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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하나님
2018년 01월 25일 (목) 10:35:51 김태복 목사 webmaster@cry.or.kr
(마7:8-11)
 
현대인들 중에 하나님에 대해서 나쁜 견해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어느 분은 하나님은 잔인한 분으로 전쟁, 지진, 기근, 홍수로 수많은 인간들을 죽이는 분으로, 어느 분은 하나님은 무관심한 분으로 지구의 모든 비극을 외면하고 주무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어느 분은 하나님은 다만 관념(觀念)이나 정신으로, 어느 분은 하나님은 착한 사람만의 하나님으로, 다시 말하면 권선징악의 하나님으로만 묘사합니다.
 
심지어 철학자 화이헷드는 “하나님은 우주 안에 있는 응결(凝結)의 원리”라고 미묘한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견해들은 성경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좋으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더 강조하는 의미에서 “참 좋으신 하나님”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좋은 표현입니까?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 지, 지금도 선인이나 악인에게도 한결 같이 비와 해와 공기와 모든 자연의 혜택을 허락해 주십니다. 더 나가서는 자기가 창조하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 지, 더러운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통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죄와 사망과 사탄의 사슬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아 때처럼 죄악이 온 세상에 만연되어 있을지라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 최후의 심판을 연장시키시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를 받고 나서 모세는 참 좋으신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기를 민14: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시나”라고 했고, 미가 선지자는 미7:18에서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 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노년에 이르러 하나님이 진정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벧후3:9 눈물로 고백하기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여, 만약, 하나님이 모든 자가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시고, 공의의 하나님만 되심으로 죄를 짓는 자마다 다 심판하신다면 지금 우리는 이 은혜의 잔치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다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저 천국에 갈 때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성도들은 지켜 주시고 인도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1. 참 좋으신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 병든 자의 괴로움을 잘 알고 계시며, 여러분 중에 슬픔을 당한 자의 아픔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 직장이 없는 분이나 사업 때문에 고통당하시는 분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알고 계실지라도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도우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기도하는 자에게만 도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자에게 주시기가 어려우십니다. 예수님은 산상에서 말씀하는 중에 본문 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4:2 “너희가 얻지 못함으로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구하여야 주십니까?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이시지, 믿지 못하는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곧 믿는다는 고백이요 자세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포기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는 자세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기도라는 핸드폰을 주셨습니다. 과거에는 기도를 하나님이 주신 전화기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실감이 잘 안 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화기에는 전화선도 있어야 되고 일정한 장소에만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기도를 핸드폰으로 비유하면 얼마나 이해하기가 좋습니까?
 
줄이 없지만, 아무리 높은 산이나 외진 골짜기에서 핸드폰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습니다. 재작년인가 우리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었는데 인솔자이신 부목사님이 광야에 위치한 시내산 꼭대기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핸드폰을 바꿨는데 너무나 기능이 많습니다.
 
마음대로 뉴스나 음악을 즐길 수 있고, 관공서나 은행업무도 핸드폰으로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음성을 인식할 수 있어서 이름을 말하면 전화가 걸립니다. 앞으로는 집안의 모든 시설이 컴퓨터화 되거나 지능지수가 높은 로봇들이 집집마다 있다면 핸드폰이 리모컨 역할을 함으로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목욕물도 받아 놓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과연 핸드폰 만능시대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것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도라는 핸드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뛰어난 것입니다. 그 핸드폰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위력이 대단하여 하늘 보좌까지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핸드폰을 잘 이용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통화하십시오. 어느 목사님은 예수님의 이름은 기도라는 서류에 인감도장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을 주십니다.
 
기도라는 핸드폰은 어느 때는 마음으로만 기도할지라도 응답을 주시고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요구해도 다 응답이 되는 핸드폰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놀라운 기도라는 핸드폰을 주시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셨음에도 우리가 근심하고 염려하며 낙심해 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을 일이지 칭찬 받을 일입니까?
 
만약에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를 갔다가 갑자기 비가 왔다고 합시다. 핸드폰이 있음에도 전화도 하지 않고 꺼 놓은 채 비를 함빡 맞고 오면 얼마나 화가 나서 야단을 치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신자는 아예 기도라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꺼두고 살면서 근심하고 염려를 매달고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책망감인 신자입니다.
 
아니 됩니다. 기도라는 핸드폰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믿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십니다. 곧 응답이 안 되더라도 계속 구하는 기도, 찾는 기도, 두드리는 기도를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참 좋으신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응답을 주시는 날이 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한 두 번 구하고 찾고 두드리다가 안 되면 포기합니다.
 
언제인가 차를 운전하고 가는 데 핸드폰이 울립니다. 운전하랴, 양복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찾으랴, 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막상 전화를 받으려니까, 끊어졌습니다. 급하면 또 전화 오겠지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핸드폰에 발신자의 이름이 찍혀 나오지만, 그 당시의 핸드폰은 구형이라 누구 전화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얼마나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어느 때 당회실에 있으면 농촌교회나 불우이웃기관, 총회기관 등 사방에서 도와달라고 전화가 옵니다. 도와달라는 대로 전화 받다가는 끝도 없어서 받으면 구구하게 이래 저래서 도울 수 없다고 답해야 합니다. 일일이 변명도 하고 혹은 거절하다 보니 못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그런 전화가 오면 사무 간사나 부교역자들에게 없다고 말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의에 거짓말이지만 직원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느 분은 아침 일찍이 사택으로 전화합니다. 혹은 핸드폰 번호를 알아서 끈질기게 전화합니다. 그렇게 계속 전화로 졸라대니 어쩔 수 없이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도 이런 끈질김이 있어야 합니다. 계속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는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남편이 직장을 잃어서 살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부부가 모두 근심과 걱정에 싸였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우리 가정에 사업장을 주시고 살길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기를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친구는 마천동에서 원조 감자탕 식당을 차려서 1년 만에 성공을 했습니다. 지금은 식당을 하나 더 차려서 두 군데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더 이상은 바빠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인 그 부부에게 “그 식당을 자네 부부가 좀 맡아서 운영해 주게.”라고 했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 앞에 응답 받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이었는데 식당이 아주 잘 돼서 1년이 못되어 그 식당을 인수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계속 번창하여 종업원을 10명이나 두고 일하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열심히 기도하면 참 좋으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참 좋으신 하나님은 잘못 구해도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들 중에 기도라는 핸드폰을 하나님이 주셨음에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반면에, 또한 많은 성도들은 기도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성도들은 기도를 하되 구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떡 대신 돌을 구하고 생선 대신 뱀을 구합니다. 돌이 떡인 줄 알고 먹으면 위험합니다. 뱀을 생선인 줄 알고 만졌다가는 독에 의해서 죽고야 합니다.
 
그럼에도 잘 모르고 돌이나 뱀을 구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아빠에게 위험한 줄 모르고 칼이나 성냥을 달라고 합니다. 어느 때는 울고불고 떼를 씁니다. 그렇다고 줄 수 있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아이라도 칼이나 성냥을 줄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을 주어서 달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가 되고 위험한 것은 아무리 떼를 쓰면서 기도할지라도 달라는 대로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참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돌 대신에 떡을 주시며 뱀 대신에 생선을 주십니다. 11절 “너희가 악할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했는데 결과가 우리 마음에 맞지 않고 우리 눈에는 돌과 뱀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다고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고후12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자기의 병을 고쳐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그 병이 안질(眼疾)이라고 하고 심한 두통이라고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간질이라고도 해석합니다. 여하튼 세 가지 중의 어느 병이라도 다 목회자나 전도자에게는 큰 걸림돌입니다. 안질이라고 하면 바울이 천막을 꿰매는 직업이요, 원고를 많이 쓰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장애요소가 됩니다. 두통이라고 하면 얼마나 말씀을 연구하는 데 방해가 되는 병입니까?
 
더 나가서는 간질병이라고 하면 이는 목회나 전도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여하튼 어떤 병이든지 사도로서 너무나 방해요소가 되기에 세 번씩이나 간구했다고 하는데, 세 번 장기금식을 했던가, 아니면 40일 철야기도 했던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 고침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응답이 온 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받은바 체험이 너무나 크므로 이 병을 통해서 자기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계시다는 사실이요, 그 겸손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 공급받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부터 바울은 자기의 병, 자기의 약함을 자랑으로 알고 감사하면서 지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흥사 이만신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시작해서 교회를 건축하다가 빚을 많지 지고 갚지 못함으로 건축업자들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욕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장기금식 합니다. 10일째 되는 날, 자기가 잘 아는 미국인이 찾아왔답니다. 그 때 ‘옳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시고 이 미국인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오산이었습니다. 미국인이 “왜 그리 말랐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교회당을 짓고 있는데 빚을 짐으로 이것을 갚아달라고 금식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인이 “아니, 당신 돌았소? 돈이 없으면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든지, 나가서 일을 하든지 해야지, 이렇게 금식만 하고 있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교제를 끊겠오.”라면서 그 동안 돕던 일마저 싹 끊더랍니다.
 
아니, 기도했더니 더 손해만 보게 된 꼴이 되었습니다. 낙심한 마음이 생기었으나 어느 순간에 ‘내가 사람을 믿겠느냐? 하나님만 믿는다.’라는 믿음이 생기더랍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틀 후에 부산에서 올라온 어떤 집사님이 자기가 기도하는데 목사님의 건축 빚을 다 갚아주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큰 금액을 돈을 내놓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때때로 우리의 기도가 돌이나 뱀 같은 응답으로 나타나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마시고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응답해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참 좋으신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과 똑같은 내용이 눅11:13에 나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성령님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기 위하십니다. ‘보혜사(保惠師)’란 한문으로 해석하면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 크레토스‘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옆에 서서 변호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의 길, 성도의 길을 갈 때에 항상 옆에 계시면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고 때로 위로와 격려를 주시면서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든든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신앙생활 할 때에 여러분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옆에는 가장 강하시고 가장 능력이 많으신 성령님께서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가 넘어지고 약할 때에 우리에게 다시 힘과 용기를 주시며, 때로 우리가 실수하여 실패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인도하셔서 합력하여 가장 좋은 길,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어느 때는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데도 식구 중에 병이 듭니다. 사업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남편이 믿기는커녕 점점 더 방해합니다. 왜인지 자녀들도 비뚤어 저가는 것 같습니다. 그 때라도 좋으신 하나님을 결코 의심하지 마시고 성령님을 통해서 합력하여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으십시오.
 
아마 구약에 나오는 룻처럼 불행한 여인도 드물 것입니다. 다른 나라 남자와 결혼한 후 시어머니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복은커녕 어느 날 남편이 죽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나는 내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터이니 너는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룻은 이미 믿기 시작한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고향으로 가지 않고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천하게 여깁니다. 갖은 천대를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고 시어머니를 잘 공경할 때에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으로 베들레헴 지방의 유력자 보아스와 결혼하였고 그 분이 바로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룻은 온갖 고난과 천대 속에서도 하나님만 믿고 나갈 때에 이방여인으로 감히 꿈꿀 수 없는 예수님의 조상이 됨으로 지금 천국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을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이라도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오직 앞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가면 오히려 그 골짜기가 지름길이 되게 하시고 원수 앞에 이르는 날을 만나도 원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역사를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강준식이란 분이 쓴 「주님의 은혜로 부자가 된 사람들」란 책에는 이런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박은숙이란 성도의 가정은 남편은 제약회사 판매소 소장이었는데 영업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기에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썼지만 점점 생활이 어려움으로 가득 차는 것이었습니다. 집주인이 2년마다 전세금을 올리는 바람에 생활이 점점 어렵습니다.
 
그런데다가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진 뒤 두 번이나 수술을 받는 통에 남편의 중간퇴직금이 들어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IMF가 터졌습니다. 남편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박은숙 성도는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동안 어렵사리 부어온 1천만 원 자리 적금을 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 바치고 싶은 강한 마음이 일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능하다면 해외유학까지도 시키고 싶습니다. 하지만 남편 직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직장에 남게 된다 해도 아이들이 크면 더 많은 교육비가 들어가겠지요. 그러니 지금 드리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동록도 슬지 않고 도적도 구멍을 뚫지 못하는 주님의 은행에 미리 맡겨둡니다. 주님, 제가 필요할 때 꼭 쓰게 해주실 거죠?”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성수동 달동네를 방문했는데, 골목길 허름한 2층 건물에 보습학원이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당겨서 올라갔더니 그 원장이 IMF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탄하기에 자기가 약간의 시설비와 비품비만 지불하고 거의 싸게 인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여 빈 책상들을 닦으며 기도하기를 “예수님이 원장님이시고 저는 그 밑에 있는 부원장입니다. 그러니 이 학원을 원장님께서 운영하셔야지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거의 아이들이 없어서 빈 교실을 지켰는데, 얼마 후 학습지 회사가 된서리를 맞았다는 신문기사가 나면서 서너 명의 아이들이 등록하기에 첫 번 받은 학원비도 하나님께 먼저 드렸다고 합니다. 점점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함으로 나중에는 그 부근에 보습학원을 세 군데 열었고 학생수가 300명이고 교사만도 30명이 넘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무슨 문제든지 기도하심으로 응답을 받으십시오. 때로 우리 기도대로 응답이 안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십시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사는 데도 어려운 일을 만날 때도 우리 옆에 계셔서 도와주시는 성령님이 합력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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