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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예배태도
2017년 11월 08일 (수) 09:28:51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시50:14-15, 23)
 
11월은 감사의 달이고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감사의 예배에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예배를 많이 드립니다. 특히 한국 교인들은 얼마나 예배를 많이 드립니까? 주일예배, 오후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새벽예배, 심방예배, 기타 특별예배 등, 좋은 때나 슬픈 때나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는 다섯 가지 기능이 있는데, 예배, 교육, 선교, 봉사, 친교 등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뽑는다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교회당을 예배당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어느 분의 예배는 받으시지만, 어느 분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책망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그 동생 아벨의 예배만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은 크게 반성하고 바르게 예배를 드려야 할 터인데, 아벨의 예배만 받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한 나머지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었습니다.
 
오늘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분의 예배는 기뻐 받으시지만, 어느 분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예배란 무엇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예배 드린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드’인데, ‘일한다. 섬긴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서비스(service)'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예배는 어떤 신을 결정하여 그만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수24장에 보면 여호수아의 권면에 따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결정하고 그만 섬기기로 결정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또한 예배는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인데, ‘고개 숙이다. 경배하다’라는 뜻이요, 영어로는 ‘워십(worship)'으로 ’경배한다. 제사한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예배란 하나님만 오직 예배의 대상으로 알고 그 앞에 나가 그를 경배하고 그만 섬기는 것입니다.
 
특히 예배를 드리는 가장 중요한 정신은 감사입니다. 본문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유일하게 경배 받으실 분으로 알고 그 앞에 나아가 진심으로 경배하고 그가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그만 섬기기로 결단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의 예배는 잘못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복과 은혜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올 때도 “은혜 받으러 간다.”고 하고 예배를 마친 후에 인사가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헌금하는 목적도 받은바 은혜 감사하는 마음에서 보다 더 큰 복을 받으려는, 일종의 복채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설교를 듣는 자세도 “주여, 명하시옵소서. 내가 순종하겠나이다.”라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은혜와 복과 위로만 받으려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이 오늘 교인들의 문제점입니다. 아닙니다. 곧 예배 시간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간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도 예배를 드릴 때마다 진정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로 예배를 드리어야 합니까?
1. 감사로 찬송을 드리어야 합니다.
예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간구하는 찬송, 군가처럼 용기를 주는 찬송, 슬플 때 부르는 위로의 찬송 등등,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감사의 찬송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무엇을 달라는 기도나 찬송은 많이 하지만, 받은바 은혜 감사해서 찬송하는 이들은 많지가 않음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찬송을 드릴 때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원래 찬송은 히브리어로 ‘토다’인데, 그 뜻은 ‘감사의 찬양, 감사의 합창’입니다. 히13:15에서는 ‘찬미의 제사’란 말을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송은 입술의 제사입니다. 찬송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드리십시오. 찬양대원들이여,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찬양을 부르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십시오. 그 때에 찬양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특히 모든 것이 캄캄해 보이는 환경에서 더욱 찬송을 부르십시오. 역경 중에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고 그에게 능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441장 “비바람이 칠 때와”는 영국이 낳은 신앙 시인 촬스 웨슬리가 작사한 것으로 인생항로에서 조난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가에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한 남군 병사가 북군의 지역으로 정탐하러 갔다가 한 보초병을 발견하고 총으로 사살하려고 했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북군의 병사의 입에서 찬송가가 흘러 나왔습니다.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저를 품어줍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 줍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아마, 이 북군 병사는 캄캄한 밤중에 혼자 보초를 서자니 너무나 무섭고 떨리어 이 찬송을 조용히 불렀던 것 같습니다. 남군 병사도 신자인지라 찬송을 부르는 사람을 감히 쏠 수가 없었습니다. 북군 병사는 이어서 2절을 부릅니다.
 
“저의 영혼 피할 데 예수밖에 없으니/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구주 의지하옵고 도와주심 비오니/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남군 병사는 그 절절한 찬송을 들으면서 오히려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총을 쏘지 못하고 자기 진지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수년 후, 어느 날 미국의 한 기선 갑판에서는 선객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이 때 어느 신사 한 분이 찬송 441장을 불렀습니다. 그 때 그 찬송을 감회 깊이 듣고 있던 한 사람이 그 신사 옆에 오더니 어깨를 두드리며 ‘당신은 남북 전쟁에 참석한 적이 있지요?’라고 물은 후 “나는 달밤에 당신을 총으로 쏘려다가 당신이 이 찬송을 부르는 것에 감격하여 그냥 돌아갔다.”고 고백할 때 서로가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송하십시오. 감사로 찬송하십시오. 캄캄한 역경일수록 더욱 찬송하십시오. 하나님은 역경 중에 부르는 감사 찬송을 기뻐하사 친히 함께 하심으로 여러분들을 특별 보호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감사의 기도를 드리어야 합니다.
예배 순서 중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는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은 감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기도의 입을 열기 바쁘게 구하는 일에만 바쁩니다. 받은바 은혜가 많음에도 감사는 거의 없고 온통 “무엇 주시오, 무엇이 필요합니다.”라면서 구하는 기도만 하다 끝납니다. 물론 어린 아이 때는 감사할 줄 모르고 떼를 쓰는 데만 능합니다. 그래도 아이가 어리면 부모는 그 간청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중학생, 고등학생 되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여전히 필요한 것만 구한다면 나중에는 괘씸한 생각이 들면서 야단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생일날이나 성탄절에 조그마한 선물과 함께 카드에 “엄마, 너무 감사합니다.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 그 동안 갖은 땀과 아픔을 겪으면서 당했던 모든 노고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특히 역경의 날이 온다 할지라도 기도로 감사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역경의 날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더니 하나님이 형통한 길은커녕 사자 굴에서 죽음의 날을 만나게 했습니다. 그 때 다니엘은 하나님께 “하나님, 이런 억울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내 생명을 건져 주시옵소서”라면서 안타까이 기도했습니까?
 
아닙니다. 단6:10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런 역경 중에 드리는 감사의 그릇 위에 하나님은 강한 기적으로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하십시오. 시편은 성경 중의 기도의 책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기도가 담기어 있습니다.
 
특히 그 기도들의 상당한 부분이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너무나 형통하고 복된 생활만 한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대부분은 다윗이 지은 것인데 그는 청소년 때부터 갖은 환난과 역경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감사할 때에 하나님의 엄청난 도우심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 중에는 감사가 얼마나 담기어 있습니까?
 
감사가 빠졌다면 이제부터 감사로 가득 채우십시오. 우리가 감사의 눈으로 보면 온통 감사할 것투성입니다. 병원에 가 보십시오. 입원실이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환자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처럼 건강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것뿐입니다. 일 년을 되돌아보십시오. 너무나 감사할 것투성입니다. 역경 중에라도 감사하십시오. 감사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14절에서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에게는 서원을 갚아 주시고” 15절에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40일 기도회 중 남은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감사기도를 하심으로 하나님의 더 큰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감사의 헌금과 헌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에는 또한 헌금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예배를 제사로 표현했는데 제사에는 반드시 희생 제물이 있어야 하고, 그 제물인 동물의 피를 희생함으로 예배가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예배는 희생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희생하셨기에 피의 희생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예배에는 구약의 희생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 담긴 헌금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부자가 부스러기 정도로 내는 1000렙돈 보다 가난한 과부의 희생이 담긴 2렙돈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 되십니다. 헌금에는 노동의 땀과 눈물이 담긴 희생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금액의 헌금을 내어도 그 속에 희생이 담기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아무리 작은 물질일지라도 그 속에 희생이 담겨 있으면 기뻐 받으십니다. 인색이나 타산이 깃든 헌금은 희생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헌금에는 깊은 감사에서 울어난 희생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못해서나 인색한 마음으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구약 시대처럼 ‘하나님, 여기 제물을 드리오니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라는 거래식의 헌금이 아니라, 주신 은혜 감사해서 정성을 다해 드리어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또한 예배에 빠질 수 없는 것은 헌신의 결단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헌금을 바쳤다 해도 헌신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섬김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주님의 말씀과 명하심을 듣고 새롭게 결단하고 청지기로서, 전도자로서 세상으로 파송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의 새 결단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합니다. 사6장에 보면 청년 이사야가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앉아 있을 때에 놀라운 장면을 환상으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합니다. 하늘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는 천사의 훤화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엄청나고 거룩하며 찬란한 장면을 목격하고 이사야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며 회개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통회했습니다. 그 때에 “이 백성을 위해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내가 누구를 보낼꼬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결단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의 모습입니다. 예배란 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시간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제 귀한 사명자로 부르시니 너무 감사 감격하여 이 몸을 주님께 바치는 시간이 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예배를 통해서 감사의 찬송, 감사의 기도, 감사의 헌금과 헌신을 드리십시오. 역경 가운데 더욱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더욱 더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강하게 사용하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네델란드 선교사로 전 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코리텐 붐 여사는「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에서 자기가 포로수용소에서 살았을 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포로수용소는 군인 막사를 개조하여 만든 것으로 원래 2백50명이 잠잘 수 있게 만든 막사에 8백여 명의 죄수들이 수용되었습니다. 잠자리가 너무 좁아서 자리싸움과 밀치고 떠미는 일이 계속 일어나면서 수용소 속은 마치 작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게다가 화장실 시설이 제대로 안되어 있어 막사 내에 오물이 흘러넘치고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또한 벼룩이 뛰어다니면서 물어대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수용된 코리는 너무 더럽고 힘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에게 불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의 언니 베씨가 성경을 들이대면서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고 설득하였습니다.
 
코리는 오물이 흘러넘치고 벼룩이 뛰어 다니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니가 너무 강조하니까 그녀는 건성으로 "하나님, 이런 곳에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며칠이 되지 않아서 코리와 언니 베씨는 주위에서 병들고 괴로워하며 신음하는 소리들을 듣게 되었고 그들을 찾아가서 몰래 숨겨온 성경을 읽어 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며 위로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찬송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는 함께 기도드리고 찬송하며 예배드리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규칙이 있었는데 간수들은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서도 막사 안으로 들어와서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히 여긴 코리가 왜 간수들이 자기들의 예배를 제지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에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들어오고 싶어도 막사 안이 너무 더러워 몸에 오물이 묻고 벼룩이 옮을까 두려워서 들어오지 않고 눈감아 주는 거랍니다."
 
코리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막사 안이 너무 더럽고 냄새나고 벼룩이 뛰어다닌다고 불평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사용하여 예배를 제지하는 방해꾼들을 막아내시고 계시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벼룩이 뛰어다니는 더러운 수용소 막사에서도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코리텐 붐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코리는 환한 날이나 캄캄한 날이나, 기쁜 날이나 슬픈 일이나 푸른 초장에서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항상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무조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코리텐 붐을 하나님은 점점 강하게 쓰심으로 후에는 유명한 여자 부흥사가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날마다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특히 찬송이나 기도, 헌금이나 헌신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어나는 감사로 하심으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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