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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자
2018년 01월 24일 (수) 17:41:41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막10:23-31)
 
새해나 설날에 제일 많이 하는 인사가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사도 이제는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새해나 명절 때 제일 좋아하는 인사가 “부자가 되세요.”라고 합니다. 어느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덕담이 “부자 되세요"였다고 합니다. 아마 물질만능시대에서 가장 적절한 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고급 주택에서 고급 의상을 입고 고급 요리를 먹으며, 때로 고급 승용차를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은 좋으나 어리석은 부자는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17절부터 보면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계명을 다 지키라”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 교만한 마음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부자가 천국 가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의 범위가 과연 어느만큼 재산을 소유한 자인가에 대해서 알 수 없지만, 이 말씀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 가기 위해서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옳다는 말인가? 아니면 기독교인 중에 많은 재벌이 있는데 그들은 천국을 갈 수가 없다는 말인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아브라함이나 동방의 의인이라는 욥은 엄청난 부자였는데 저들도 천국에 못 갔다는 말인가?
 
둘째로, 오늘 본문 중 또 하나의 난해 구절은 29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집과 형제, 자매나 어미,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가족이나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말씀과는 너무 배치되는 말씀이 아닙니까? 오늘은 이 두 가지 말씀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해석하면서 기독교인 가져야할 재물관, 또는 진정한 부자는 어떠한 자인가?, 또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주님을 섬기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자 합니다. 명심해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1. 대부분의 부자가 천국 가기가 힘들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물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재물이라는 것은 잘 다루지 않으면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라는 것은 악한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요, 도덕적인 것도 아니고 부도덕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재물은 영혼의 올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재물은 크게 네 가지의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돈은 교만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재물은 인간을 멸망하게 하는 가장 실제적인 원인 중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이웃과 함께 고통을 나누던 사람이 돈이 많아지면 신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보다는 돈을 더 의지합니다. 바로 그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2)돈은 성품을 천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재물을 많이 모을수록 남에게 베풀 줄을 모르고 자비심이 줄어듭니다. 돈에만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서 성품이 점점 천해갑니다. 가난할 때는 남을 동정해서 도와주는 일에 기뻐하던 사람이 재물이 많아갈수록 그의 눈과 귀와 손은 돈독이 올라가고 마음이 인색에 빠지므로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이 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3)돈은 세상에 매이게 만드는 위험이 있습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사업이 확대함으로 점점 하나님보다는 세상일에 매이게 만들고, 세상에 대한 애착이 깊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재물의 크기만큼 세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명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이 와도 롯의 아내처럼 도망치지 못하도록 세상의 뿌리와 재물이라는 넝쿨이 그를 얽어 놓습니다.
 
(4)돈은 오히려 더 큰 근심과 염려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돈이 많이 생기면 당장은 기쁘지만, 이상하게 점점 기쁨이 사라지게 만듭니다. 없을 때는 조그마한 선물을 받아도 기쁘더니 큰 부자가 되어서는 몇 백만 원 자리 선물을 주어도 크게 기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유한 돈의 크기만큼 근심과 걱정의 가시로 더 고통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유명한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시무할 때에 그 마을에서 제일 팔자 좋다는 부자 영감을 인사차 찾아갔습니다. 그는 벼 3천 석을 거두는 부자였고 자녀는 5남 3녀요, 손자들이 30명이나 되었으므로 누가 보더라도 아무 다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인사를 드린 다음 “존장께서는 남보다 유달리 많은 복을 받으셔서 이 지방에서는 제일 팔자 좋으시기로 소문났으니 축하를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자는 대단히 화를 내면서 “그 어느 정신 빠진 놈이 그런 말을 합니까? 나같이 하루도 빼는 날 없이 걱정에 매여 사는 사람은 이 지방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 무슨 걱정이 그다지 많으십니까?” “말씀 마시오. 내가 볏섬이나 하는 탓으로 뜯어먹으려 덤벼드는 놈뿐이요, 소작인들까지도 핑계를 만들어 안 내려고 만 하니 그도 걱정이요, 아들 녀석들이 많으니 남 보기에는 팔자 좋다고 할지 몰라도, 말마시오.”
 
“한 푼 벌어서 보태려고 하는 놈은 없고 너나없이 쓸려고만 하니 그도 걱정이요, 둘째 아들마저 첩을 얻어 가지고 살림을 내니 이것도 다 내게서 나갈 돈이 아닙니까? 손주 녀석들이 30명이나 되니 뻔질나게 나만 조르고 나만 뜯으려고 합니다. 어느 하나 함께 걱정해 주는 이는 없고, 귀한 친구들도 내가 돈을 버니까 다 떠나고 내 주변에는 이용만 하려는 자들뿐이니 이 고독을 어찌 표현하겠습니까?”라고 탄식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돈이 많을수록 근심과 염려가 더 많아지는 위험이 오는 것입니다.
 
2.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서는 돈의 위험성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단 한 군데서라도 ‘부자가 되지 말라, 물질을 소유하지 말라’고 금한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물질 축복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고 진정한 부자, 지혜로운 부자가 되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바른 재물관과 진정한 부자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부를 원하는 분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해야 합니다.
 
먼저, 물질을 소유하되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F. 베이컨은 말하기를 “돈은 좋은 노복이 되기도 하고 악한 주인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돈은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돈이 목적이 되므로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삽니다. 돈이 시키는 대로 웃고 울고 혹은 거짓말을 하고 배신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경고하기를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돈을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돈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돈을 열심히 버는 것을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자기 가족을 위해서 일용품을 준비하는 것이나 병들었을 때나 노년을 대비해서 저축하는 것도 역시 책망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돈에 대해서 책망하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 자체가 악이 아니지만, 하나님이나 인간 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이요, 돈이라는 수단을 목적으로 삼을 때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함으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즉 탐욕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몸을 팔고 양심을 팝니다. 어느 분은 보험을 타기 위해 누구를 시키어 남편을 청부살인 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어느 사람은 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이 살든 죽든 독극물을 넣은 과자나 식료품을 만들어 팔고 처녀들이나 어린애가 달린 부녀자까지 납치하여 창녀의 소굴에 팝니다. 돈을 사랑한 결과 이런 악한 자들이 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이나 사람보다 돈을 지나치게 사랑함으로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다음, 물질을 소유한 만큼 달란트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청지기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지위나 지식, 재물이나 능력도 전부 하나님이 관리하도록 임시 맡기신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포도원을 맡기시고 힘껏 일하여 수확한 다음, 하나님의 것을 계산한 다음, 나머지 것을 가지고 먹고 마시며 필요한 것을 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능이나 은사를 맡기시고 그것을 통해서 많은 이익을 남긴 후에 내게 계산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소유한 것이 많은 만큼 책임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나 불우한 이에 대해서 더 많은 헌금, 더 많은 구제할 책임이 따릅니다. 물질이 점점 많아 갈수록 점점 창고를 크게 짓고 마음껏 사치하며 살라고 맡기신 것은 아닙니다.
 
큰 물질, 큰 지위, 큰 은사를 받고도 아무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자는 한 달란트 받고 땅에 묻어두었던 자처럼 책망을 받을 뿐 아니라 그 화가 자기에게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몸에 병이 들고 자녀가 비뚤어집니다. 달란트나 은사는 불과 같습니다. 그것을 쓰지 않고 움켜쥐고만 있으면 그 불이 나를 태우고 내 가정을 태우는 것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물질을 가지고도 하나님과 필요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움켜만 쥐고 있을 때에는 자기와 자기 가정을 태우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분은 소유하고 있던 논밭이 갑자기 개발이 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돈이 나중에는 부부 사이를 갈라지게 만들고 자녀들이 다 탕자 탕녀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개탄하기를 “차라리 옛날 20평 자리 집에 사는 때가 좋았구나. 저녁이면 식구끼리 둘러앉아 비록 칼국수라도 맛있게 먹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때가 그립구나. 큰돈이 내 가정을 망하게 하였구나.”라고 했습니다. 돈이 그 가정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돈을 관리할 줄 몰랐기에 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자는 청지기 정신으로 주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과 필요한 자들에게 과감히 쓸 줄 아는 자입니다. 그 때 그 가정은 기쁨이 넘치고 자녀들도 건실하게 성장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더 많은 물질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적은 물질일 때부터 바르게 쓰는 연습에 힘쓰면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큰 물질을 맡기시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황해도 은률교회 이찬영 장로님은 큰 부자였는데, 그는 “자기가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새벽기도와 십일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무식한 가난뱅이로 청년 때에는 석유장사를 하면 근근이 사는 자였으나 그는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을 뿐 아니라 가난 속에도 십일조생활을 꼭 했고 구제에 힘썼다고 합니다.
 
그 때 석유장사가 얼마나 잘 되는 지 점점 번창하여 이익이 나는 대로 논밭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엄청난 논밭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결코 교만하지 않고 매일 새벽이면 3시30분에 일어나 세수하고 성경을 한 장 읽고 교회 가서 새벽기도를 했으며 마치고 나면 목사님의 사택과 교회당을 돌보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봉사와 구제에 힘썼는데, 어려운 가정들을 몰래몰래 많이 도왔으며, 때로 거지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벌이기도 했으며 얼어 죽은 거지를 장례식을 치러 준 것도 수십 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점점 큰 물질을 맡기시니 나중에는 천석꾼이 되어 가을이면 교회 앞마당에 그 장로님이 십일조로 낸 쌀가마, 콩 가마, 팥 가마가 가득가득했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고 이북이 공산치하가 되었을 때, 토지개혁을 당하자, 그 장로님의 탄식의 제일 첫 마디가 “이제는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가 적게 되었으니 안타깝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왕에 부자가 되려면 이렇게 멋지게 되어야 진정한 부자가 아닙니까? 차라리 그렇게 살 자신이 없는 분은 큰 물질을 원하지 마시고 잠30:8-9의 말씀대로 기도하십시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은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적은 달란트 맡기시든지, 큰 달란트를 맡기시든지 언제나 청지기의 자세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나와 모든 것 사이에 주님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 난해한 구절인 29절을 연구해 봅시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을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 말씀 속에 모든 기독교의 원리, 모든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원리는 버리어야 얻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맡겨 버릴 때에 변화를 받습니다. 주님 앞에 중생을 받습니다. 나 자신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못 박습니다. 내 식구도, 내 물질도, 내 명예도, 다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부활하실 때에 함께 살아납니다. 이제는 내 것으로 아니고 주님의 것으로 거듭납니다. 내 식구, 내 생명, 내 명예, 내 물질이 아니라 주님의 식구, 주님의 생명, 주님의 명예, 주님의 물질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29절은 이렇게 해석해야 이해가 쉽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주님의 것으로 맡겨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것으로 맡겨 버리고 등기 이전해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은 모든 것을 중생 시키신 후에 다시 나에게 맡기시는 데 백배로 맡기시는 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하나님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 나은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금지옥엽 같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니, 수도 없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후에 25년이 지나서야 주실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번제라 바치라 하니 하나님이 잔인한 하나님이십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줄 믿고 피눈물을 흘리며 3일 동안 모리아산으로 걸어가서 이삭을 묶고 죽이려고 칼을 들었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은 이삭을 죽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멈추게 하시고 이삭대신 양을 제물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은 아까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중생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의 생애는 주님의 것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식구들도, 그의 재물도, 그의 명예도 다 주님의 것으로 알고 관리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마음에 있습니다. 동기에 있습니다.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와서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내 생명, 내 가족, 내 자녀, 내 물질, 내 명예, 다 주님의 것으로 맡겨 버립니다. 이제는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 순간, 나와 나의 모든 것은 십자가 안에서 죽습니다. 이제는 내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이제 철저히 무(無)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다시 주님이 부활하십니다. 동시에 과거의 나와 나의 모든 것도 삽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까의 나와 내 모든 것 아닙니다. 주님의 것으로 중생된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다시 관리하라고 맡기십니다. 금세에서나 내세에서나 백배로 맡기십니다.
 
유명한「벤허」라는 작품을 쓴 류 윌리스(1799-1859)라는 사람은 미국의 장군이며, 언론인이고, 저술가였습니다. 처음에는 지독하게 기독교를 반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친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과학 문명이 첨단을 달리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직 까지도 케케묵은 성경을 믿고 있다니 라고 개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의 불합리성과 성경의 낡은 모순을 지적하고, 자기친구들에게 성경의 불합리와 성경의 모순을 폭로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할수록 놀라운 사실들과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성경 안의 수많은 자료를 갖다 놓고 이 성경을 연구하면서 압도할 만한 성경의 놀라운 증언 앞에서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반론을 펴기 위해서 책제목을 구상하고 1장과 2장까지 썼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붓을 꺾어버리고 어느 날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에 관한 그 충격을 소화하기 위해서 그는 책을 하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소설이 바로 「벤허」입니다. 후에는 이 소설이 영화화되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만약 윌리스가 끝까지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글을 썼더라면 결국 나중에는 스스로 무너져 폐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 주님의 것으로 등기이전 했을 때 주님은 그와 그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 후 다시 맡기심으로 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 물질의 복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것 중에 아직도 변화 받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 주님께 안고 나와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여, 여기 나와 나의 가족, 명예, 물질, 즐기던 모든 것을 다 맡겨 버립니다. 이제는 제 것이 아니라 전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다 뺏어 가실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명예도, 물질도, 건강도 다 새롭게 변화시킨 후에 여러분들에게 다시 맡기시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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