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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의 관계의 역사에 비추어 본 한국 개신교회의 정치참여
2015년 08월 26일 (수) 10:48:37 이형기 목사 webmaster@cry.or.kr

2008년에 출범한 ‘공적신학연구소’는 2010년에 『공적신학과 공적교회』롤 출판하였다. 이 첫 번째 책에서 우리는 ‘공적신학’ 일반에 대하여 다루었다. 그리고 2012년엔 『하나님의 경제 I』라고 하는 제목 하에 ‘성서적이고 역사적인 글들’을 실었고, 2014년 『하나님의 경제 Ⅱ』에서는 ‘신학적인 글들’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번엔 『하나님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1년 동안의 세미나자료들을 모았다.

우리 한국 개신교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6.25전쟁을 겪으면서, 군사정권 하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동행하는 현 국가체제 밑에서 국가로부터 억압을 받는 상황에서,그리고 다수의 불신자들과 타 종교인들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와 국가로 부터 분리하는 분리주의적인 경향을 보여 왔다.

여기에 더하여 영혼과 몸, 교회와 세상,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이분법으로 인하여, 교회는 노아의 방주유형을 따라서 세상을 등지는, 외딴 섬처럼 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의 항일운동과 사회와 국가를 향한 공적 책임수행에 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즉 이와 같은 한국 개신교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상황에서, 세계교회사에 나오는 ‘교회와 국가’ 관계의 역사에 비추어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사회 및 정치참여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콘스탄틴 제국으로 발원하는 ‘기독교 세계’(the Christendom 혹은 the Imperial State Church) 이전과 이후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

신약성서시대로부터 이레네우스와 테르틀리아누스에 이르는 시기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던 시기로서, 국가참여와 정치참여보다는 장차 도래할 천년왕국과 하나님 나라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틴 황제의 보호를 받는 제국의 교회(an Imperial State Church)가 등장하면서, 유세비우스와 같은 어용 교회 사가가 등장하여 ‘콘스탄틴 제국의 기독교’를 천년왕국과 하나님 나라의 선취라고 하는 신학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박해시대에는 ‘순교’라고 하는 것이 정치참여의 형태였으나, 이제는 공적인 영역에서 사회와 국가를 섬기는 것이 정치참여의 형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레네우스와 테르틀리아누스의 천년왕국과 유세비우스의 콘스탄틴적 ‘기독교 세계’를 넘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은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당시 상황에서 이 저서는 천년왕국론에 따른 미래 지향적 종말론과 제국의 교회를 통하여 미래의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었다고 하는 나름의 실현된 종말론을 극복하고, 교회와 국가를 엄격히 구별하고 교회와 국가가 모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함을 일깨웠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의 존재이유가, 악을 어거하는 데에 있다고 보아(살후2:7-8), 기독교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유도하기보다는 국가에게 국가가 할 일을 맡기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안으로 내향(內向)하도록 만들었다.

2. 종교개혁 시기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은 ‘콘스탄틴적 기독교 세계’(the Constantinian Christendom) 와 더불어 교황 중심의 폭은 황제 중심의 중세적인 ‘기독교 세계’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니콜라스 1세는 교황중심의 ‘기독교 세계’를, 샬르만뉴는 황제 중심의 ‘기독교 세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교황이 제국을, 그리고 황제가 교회를 간섭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던 중, 중세 말의 오캄과 파쥬아의 마르실리우스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없는 한, ‘평화’는 없다며,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플로렌스와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의 도시들에서 일어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중세의 기독교 전통이 ‘참 인간’의 문예와 역사를 망가트렸다고 보고, 고대 희랍-로마문명의 부활을 열망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의 천년왕국과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은 물론, 유세비우스 이래의 ‘기독교 세계’에 대한 야망도 없었다. 이들은 이성과 의지의 인간의 주체성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아름다운 문화와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루터: 기본적으로 루터는 오캄과 파주아의 마르실리우스를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사상을 따랐다. 그리하여 그의 ‘두 나라 사상’(Zwei Reichenlehre)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에서처럼 국가를 주로 악의 제어에 기여하는 것으로 본 나머지, 교회의 정치 참여를 구조적으로 제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루터의 ‘율법과 복음’이라고 하는 신학적 주제가 중세기의 율법주의적 상황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으나,기독교인들과 교회로 하여금 공적영역에서의 사회 및 정치참여에 소극적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제XVI항)에서 기독교인들의 정치참여가 예언자들의 목소리와 산상수훈과 사도적 훈령들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실정법을 지키는 것에 불과한 것을 발견한다. 즉,“복음은 국가 혹은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다. 반대로 특히 그것들은 하나님의 제정들로서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보존될 것이 요청된다.”

여기에서 루터는 국가, 경제생활, 그리고 가정을 ‘신적 제정들’(divine ordinances)로 보아, 복음신앙에 근거하여 사랑 차원에서 그것에 순응(conformity)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루터는 그의 ‘복음의 재발견’과 ‘복음’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 대한 신학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회 및 정치참여에 적용하는 일은 어느 정도 칼빈에게, 그리고 나아가서 칼 바르트와 몰트만에게 맡겨야 했다.

칼빈과 존 녹스: 개혁주의 신학의 정치윤리의 큰 틀은 대체로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이다. 그런데 다른 점은, 칼빈과 녹스 등은 국가의 준재 이유가 단순히 악의 제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a theocracy) 하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국가의 공직자들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이요 하나님 나라에의 봉사자들이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은 ‘복음과 율법’ 그리고 ‘율법의 제3사용’이라고 하는 신학적인 주제를 강조하여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공적 영역으로서의 사회 및 국가참여에 적극적이게 만들었다. 이들에겐 예언자들의 목소리와 산상수훈과 사도들의 훈령들이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사회 및 정치 참여에 있어서 설 자리를 확보하였다.

과격파 종교개혁: 이들은 재세례파로 불렸다. 이들은 ‘콘스탄틴의 기독교 세계’ 이전, 초기 기독교세계로의 회귀를 주장하여,국가교회의 회원자격을 얻기 위하여 베풀어지는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성인 세례’(adult baptism 혹은 believer’s baptism)를 주장하여, 16세기 당시 가톨릭교회로부터는 물론, 루터 교회와 개혁교회로부터도 분리해 나가는, 분리주의 노선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루터와 칼빈이 공유하고 있는 ‘복음’에 대한 바른 신앙보다는 예언자들의 목소리와 산상수훈과 사도적 훈령들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완전주의’를 추구하였으니, 그 때문에, 기성교회들과 분리하여, 자신들의 공동체의 거룩성과 폐쇄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및 정치참여가 아니라 교회 자체를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성서의 과격한 명령들을, 보편적인 세계, 곧 일반사회와 국가에 적용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특수’에서 ‘보편’으로 나가는 일에 실패하였다. 오늘날 이 전통의 신학자들로서는, 요더(H. Yoder)와 하우워와쓰(S. Hauerwas) 등이 있다.

3. 칼 바르트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과 율법’ 그리고 ‘율법의 제3사용’은 칼 바르트의 정치윤리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칼 바르트는 ‘복음과 율법’(1935)에서 ‘복음’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율법’을, 이 ‘복음’(Gabe 혹은 Indikativ)을 믿는 사람들의 ‘율법’ 실천(Aufgabe 혹은 Imperativ)을 주장하였고, ‘칭의와 정의’ 혹은 ‘교회와 국가’에서 국가자체의 법을, 인간에 의하여 제정된 것으로 보면서, ‘이신칭의’ 받은 기독교인들의 ‘정의’ 실현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그는 국가권력을, 신성성이나 ‘왕권신수설’ 차원에서가 아니라, 죄인들로서 보편적 ‘하나님의 칭의’ 아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공동체와 시민들의 공동체’(1946)에선 교회와 국가를 하나님 나라(the eternal State 혹은 the universal Kingdom of God)에 대한 희망 안에서 두 개의 동심원으로 보아,교회와 국가가 동일한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a Christocracy) 하에 있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복음과 율법’ 그리고 ‘율법의 제3사용’이라고 하는 ‘특수’에서 출발하여 보편(실정법과 헌법 등)으로 나갔다(continuum). 이어서 바르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11가지 ‘유비’(analogia)을 제시한다. 그 중 3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긍휼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시는 바, 사람을 위한 이웃이 되신 것에 ‘유비’하여, “정치적 영역 안에서 교회 역시 항상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인간’이 되어, 인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보편적인 인류에 대한 칭의에 뒤따라야 할 정의(正義)에 유비하여 교회는 결코 “무정부주의’나 ‘폭군편’에 설수 없고, 항상 시민 공동체로 하여금 법의 추구에 의해서 그리고 법의 확립을 위하여 “인간을 제약하고 보존하는, 국가의 근본적인 존재 목적을 진지하게 여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인자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오신 것에 유비하여 교회는 모든 거짓된 편파성을 버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사회 안에서 낮은 자들과 더 낮은 층의 사람들을 긍훌히 여겨야 할 것이다, “가난하고 사회 경제적으로 약하고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항상 교회의 우선적이고 특별한 관심사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사회의 이와 같은 약한 지체를 돌봐야 할 국가의 특별한 책임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끝맺음

이 글은 종말론에 따라서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세상과 국가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무래도 칼 바르트의 ‘기독론적 종말론’을 제외하면, 모두가 ‘최후심판의 이중적 결과’와 같은 묵시문학 전통의 종말론적 구조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박해상황에서 이레네우스와 테르틀리아누스가 얼마나 교회 대 세상의 이분법을 지향하였고, 반면에 유세비우스와 ‘콘스탄틴적 기독교 세계’가 얼마나 ‘복음’을 세속화시켰으며 세상 속에 용해시켜버렸는지를 보았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이 국가에게 적극적인 의미나 사명부여를 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루터와 칼빈의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에도 불구하고, 과격파 종교개혁이 추구하는 거룩한 공동체 형성에 얼마나 미치지 못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칼빈 등 개혁파가 주장하는 ‘복음과 율법’ 그리고 ‘율법의 제3사용’에서 과격파 종교개혁의 요구가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신학적 구조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바르트의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와 시민 공동체’가 지상교회의 천상적 이상화가 아니라 ‘영원한 국가’ 혹은 "하나님의 보편적 나라’를 추구하고 있고, ‘두 동심원’ 및 ‘신앙의 유비’에 대한 주장에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교회 및 국가(세상)에 대한 책임을 ‘복음’과 ‘하나님의 보편적인 나라’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 한국 개신교는 한편 묵시문학전통의 종말론과 다른 한편 무천년왕국설적 종말론에 따른 정치윤리 혹은 사회윤리에 익숙하고, 국교분립을 강조한 나머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사회 및 정치참여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형기 박사(Ph.D)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공적신학과 교회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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