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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목회를 계획하라(2)
2013년 05월 22일 (수) 09:05:38 김태복 목사 hipc6012@daum.net

지난 번 글에는 장기목회를 하려면 마라톤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스타식의 목회보다는 성자식의 목회를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글에서는 바둑과 운전에 비유해서 장기목회의 방법을 피력하고 싶다.

첫째, 장기목회를 하려면 바둑에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목회와 바둑은 유사한 점이 많다. 필자가 바둑을 배운 것은 1970년대 초 농촌목회를 할 때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외진 산골이라 겨울이면 남아도는 그 많은 시간들을 독서나 글쓰기로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바둑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은 시간상 거의 바둑을 둘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둑 TV나 인터넷에서 고수(高手)들의 대국을 관전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언제나 목회와 바둑은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1) 사욕(私慾)은 악수(惡水)이다.
바둑에는 정수(正手)와 악수(惡手)라는 것이 있다. 정수는 정석(定石) 대로 두는 것을 말하고 악수는 두어서는 안 될 곳에 돌을 놓는 것을 말한다. 고수들의 대국을 관전하다 보면 대단히 유리한 국면을 이끌어 가다가 한 번 잘못 둔 악수에 대마(大馬)의 사활이 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목회상의 악수는 무엇인가? 사욕(私慾) 에 집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때로 노회에서 어느 교회 수습위원이 되어 활동하다 보면 그 교회 목회자가 교회를 성장시킨 공이 상당함에도 엄청난 반대에 직면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원인을 살펴보면 처음에 목회자가 무슨 일에 사욕을 갖고 처리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인데, 그때 빨리 사욕을 포기했다면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사욕에 집착함으로 교회를 떠나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현대인들은 이해타산에 능하다. 그런 탓인지, 교인들도 목회자가 관철하고자 하는 내용이 과연 교회 중심인지, 아니면 목회자의 과욕인지를 용케도 찾아낸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아무리 사욕을 교묘히 숨긴 채 어떤 사안을 상당히 논리적으로 강조하고 반대자들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맹목적으로 목회자를 추종하는 다수 교인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교회 안에서 무력화시키려고 할지라도, 어느 날인가 사욕의 냄새를 맡는 순간부터 동조하던 교인들조차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만나게 된다.
바둑에서 보면 작은 것을 살리려는 소리(小利)에 집착하다가 대마를 잃는 경우와 비슷한 모습이다. 교인들이 가장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목회자의 사욕임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2)정수(正手)는 희생이다.
목회상의 정수는 무엇인개? 희생이다. 존경받는 목회자들의 삶을 살펴보면 희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욕심을 과감히 절제하고 교회와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희생을 아끼지 않고 있다. 10여 년 전에 「월간목회」지의 요청에 따라 이미 은퇴한 목회자 중에 존경받는 분들 열세 분을 찾아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늘 가슴이 훈훈했던 것은 그들의 일생은 교인들과 교회, 불우한 이웃과 나라를 위한 희생적인 삶으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 중에 몇 개월 전에 소천하신 한병기 목사님은 북한에 부인과 자녀들을 두고 월남한 후 40년 동안 독신으로 살면서 목회에 전념함으로 부산 부전교회를 크게 성장시키신 분이다. 그분에게 목회의 원칙을 물었을 때 이렇게 답변하셨다.
“저는 교회를 잘 다스리려면 목사가 인격적인 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인격과 신앙에 존경을 못 받으면 아무리 좋은 말과 의견이라도 인간은 감정이 있는지라 반대를 만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과 존경을 받으면 교인들은 대부분 순종한다고 봅니다.”
“또한 목사가 오해나 핍박을 만났을 때 변명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한 반대에 직면하거나 혹은 억울한 오해를 받거나 심지어 욕하는 사람이 있어도 불러다가 야단을 치거나 따지거나 구구하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요셉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세월이 가면 자연히 문제가 해결되고, 오해가 풀리면 오해했던 사람들이 사과하게 되고 더 존경을 받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공연히 억울한 마음, 성급한 마음으로 따지어 밝히다 보면 감정에 감정이 격해져서 더 큰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목회에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강조였다. 사실 십자가의 삶은 한마디로 희생이 아닌가? 희생할 때에 십자가 능력,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섬기는 삶, 그것이 섬김을 받고 높임을 받는 삶이 아닌가?(마20:28). 그런데 어느 목회자는 교회를 향해 사례금이나 자녀 장학금, 승용차나 사택을 과분하게 요구하는 등, 소리(小利)에 너무 집착하다가 그것이 발단이 되어 나중에는 큰 시험에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다. 나의 이해관계에 대해 과감히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면 교인들로부터 존경과 아울러, 그 이상으로 대우를 받게 된다는 점을 배워야 목회의 맛을 아는 자이다. 장기목회를 하려면 사욕이라는 악수를 과감히 버리고 희생이라는 정석을 두는 경건의 연습에 힘써야 한다.

3)자기 교회부터 든든히 세워야 한다.
바둑을 둘 때 남의 돌만 공격하다가 그 돌이 살아가고 나면 집 부족에 걸려 어이없이 패하고 마는 일이 많다. 그래서 바둑 용어에는 ‘아생연후살타( 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이 있다. ‘공격하기 전에 자기 집부터 지어라.’는 뜻이다.
목회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어느 목회자는 자기 교회를 돌보는 일은 게을리 하면서, 노회나 총회, 무슨 선교회 모임이나 부흥강사 등, 외적 활동을 맹렬히 한다. 그리하여 교계(敎界)에서 유명인사로 통할지 모르지만, 교회는 심히 부실하게 되므로 후에는 교회 내부로부터 엄청난 반대에 직면할 뿐 아니라 외부에서조차 비판을 받는 것을 본다.
이는 외화내빈(外華內負)의 모습으로 바람직한 목회자상(像)이 아니다. 목회자는 우선 자기 교회부터 든든히 서도록 열심히 목회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이 되면 자연적으로 외적인 활동 무대가 주어지는 때가 오게 마련인 것이다.

둘째, 장기목회 하려면 지동차 운전에서 배워야 한다.
필자가 워낙 게으른 탓인지, 노회장을 맡을 때가 임박해서야 겨우 운전면허를 받았다. 그 후 5년이 지나서야 초보를 면하고 원거리를 다녀오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1)후진(後進)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름대로 운전경력이 생기고 보니, 누가 초보자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후진을 잘하느냐, 아니냐를 보면 알 수 있다. 초보자들은 직진(直進) 운전은 제법인데 후진에는 영 서툴러 주차하면서 다른 차에 접촉사고를 냄으로 상처를 입히기 일쑤이다. 외진 골목길에서 보면 초보자들은 좀체 양보를 모른다. 후진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경력이 오랜 운전자는 좁은 공간에서도 단 한 번에 후진 주차하는 능숙함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경력이 깊지 못한 초년 목회자들도 후진에 아주 약한 것을 본다. 필자의 30 대, 40대 초년 목회는 오직 직진에만 능했다. 35세 나 이로 작은 교회에 부임한 후 관심은 교회성장뿐이었다. 기도하러 자주 삼각산을 찾거나 교회성장을 위해서 걸핏하면 교회에서 철야하기 일쑤이고, 책 구입이나 세미나 참석도 교회성장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목회자의 불타는 마음과는 달리, 7년 동안 굳어진 교인들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거나 노골적인 반대로 맞서고는 했다. 그때마다 저들의 반대여론에 밀리는 것은 사탄의 계략으로 치부하고 저들을 강하게 몰아세우기를 얼마나 자주 했던가?
부임한 지 3년째 되던 해 연말 당회 때였다. 당시 10구역이었는데 30구역으로 편성한 유인물을 장로님 두 분에게 내어 놓고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평안도 출신 장로님 한 분이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아니, 얼마나 기도하면서 준비한 교회성장안인 데, 기도 한번 안 해 보고 반대할 수 있는가?’라는 젊은 분노심을 참지 못하고 유인물을 집어던지며 “다 그만둡시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5분 정도 침묵이 흘렀다. 그때 필자에게 ‘아무리 목회자라도 20년 어른 되는 분 앞에서 유인물을 집어던지는 것은 너무나 무례한 짓이 아닌가?’라는 깨달음이 왔다. 무릎을 꿇고 “장로님, 아버지뻘 되는 분 앞에서 너무 무례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라고 하자, 그분도 같이 무릎을 꿇고 “목사님이 얼마나 기도하면서 준비한 것인데 제가 너무 쉽게 반대한 것은 잘못이지요. 목사님, 소신대로 하십시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결국 그 다음 해에 구역을 30구역으로 편성함으로 성장의 새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깊은 깨달음이 생겼다. 기도 중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확신만 생기면 그냥 밀어붙이기로만 고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어느 주일, 당회원이 교회 출석했더니 목회자가 사전에 아무 논의도 없이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엄청난 사안을 내놓는다면 거부감이 안 생길 자 누구겠는가?
그때부터 어떤 안건이 있으면 미리 언질을 주어 마음에 준비하게 하거나, 누가 정 반대하면 “한 달 동안 기도하면서 재고해 보자.”고 한발 물러서기도 하고, 아니면 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하게 하는 등, 후진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결과 , 오히려 교회 제반 일이 잘 풀려간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어느 때는 열심히 기도하고 준비한 안을 당회에 내어 놓았더니 어느 분이 반대하기에 열심히 설득했지만 계속 반대를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주간 기도한 후 다음 주일에 재론합시다.”라면서 한발 물러섰더니, 반대한 분이 집에 돌아가서 마음이 괴로웠는지 전화하기를 “목사님, 제가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제가 다음 주일에는 찬성 발언을 하겠습니다.”라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 부인 권사가 ‘열심히 기도하지도 않는 사람이 목사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결정하시는 일을 왜 그렇게 반대하는가? 목사님을 괴롭혀서 우리 가정에 잘된 것이 무엇이냐?’면서 몹시 나무란 결과인 것 같았다 . 그리하여 그 사업안은 그분이 적극적으로 앞장서게 됨으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만약에 필자가 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수결을 통해 강행했다면, 그 사업이 잘될 때는 문제가 없으나 난항에 부딪힐 때는 반대했던 그 분에 의해 엄청난 비난이나 반대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운전경력이 깊어 갈수록 직진뿐 아니라 후진도 능숙하게 되는 것처럼, 목회경력이 깊어 갈수록 후진 능력도 길러 가야 장기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2)방어 운전의 능력도 키워야 한다.
아무리 운전에 능하다고 할지라도, 갑자기 어린아이나 다른 차가 달려드는 데야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운전자에게는 언제든지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찬
가지로 목회자가 아무리 유능해도 불가항력적인 사건을 만나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사탄은 교회의 틈을 이용하여 가지가지 시험을 일으킬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예수님에게도 사탄이 시험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무리 피곤할지라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로 깨어 있으셨던 것처럼 목회자들도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언제라도 위험이 올 때 피할 수 있는 방어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대부분의 사고가 과속 때문이라면, 목회하면서 성급하게 결정을 짓거나 성급하게 추진하지 않도록 자제할 수 있어야 장기목회의 운행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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