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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을 찾으라
2018년 02월 21일 (수) 18:43:56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골3:1-11)
 
중국의 석학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던 임어당의 저서「속(續)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장자(壯者)가 길을 가고 있는데 큰 나무에 날개가 무려 일곱 척이나 되는 큰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구경하려고 가까이 가도 그 새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새를 잡아야겠다.’ 생각을 하고 장자는 활에 화살을 먹인 후에 가까이 갔습니다만, 그 새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하고 살펴보았더니 이 큰 새가 바로 눈앞에 있는 버마제비라고 하는 먹이를 먹으려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더랍니다. 또 버마제비를 보니까 눈앞에 있는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며 거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이때에 밤나무 숲 주인이 장자가 도둑인줄 알고 오해하고 ‘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탐심에 눈이 어두워 사는 군상들을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 무엇에 가장 관심을 두고 사느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에 몰두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것이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눈은 사진기의 렌즈와 같아서 좋은 경치를 보고 촬영하면 마음이라는 필름에 좋은 그림이 찍혀지고 그것이 삶의 표면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지저분한 내용으로 가득 찬 주간지나 인터넷을 보면서 폭력이나 살인, 음란이나 사기 등을 즐기면 우리 마음이라는 필름에는 온갖 더러운 것으로 얼룩지고 마침내는 그러한 모습들이 삶의 표면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언제나 선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곳에 관심을 가지면 결국 악한 사람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먼저 사람들의 눈에 안목의 정욕이라는 렌즈를 부착시켜 놓으려고 애씁니다. 그 사람이 그 렌즈를 계속 사용하고 바라보는 날은 어느 날 마귀가 목적한 대로 범죄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된 동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고 했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단 한번만 보고 따먹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은 뒤에 처음에는 선악과를 바라보고 고개를 절래 흔들면서 ‘아니야,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야.’라면서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튿날도 바라보고 돌아서고 다시 그 다음날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처음 선악과를 바라볼 때는 먹음직하더니 다음날 바라볼 때는 보암직하더니 그 다음날 바라볼 때는 지혜롭게 할 만큼 너무나 탐스러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길,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보는 것을 잘 선택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위의 것을 찾을 때 무슨 역사가 나타납니까?
 
1. 위의 것을 찾을 때 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왜 위의 것을 찾을 때 우리 인간이 살게 됩니까? 본문 1절 하반 절에 나옵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 영혼이 살게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후에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곧 영원한 생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를 살리시려 하실 지라도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하나님도 어쩌실 수가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는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으신 것입니다. 왜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까? 우리를 살리실 수 있는 분, 생명의 원동력을 유일하게 가지신 예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찾는 자만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죽고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절 말씀대로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해서 안 됩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고 땅에 것에 계속 관심을 가지다 보면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정도로 못된 배신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너무 귀한 인재라 제자로 선출하셨고 그 일행의 살림을 맡기실 정도로 정직하고 지혜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일행의 살림을 맡은 다음, 남들은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는 동안에 맨 뒤에 앉아서 장부책을 뒤적이며 그 날에 사용할 돈을 계산하고 식사 문제와 유숙한 장소 때문에 여기 저기 수소문하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돈이 많으셔서 매주 천만 원씩 주시면서 “이것으로 살림을 해 보라“고 하신다면 걱정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느 때는 단 한 푼도 없는데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고 조금만 걱정하면 ”이 믿음이 적은 자야.“라고 야단을 치시니 너무나 답답합니다. 날마다 기적가운데 살지만 그러나 살림을 맡은 사람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돈에 매여 삽니다.
 
나중에는 돈이 그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예수님이 자꾸 떠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기 장래를 위해서 들어온 헌금이나 기부금 중에 몰래 몰래 돈을 빼내어 착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귀가 이를 알고 가룟 유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고 요13:12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바라보지 않고 은 30냥 자리로 봄으로 마침내 역사상 가장 더러운 배신자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인간이 되고만 것입니다.
 
감옥에 두 죄수가 갇혀 있었습니다. 한 죄수는 감옥 안에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나 악취, 비정한 간수들과 속박 등, 비참 상을 보면서 항상 낙심에 매여 삽니다. 그 결과 병들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죄수는 똑같은 상황임에도 언제나 눈을 들어 조그만 창을 통해 보이는 흘러가는 구름과 날라 가는 새들, 그 창을 통해서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소리들을 듣고 시(詩)를 쓰고는 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의 마음은 희망과 평안이 흘러드는 것을 체험했고, 마침내 건강한 몸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땅의 것에 매이는 자들이 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음으로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위의 것을 찾을 때 생명이 자라 가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식물은 태양 빛을 받아야 강하게 자랄 수 있고, 태양 빛을 충분히 받은 과일이 맛이 뛰어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빛 되시고 생명 되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에 점점 강하게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에 성령님을 통해서 새 힘, 새 능력을 받아 점점 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 성도들은 네 가지 속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과, (2)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입었다는 것과, (3)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과 (4)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오실 때에 함께 나타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 내가있고 그리스도를 보고야 나를 볼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만 내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반드시 기억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느니라”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땅에 살지만 내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벌써 감추어져 있습니다. 천국에 우리 이름이 이미 등록되어 있고 천국의 좌석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그리스도가 보일 것입니다. 그 안에 내 생명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내 생명을 뺏어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순례자로 잠깐 살아가고 있으나 어느 날 내 본향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신나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란 땅에 매이게 하는 것입니다. 농촌에 가면 호박이나 칡넝쿨을 볼 수 있는데, 그 식물들에게서 넝쿨손이 나와서 아무 나무 가지나 휘어 감고 올라갑니다.
 
우리 육체도 욕망이라는 넝쿨손이 나와서 땅의 것들을 휘감게 만듭니다. 그것이 곧 오늘 본문 5절에 나오는 음란과 부정, 사욕과 악한 정욕, 탐심의 손입니다. 음란은 부정한 성적 욕망이요, 부정은 부도덕한 생활이요, 사욕은 무절제한 욕망이요, 악한 정욕은 남을 해하는 욕망이요, 탐심은 부당한 욕심을 말합니다. 그 땅의 지체를 과감히 죽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갈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고, 갈5:16에서는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산 자는 이제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그 때 점점 믿음이 성장하고 올라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땅의 지체에 따라 매여 살면 내려가는 삶, 결국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당할 때 유일하게 살아난 가정은 롯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땅의 욕심 때문에 결국 버림받고 소금기둥이 되는 비극적인 여인이 되었습니다.
 
민22장에 나오는 발람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하나님의 영감과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인 약점은 물질에 대한 탐욕이 너무 강한 것이었다. 한번은 모압의 발락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적들을 몰살시킨 일과 그들의 수가 많다는 말을 듣고 겁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돈과 함께 신하들을 예언자 발람에게 보내면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발람은 신하들에게 자신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한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발락왕은 다시 더 높은 사람들과 더 많은 재물을 발람에게 보내면서 당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줄 터이니 어서 와서 그들을 저주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에 탐욕에 눈이 어두워진 발람은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발람이 가는 길에 나귀로 하여금 말하게 하심으로 막기도 하시고 칼을 든 천사를 통해서 막기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에 끌려 결국 그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던 것이요, 훗날 비참하게 죽는 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땅에 매이도록 만드는 지체의 욕심을 과감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위의 것을 바라보고 찾을 때 능력 받아 승리하는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큰 군사작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100만의 병력과 9천척의 선박들, 17만대의 차량들, 702척의 전함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2차 대전 말, 연합군은 미 사령관 아이젠하워의 지휘 하에 독일과의 전쟁을 종결시킬 작전을 구상하였습니다. 유럽의 중심지이자 프랑스의 해안지방인 노르망디에 극비의 상륙작전을 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연합군의 작전 계획을 염탐한 독일군은 2차 대전 최대의 격전지인 프랑스 노르망디를 사수하고자 경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1944년 6월 6일 새벽, 작전의 개시되었습니다. 성공하면 히틀러의 패망과 아울러 미국과 자유진영의 승리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는 아무 중대한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총 지휘자는 어느 의미에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 중대한 시간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연합군 작전실에 들어가서 총지휘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기도실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이 무려 8시간이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부하들이 상황보고를 하려고 급히 뵙기를 원했으나 그는 끝까지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승리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8시간동안 기도하는 동안 자기의 지혜, 자기의 지도력만 믿었던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면서 도움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가 8시간 만에 확신을 갖고 기도실에 나올 때에 상륙작전이 기적적으로 성공했다는 전보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땅의 욕심을 죽이고 위에 것을 찾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올라가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위의 것을 찾을 때 열매 맺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계속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침내 가을이 되어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날이 오는 것처럼 우리도 위에 것을 바라보고 살면 하늘의 열매를 맺는 날이 옵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는 자가 된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닮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 하였습니다. 땅을 향해 살던 옛사람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늘에 향해 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에 끌리어 살던 옛사람이 이제는 성령에 끌리어 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5:22-23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곧 예수님의 성품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나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 때에 새사람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위의 것을 바라보고 찾으면서 살 때에 영적 어린아이에서 소년과 청년으로, 더 나가서는 영적 장년이 되면 마침내 이러한 성령의 열매, 예수님의 성품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성장하려면 위의 것을 바라보고 찾으면서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사람의 옷을 입는 경건의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옛사람의 옷은 무엇입니까? 8-9절에 나옵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는 서로 거짓말을 말라 그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라 했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으면 이제 옛사람의 옷이 되는 ‘분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을 벗어야 합니다.
 
어떻게 벗습니까?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합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회개하고 대신 위로부터 오시는 성령님의 강한 능력을 받아 새사람의 옷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옷을 입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곧 경건의 연습이요, 성화(聖化)의 삶인 것입니다. 성령이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황해도 신천에서 김익두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다가 서부교회에서 순교하셨는데 그 분은 과거 청년 시절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안악 시장에서 그가 술을 외상으로 마시고 냉면을 외상으로 먹고 갚지 않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렇다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정도로 천하 장사여서 아무도 건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악장에 가는 사람들은 서낭당을 지나가면서 ‘오늘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유명한 깡패도 하나님이 역사 하시니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이제 전도를 합니다. 급해서 아직 신앙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전도부터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은 엊그제만 해도 깡패가 아니였는가?”라고 합니다. 그 때마다 “옛날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옛날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아는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다가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하니까 “어디 죽었나 살았나 보자”하고 설거지하던 물을 얼굴에다 확 끼얹었습니다.
 
김익두의 얼굴과 옷에는 설거지 찌꺼기가 묻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김익두는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 “내가 죽었으니 네가 살지”라고 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당했으면 그 여인은 죽었죠. 내가 죽었으니 네가 살지 않느냐, 아주 참 멋있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자기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산 모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어떠한 자가 되었습니까?
 
아직도 쩍하면 분과 악의, 훼방과 부끄러운 말이 나옵니까? 왜 그렇습니까? 덜 죽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깨끗이 죽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죽어야 될 만큼 못 죽은 것이 그런 옛 성질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죽어야 합니다. 옛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새사람이 살수도 자랄 수도, 열매 맺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땅에 지체를 죽이고 위의 것을 바라보면서 찾읍시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사람의 옷을 입음으로 마침내 예수님의 성품의 열매를 맺어 가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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