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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바라보라
2018년 03월 08일 (목) 08:45:42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요5:1-9)
 
오늘 사순절 기간에 베데스다 못 가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명절인 유월절을 당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유대인의 큰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인데, 이때는 예루살렘 주위 32킬로(80리)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누구나 이 절기에 참석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루살렘은 수십만, 혹은 백만 이상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그에 따라 장사꾼들도 엄청나게 몰려들었기 때문에 마치 대축제를 벌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구경거리나 먹을거리도 엄청나게 많았을 줄 압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시자 인파가 붐비는 화려한 거리에 가지 않으시고 찾으신 곳이 베데스다 못 가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 어두운 곳, 안타까운 곳을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베데스다 못 가는 어떠한 곳입니까? 베데스다 못은 예루살렘 서북쪽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습니다. 그 못 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모든 환자들은 그 못 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오직 그들의 관심은 연못물에 가 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 못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끓게 만드는 데, 그 때 물에 먼저 뛰어 들어가면 어떠한 병이든지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온갖 병자들, 소경이나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나 중풍병자들이 다섯 행각 안에서 앉아 있거나 누워 지내면서 연못의 물이 동하기만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환자들은 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으려고 자리다툼이 심했을 줄 압니다. 그러다가 물만 동하면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어느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뛰어가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왔거나 나중 왔거나 순서가 없습니다. 먼저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그래서 어느 가정에서는 식구끼리 돌아가면서 이곳에 와서 간호하다가 물이 끓으면 환자를 물에 집어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동정은 전혀 없고 오직 시기심과 경쟁만 있는 살벌한 곳이었기에 모든 환자들이나 식구들은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밤에 잠을 자도 편히 자지 못합니다. 온통 신경은 물이나 다른 환자들에게 가 있는 채, 시샘과 경쟁심만 있는 곳, 오직 기적만 바라는 곳이 바로 베데스다 못 가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출석하시지만, 그 목적이 기적에만 두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 나오는 목적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병이 낫고 자기나 자녀의 문제나 부진한 사업문제가 기도응답을 통해서 활짝 열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환자들 중에 누가 기적을 만났습니까? 병자들 중에 가장 무기력하고 경쟁에서는 가장 뒤질 정도로 팔다리를 쓸 수 없는 38년 묵은 중풍병자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38년 된 중풍병자가 기적을 만났습니까?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로 배우고자 합니다.
 
1. 중풍병자는 예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자들이 만나기를 원하고 자기 집에 심방 오시기를 원하였지만, 다 마다하시고 그런 낮은 곳, 어두운 곳, 그 살벌한 현장을 예수님은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환자들은 오직 물에만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오셔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계심에도 베데스다 못 가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듣지도 못하는지, 오직 물이 동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더 나가서는 그 능력의 주님, 기적의 장본인이 찾아오셨음도 여전히 눈과 신경은 그 못 가에 가 있으니 너무나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환자들 중에 38년 묵은 중풍병자만은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왜 물에만 관심을 두는데 이 중풍병자는 예수님만 바라보았을까요? 그는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환자들은 아직도 힘이 있기에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중풍병자는 이 연못가에 언제부터 거주했는지는 모르나 아마 처음에는 물이 끓을 때마다 여러 번 뛰어들려고 움직이었으나 번번이 경쟁에서 탈락되고는 함으로 점점 무기력이 깊어갔을 것이요,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누구인가 도와주면 가능성이 있지만, 이제는 식구들도 다 포기하고 떠난 상태이라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이제 희망이 있다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 누구든지 붙들고 나를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길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아니, 자기 식구들도 귀찮다고 나 몰라라 버리는 세상에 누가 자기같이 천한 것을 돌보겠습니까? 그래서 오직 바라볼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오 할레스비라는 분은 “무력함이야 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상달되는 가장 강력한 호소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큰 절망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나는 의지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라고 날마다, 안타까울 때마다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영적 레이더로 가시는 곳마다 가장 안타까이 전파를 보내는 자들을 먼저 발견하고 찾아 가십니다. 여리고의 삭개오가 너무나 구원을 열망하여 뽕나무에 올라간 것을 보시고 그를 찾아 구원하셨고, 바디매오의 불타는 기도에 이끌리어 저의 눈을 뜨게 하신 것입니다. 얘수님이 베데스다 못 가에 가까이 가셨을 때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안타까운 호소의 전파가 레이다에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체 없이 그곳에 가셔서 그 38년 동안 굳어진 중풍병자에게 기적을 베푸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물의 기적만 바라보던 자들은 고침을 받았다는 기록이 본문에 전혀 안 나옵니다. 여러분들이여,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훌륭한 설교를 듣기 위해 나오십니까? 아니면 훌륭한 찬양을 듣기 위해 나오십니까? 아니면 교인들과 교제하기 위해서 나옵니까?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님을 만나 뵙는 데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때도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실 때도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시는 것입니다.
 
6․25사변 때 진주 지방에서 공산군들이 후퇴를 하면서 사람들을 붙잡아서 운동장에 모아 놓았습니다. 차를 가져다 대고는 타라고 합니다. 안 탈 재간이 있습니까? 그러더니 장교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여기서 예수 믿는 예수쟁이들은 다 내리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이고 가겠다는 말입니다. 그 때 장로님 한 분이 잡혀 왔었습니다.
 
그는 끌려가도 죽을 것이요, 여기서 그냥 내려와서 총에 맞아도 죽을 것인데 죽을 바에야 떳떳이 죽으리라고 생각하고 “나는 예수 믿는 장로요”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 역경에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본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쟁이가 예수 믿는다고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차안에 있는 분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급한 전화가 옵니다.
 
지휘하던 장교가 전화를 받더니 얼굴색이 달라지더니 빨리 출발하라고 합니다. 얼마나 급했더니 쏘지를 못하고 그냥 출발해 버렸습니다. 그 실려간 사람들은 지금까지 행방을 모른다고 합니다. 차에서 내린 장로님이 그 상황에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이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신다면 평생 이 몸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 가운데 살았습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 분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여수에 가면 성광교회라고 큰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를 이룩하고 오래 담임하다가 은퇴하신 김희용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의 아들은 새문안 교회를 시무 하셨던 김동익 목사님이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좋은 때나 어려운 때나, 문제가 있을 때나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완전한 절망과 무기력에 찌든 이 중풍병자에게 낫고자 하는 사모함, 갈망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에 병자는 대답하기를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갈망, 사모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특별히 저가 ‘주여’라는 말을 사용한 사실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간절한 사모함이 있는 중풍병자에게 명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 중풍병자가 누워 있던 자리는 38년이나 찌들대로 찌든 자리입니다. 그것은 무기력과 절망이 깊이 배인 자리입니다. 그가 죽는 날 뚤뚤 말리어 무덤에까지 갈 자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일어나 그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니 말이 안 됩니다. 전혀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중풍병자는 이렇게 고함을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니, 일어나 걸으라니요. 나를 놀리십니까? 온 식구, 온 친척, 친구들로부터 병신 지랄한다고 지겹도록 들어온 나인데 귀한 선생님마저 나를 능멸합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의 깊은 눈은 계속 일어나 걸으라고 재촉하십니다.
 
잘못 일어나다가 넘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까요? 그럼에도 창피를 당하든 말든 말씀을 의지하여 일어나려고 꼼지락거립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순종하니까,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순간, 38년이나 쓰지 못함으로 연약해진 다리에 힘이 오면서 일어나 찌든 자리를 들고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캐더린 마샬이라고 하는 유명한 기독교 여류작가의 글에는 불랜포드라는 여인의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부인은 12년 동안이나 암으로 고생하며 죽어가던 여인인데 1959년 6월 O.J. 헤이스 박사에게 진단 받은 결과, 왼쪽 다리에 암이 걸리어 한쪽 신장도 거의 기능을 잃었고 골반 뼈도 크게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6개월 동안 너무나 아파서 진통제를 1천 달러 어치나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 1월에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12일 동안 무의식 상태라 살아나도 식물인간이 된다는 진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의식 상태에 있는 동안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경을 전혀 모르는 여인이었으나 사58장을 읽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정신이 깨어난 때부터 말씀대로 순종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기도생활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거의 2년 만에 완쾌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1962년 11월 5일 암이라고 진단했던 헤이스 박사에게 다시 갔을 때 의사는 말하기를 “그녀의 다리는 완전했으며 어떠한 암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진단하면서 크게 놀라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 친히 찾아오셔서 역사 하시는 분이시니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를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중풍병자는 예수님에 대해 담대히 간증했습니다.
38년 동안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기적가운데 고침을 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자 베데스다 못 가에 있던 병자들은 물론이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로 환호한 줄 압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정말 못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도 도울 수 없던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걸어가게 되었다면 그런 좋은 일을 하신 예수님을 찾아가서 감사하는 것이 종교지도자들이 할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병 고침 받은 날이 안식일인 것을 빌미로 하여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안식일 날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책망했습니다. 율법에는 “만일 누구든지 고의로 안식일에 공중 앞에서 자기 집으로 무엇을 들고 가는 자는 돌로 쳐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잘못하면 안식일을 범한 죄 때문에 큰 매를 맞을지 모릅니다.
 
사실 율법의 가장 중심정신은 사랑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풍병자가 38년 동안 유리걸식하면서 사랑의 손길을 원할 때는 외면하더니 그 병자가 기적가운데 나음을 받으니까, 트집을 잡는 것은 그들의 심령이 얼마나 굳어지고 완악해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율법적인 행위가 우리의 심령을 이처럼 굳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는 자기들이 만든 교리와 율법으로 교회의 일을 방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시험 들게 하고 서로 시기하고 싸우고 결국 분열하게 만듭니다. 점점 마음이 완악해져서 나중에는 양심에 화인을 맞게된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경각해야 합니다. 오늘 18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이를 인하여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굳어지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풍병자는 율법적인 벌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나음 받은 중풍병자는 조금도 굴함이 없이 담대히 말합니다. “나를 낫게 한 그 분이 자리를 들고 가라 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처벌도, 죽음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 되었습니다. 14절에 보면 그러한 그를 예수님은 다시 만나시고 큰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15절에 보면 나음 받은 중풍병자가 자기를 고치신 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치신 분이 예수님인 것을 간증했습니다. 전도의 최고의 방법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간증하고 그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높이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받은바 은혜를 담대히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는 마리아 브린튼이란 여인의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과 이혼한 후 세 아이와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도너스 가게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보내는 양육비로 근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양육비를 보내지 않고 도너스 가게도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밀린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서 전기가 끊어짐으로 촛불을 켜고 살아야 했습니다. 겨울에는 영하 16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 속에서 욕실에 있는 난로와 추운 방에서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살아야 했습니다. 어느 때는 차가운 스프와 샌드위치로 두 달을 버티다 못해, 결국 욕실의 가스난로를 틀어놓고 자살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다가 가스가 폭발하면 아파트 사람들에게까지 큰 피해가 생길 것 같아서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처절히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만약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게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이 감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라면서 하체가 마비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다음날이 주일이었는데 딸 샤론이 욕실에 갔다가 고함을 치기를 “엄마, 저 욕실 천장에 예수님의 초상화가 있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뛰어가 보니, 욕실에 있던 난로의 심지의 끄름이 천장을 얼룩이 지게 했는데 예수님의 초상화가 그려 있었습니다. 그 때야 마리아 브린튼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주님의 얼굴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마리아 브린튼은 자기 혼자의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되었습니다. 교회를 찾아가서 감격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다음날 그녀의 담당 변호사가 남편이 보낸 양육비를 가져왔고 또 얼마 후에는 수입이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제는 주님밖에 서 있는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 받은바 은혜를 담대히 간증하고 전도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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