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11.15 목 17:17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6] 영성생활에 힘쓰라
2013년 08월 13일 (화) 18:28:36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설교 중압감에 시달리던 초년 목회

필자의 초년 목회는 성령의 체험을 물론이고 성령에 대한 이해도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물론, 중생은 받았으나 성령의 세례는 받지 못한 상태였다. 마치 고넬료가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등, 영성 생활에는 열심이었지만, 성령을 뜨겁게 체험하지 못한 상태와 같았다. 그런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서 어떻게 매주 강단에 올라가 감히 설교하였는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그 설교가 오죽 헸겠는가?
신학교에서 배운 얄팍한 신학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 때 나름대로 연마한 문학적 재질을 가미한 원고를 마치 작품 발표하는 희열 정도 느끼며 설교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설교가 귀에는 감미롭게 들렸을지 모르나 교인들에게 영적 변화가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한 2년 동안 설교했더니, 이제 더 이상 설교할 것이 없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토요일은 설교 노트에 열심히 설교문을 써나가다가 마음에 안 들어 찢어 던지고 다시 작성하기를 반복하다가 주일 아침을 맞은 적도 있었다. 요즈음 같으면 얼마나 좋은가?
목회 자료가 엄청나게 담긴 CD에서 유명한 분의 설교를 뽑아내든지, 혹은 그 흔한 설교집 중의 한 편을 복사하여 가지고 올라가든지, 혹은 교인들이 눈치 채지 못 하도록 다른 분의 설교문을 스캐닝(scanning)하여 내 나름대로 편집하거나, 똑같은 본문으로 행한 다른 분의 설교를 혼합하여 합성 설교를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당시만은 컴퓨터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설교집도 흔하지 않아서 그런 요령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주일날 설교를 마치면 새벽기도회는 물론 수요설교, 금요설교 등, 일주일 내내 설교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부적격한 목회자

또한 목회자로서 필자는 너무나 부적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아픔이었다. 목회 란 인간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양무리인 교인들을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일하도록 돕는 것이 목회이다. 그런데 필자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 있을 때 부담이 되는 데 비해, 서재에 앉아 있을 때에 가장 자유로움을 느끼는 성격을 소유자요, 오히려 왼 종일 서재 앉아 있으라고 해도 전혀 부담이 없는 성격이다.
그러기 때문인지, 목회 사역 중에 제일 좋아하지 않는 것을 꼽으라면 심방이다.
초년 목회 때는, 남들은 땀 흘려 일하는 농본기(農本期)에 몇 명의 여자 교우들을 대동하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는 스스로의 모습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고는 했다. 또한 굿판을 벌리는 것처럼 요란스러운 찬송과 기도하며, 만담일색의 설교를 하는 기도원이 질색이었다.
필자의 이러한 인간 기피증의 모습은 목회자로서는 부적격자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설교할 것이 없다’는 허탈감에다 성격적인 결함까지 겹치면서, 목회전선에서 적지 않은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느 날은 '이대로는 목회 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부딪히게 되었다.

성령의 체험

그러한 때에 은혜처럼 만난 것이 무디의 제자인 R.A 토레이 목사의 저서「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이었다. 그 책을 기갈 들린 것처럼 읽으면서 서서히 비늘이 벗겨지고 영안(靈眼)이 열리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3년의 신학과정에서조차 삼위(三位)의 한 분인 성령에 대해서 전혀 배우지도 못했다는 한탄과 아울러 성령을 체험케 해달라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부족한가, 시골교회에서 가까운 한얼산 기도원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 두 서너 번은 기도원 분위기가 도무지 탐탁지 않은 탓인지 아무 영적 소득 없이 하산하고는 했다. 그 기도원에 대해서 가장 못 마땅한 이유가, 상이군인 출신의 원장 설교가 온통 무식과 욕 일색이어서, 은혜를 받기는커녕 설교 시간 내내 마음으로부터 솟구치는 비판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목회 현장은 더 이상 그럴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다시 기도원에 올라갔을 때는 목사 지정숙소도 포기하고 강대상 가까운 세 번째 줄에 침구를 깔고 자리 잡은 후 "성령을 받지 않고는 떠나지 않으리라"고 결단했다. 감사한 것은 그 주간에 강사는 원장이 아니고 대구에서 오신 분으로 철저히 성경중심으로 설교하는 분이었다. 그 때부터 강사가 시키는 대로 '아멘' '할렐루야'하라면 따라 하고, 박수를 치라면 치고, 손을 높이 들라면 무조건 들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계곡 바위 위에 올라가 기도하고는 했다.
그러자 3일째 되는 날부터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서 눈물, 콧물이 터지고 회개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체험 후에 놀라운 것은, 비슷한 수준의 설교임에도 교인들이 변화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등, 목회 현장에서도 성령의 강한 인도하심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신령한 지혜가 열림으로 성경을 읽어갈 수록 설교 자료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대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이 긍정적인 면으로 변하여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가히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 있다.

기도의 목회

그 때부터 필자의 목회에서 기도생활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울 교회에 부임한 후에는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의해서 영성생활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특히 홍익교회의 교인들의 영적 상태가 너무나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고 볼 수 있다. 부임당시의 우리 교회는 너무나 한심한 상태였다.
전임자가 노인 목사이신 탓인지, 장년집회수가 50여명인 채 7년 동안 굳어져 있었다. 그 때문인지 50여명의 교인들은 수시로 계(契)를 한다고 중국음식점에서 모이고 경조사에는 거리 관계없이 거의 모일 정도로 형제애 이상의 인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바로 그 점이 교회 성장의 가장 큰 저해요소였다.
모처럼 찾아온 새신자들이 그들의 텃세에 못 견디고 떠나고는 했다. 전도는커녕, 교회 문에 서서 찾아오는 새신자들을 가로막고 있는 그들에 대해 젊은 마음에 의분이 강하게 일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들의 낡은 틀을 깨뜨리는 것이 교회성장에 최우선 과제로 믿고 주일날마다 그 굳어진 마음들을 향해 공격적인 설교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7년 동안 굳어진 틀이 쉽게 부서지겠는가?
거의 6개월 이상이나 설교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저들은 점점 완전무장한 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냉담의 벽만 높아가는 느낌이었다. 어느 주일날 아침에는 필자가 던진 말씀이 공처럼 벽에 부딪히고 반사되어 다시 필자에게로 곧장 돌아오는 것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마침내 필자는 심한 허탈감에 싸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굳어진 교인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무엇입니까?’라면서 불타는 마음의 기도로 묻기 시작했다. 더욱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시작했고, 성령과 기도에 대한 책들을 열심히 구입하고 독파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삼각산을 오르내리면서 설교할 본문을 붙잡고 기도했다.
지금은 삼각산 주변이 고급주택가로 변해 있고, 또 산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철책선을 만들어 마음대로 진입할 수 없게 되었고, 산에 들어가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1990년 이전의 삼각산은 기도하기에 너무나 좋은 장소였다.
수많은 기도자들이 그 산으로 몰려와 골짜기나 산등성이 마다 만원이었다. 여름날 밤은 온 산이 기도소리로 가득함으로 동네 주민들이 무수히 항의하거나 신고를 함으로 관에서 나와 통제하고는 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도자들의 저 불타는 열심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필자도 금요일이면 그 산을 찾아가고는 했다. 어느 때는 산에 오르기도 전에 은혜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한 끼 금식을 한 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다시 종점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는 동안 성령의 은혜를 너무나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바위 위에 엎드리어 기도하거나, 집회가 있는 기도원에 들어가 말씀을 듣는 동안 성령의 많은 체험을 하고는 했다. 그에 따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굳어진 교인들의 심령이 변화 받으면서 교회가 성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그러한 경험이 필자만의 것이겠는가?
상당히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 상에 만나는 난관 앞에서 하나님께 매어달린 결과,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 분명하다.
무학교회 김창근 목사가 저술한 「하나님을 만나는 행복한 삶」이라는 책에는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의 간증을 소개하고 있다. 정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부흥이 빨리 되었다. 그는 교만하게 내가 설교와 목회를 잘해서 부흥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부흥되면 앞으로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그 주간 수요예배에 성도들이 거의 안 나왔다. 걱정이 되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목회를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냐?” 세 번이나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자신이 개척하고 부흥시킨 줄 알았는데 주님이 개척하고 부흥시키신 것이다. 그 때부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은혜와 능력을 사모할 때 풍성한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도 운동

그렇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능력이 나타나 교인들의 굳어진 심령도 변화되고 교회도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확신으로 교회 안에 기도운동을 전개했다. 1982년 교회 건축을 앞두고는 밤9시기도회를 시작하면서 가난한 교우들에게 헌금할 것이 없다면 기도의 제물이 되라고 강권하면서 기도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밤9시 기도회가 거의 23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데, 지금은 새벽기도회는 부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담당하고 필자는 밤 기도회와 금요기도회, 봄이면 사순절기도회, 가을이면 40일기도회를 인도해 오고 있다. 그런 모습이 친구 목사에게는 이상하게 비쳤는지, "아니,
김 목사, 새벽기도회도 힘든 판에 밤 9시기도회라니, 왜 자신의 심신을 그리 들들 볶는가?"라고 한심해 했다.
그러나 성령에 붙들린바 되지 않는다면, 목회자로서 너무나 부적격한 성격을 소유했기에 장기 목회에서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요, 또한 교회가 위치한 지역이 빈촌(貧村)이어서 기도만이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그런 기도운동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 당시, 지금처럼 컴퓨터가 발달하고 설교 자료가 산적(山積)해 있었더라면, 필자는 별로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은 채, 이런 요령, 저런 방법 다 동원하여 인위적으로 목회하는 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살 수 있는 길은 기도뿐이 없는 줄 알고 교회 안에서 기도운동을 벌리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회를 아무리 고집할지라도 교우들이 호응해 주지 않았다면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몇 번인가, 밤9시 기도회를 그만 두려고 시도했지만, 교우들의 간절한 요구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니겠는가?
후배들이여, 바울의 고백을 여러분의 고백을 삼으라.
고후12:9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 내가 가진 것들이 강하다고 생각할 때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내게 머물 수가 없다. 자기 교만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세보다는 차라리 내가 가진 것이 약하다 할 때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믿고 주 앞에 그 약함을 드리라.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극심해지는 中 기독교 탄압
서울동남노회 사실상 ‘분열’
인생승리(人生勝利)의 십계명
잠언23강 11:16-31 의인의 열
한국교회와 청소년 교육
교인들의 성질을 고치려는 노력(2)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
환난과 핍박 중에도
최근 올라온 기사
영화(부활)
필립핀 파이오이 성당
사도신경 해설-7 (“몸의 부활을 믿...
잠25강 12:15-28 공의로운 길...
위로하시는 하나님
마음 속에 가득 담고 있는 것과
어느 병실에 걸린 시(작시 미상)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통치자들
대법원 판결에 우려
"교단 소속목사 성추문 사건 깊은 유...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