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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는 믿음
2018년 01월 06일 (토) 10:23:08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막9:20-29)
 
새해에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느냐,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자연만물을 개발하면 할수록 무한한 자원으로 가득한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에게도 무한한 잠재능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버트렌트 럿셀은 근대(近代)에 이룩한 제일 중요한 사건은 네 가지 있다고 했습니다.
 
(1)아인슈타인에 의한 상대성원리로 그 원리에 의해서 원자폭탄, 핵폭탄을 제조하게 된 것이요, (2)촬스 다윈에 의한 진화론으로 인해서 인간이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창조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된 것이요, (3)레닌에 의한 공산주의 국가건설 함으로 한 때는 세계의 반이 공산국가가 되었던 것이요,
 
(4)프로이드에 의해 우리 인간 속에는 엄청난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 잠재의식의 개발에 의해 최근에는 최면술, 혹은 심령과학, 의술(醫術)에까지 이용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잠재의식이란 무의식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인간에게는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어떤 예감, 직감, 꿈, 막연한 불안, 투시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언제인가, KBS에서 방영하는 “그 사람이 보고 싶다”는 가족찾기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꿈에서인가 잃어버린 자기 가족이 의정부에 산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날 잃었던 식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정말 의정부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이처럼 우리의 잠재의식은 신비한 것입니다.
 
잠재의식이란 큰 바다와 같습니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제한된 면이 많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잠재의식이라는 ‘하드웨어’는 개발할수록 거대하고 무한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한 학자나 이름난 천재라도 자기의 잠재력의 10% 밖에 개발하지 못했다고 하며, 나머지 90%의 개발성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는 이 잠재력을 다양하게 많은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면술을 통해 병도 고치고 범죄자를 찾아내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전생(前生)을 찾는다고 요란을 떨기도 하고, 또는 기(氣)를 높이기도 하고 염력(念力)을 통해서 능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유대인 어머니들은 어린 아기가 전혀 듣지 못함에도 젖을 먹이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잠재의식에 녹음이 되어서 성장한 후에도 성경공부에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어느 분들은 외국어 회화를 잘하는 방법은 밤에 잘 때에 녹음된 회화를 틀어 놓고 자면 잠재의식에 깊은 영향을 줌으로 교육의 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신비스러운 것은 인간에는 염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염력에서 사념파(思念波)라는 전파가 나와서 어떤 물건이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할 때도 잠재의식을 이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업이나 장사하는 분들은 한번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령 가게에 어느 손님이 왔을 때 그 손님이 물건을 사도록 계속 사념파를 보내면 그 손님이 물건을 산다는 것이요, 누구와 계약할 때에 그 사람이 계약에 응하도록 계속 사념파를 보내면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은 이만큼 놀라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한 후에 대부분의 능력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우리 인간은 엄청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인간의 신념 위에 하나님의 능력까지 임할 때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빠지라 명할 때에 그대로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에 모세는 지팡이만 들고 있어도 홍해바다를 가르게 하였고 여호수아 군대는 손 하나 대지 않고도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까 며칠 굶은 사자들도 다니엘 앞에서 양순한 개처럼 엎드리어 있고 수감된 베드로와 바울 앞에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생생한 역사를 체험한 바울 빌4:13에서 고백하기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이처럼 엄청난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심에도 왜 우리는 언제나 실패자나 무능력자처럼 살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는 탓입니다.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 어떻게 해야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인간적인 신념과 다릅니다. 신념이란 자기 의지에 따른 자기 확신입니다. 아무리 천번 만번 자기 를 세뇌시키듯이 ‘믿습니다.’라고 외쳐도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능력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산에서 세 제자 앞에서 변화하신 후,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세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을 보자, 아이 속에서 역사 하던 귀신이 요동을 칩니다. 그러자 아이가 심히 경련을 일으키고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립니다.
 
너무나 비참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라고 묻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네, 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책망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 때 아이의 아버지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외치자,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 위에서 아이의 귀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능력을 나타내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믿음이 없으므로 역사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믿음을 주시면 놀랍지요. 믿음을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 십자가와 부활이 믿어지지 않았는데 믿음을 받으니까 놀랍게도 믿어집니다. 좀 전까지 성경의 사실이 믿어지지 않더니,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니까 성경의 사실들이 믿어집니다.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줄 믿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믿어지는 것이요, 그 믿음 위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념과 믿음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신문의 광고란에 보면 「신념대학」이라는 제목 하에 "당신도 할 수 있다", "긍정정인 사고방식을 가지시오"라고 하며 마치 자신이 신념만 가지면 세상의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물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인 할 수 있다는 신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수십 년 전에 이런 한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삼각산 기도원에서 어떤 권사님이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 수많은 기적이 나타남으로 많은 인파가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처녀들 중심으로 하모니카 밴드를 만든 후 흰 가운을 입히고 집회 때마다 연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집회 기간에 갑자기 엄청난 비가 와서 삼각산 계속에 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멤버 처녀들 중 몇 명이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산을 내려오다가 흙탕물을 이루며 내려오는 계곡을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포장도로도 전혀 안되었던 때라 처녀들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데 그 중에 어느 처녀가 담대하게 말하기를 “베드로도 물위를 걸어갔지 않은가? 베드로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니 믿고 건너가자.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한 후 앞장서서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처녀들도 따라가다가 그만 급물살에 휩싸이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믿는 신앙으로 건너가면 기적을 베푸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확신이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닙니다. 그 처녀들이 물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이여, 어찌 하오리까?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소서.”라고 기도했어야 옳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건너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후에 건넜다면 거기에서 큰 도우심이 나타났을 것이나 자기들 마음대로 믿고 나감으로 큰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새해에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때 하나님은 강한 능력과 여러분들의 잠재력을 통해서 큰 역사를 베푸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구할 때 어떤 확신이나 어떤 말씀이 오거든, 그것을 붙잡고 응답되어진 사실을 눈앞에 그리면서 믿음으로 바라보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러면 보이는 땅을 네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수많은 시련의 날을 견디며 기다릴 때 응답의 역사를 만났습니다. 엘리야는 바다 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응답된 사실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혹은 설계도를 그리듯이 구체적인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병든 자는 건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사업가는 사업이 번창하는 그림을, 자녀가 있는 자는 훌륭하게 된 자녀의 모습을, 능력이 없는 능력 있게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설교 초반에 말씀 드렸지만, 우리가 마음의 그림을 계속 바라보면 내 속에 있는 잠재력이 그 목표를 향해 풀가동되어 강한 능력을 나타내고 심지어는 정신적인 전파까지 뿜어내서 상대방을 움직이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임하실 때 내 잠재능력이 풀가동됨으로 엄청난 능력을 나타내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처남 프랑크 밴더 마아틴은 18세 때 벌써 아이오와주 수카운티에서 제일가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을 정도로 우수한 연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장간에 갔다가 빨갛게 단 쇠가 그의 왼손에 떨어져 바이올린을 짚던 손이 잘리어 엄지손가락만 남게 되었습니다. 연주자로서는 치명적인 상처였습니다. 이런 큰 불행 앞에서 그는 절망에 빠진 채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기도하는 중에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는 엄지손가락만 남은 왼손으로 바이올린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바이올린 4줄을 잡고 피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마,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수도 없이 낙망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기도하면서 위대한 연주자의 모습을 그리고 바라보면서 다시 믿음으로 일어났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아이오와주 수카운티 교향악단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불구자라고 생각하기까지는 결코 불구자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불구를 바라보지 않고 믿음으로 위대한 연주자상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기도하면서 끝없이 의심을 품고 바라봅니다. 안 되는 모습, 병들어 가는 모습, 가게가 안 되는 모습만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잠재능력도 모두 안 되는 쪽으로만 풀가동되어 결국 그가 그린대로 실패를 향해 내려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새해에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줄 믿으시고 승리하는 모습, 성공적인 모습, 능력 있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외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라고 하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즉시 말의 자세를 바뀌어 외치기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 믿음의 고백을 보시고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날도 교인들 중에 믿음의 없는 말을 함부로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보나마나 실패할거야.” “나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니 기도할 마음이 없다.” “우리 구역에 지질한 사람들만 주니 이제는 구역예배 나올 마음도 없어요.” “나는 가난하게 살 팔자인가 봐.” “남편이 속을 그렇게 속을 태우더니 저 놈의 새끼는 한 수 더 뜨니 이제는 누구를 의지할꼬?”라고 합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말은 우리 속에 있는 잠재능력을 풀가동하여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합니다.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씨가 되어 할 수 없는 열매만 맺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말은 아이의 아버지처럼 아무 도움을 만나지 못하지만, 믿음의 말은 주님의 강한 도우심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구하십시오. 그 다음 의식적으로라도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기 전 믿음의 말을 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불에 들어가기 전에 믿음의 말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리라” 사도 바울은 14일 동안 죽음의 풍랑에 시달리면서 믿음의 말을 합니다. “여러분들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말은 다 공수표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의 말대로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새해에는 우리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 믿음이 없는 말은 될수록 제거해버리고 의식적으로라도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한 것이 없다”는 긍정적인 말, 믿음의 말들을 하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했을지라도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죽은 믿음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흰소리 땅땅 치는 사람들을 많이 말날 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침에 비록 죽을 먹고 나온 주제에도 내일이면 떼 부자가 될 것처럼 큰 소리를 칩니다. 처음에는 식구들이나 친구들, 이웃들이 그 말에 혹하여 기대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금도 땀 흘리지 않고 큰 일만 꿈꾸기 때문입니다. 천리 길이나 태산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큰 꿈을 꾸는 만큼 그만한 희생적인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고백했다면 이제는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 위에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마음이나 입에는 믿음은 있지만 행함이 없다면 온전한 믿음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역사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님의 눈에 침으로 이긴 흙을 바르신 후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만 믿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느냐 아니냐는 그의 몫입니다. 만약 눈에 흙을 발랐다고 ‘사람이 이처럼 무시할 수 있느냐?’라고 불평하면서 가지 않았다면 눈이 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실로암에 가서 씻을 때에 기적가운데 눈이 열린 것입니다. 엘리사는 강대국의 장군이 친히 와서 안수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전혀 얼굴도 내밀지 않은 채,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이제 그 말대로 순종하느냐 마느냐는 나아만 장군의 몫이 되었습니다.
 
만약 나아만 장군이 친히 와서 안수하기는커녕 얼굴도 내밀지 않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건방진 소리를 하는 엘리사를 보고 ‘내가 문둥이로 죽으면 죽었지 이런 건방진 놈은 그냥 놔둘 수 없다.’면서 엘리사를 죽였거나 화가 그냥 돌아갔다면 그는 전혀 고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아만이 장군의 체면을 불구하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그는 순종의 행함을 보일 때에 기적가운데 문둥병이 나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미국에 부흥 운동을 일으킨 스페스 목사님은 의사로부터 무서운 진단을 받기를 “목사님의 심장에 있는 동맥 다섯 개 가운데 세 개가 막혔습니다. 사시려면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가슴을 째고 심장에 막혔던 동맥을 끓고 다리에서 동맥을 조금 끊어서 심장에다가 이어야 합니다.”라면서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어쩌면 좋습니까?’라고 물으면서 안타까이 기도하는 중에 수술하지 않고 믿음으로 낫겠다는 확신이 생기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포기하고 오직 기적을 바라면서 전적으로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건강한 심장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나은 줄로 믿고 그냥 지냈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에 다시 진찰한 의사는 깜짝 놀라면서 “참으로 놀랍습니다. 심장동맥이 막혔던 것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리고 확신이 올 때 그 약속을 붙잡고 응답된 사실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십니다. 그 다음의 믿음의 말을 하시고 믿음으로 담대히 행하십시오, 그러면 새해에는 승리적인 삶, 능력 있는 삶을 사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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