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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섬기는 교회(신년주일)
2018년 01월 05일 (금) 17:45:18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마20:26-28)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 모든 하시는 일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가득 차시기를 축원합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 표어는 “더욱 섬기는 교회”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삶은 한 마디로 섬기는 삶입니다. 무엇을 섬깁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도 영어로 ‘서비스(service)’, 즉 봉사와 섬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행복을 추구하지만 찾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삶의 목적, 즉 존재의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은 섬기려 오셨다고 하셨고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 때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보면 “하루 동안을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동안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일 년 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일평생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어느 분은 아파트를 사기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다 아끼며 삽니다. 그러면서 좋은 집만 사면 그때부터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분은 좋은 배우자와 결혼하면 그때부터 행복이 넘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의 속담을 보면 좋은 집에서 얻는 행복감은 그 시한이 한 달이요, 좋은 결혼에서 얻는 행복감은 그 시한이 일 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인간의 본연의 자세인 섬김의 삶을 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 거기에 행복의 길이 있음에도 얼마나 많은 분들은 섬김만 받으려 하는데 인생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동안은 여러분은 영영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섬기는 마음으로 바뀔 때에만 비로소 자유 할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통계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미국에 권위 있는 갤럽 조사에 의하면 교회 생활에 깊이 헌신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일반적인 사람들과 네 가지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과 이웃에게 헌신한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 중 60%가 아주 행복하다고 표명했고, 자기의 생애에 만족스럽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2)가정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 이웃에게 헌신한 사람들이 훨씬 견고한 가정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는 이혼율이 월등히 낮음을 말합니다. (3)하나님과 이웃에게 헌신한 사람들이 다른 인종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웃과 함께 살아갈 때 관용과 이해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4)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지역사회 봉사에 있어서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을 쓰면서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는 통계였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에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있는데 이 음식이 유명하게 된 유래가 있습니다. 캔터키의 작은 마을에 ‘센더스’라는 퇴역 군인이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음식점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결심하기를 ‘식당을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손님을 왕처럼 모시었습니다. 그 결과, 그 가게와 음식이 소문나기 시작하면서 전국에 수많은 체인점이 생기고 나중에는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게 하시고, 주는 자가 더 많은 것을 받게 하시는 것이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움켜만 쥐려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지만, 자꾸 주는 교회, 섬기기에 힘쓰는 교회 위에 하나님은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더욱 섬기는 성도, 더욱 섬기는 가정, 더욱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들의 어머니가 와서 예수님에게 간절한 간청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의 자리에 앉으실 때 자기의 아들들이 그 좌우에 앉을 수 있는 특전을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즉 우의정과 좌의정의 자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표현하면 치맛바람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아마 몰래 귀중한 선물도 들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면서 “그러한 영광된 자리에 앉으려면 나의 마시려는 고난의 잔을 마실 수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은 그 고난의 잔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것을 마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영광의 자리가 자기 자신의 권한밖에 있다고 하시면서 그 자리에 앉으려는 자는 먼저 많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6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라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 때문에 자연적으로 고난이 따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16:24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의 문제는 전혀 고난 받을 각오 없이 높임만 받으려 한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교인들의 문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을 각오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만 받으려 하고 교회에서 중직의 자리에 앉기 위해 애쓴다는 점입니다.
 
아니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고난 받을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사역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에 고난이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역자가 평안하려고만 하고 안일하려고만 한다면 그처럼 큰 착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길은 고독하고 곤고한 길이요, 때로 반대와 배신을 만나는 길임을 알고 떠난다면 의외로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의 강한 도우심을 통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환경에서도 주의 안위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남자들은 군대에 갈 때 ‘죽었다고 복창하자.’라면서 고난의 각오를 하고 떠납니다.
 
그런 각오로 입대하면 예상했던 것보다 고난이 크지 않은 것을 발견합니다. 대부분의 훈련이나 고난이 견딜만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군대에 가서 될수록 어려운 일은 피하려고 요령만 부리고 편안한 보직만 받으려하고, 조금만 힘들면 부모에게 백을 써서라도 서울 가까운 곳에 빼달라고 사정한다면, 아마 군대 2년 몇 개월은 지겹고 고통스러운 날로 가득 찰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새해에는 주님 따라 섬김의 길을 갈 때에 고난 받을 각오로 합시다. 그러한 자세로 일할 때에 주님의 아픔, 주님의 고난, 주님의 눈물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될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큰 위로, 기쁨을 허락하시는 것을 체험할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종의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27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봉사를 하거나 구제를 할 때 교만의 자세로 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종은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대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겸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종입니다. 또한 종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18절에서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않았다"고 했고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눅17:9절에 보면 "종이 밭에서 돌아오면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교회 와서 주인 노릇만 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주장질 하는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엇이 그리 못 마땅한지 사정없이 비판함으로 상처를 남깁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느 때는 너무나 화가 납니다. 아니 됩니다. 우리는 종의 자세가 되어야지, 주인의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많은 일을 했던지 적게 했던지, 누가 칭찬했던지, 아니면 알아주지 않던지 전혀 개의치 마십시오.
 
오직 우리는 사랑의 빚을 갚았다는 정신으로 겸손해야 하며 누가 칭찬하더라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겸손하면서 종의 위치를 지킬 때 하나님이 더 강하게 쓰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첨을 잘하는 한 사제(司祭)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와서 말하기를 “황제여, 황제의 덕은 이 세상에서는 세상 제국을 다스리기에 합당하고 저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다스리기에 합당합니다.”라고 극찬했습니다.
 
보통 교만한 황제 같으면 이러한 소리에 쉽게 넘어갈 것이나 황제는 외치기를 “저리 가라. 보기도 싫다. 더 이상 그런 부당한 말을 하지 말라.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로 하여금 이생과 내생에서 그의 종이 되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다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겸손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강하게 들어 썼던 것입니다.
 
약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종의 자세, 겸손의 자세로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들을 높이 쓰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희생적인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본문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되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다 희생하기까지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봉사하고 나서 어떤 대가를 바래서는 안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나서 낙심하거나 상처를 받는 이유가 어떤 대가를 원했다가 받지 못하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누구든지 무슨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고 대가나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를 대접을 했는데 그 사람은 내게 대접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려울 때 열심히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은 내가 어려울 때 외면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면 누가 알아 줄줄 알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직선거 때보면 자기보다 충성하지 않은 사람이 선출되는 것 같습니다. 무시를 당한 것 같아서 이러한 교회는 다시 나오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됩니다. 왜 그런 마음이 생깁니까? 어떤 대가를 바라고 봉사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하고 섬기십시다. 아니, 더 나가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만의 하나라도 갚은 심정으로 충성하고 섬겨보십시다.
 
마10:8절에는 "그냥 받았으니 그냥 주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그냥 받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우리의 대속물이 되시므로 우리는 영원한 저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어느 날인가 천국에 가서 영원한 천국 유업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동안도 매 순간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빚을 하나님께 갚아야 합니다. 어떻게 갚습니까? 주님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자에게 값없이 주는 것을 자기에게 갚는 것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빚을 진자는 빚 때문에 너무나 괴롭습니다. 늘 무엇인가 눌려 지냅니다. 밤에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먹어도 맛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이나 빚을 갚아 가기 시작하면 점점 기뻐집니다.
 
점점 가벼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섬기어 보십시오. 이상하게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차오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는 빚을 갚은 심정으로 남을 도왔더니 하나님은 이번에는 자기가 꾼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점입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갚을 길이 없는 불우한 자들에게 구제한 것을 자기가 꾼 것으로 인정하시고 몇 배의 이자를 쳐서 다시 갚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알아주신다는 생각을 하면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생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사랑의 빚진 심정으로 조국과 이웃을 위해 많은 섬김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대신 자꾸 교회의 창고에 물질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30년을 목회 하면서 신앙잡지 ‘풀핏(Pulpit)' 발행했던 스피노스 조디아 목사님은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 가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늘 공간의 문제가 있다. 죽어 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죽어 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 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소년 소녀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다. 죽어 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꾼이 부족하다. 죽어 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죽어 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 있는 교회는 새 얼굴 이름 알기가 어려워 애먹는다. 죽어 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 있는 교회는 선교 사업이 활발하다. 죽어 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 있는 교회는 주는 자(giver)로 가득 차 있고, 죽어 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tipper)로 차 있다.”
 
“살아 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 운행되고, 죽어 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 위에 운행된다. 살아 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고, 죽어 가는 교회는 편안하다. 살아 있는 교회는 활발히 전도하고, 죽어 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가 석회화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임을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더욱이나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는 신년도에 두 부부를 선교사로 파송하는데 이어서 금년도 예산에는 많은 사회봉사비를 파격적으로 책정했습니다. 작년도 사회봉사비 예산이 30,500,000원인 데 비해 금년도에는 무려 17,000,000원을 인상하여 47,000,000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목회자로서 제일 아쉬운 것이 이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책정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습니다. 옳습니다.
 
우리 성도들과 우리 교회는 언제나 봉사하고 구제하면서 섬기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과 교회 위에 물질의 복을 허락하실 뿐 아니라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감을 마음 가득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 중에 제인 애담스(Jane Adams, 1860-1935)가 있습니다. 그녀는 시카고의 부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척추에 병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의사의 권고로 휴양 차 유럽을 여행하였으나 그 마음에 일어나는 절망감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자로써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그녀는 매일 자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런던에 갔을 때, 그녀는 빈민굴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녀는 비로소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다.'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녀는 런던 빈민굴에서 섬기는 삶을 결단하고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한다는 헌신을 75세로 죽을 때까지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시카고 빈민굴의 낡은 집을 사서 빈민의 탁아소, 가출 소녀의 숙소로 삼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유명한 ‘헐 하우스'입니다.
 
그녀는 죽는 날까지 척추병으로 고생하였으나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라는 20대 후반의 결심을 잊지 않고 정력적으로 일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는 16세 미만의 아동 노동자가 2백만 명이나 되었고, 수많은 문맹자가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백악관 아동 회의'를 창설한 것도 제인의 노력이었다. 그녀는 193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제인 아담스의 좌우명은 미6: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였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교회 성도들이 사는 지역에는 언제나 사랑과 희생의 섬김이 넘치기를 바라며 우리 교회도 더욱더 섬기는 일에 힘씀으로 하나님 앞에 마지막 때에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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