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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예방 목회와 벤처 목회를 시도해 보라
2013년 09월 06일 (금) 09:44:03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어쩌다 보니, 노회에서 수습전권위원회 활동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무엇인가를 눈여겨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필자 나름대로 얻은 결론은 시험이 들었던 교회는, 그 기간만큼 치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어느 교회가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간에 갈등이 발생함으로 목회자 지지파와 반대파가 형성되면서 3년 이상 계속 싸움판이 지속되다가 결국 목회자가 떠남으로 싸움이 일단락되면, 당장은 새로 부임한 목회자가 일으키는 새로운 분위기에 휩쓸려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신임 목회자가 반드시 명심할 것은, 부임하고 나서 몇 개월 동안 교회가 활기가 넘쳐나고 흩어졌던 교인들도 돌아오는 등, 집회수와 헌금액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할지라도, 방심은 금물이라는 사실이다. 몇 년 동안 깊이 곪았던 상처들이 어떻게 몇 개월 만에 아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3년 동안 익숙해졌던 부정적인 시각들이,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만 점짜리 목회자가 어디 있는가?
신임 목회자가, 자기가 부임한 이후에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성장세를 타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방심한 사이에, 부정적인 시각들에 의해 새 목회자의 결함들을 발견할 것이요, 그런 빌미가 그 교인들 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불만의 가스에 점화됨으로 교회가 다시금 혼란의 와중에 빠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벧전5:8-9은 우리 목회자들에게 언제나 명심할 말씀이다.
“근신하여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그렇다. 마귀는 교회를 어지럽히기 위해서 온갖 궤계(詭計)를 다 동원한다. 특히 과거 시험 들었던 교회, 그러나 철저한 회개 없이 목회자를 갈아 치움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교인들을 미혹한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교회가 평안할 때라도 근신하여 깨어서 교회를 지키고 돌아보아야 한다.
예방 목회가 필요하다.
시험이 들었던 교회일수록 설교하기가 너무나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아무리 치유 위주의 설교를 한다고 해도, 성경 말씀은 너무나 선명한 것이기에 아직도 병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교인들에게는 공격적인 설교로 비쳐지기 쉽기 때문이다. 상처는 조금만 건드려도 그 아픔이 크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시험이 든 다음에야 긴급 처방을 하고 치유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어느 목회자는 그런 교회 부임한 후에 제목 설교를 피하고 오직 강해 위주 설교함으로 치유기간을 무사히 넘겼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육신이 건강할 때에 예방주사나 보약, 운동으로 보양하는 것처럼, 교회가 평안하고 건강할 때 예방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목회 초년부터 어느 선배에게서 그런 지혜를 배운 것은 아니다.
다년 목회 경험 중에 얻었을 뿐이다. 수요일마다 성경강해를 하는 중에 차례가 되어 고린도전후서를 강해하게 되었는데, 고린도교회는 은혜도 많이 받은 교회였지만, 동시에 가지가지 문제투성이(분파, 음행, 교인간의 송사, 우상 제물, 여성의 위치, 성령의 은사, 교리)의 교회였기에 시험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고린도전후서를 강해하면서 문제가 많은 교회, 시험에 든 교회들을 많이 소개하면서 바른 교회 지도자와 교인의 자세를 강조했고, 교회가 시험이 들면, 식구들이나 사업도 동시에 시험에 들기 때문에 깨어서 기도하고 깨어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 다음해인가, 제직수련회 프로그램 중에 조별로 "바람직한 교회와 제직상(像)"에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 젊은 제직이 나와서 "언제인가, 목사님이 수요성경강해 시간에 말씀한 바 있지만"라는 말을 하면서 교회와 제직들의 바른 모습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느 조별 발표보다도 우레 같은 박수를 받는 것을 보면서, 평소에 교인들이 무관심하게 듣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구나'하는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바로 그런 제직들이 후에 중직(重職)이 되어서 교회의 여론을 건강하게 조성하여 가고, 시험의 기운이 있을 때에 앞장서서 해결자로 나서는 것을 보게 된다. 만약에 필자가 교회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그런 강해를 고집했다면 틀림없이 많은 공격을 받는 입장이 되었을 것이다.
교회가 평안하고 건강할 때 예방적인 설교를 많이 심음으로 면역성을 길러 주라.
그것을 먹고 성장한 교인들이 시험의 기운이 있을 때에 교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버팀목이 될 것이 분명하다.

벤처(venture) 목회를 하라.
요즈음 많이 쓰이는 말 중의 하나가 ‘벤처 기업’이라는 용어일 것이다.
그러면 벤처기업이란 무엇인가? 어느 분이 쓴 설명에 의하면 ‘신기술을 가지고 아직 수익성이나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은 분야에 뛰어드는 회사를 말한다. 한마디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위험성이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위험이 크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이다.’고 했다.
목회에도 이러한 모험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특히 장기목회인 경우에는 더욱 그런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정체적(停滯的) 현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50대 초반이 되었을 때인가, 어느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내 딴에는 새로운 설교를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똑같은 본문으로 했던 과거의 설교를 찾아보고는 깜짝 놀란 것은 지금 준비한 설교와 오래 전에 했던 설교가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대지나 강조점이 크게 차이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과거 설교문을 전혀 보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한참은 당황을 금할 수가 없었다. 결국에 얻은 결론은, 이제는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필자의 눈이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그러한 사실을 교인들이 알고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이야말로 목회적인 위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굳어지고 있는 낡은 틀을 깨뜨리고 새 틀을 짜기 위해 여러 가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여기저기에 보내왔지만, 거의 읽지 않고 책꽂이에 비치되어 있는 다른 이들의 설교집들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독교 신간서적들과 이름 있는 분들의 설교를 테이프로 통해서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동이 되는 내용이나 설교가 있으면 과감하게 인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령 누구의 설교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인용하지 않거나 내 입맛에 맞도록 설교를 재구성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틀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설교의 새로운 장(場)을 열게 되는 기회를 만날 수 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 방송국에서 일하는 큰 아들이 영상설교를 제안하면서 "제가 적극 도와 드릴 터이니 스크린을 통해서 설교요약과 화면구성을 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것이었다. 그 제안을 받고 한 동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거의 20년 이상 설교해오던 방법을 과감히 바꾸어서 새로운 방법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영상설교를 시작했다가, 교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중간에 그만 두는 것도 지도자로서 신중치 못한 모습이므로 잘못하면 리더십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모험을 걸기로 결심했다. 이젠 무슨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교인들은 그 내용을 예견할 수 있는 입장에서 과감한 시도는 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영상설교의 시작은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하순부터 시작했다.
필자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동안, 아들은 프로젝트를 통해서 강단 뒤에 내린 스크린에 설교 요약과, 내용에 어울리는 30개 정도의 사진들을 띄워 주는 식이었다. 첫 번째 설교에서 많은 교인들은 “너무 좋았다. 25분의 설교가 너무 짧아서 아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라는 좋은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넘어서고 있다.
회를 거듭하는 동안 점점 설교자와 화면(畵面)이 어우러지면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토요일 온종일 설교 한편의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25분 정도의 설교를 하려면 컴퓨터로 A4 용지 8매(글자 크기 12포인트)를 작성해야 한다. 필자의 설교 어조가 다소 빠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원고량이 필요하다. 원래 입담이 없어서인지 목회 초년부터 거의 원고를 작성하고 설교를 해 왔다. 하물며 젊은 때와는 달리, 엄청나게 기억력이 떨어짐으로 적절한 어휘(語彙)가 입에서만 뱅뱅 돌뿐 표현이 안 될 때가 너무 많은 60대 나이에 원고 없이는 설교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이겠는가?
여하튼, 영상설교를 시작한 후부터는 토요일 저녁 6시경까지 설교 원고를 작성해야 하고 서재에 있는 성경적인 그림이나 사진들을 작성해서 다시 이메일로 아들에게 보내야 한다. 사진을 파일로 작성하려면 그림이나 사진들을 스캔(scannig)으로 뜨거나 카메라로 찍어야 한다. 사실, 설교에 맞는 사진이나 그림을 구하는 일이나 파워 포인트 작업은 대부분 아들이 담당하지만, 어느 때는 서재에 있는 재료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전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사한 것은, 아들이 방송국의 바쁜 업무 틈바구니에서도 그 작업을 보람으로 여기고 열심을 다할 뿐 아니라, 자기가 화면으로 설교를 재구성하면서, 그리고 주일날 1부부터 3부까지 방송실에서 화면을 띄우면서 큰 은혜를 받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장로 분은 우리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설교를 하고 있다고 우수개 소리를 할 정도이다.
더욱 감사한 것은, 목회 종반기에, 젊은 시각(視覺)으로 보면 구태의연하거나 고리타분한 모습으로 비쳐지기 쉬운 때에, 젊은 목회자들도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영상 설교를 하게 되므로 설교하는 자신이나 듣는 사람들이 신선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우려는 설교는 설교자와 교인들이 눈과 눈이 마주치면서 인격적인 변화가 나타나야 하는 것인데, 교인들이 설교자와 화면을 향해 시선이 오가면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공연히 흥미위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면만 잘 극복할 수 있다면 이러한 영상설교는 시의 적절한 것이라고 자인(自認)해 보는 것이다.
후배들이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무엇보다도 설교 준비에 최선을 다하라. 신망애출판사에서 출간한「나의 목회는 이렇다」라는 책에서 임인식 목사(노량진교회 원로목사)는 고백하기를 “젊어서는 한 제목의 설교를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또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많은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참고도 하고요. 때로는 밤을 새웠고, 또 하룻밤으로 부족하면 몇 날을 새워가지며 설교 준비를 했었지요. 그렇게 하고도 예배를 마친 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부족함을 느끼고 했습니다. 그럴 때면 강단에 엎드려 ‘주님, 말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차라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적인 한 두 번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밀알의 희생 없이는 성공적인 목회의 열매는 없는 것이다. 때로 자신이 오랫동안 구태의연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거든, 이제 모험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목회방법을 시도해 보라. 목회사역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위축되어 있는 디모데에게 스승 바울이 충고한 말을 명심하라. 딤전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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