뭉치였던 것입니다. 고학생이 불쌍해서 치즈를 주려고 나왔는데 겁에 질린 학생은 자기를 때리려고 따라오는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루터는 그의 명저 「탁상어록」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예로 들었습니다. 학생은 도망치기 전에, 그 사나이가 체격이 크긴 하지만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잡힌 인자한 얼굴이며 손에 든 것이 치즈임을 먼저 보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따라오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서운 존재도 거북한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시려고, 우리를 구원의 선물을 주시려고 따라오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처럼 자기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베푸신 이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으심으로 여러분의 생애가 놀라운 축복으로 변화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고통,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육신을 입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셔서 그처럼 그 모진 고통을 당하셨다면 이제는 다시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약한 존재인지라 다시 넘어져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즉시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죄는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품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아니 됩니다. 오직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처럼 주님의 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주님도 자기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자기의 십자가를 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님만이 지실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거꾸로 된 십자가는 그 만이 질 수 있고 바울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바울만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지체된 우리 성도들에게도 각자의 자기 십자가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군대에 가면 각자의 무기를 지급합니다. 그 무기를 가지고 훈련이나 전쟁에 임할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 성도들의 가장 큰 무기는 자기 십자가입니다.
 
그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야 주님을 따를 수가 있는 것이요, 영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은 채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조그마한 고난도 받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다가 조그마한 고난만 와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떠나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만이 죄사함이 넘치고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이 넘칩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으로 나타남으로 죽음의 권세를 꺾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고 낱낱이 회개하심으로 중생을 받고 자기에게 맡겨주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므로 더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는 승리적인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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