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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과 상담의 목회
2014년 02월 18일 (화) 18:56:28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한국 목회와 심방

누가 필자에게 ‘목회 사역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심방’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방을 들고 몇 명의 여자 대원들을 데리고 느림 걸음으로 이 집, 저 집 방문하는 것은 도무지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인수의 증가에 따라, 일주일에 3-4일 심방을 해도 서너 달이 걸리는 ‘대심방’을 해야 된다는 것은 큰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욱 그러한 심방을 봄가을로 해야 된다는 것은 너무나 벅찬 업무였다.
그럼에도 60년대, 70년대 그 가난한 시절에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심방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음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심방 중, 고역 중의 하나는, 소식(小食)을 하는 필자에게는 음식 문제였다. 하루에 7-8가정을 심방하면서 집집마다 내놓는 음식을 먹다보면 대심방을 마칠 때 쯤 되면 위장에 이상이 생기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요령껏 먹으려고 해도 별효과가 없었다. 당시 가난하지만 인정이 많은 교우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자주 권장하므로 과식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관계로 필자 뿐 아니라 당시의 목회자들은 대부분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심방 때 가지는 큰 어려움을 꼽으라면 설교라고 할 수 있다. 가정마다 당면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 가정에 적절한 말씀을 전해야 하므로 똑같은 설교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하루에 많은 가정을 심방하면서 똑같은 설교를 하면 7-8명의 심방대원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좌불안석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며 심지어 하품하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런 때문에 필자는 심방을 위한 설교 준비를 열심히 하다 보니 여러 권의 노트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심방 설교를 준비하게 된 동기가 초년 목회 시 심방 설교를 하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한 번은 어느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본문으로 택한 성경구절이 착각을 일으켜서 내용이 그 가정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그 가정은 화평(和平)을 긍지로 삼고 있는 가정이요, 또 늘 자기 가정은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고 믿는 터였다.
흔히 미신사회에서 깊이 몸이 배인, 나이가 연로한 신자들은 목회자가 심방 시에 하는 설교를 무슨 점패(點封)나 받는 양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목회자가 자기 가정에 와서 하는 설교를 통해서 자기에 대한 목회자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기회로 삼기 때문에 심방설교는 조심스럽다.
그런데 그 날 내가 택한 본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이었다. 시35편의 말씀인데 그 내용은 다윗이 사울왕의 모함에 몰리어 은둔행각을 하는 동안에 너무나 괴로워서 중심으로 부르짖는 기도이다. 그 내용은 “어서 속히 원수를 물리쳐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내용은 격렬한 것이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무엇보다, 읽기 시작하면서 몹시 당황한 것은 그 가정보다 필자였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귀절이 하나쯤 나오겠지 생각하며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 가정에 부합되는 내용이 나타나기는 커녕 점점 그 내용이 격렬해 가고 있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이제나 저제냐 하면서 읽어 내려가다 보니 마지막 28절까지 되고 말았다. 그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는 필자는 완전히 낭패감에 빠졌고 진땀만 바짝바짝 나고, 입으로는 이 소리 했다가 저 소리 했다가 횡설수설로 가득 차고, 상대방의 얼굴은 의아와 어떤 불만으로 가득 찼던 그 일이 지금도 내 얼굴을 붉히게 한다.
설교를 마치고 아무래도 큰 오해가 생길 것 같아 비록 목회자의 위신은 떨어져도 필자가 착각을 일으킴으로 이런 결과를 빚었음을 사과하자 그 때야 그 집사는 얼굴을 펴며 한바탕 웃어넘기므로 오해를 모면했던 것이다. 두 번 다시 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 후부터 심방설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봄이나 가을 대심방을 앞두고 우선 시중에 나온 설교집이든지, ‘설교 사전’에서 요약설교들을 중심해서 설교 노트를 만들어서 사용하다 보니 몇 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정마다 상황에 맞도록 설교함으로, 함께 동행 했던 부교역자나 심방대원들로부터 ‘오늘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서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지고 과거처럼 심방을 원하는 가정들이 많지 않음으로 대심방 기간도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목회 말년이 되고 있는 지금은 매주 화요일만 대심방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부분 목회자들이 이 정도의 교세(敎勢)에서는 대부분의 심방을 부교역자들에게 맡기는 편이지만, 필자가 아직도 심방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교인들의 형편을 돌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교인들의 가정들을 심방하고 나면 그들이 당면한 어려운 문제나 아픔들, 신앙적인 갈등들이 마음에 깊이 느껴짐으로 설교에 크게 반영되기도 하는 것이다.
김성준 목사는 그가 저술한 「목회학」에서 심방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목사가 교우의 가정을 심방함으로써 각 가정의 사정을 알게 되고 이로써 교인과의 친밀한 교제를 갖게 되고 매일 아침 기도할 제목도 또한 얻게 된다. 교인들의 가정 형편과 문제를 기도함으로써 영적 교제를 또한 갖게 되고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설교 제목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고 병고나 수난이나 기탄 어려운 사정을 교회에 알게 하여 위문하게 하여 피차에 신령 상 교제를 격려함으로 교회 생활 전반에 큰 소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고 했다.
동감이다. 때로 냄새나고 좁은 월세방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말기 암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느낀 안타까움, 병원 영안실에서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고 몸부림치며 울고 있는 엄마 앞에서 횡설수설하다 끝난 듯싶은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느꼈던 그 절망감들이 메시지는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목회자들이 교우들이 살고 있는 아픔의 현장들을 돌아보지 않은 채 탁상에서만 준비한 설교라면, 교인들의 입장에서 피상적인 내용으로만 들려질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필자의 성격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사역이나, 매주 화요일마다 교우들의 가정을 심방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담의 원리

목회자는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상담자가 되게 마련이다. 많은 교우들이 대단히 안타까운 문제를 안고 목사관을 찾아와 상담 받기를 원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심방은 교우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상담은 교우들의 얽힌 삶의 문제를 내어 놓고 하나씩 풀어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상담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어렵게 결심하고 찾아오는 교우들의 상담문제는 전혀 해답이 없을 듯한 난제(難題)를 내어 놓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이혼문제, 수술비를 마련할 길 없는 중환자, 부도 직전에 놓인 사업, 월세 집에서 쫓기어 날 위기 등, 끝이 없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모처럼 찾아와 울면서 호소하는 교우에게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군요.”라든지, 함께 한숨만 쉬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빈촌(貧村)에 속한 지금의 교회에 부임한 초기에는, 상담 시에 그런 식의 대답이나 무기력한 태도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엄청난 빚 문제를 안고 왔을 때, 박봉의 목회자, 교역자의 사례비도 겨우 지급할 정도로 가난한 교회 재정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느 날부터 필자는 나름대로 상담의 방법을 깨닫게 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1)상담의 기초는 사랑을 가지고 들어 주는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만 줄 줄 알아도 그는 성공적인 상담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큰 아픔을 알고 찾아오는 교우들도 목회자가 자기들의 엄청난 부채 문제, 가출한 자녀 문제를 해결해 줄자로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나 답답하여 이 말을 누구엔가 토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가져야 할 자세는 교우들의 고통을 진지하고 뜨거운 애정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그 때에 인간 속 깊이 감추었던 어두운 방이 열리고 줄줄이 온갖 비밀한 것, 추한 것, 원한 분노들이 흘러나오게 된다. 그러고 나면 그 무거운 마음은 가벼워지면서 억압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카알 메닝거(Karl. A. Menninger)가 쓴 정신분석학에 관한 저서에서는 이런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어느 여인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자, 이 여인은 냅다 떠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제 해답을 줄려고 하자, 그 여인은 말하기를 “이제 다 되었어요. 이 야기를 속 시원히 하고 나니 문제가 다 해결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더니 오히려 상담비를 내고 가더란다.
바로 거기에 상담의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 시대는 자기의 고민을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들어 줄 사람이 없으므로 큰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많다. 그것이 점점 깊어 쌓여지면 육체의 병으로 악화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진지하고 뜨거운 눈물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정신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고 몸의 질병까지 치유될 뿐 아니라 고난의 삶을 헤쳐 나갈 믿음의 용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2)상담의 목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그 사람 스스로 문제를 향해 뛰어들어 용기와 신념을 갖고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 주는데 있다. 상당수의 상담자가 이와 반대로 더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하거나 문제를 더 확대 시키게 만들거나 의타심을 가지게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아니 된다. 이야기하는 동안 문제점이 무엇이고, 그 문제점은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가, 스스로 분석하게 하고 스스로 해답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하는 동안 그처럼 엄청나게 커보이던 문제가 얼마나 왜소한 것에 불과했던가를 깨닫게 됨으로 새로운 용기로 부딪쳐 보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가지도록 도와준다면 그 상담은 이미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상담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과 만나도록 중재하는 데 있다.
우리 목회자의 할 일은, 교우들이 그 안타까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해결 받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는 데 있다. 그렇지 않고 교우들이 문제를 호소할 때마다 앞장서 동분서주하며 해결해 줄 것처럼 행동한다면, 아마 그 교우는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목회자 가정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의 신(神)은 그 목회자가 되어 버릴지 모른다. 그것은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들을 하나님과 만나게 해주면 그 목회는 이미 큰 성공이고, 하나님도 그런 목회자를 기뻐하셔서 강하게 붙들어 주실 것이다.
그런 기독교 상담 원리를 필자 나름대로 깨달은 후에는, 상담 시 교우들이 어떠한 어려운 문제를 안고 내놓는다 할지라도 크게 난감해 하지 않게 되었다. 진지하게 그들의 아픔을 듣고 난 후에 필자가 그들에게 해결의 답변으로 주는 것은 성경 말씀이다. 그 교우에게 해당되는 성경 구절이나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예를 드는 것이다.
가령, 주님의 뜻대로 살았음에도 엄청난 문제에 갇혀 있는 경우에는 요셉이나 다니엘의 예를, 중병에 걸린 가족의 경우에는 히스기야의 예를, 시련의 광야에 있는 분들에게는 다윗의 예를, 신앙생활에 게을리 하다 만난 어려움인 경우에는 요나나 탕자의 예를 이야기 하거나, 교우들 중에 그런 문제를 기도로 해결한 경우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해결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훗날, 그 교우로부터 “목사님, 말씀대로 열심히 기도했더니,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들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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