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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사는 길은 무엇인가?
2014년 05월 08일 (목) 05:42:50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한국사회가 너무나 총체적으로 부실하고 부패가 만연한 사실을 온 국민들은 깨달으면서 개탄하고 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세계 언론이 세월호 참사를 연일 보도하면서 형편없는 구조현황과 아울러 감독기관과 정부 내에 깊게 뿌리내린 부패를 사정없이 비판함으로 세계 앞에 한국의 위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정도의 나라가 부패지수 면에서 세계 45위가 되어 있고 현 정권에서 더 증가되어 있다니 기가 막히다. 그런 반면 일본은 17위의 모범국가, 대만도 우리보다는 높은 37위다. 중남미의 칠레-우루과이-바하마-푸에르토리코-도미니카, 아랍권의 카타르-UAE, 부탄 역시 우리 보다 높다. 더욱 기독교인이 인구의 5분지 1이라는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기에 그저 부끄럽다.

한국사회의 도덕적 황폐 원인

오늘 한국사회는 극심한 도덕 암흑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혹자는 ‘악덕 재벌 탓이다.’ 혹자는 ‘정치가의 부도덕 탓이다.’ 혹자는 ‘국민의 도덕을 책임진 종교가들이 썩은 탓이다,’라고 한다. 필자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국민의 정신에 맑은 샘물을 넣어줄 스승이 없는 탓이다. 사무엘, 이사야가 없다. 안창호나 이승훈, 조만식이 없는 탓이다.

모든 정치, 모든 종교, 모든 교육에도 맑은 샘이 공급되어질 때, 맑은 정치, 맑은 종교, 맑은 사회가 되어지는 것이다. 혹자는 설교를 맡은 목회자들이 잘못 계도(啓導)하는 탓이라고 비판하지만 목회자들도 사실은 전문인에 불과하다. 목회자들에게도 바른 스승의 맑은 사상이 공급될 때만이 그 설교들이 맑아지고 그의 목회도 맑아지는 것이다. 아무리 제도를 고치고 메뉴얼을 바꾸어도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60년대, 70년대 군사정권이 범한 큰 실책은 민족의 정신적인 스승들을 모두 정치적인 교수로 몰아세워서 그들의 말, 그들의 글들을 봉쇄함으로 사상의 샘을 막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의 정신이 부도덕으로 오염되어지고 혼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물질풍요를 누리는 화려한 사회로 성장했지만 온 사회가 부도덕으로 병든 사회가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5.16 혁명이 일어나기 전, 한국사회는 함석헌, 김성식, 홍이섭, 유달영, 김형석, 백락준, 안병욱 등 민족 스승들이 적지 않았다. 국민들은 비록 빈곤했지만 그 스승들이 떠먹이는 대로 걸신들린 것처럼 사상의 음료들을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역사의 눈이 열렸고 조국에 대한 깊은 아픔을 배태(胚胎)했다. 그 스승들을 통해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도산 안창호, 월남 이상재, 김교신 등, 조국의 역사 속에 거목처럼 버텨준 인물들은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조국, 이웃을 향해 사심 없이 헌신하는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의기와 관용, 용기와 희생을 배우면서 조국을 향해 헌신하겠다는 뜨거운 의욕을 가슴에 심고 있었다. 그러나 비극의 날들이 왔다. 젊은 군인들을 중심으로 5․16 군사혁명을 일으켰고 마침내는 바른 소리를 하는 스승들을 억압하고 '사상계'같은 민족지를 폐간시킴으로 사상의 샘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라는 새마을 노래를 동사무소의 스피커를 통해 새벽부터 강제적으로 주입쇼ㅣ킴으로 시민들은 서서히 경제동물로 길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번 잘 살아보기 위해 아무 철학적 바탕도 없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처럼 버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날 마침내 우리 스스로가 놀라고, 세계가 경탄할 만한 기적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국민들은 그처럼 동경하던 선진국이 이룩된 줄로 착각하고 너나없이 승용차들을 구입하고 휴일이면 식구들을 동반하고 교외에 나가 코에 냄새가 나도록 고기를 구워 먹고, 호텔에서 값비싼 '뷔페'를 먹는 것으로 자기의 부를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아무 도덕적인 바탕 없이 배불러진 사회는 동물적인 본능만이 판을 치게된 것이다. 민족의 스승들을 추방한 형벌임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스승을 다시 모셔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민족의 스승들을 다시 그들의 암자 같은 강단으로 모셔와야 하며 그들의 붓을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는 것이다. 민족의 스승은 윗물의 샘과 같다. 맑은 샘이 위에서 흐르기 시작할 때 상층부의 '화이트 칼러' 그룹이 맑아지기 시작하며, 정치자, 기업인, 교수, 의사, 예술인의 사상과 삶의 태도가 맑아지고, 종교인들의 가르침도 맑은 샘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민족의 스승이었다. 그가 바로 서있을 때, 흔들리던 지도급 인사들도 안정되고 폭력과 테러가 난무하던 나라도 어둠이 벗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탄탄한 안정적 도전 앞에 대영제국(大英帝國)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샘물이 인종차별 때문에 폭동으로 굳어지던 흑인사회를 안정시킴으로 오늘 미국 대통령이 흑인이 되는 사회로 발전시켰다.

그렇다면 우리 조국의 스승들은 어디로 갔는가? 온갖 정권과 권력자들에게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며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살던 자들이 오늘은 애국자요, 스승인양 텔레비전 앞에서 요설(饒舌)을 떠드는 것은 이제 너무 진저리가 난다. 그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 모양 이꼴된 것이 아닌가? 그들을 쫓아내고 이제는 민족의 스승들을 정중히 모셔와야 한다. 그리고 저 텔레비전 앞에서 온 국민들에게 역사와 사상, 생활철학을 강의하도록 해야 한다.

언론도 곡필(曲筆)로 치우치던 지면을 이제 바른 스승들의 정론으로 채워야 한다. 국민들의 생각이 맑아지는 것은 그 길 뿐이다. 일본의 저 군국주의 시절에도 반정부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일본의 스승, 내촌감삼(內村監三)과 하천풍언을 추방하지는 않았었다. 그러한 스승을 존경하는 풍조가 패전의 잿더미 위에서도 일본을 의연히 일어날 수 있게 했다면 우리의 70, 80년대 실책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민족의 스승이 그의 정신적인 암자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그 사회와 그 시민의 도덕성은 증진된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며,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로 알려진 다니엘 벨(DanieI Bell)은 말하기를 '인류의 역사를 머리에 떠올리면 오늘의 인간이 가진 엄청난 파괴 잠재력이 부각될 것입니다. 인류는 이중적입니다. 인류에게는 사랑의 잠재력과 학살의 잠재력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대체로 학살의 잠재력 쪽이 더 강하다는 게 입증되었습니다.'고 했다.

민족의 스승이 철학과 사상, 역사의 맑은 샘을 공급하는 동안 백성의 심성은 사랑의 잠재력이 증진될 것이나 스승의 붓과 입을 막을 때에는 학살의 잠재력이 증진되어 사회의 도덕성은 황폐화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정황이 그런 입장이 아닌가? 아니 된다. 우리 사회가 이 난국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의롭게 살았던 바른 스승을 모셔와 온 국민이 무릎을 꿇고 그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다. 스승들이여, 순교적인 정신으로 암자를 지키시옵소서.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단호히 일러 주옵소서.

이번 세월호 침몰로 너무나 아까운 250여명의 어린 학생들과 50여명의 승객이 죽었다. 맘몬주의에 중독된 한국사회가 저들을 바다에 잔인하게 밀어 넣은 것이다. 필자는 그들이 부도덕과 부패로 매몰된 우리 한국을 위해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만약에 이런 참사를 겪고도 이 사회가 개혁되지 못한다면 더 이상 한국에는 희망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은 바른 의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하지 않겠는가?

이제 정권을 가진 권력자들이여, 과거 군사정권이 범했던 민족의 스승들에게서 붓과 강단을 뺏던 과오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정권마다 교묘히 넘나들며 노른자를 점유하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이여, 이제 국민을 기만하는 그 술수를 버리고 겸허히 스승의 훈계를 수용하라. 지금까지 권력자들에게 손수 찾아가 성수(聖水)를 뿌리며 축복 기도에 앞장섰던 우리 종교인들부터 위선의 성의를 벗고 베옷을 입으라. 그리고 이제는 말씀대로 바르게 외치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내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겔3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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