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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큰 믿음
2017년 09월 20일 (수) 12:08:54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창17:15-27)
 
기독교의 생명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인 성경을 믿는 자에게 역사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큰 믿음의 그릇에 크게 채워 주시고 작은 믿음의 그릇에게는 그릇만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의 중요한 것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크냐, 작으냐에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 사는 자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옥과 같은 환경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은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순교자 알제리우스는 죽기 얼마 전에 감옥에서 ‘내가 이 어두운 감옥에서 이처럼 즐겁고 아름다운 낙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슬피 울며 괴로워하는 슬픔과 죽음의 장소인 이곳에서 오히려 평온과 소망 가운데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큰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이 크게 역사해 주시고 작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작게 역사 하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이고 어떠한 믿음이 큰 믿음이고 어떠한 믿음이 작은 믿음인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의 큰 믿음은 큰 순종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12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하시기를 “너희 본토 친척 아비 집 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그 때에 네게 큰 민족, 큰 복, 큰 보호를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토는 원어로 ‘메마르츠카’로 ‘고향’이라는 뜻이요, 그 고향에 대부분의 친척이 있었고, 그 아버지 데라와 형제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은 너의 모든 근거지를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러한 나이가 되면 오히려 객지에 나갔던 사람들도 고향과 친척이 그리워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남은여생을 편안히 보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년에 이른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 무리한 명령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갈등에 빠졌습니다. 과연 하나님이란 분이 누구신지 아직도 잘 모르는 때에 그 복된 약속만 믿고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날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친척 어른과 고향 사람들이 비난할 것인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침내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하고 깊이 정들고 뿌리를 내렸던 고향을 떠났습니다. 아마, 많은 동네 어른들과 친구들, 혹은 아내의 반대가 분명 있었을 것이나 하나님의 복된 약속만 믿고 과감히 떠난 것입니다. 그 큰 순종이 바로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 17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네 이름과 아내의 이름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라” 17:15 “아내의 이름을 사래에서 사라라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명령을 받았을 때에 아브라함은 99세이고 사라는 90세였습니다. 그런데 99세나 된 어른이 어느 날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이름을 고친다는 것은, 사람들이 볼 때는 망령이지, 온전한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어느 날 교회 앞에 광고하기를 ‘여러분, 제가 어제 밤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이름을 태복에서 대복으로 고쳐라 명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제 이름으로 김대복으로 불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한다면 모든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회갑도 안 되어 망령이 들었나?’라고 너나없이 한 마디씩 할 것입니다. 특히 셈족에서는 이름을 대단히 중요시 여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개명(改名)하니 누구보다도 아브라함의 집안사람들이 ‘야, 하나님을 믿으려면 온전히 믿어야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난데없이 모든 살림을 정리하고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더니, 이번에 그 귀한 이름을 하루아침에 바꾸다니 너무나 한심하여 말이 안 나온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비웃는 소리가 나올 줄 뻔히 알면서도 아브라함은 99세에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더 난처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할례란 무엇입니까? 우리 여자 분들은 듣기가 민망한 말이지만, 할례란 남자 성기 끝에 있는 살가죽, 즉 표피를 베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포경 수술하는 것인데, 그러한 수술을 집안 모든 남자에게 하라는 무리한 명령이었습니다.
 
창14:14에 보면 아브라함의 사적인 군대가 318명이라고 했으니 아마 아브라함 밑에는 8일 이상이 되는 남자를 계산하면 1,000여명 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명령하시니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강제로 시행할 때에 얼마나 불만이 많이 일어났겠습니까? 그리고 요즈음처럼 의술이 발달할 때도 포경수술을 하면 3-4일은 꼼짝도 못하는 판인데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몇 천 년 전에 1,000명의 식구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을 받는 모습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23절에 보니 아브라함은 갖은 불평과 반대를 무릅쓰고 할례를 행하는 순종을 보였던 것입니다. 창21장에 가면 아브라함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서자(庶子)인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인 하갈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비록 서자일지라도 이스마엘은 자신의 첫아들입니다.
 
나은 정(情)도 대단하지만, 기른 정도 대단한 것입니다. 요즈음 애견이나 고양이를 기르는 가정이 많은데 어느 가정은 기르던 개가 죽었다고 울고 불고 합니다. 그 만큼 기른 정은 깊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기르면서 너무나 정에 흠뻑 빠졌는데 그 아들과의 인연을 끊으라니 말이 됩니까? 또 하갈도 비록 여종이지만 자신에게 아들을 낳아준 여인이었습니다.
 
의롭고 인정이 많은 아브라함으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었습니다. 더욱이 무법천지인 광야로 젊은 여인과 어린 아들을 내보내는 것은 사지(死地)로 보내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온 믿음의 사람이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히 하나님을 의지했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기를 "그 아이나 네 여종에 대하여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너에게 말한 대로 하여라. 이삭을 통하여 난 사람이라야 네 후손으로 인정될 것이다. 그리고 네 여종의 아들도 네가 낳은 자식이니 내가 그에게도 많은 후손을 주어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어려운 명령만 하지 않으시고 순종만 하면 어떻게 너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처지였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결정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염려하고 기도하는 이스마엘과 하갈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복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차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이스마엘과 하갈을 빵과 물 한 가죽부대를 메워주고 내보냈습니다.
 
아마, 울고불고 아버지를 안 떠나겠다며 떼를 쓰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브라함은 피눈물이 그 마음에 고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큰 순종을 보인 아브라함을 큰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증거는 순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는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행함이 없는 자와 같으므로 죽은 믿음과 다름이 없습니다. 삼상15:22에 보면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수없이 예배를 드려도 순종하지 않는 성도보다 예배는 자주 못 드려도 순종하는 성도가 더 귀한 것입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본래 인도의 선교사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한국에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기 위해서 선교부에 편지를 했더니 지금 선교비가 없어서 보낼 수 없다는 답신이 왔습니다. 그런데다가 뉴욕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소식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는 길도 막히고 목회의 길이 열리었으니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청빙을 수락하는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리기를 ‘한국은 어떻게 하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부치지 않고 다시 선교부에 갔더니 ‘당신 마침 잘 왔습니다. 당신께 편지할 때는 선교비가 없었지만, 바로 며칠 전에 어떤 사업하는 분이 6천불을 보내왔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언더우드는 마침내 1885년 한국에 선교사로 오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를 한국의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언더우드의 순종하는 믿음이 없었다면 한국복음화는 그만큼 늦어질 뻔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언제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산 믿음을 가지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의 큰 믿음은 기다림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세 때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신 후 거의 24년이 지난 99세가 되도록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보면 아이를 낳기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더욱이나 사라는 90세로 태가 다 말라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다시 약속하시기를 “너는 열국의 아비, 너의 아내는 열국의 어미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17절에 보면 너무 기가 막혔는지 엎드리어 웃으며 마음에 이르기를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더 구체적으로 약속하시기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시면서 아이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불가능한 지경에도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무려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이삭이라는 약속의 자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큰 믿음이라는 것은 큰 기다림과 같은 것입니다. 때로 많은 성도들이 낙심하는 이유를 보면 기도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40일을 작정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1년, 2년 혹은 5년 이상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기도를 포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는 분인 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5년, 10년, 아니 25년이라도 믿음으로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큰 기다림은 큰 응답이 따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그의 친구가 당시 10살 된 자기 아들의 장래 아내감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에 큰 감동을 하고 자기 아들 피터의 아내감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며느릿감의 특징을 종이에 써서 기도했는데 ‘(1)소녀는 혼자 힘으로 예수님을 만나 보았음 (2)소녀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 (3)소녀는 배우자와 지성적인 대화를 나눌 만큼 충분한 교육을 받았음 (4)소녀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졌음 (5)소녀는 기쁨과 소망과 유머와 슬기와 정열로 충만해 있음’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신부 감에 대한 초상화를 종이에 적어서 성경에 넣고 다니면서 계속 기도 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가고 드디어 아들이 신학교 3학년 때 에이디라는 소녀와 피터가 사귀게 되었는데 그 소녀와 만나보고 슐러 목사님은 참으로 놀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기도한 제목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아들이나 딸이 결혼할 때가 되어서야 허둥지둥 기도하기 일 수입니다. 아닙니다. 지금 시대는 얼마나 음란하고 타락한 시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자녀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그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큰 믿음에 속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안타까운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되 이루어질 때까지 3년이고 5년이고 10년이고 기도하는 큰 믿음을 보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아브라함의 큰 믿음은 큰 희생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때는 인간의 계산을 초월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창 13장에서 보면 롯과 분가(分家)할 때도 롯은 얌체처럼 좋은 쪽을 차지할 때도 오히려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이 양보하는 희생을 보였습니다. 창14장에 보면 큰 전쟁 속에서 자기에게 배은망덕한 롯의 식구들이 적군에게 체포를 당하여 포로가 되어 재산을 다 빼앗겼다는 전갈을 듣고 자기의 사병 318명과 함께 가서 목숨을 무릅쓰고 롯의 식구들을 구해냈습니다.
 
창18장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친히 나가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극진하게 대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평소에 이처럼 많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히13:2에 보면 천사까지 대접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너무나 죄를 많이 지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내릴 것이라는 천사의 예언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의인 50명만 있어도 멸하겠나이까?’라는 간구로부터 나중에는 의인 10명의 숫자까지 낮추면서 일곱 번 중보기도 하는 그의 희생적인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큰 희생의 진정한 모습은 창22장에서 가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100세에 낳은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아니, 아들을 주시마고 약속하시기를 수없이 하신 후에 25년 만에 주신 이삭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갑니다. 아무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인간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라도 이렇게 인간을 농간해도 좋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밤이 맞도록 고민하고 회의하고 울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마, 속이 상할 대로 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22장에 보니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삭에게도 이야기를 안 해주고 데려간 것처럼, 그 아내 사라에게도 아무 말도 안하고 데려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고 한다면 사라가 펄펄 뛰며 ‘차라리 나를 죽이고 데려가라’고 악을 쓰면서 막았을 것이요, 하나님께 대해서도 악다구니를 했을 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아무래도 남자보다 정에 약하고 의지가 강하지 못한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큰 믿음이 큰 희생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고는 자기도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나갔을지 모릅니다. 자,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생만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희생을 기억하셨다가 반드시 30배, 60배, 100배로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창세기를 깊이 연구하시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희생을 나타낼 때마다 반드시 하나님은 복된 약속을 하시거나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사렙다 과부가 한 끼 뿐이 남지 않은 양식을 하나님을 위해 희생했을 때 수년 동안 가물이 들어도 결코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으로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금, 구제, 봉사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그릇만큼 채워주십니다. 로버트 두토르는 사업을 하다가 계속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는데 마침 목사님이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하더랍니다.
 
그 때 그는 결심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를 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실천하지 않았다. 그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십일조를 바치는 생활이다. 이제부터는 수입이 생기는 대로 철저하게 계산하여 십일조를 바쳐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천 달러를 빌려서 조그만 기계공장을 차리고 열심히 일하면서 수입이 되는대로 철저하게 계산하여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공장이 날로 번창하여 나중에는 십의 이, 십의 오, 십의 구까지 드리어도 엄청나게 부유하게 사는 자가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신천리교회 이형진 집사님리 간증입니다. 그는 옹진 태생인데 육이오 사변 때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던지 두 가지 소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보리밥을 안 먹는 것이오, 둘째는 나무 지게를 지지 않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하였고 남선교회를 위해 차를 사고 영사기를 사서 전국각지에 다니면서 전도사업도 하고 많은 신학생들의 학비를 돕기를 기뻐하고 일주일 한 번씩 교역자의 고기를 댔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축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에 건축헌금하기를 힘썼더니 하나님이 점점 물질로 축복하여 주심으로 그 교회에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하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도 아브라함의 큰 믿음을 따라서 순종하는 믿음, 약속을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 어떠한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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