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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회와 설교의 중요성
2013년 07월 15일 (월) 19:01:13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목회의 핵은 설교이다. 아무리 다른 면에 대해 유능하다 해도 설교가 은혜가 없으면 목회의 생명력은 힘을 잃는다. 교인들은 30분의 설교 듣는 동안, 영적 만족을 얻지 못하면, 연신 시계를 보면 지루함을 나타낼 것이요, 더 나가서는 지겨워하다 못해 설교자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식구들이 좋은 음식을 기대하고 있음에도 주부가 식탁에 죽을 차려 놓는다면 얼마나 짜증이 생기겠는가?
“여인이 요리를 잘 하면 소박을 맞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요리를 못 하면 소박을 맞기가 쉽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아무리 큰 교회당에 회집수가 많을지라도 강단에서의 설교가 감화력지수가 미약하면 교회의 모든 활동도 활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드리기 불편한 협소한 교회당일지라도, 설교에 은혜가 넘치면 교회의 활기가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마치 어느 음식점이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허술한 집이라도 음식 소문이 나면 손님들이 꾸역꾸역 모여들므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과 같다.
목회 경험에 의하면, 어느 주일에 아침설교가 죽을 쑤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 주간 내내 교회는 시험의 기운이 가득 차고, 반면 설교가 은혜로 넘치면 그 주간 동안 교인들의 표정은 밝아 있고 여기 저기 웃음꽃이 피며 기름을 칠한 것처럼 교회의 제반 일들이 부드럽게 풀려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직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설교자라는 사실이다.
강단은 목회자들이 끝까지 지켜야 할 거룩한 자리요, 성역이다. 아무리 행정과 건축에 능하고 심방과 인간관계에 탁월하다 할지라도 설교의 검이 무디면 거기에서부터 불만의 누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목회자들은 설교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1. 설교의 어려움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목회자들은 설교를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슨 이유 때문에 설교는 어려운가?
(1)설교의 어려움은 다양한 선택의 시대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택의 시대’이다. 아이스크림도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37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제는 영화 전용관에서 여러 편의 영화중에 구미에 맞는 것을 택해서 관람하는 시대요,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조차도 텔레비전을 볼 때 리모컨을 들고 서너 가지 채널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보는 시대가 되었다. 프로가 조금만 지루해도 채널을 돌려 버리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들이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선택의 다양성에 길들여 있다. 그런데 교회만 오면 좋거나 나쁘거나 고정된 설교채널만 들어야 한다. 1부부터 5부까지 드리는 예배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설교가 지겨워도 30-40분을 줄기차게 인내해야 한다. 설교자의 어려움은 선택의 다양성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2)설교의 어려움은 새것에 대한 지나친 욕구 때문이다.
설교가 어려운 것은 현대인들은 새것에 대한 욕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너무 쉽게 싫증을 느낀다. 그러므로 아무리 명 설교가라도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설교가들은 나름대로 명설교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매이게 마련이다. 그에게 몰려오는 교인들은 홈런을 기대하고 오기 때문이다. 홈런왕 이승엽 선수가 출전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매스컴과 관중은 홈런을 기대했던가? 그러다가 안타에 그치면 실망한 나머지 비난으로 발전한다. 이승엽 선수에 대한 높은 기대치(期待値)가 그 만큼의 실망을 주는 것이다.
명설교가에게도 높은 기대치가 바로 올무인 것이다. 그에게 몰려오는 교인들이 홈런성 설교를 너무 기대한 나머지 그만큼의 만족을 얻지 못 할 때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며 새로 떠오르고 있는 스타적 명설교자를 향해 참새 떼처럼 몰려가는 것이 한국교회의 풍토가 아닌가?
새것을 좋아하는 오빠 부대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명 설교라도 3년을 계속 들어보면 그 몸짓, 그 패턴, 그 내용에 곧 식상(食傷)하고 말기 때문에 설교가들의 스트레스는 쌓여 가는 것이다.

(3)설교의 어려움은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초기 목회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많은 설교를 준비하는 일 뿐 아니라, 설교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교인들이 별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설교를 듣는 중에 죄인들이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회개하고, 이혼직전에 있던 부부가 화목을 이루며, 불화 하던 교우들이 용서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되며, 다시스로 도망치려던 요나가 다시 사명의 니느웨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면 얼마나 보람을 느끼겠는가?
그러나 매주일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고 땀 흘려 외치지만, 듣는 교인들이 변화된 모습 없이 돌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바위를 향해 달걀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너무나 무기력감에 휘말리고는 했다.
언제인가, 주일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중심으로 섬김의 삶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며 설교를 했음에도, 그 날 어느 여전도회에서 회의하다 말고 사소한 말다툼 끝에 싸움판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듣고는 마치 뺨을 맞은 것처럼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 능력 있는 설교자
설교자로서 부름을 받은 이상,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 길은 무엇인가?
(1)진실한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어느 교회 교인이 말하기를 ‘설교자의 인격에 대해 불신을 가지면 어떠한 설교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렇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인격에서 진실을 느끼지 못한다면 역겨운 감정만 높아 가는 것이다. 그러한 분의 설교를 듣는 동안, 자기 내부로부터 ‘당신이나 바르게 사시오.’ ‘당신의 마누라나 자식들이나 잘 다스리시오.’라는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설교의 능숙함은 미약할지라도 진실한 목회자의 설교가 들을수록 된장국처럼 구수한 감동의 맛을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교인들은 설교를 듣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보는 동시에 설교자의 모습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가 P. 브룩스는 “설교의 가장 힘 있는 부분은 그 설교 배후에 있는 사람이다.”라 했고,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는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설교자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그를 닮아가도록 경건의 연습에 힘쓰라. 그런 설교자에게서 진실한 인격이 느껴질 것이다.

(2)설교 준비에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우리 설교자들은 설교준비에 진액을 쏟아야 한다. 현대 교인들의 귀는 얼마나 민감해졌는지, 땀이 배어 있는 설교인지 아닌지를 용케 분별하고 있다. 정성과 땀이 밴 설교에는 감동을 주게 마련이다. 아니, 설교자부터가 자신감을 갖기 때문에 그 설교에는 힘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 설교 자료가 산적한 시대임에도 설교자들이 무성의하게 영양가 없는 설교를 전한다면 그 설교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변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광주중앙교회 원로목사였던 정규오 목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설교준비에 대해 말하기를 “목회를 할 때 주로 원고설교를 했는데, 일 년에 거의 2-3백 편의 설교를 했고 일 년 설교 일람표를 만들어 중복을 피하도록 했습니다. 진정 설교준비를 위해 전력을 다했는데 나의 전 생활은 설교준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설교준비의 날이라 일체의 교회일도, 결혼식 주례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유명한 설교가 스퍼젼은 “설교준비를 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강단에 나오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할 무례다.”라고 했다. 후배들이여, 설교준비에 많은 땀을 아끼지 말라.

(3)성경 말씀 그대로 전하려고 힘써야 한다.
성경은 큰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다. 성경의 능력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인간의 영혼과 심령 골수를 쪼개서 벌거벗기어 놓음으로, 우리 안에 보이는 부분이나 보이지 않는 부분 안에 어떠한 악한 것이나 죄, 어떠한 숨은 세력이라도 다 폭로되고 만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설교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히 묵상하고 연구함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씀의 메스가 무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존 스타트는 그의 저서 ⌜현대교회와 설교⌟에서 피력하기를 “이제 설교자는 무엇을 설교해야만 하는가? 본문을 읽고, 다시 읽고, 또다시 한번 읽으라. 그것을 마음속에 숙고하고 또 숙고하기를 마치 목자들이 말했던 모든 이야기를 의아해 하면서도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한(눅2:18-19) 마리아 같이 하라. 마치 봄꽃을 찾는 벌 같이, 무궁화꽃 즙을 찾기 위해 윙윙거리는 벌새같이 당신의 본문을 탐색하라. 소가 새김질 감을 씹듯이 그것을 씹으라”고 했다.
그런 과정을 겪은 후에 말씀을 전할 때 영혼과 심령 골수를 쪼개는 설교가 될 것이 분명하다.

(4)기도의 무릎으로 설교 준비해야 한다.
말씀은 수술의 칼이 되어 우리의 영육의 병든 곳을 찔러 쪼개어 자를 것은 자르고, 꿰맬 것은 꿰매어 새 몸, 새 영, 새 사람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천 교인을 울리고 웃기는 설교자라도 아무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잘못된 설교이다.
설교의 어려움이 바로 거기에 있다.
학교에서는 지식전달만 잘하면 명강의가 될 수 있지만, 설교는 듣는 이들에게 변화가 나타나야 명설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부단히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가 초기 목회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많은 설교를 준비하는 일 뿐 아니라, 설교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교인들이 별로 변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청계천 일대 판자촌과 산동네를 중심한 교인들, 날마다 고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향해 설교할 때에게, 모두가 변화를 받고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예배 전에 가졌던 표정 그대로 어두운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자괴감(自愧感)에 시달리고는 했다.
그 때부터 많은 시간 기도하기 시작했다. 골방기도 뿐 아니라 기도원과 삼각산에 올라가서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라. 거의 비슷한 내용의 설교임에도 교인들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설교는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만은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과 능력으로 사역할 때만 하나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주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 때 듣는 자들에게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면서 설교의 진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후배 목회자들이여, 설교하기 대단히 어려운 시대 속에서라도 우리는 언제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고 땀 흘려 준비하며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진실한 인격자가 되며 부단히 골방에서 무릎을 통해서 설교를 준비하고 전함으로 우리의 목장에 풍성하고 살찐 꼴들이 넘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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