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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간관계에 모범을 보이라.
2013년 08월 28일 (수) 09:42:53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최근에, 가까운 후배가 거의 강제에 의해 교회를 사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픈 적이 있었다. 몇 주 전부터 사임 압력을 받다가, 어느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나가려는 중, 젊은 집사들이 들이 닥쳐 담임목사실의 문을 걸어 닫은 후 나가지 못하게 함으로 결국 예배를 인도하지 못하였다. 그 목사는 나가려 하고 집사들은 가로 막는 과정에서 넘어지면서 갈비뼈를 다치는 사고까지 일어났다는 소식이다.
그런 식으로 예배 때마다 방해를 받음으로 갖은 고통을 겼다가 결국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위로비조로 받고 사표를 쓰고 말았다니, 목회자들의 입장에서는 통탄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그 후배 목사가 금전관계나 여자관계 등, 부도덕적인 일을 범한 것이 없었다. 다만,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고작 이유였다. 한 마디로 피력한다면 왜인지 싫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한국 목회 현장이 여기까지 이르렀는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후에 흘러나오는 이 소리 저 소리를 들어보면 대부분 인간관계의 미숙한 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목회는 인간관계이다. 목회자는 하나님과 관계도 원만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에서도 원만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자기의 양들인 성도들을 맡기셨다. 그 양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 양들을 알아야 한다. 양들의 배고픔, 양들의 약함, 양들의 습성, 양들의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채워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목회자는, 늘 골방에서 기도하고, 틈이 나는 대로 기도원을 찾고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임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대단히 깊은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는 자주 삐걱 소리가 나타난다. 결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생긴 성격적인 결함 탓인지 쉽게 넘어갈 문제도 참지 못함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를 본다. 결국 많은 교인들의 관계에서 삐걱거림이 목회에 걸림돌이 되므로 결국 사임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원만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에서도 원만하도록 힘써야 한다. 목회자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명심할 말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다. 어느 선배 목사님의 강의 중에 “여러분이 목회를 할 때, 한 가지 꼭 명심할 것은 교인을 너무 멀게 대하지도 말고 또한 너무 가까이 대하지도 말라.”고 했다. 마치 교인은 여인과 같다고 했다. 여인은 너무 멀리 대하면 원망하기가 쉽고 너무 가까이 대하면 방자해서 속된 말로 기어오르기가 쉬운 것과 같다고 했다. 우리 목회자들은 어느 성도가 가깝다고 지나치게 편애하는 것도 결국 목회상의 큰 어려움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은퇴한 김청수 목사는 「금기(禁忌)」라는 저서에서 강조하기를 “목사는 성도를 편애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은 목사 자신과 사랑을 받은 성도와 시기 질투한 성도가 모두 화를 입게 되고 결국 교회에 크나큰 문제가 생긴다. 부모도 자식이 여럿이면 더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덜 사랑하는 자식이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목사가 성도들을 모두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조금 더 사랑하며 정이 가는 성도와 그렇지 못한 성도가 있게 마련이다.
목사가 성도를 사랑하되 누구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그렇게 목사에게 사랑을 받도록 처신하는 성도야말로 좋은 성도다. 그런데 누구를 더 사랑하는 것을 샘을 내 잔소리하는 성도 역시 나쁜 성도는 아니다. 사랑하는 목사도 사랑받는 성도도, 그것을 부러워하는 성도도 모두 나쁘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데 이것들이 합해지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비화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것은 모두 사랑 때문에 생겨지는 불행이다. 사랑은 참으로 좋은 것이로되 사랑의 표현이 잘못되면 엄청난 화를 부른다.
마찬가지다. 성도간의 편애도 이런 불행한 결과를 얼마든지 가져온다. 목사의 성도에 대한 사랑은 은은한 과일 향과 같아야 한다. 사랑하되 영원히 질리지 않고 싫증나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했다.
목회의 어려움은 인간관계이기에 그 어려움이 있다.
교회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식의 높고 낮은 자, 각 지방의 사람, 성격의 급하고 누진 사람, 적극적이고 소극적인 자, 이런 온갖 종류의 사람과 함께 일을 해 나간다는 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목회를 권력이나 칼로도, 혹은 재력으로 할 수가 없다. 순전히 인격적인 감화력을 가지고 다스리어 간다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인격적인 감화력이라는 것도 크게 신뢰할 부분이 못된다. 아무리 훌륭한 교양과 수련을 쌓은 자라도 가까이 대하면 인격에서 결함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고 왜인지 싫증을 느끼는 부분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교인들의 상당수가 목회자 부부를 천사로 알고, 말씀대로 철두철미하게 사는 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청빈낙도, 무조건 주기만 하는 자, 무조건 용서만 하는 자, 늘 온유하기만 한 자로 알고 있기에 교회행사 때마다 목사관을 내 집처럼 들어와 그릇을 내 멋대로 사용하고 그처럼 아끼는 고추장이나 된장도 마구 퍼서 먹어대고 양념이나 기름도 아낌없이 쓰고는 난장판 그대로 팽개쳐 두고 그냥 가 버림으로 말미암아 목회자 부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존심을 형편없이 꾸기어 버리기를 얼마나 능사(能事)로 하고 있는가?
「성공적인 목회자의 아내」란 저서를 쓴 드러시․ 펜트코스트 여사는 목회자 부부가 받는 세 가지 핍박에 대해서 말하기를
(1)열등감을 가진 자들에게 당하는 핍박이 있다 .
교회 안에는 심한 열등감을 가진 자들, 또는 소외된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말하면 이런 사람들은 비주류가 되어 교회를 주도해 가는 주류 측의 모든 계획, 모든 행사에 대해 무조건 못 마땅히 생각하다가 만약에 목회자나 사모가 주류 측의 해당되는 자들과 함께 일하면 만만하니 자가 목사 부부인지라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서 핍박을 가하는 것이다.

(2)목회자의 아내를 목사와 똑같은 권한을 가진 것으로 알고 가하는 핍박이 있다.
교회에 대한 불만 , 당회에 대한 불만을 직접 목회자에게 못하고 그 부인에게 불평하거나 해결책을 요구하거나 구제를 호소하기가 일쑤이다. 목회자의 아내는 교회 전반에 관해서 오히려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회의 결정, 제직회의 결정을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자기 나름대로 대답해 주거나 혹은 당회나 제직회에 미루어 버리면 자기의 의견을 거절 하거나 회피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사모의 거절은 목회자의 거절로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거절로 확대해서 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목회자 부인이 적극 나서서 해결하노라 애쓰면 교회 쪽에서는 사모가 너무 설친다고 핍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러한 현상은 목회자가 장기 출타한 경우에 흔히 발생된다. 그때는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말해 주거나 결정에 대한 여부를 말해 주다보면 잘못 실수하는 경우도 생기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래도 저래도 목회자의 부인은 당하는 핍박이 언제나 상존하는 것이다.

(3)가까운 자들의 배신을 당하는 때가 있다 .
때로 목회자 부부도 인간인지라 교인 중에 누구인가 가까이 지내는 자나 그룹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가슴 깊숙한 아픔들을 말하기도 하고, 교회에 대한 불만 비슷한 말을 토하기도 하고, 또한 교인 누구에 대해서 말을 나누기도 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자기와 가까이 대화를 나누고 신임하던 자가 목회자 가정이나 목회자 부부에 대한 결함들을 교인들에 퍼트리기도 하고, 혹은 자기에게 잘해준 것은 기억치 않고 잘못한 것만 기억하고 반대파의 앞잡이가 되어, 어느 날인가 목회자 추방을 위한 연명서의 날인을 받으러 다니는 주동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인간에 대한 배신감으로 얼마나 가슴이 아팠었던가?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함으로 제법 큰 교회로 성장시킨 친구 목사가 동기회 때 하소연하는 말을 듣고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들을 한 적이 있었다. 친구 목사가 배신당하는 것은 자기 밑에서 함께 사역하던 부목사 때문이다. 친구 목사는 성격이 다소 직선적 탓인지, 장로들에 대한 불만을 곧잘 부교역자들에게 털어놓고는 했다. 그것은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는 중 교회가 시험이 들어 친구 목사에 대한 반대 기운이 일기 시작할 때에 교회분열의 결정적인 불씨를 던진 자가 바로 부교역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부교역자는 친구 목사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장로들에게 그 동안 친구 목사가 장로들에 대해 말했던 불만들, 가정의 비밀들에 대해서 전부 고자질함으로 장로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므로 교회는 겉잡지 못할 정도로 싸움판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친구 목사는 교인들 일부를 데리고 나와서 새롭게 교회를 설립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탄하는 말이 “이제 다시는 어느 누구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필자도 그런 입장이라면 그런 결심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님도 고난당하고 배신을 당했다면, 그의 뒤를 따르는 목회자의 길도 이처럼 고독하고, 혹은 배신으로 얼룩질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당연한지 모른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얻는 결론은 '너무 가까이도 말고 너무 멀리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는 이러한 끝없는 오해와 시험의 올무가 있는 것이니, 이때에 우리 목회자가 할 일은, 모든 자에게 온유와 예의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요.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면 일시적으로 오해했던 자들까지 다 감동 받는 날이 오는 것이요. 핍박하는 자, 오해하는 자들을 위해 오히려 축복을 비는 자세를 가질 때,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으로 인도하신다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김성준 목사는 자기가 저술한 「목사학」에서 “목사가 목회하는 동안에 반대하는 교인도 있고, 반항하는 사례도 때로는 있다. 그 때에 어떤 목사는 그 반대자를 미워하든가, 혹은 축출해 보내는 일도 보게 된다. 이런 것은 그 목사의 덕이 부족한 소치요, 그런 목회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천남부교회에사 시무했던 김석창 목사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 선교 50주년 기념 총회가 선천읍에서 개최되었다. 그 때 간증시간으로 김석창 목사가 증언을 하였다. 그는 선천 남교회를 시무 중인데 하루는 장규명 목사가 묻기를 “자네는 목회에 크게 성공을 하였고, 나는 성공을 못하였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그러자 김목사는 답하기를 “나라고 별 비결이 있나. 내일 저녁 우리 집에 와 보시오.”라고 했다. 다음 날 장 목사가 왔기에 2층층으로 올라가 책상 서랍을 열고 편지를 수 백망 꺼내 주면 이것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 내용에는 목사의 행정에 불평을 품은 교인들의 욕설이 대부분으로 ‘김석창 죽일 놈’ 등등 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다 눈물로 회개시켜 우리 교회 제일 중요한 직원이 되고 가장 전도 많이 하는 교인들이 되어 이 분들 덕분에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간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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