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11.15 목 17:17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목회 > 후배들에게 남기는 목회이야기
     
후배들이여, 장기목회를 계획하라
[후배들에게 남기는 목회이야기 ①] 목회는 마라톤과 같은 것...오버 페이스 말아야
2007년 12월 31일 (월) 17:48:04 김태복 발행인 hipc6012@cry.or.kr

후배들이여, 장기목회를 계획하라

이제 목회 종반전에 이른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장기 목회를 계획하라’는 것이다. 그만큼 목회환경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1960년대 신학교에서 목회학을 배울 때만 해도 ‘목사는 언제나 세 가지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들려질 수 있었다. ‘첫째는 굶을 각오, 둘째는 언제라도 그 교회를 떠날 각오, 셋째는 순교할 각오’를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목회 초년생들에게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의 선배들은 그러한 각오로 목회를 해야 했다. 지금에 와서는 세 가지 다 거의 옛말이 되고 말았지만, 사실, 1950년대 이전만 해도 목회자 수가 너무나 부족해서 목사 한 분이 여러 교회를 맡고 있거나 여러 교회를 맡아서 성례식을 거행하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가 자기를 원하지 않으면 언제라고 이삿짐을 싸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목회현장은 목회자 과잉사태이다. 「기독교신문」에 발표(2002년)에 의하면, 총신대 신대원 황성철 교수(실천신학․교회선교연구소장)는 ‘목회자 수급의 문제점과 그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제하의 글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의 경우 지난해 교회를 담임하지 않는 목사의 수가 4,350명으로 전체 목사의 44.1%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 가운데 상당수의 목회자가 무임목사 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필자가 속한 교단(통합측) 통계위원회 보고에 의하면 2003년도 교회수가 6,978명인데 비해 목사 수는 10,950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에는 부목사도 포함되어 있으나 반면 전도사수는 빠져 있는 것이다.

   
▲ 한국교회는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목회자 수가 6만여 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한해에 각 신학교와 무인가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목회자 수는 무려 3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진은 2007년 2월 7일에 있은 장로회신학대학교 100회 졸업감사예배 장면 ⓒ 장로회신학대학교
현재 한국교회는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목회자 수가 6만여 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한해에 각 신학교와 무인가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목회자 수는 무려 3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갈수록 임지가 없는 목회자들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제는 유능한 목회자 아니고는 교회를 옮겨 다닌다는 것은 힘든 상황에 처하고 있기에 장기목회를 계획하는 것이 목회자의 지혜로운 자세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어떻게 장기목회를 할 것인가?

1. 목회는 마라톤처럼 하라

언제인가, 동기 모임 때에, 어느 동기 목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일찍 가려고 하자, 목회를 잘 하는 친구 목사가 "목회는 마라톤이야, 왜 그렇게 바삐 서두는가?"라고 충고하던 말이 생각난다. 목회를 연륜이 깊어가면서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 장기목회를 하려면 마라토너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1) 3년이나 6년의 고비를 극복하여야 한다.

1980년 미국 마라톤팀 일원이었던 벤지 더던(Benji Durden)은 "마라톤의 핵심은 에너지를 잘 관리하고 배분하는 것이다. 3단계 접근법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라고 하면서 마라톤은 세 번의 고비가 있는데 ① 출발부터 15km ② 15km에서 32km ③ 32km에서 42,195km라고 했다. 대부분의 마라토너들은 35km 지점에서 마라톤의 벽을 실감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장기목회를 해보면 대략 3년, 6년, 12년 등 몇 번의 고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 부담감 때문에 시무 18년쯤 되면 문제를 삼아서 목회자를 사임하게 하는 교회들도 적지 않다는 말이 있다.

물론 목회자나 각 교회 형편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년이나 6-7년을 주기로 고비가 온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헌법에는 임시목사를 3년의 연한을 주고 있거나 7년째 가서 안식년을 주는 것인가?

연로한 목회자가 재직하던 교회, 혹은 문제가 많던 교회의 목회자가 사임한 후, 신임목회자가 부임하면 초반에는 활기가 넘치게 된다. 물론, 신임 목회자도 그 활기 속에서 나름대로 소신껏 목회함으로 설교나 행정이나 다 신선해 보이게 됨에 따라 목회자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게 되고 교회는 급성장할 것 같은 기세를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면 지나친 기대감의 거품이 빠지게 됨으로 새로 부임한 목회자의 허물이 여기 저기 나타날 것이요, 그에 따라 전임 목회자를 몰아내던 비판의 칼날을 신임 목회자를 향해 세우기 시작할 때, 그 때가 위험한 때이다. 문제 있던 교회가 근본적인 자세가 바뀌지 않은 채 목회자를 바꾸는 것으로 문제 해결하려는 악습을 버리지 않는 한 그 교회의 악순환을 계속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능한 목회자는 3년의 고비를 넘어서서 5-6년 목회에 전력투구한 결과 침체되었던 교회 분위기를 일신하고 교세(敎勢)가 급격히 도약함으로 자기 페이스대로 목회할 수 있는 괘도에 오르게 된다. 그 때가 되면, 그 목회자도 인간인지라, 쉬고 싶은 마음이 일게 됨으로 방심(放心)에 빠지기 쉬워진다. 그 때에 어느 목회자는 교회를 자주 비우고 외부활동에 열을 올리거나 해외여행 나들이에 맛 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때가 또한 위험한 고비임을 알아야 한다.

같은 노회 안에 아끼는 어느 후배 목사는 명문대 출신에 뛰어난 설교가인 데다가 부임한 후 몇 년 동안 얼마나 전도운동을 열정적으로 벌리는지 순식간에 대형교회가 될 분위기였다. 그러나 6년 째 되던 해에 어처구니없는 시험에 휘말리더니 사임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아픈 모습을 보았다.

(2) 오버 페이스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라토너가 결승점에 도달할 때까지 반드시 지켜야할 룰(rule)은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다. 남들이 앞서 달린다고 성급해서 평소 자기 페이스보다 더 빨리 달린다고 하면 결국 어느 고비에서 지치게 됨으로 완주조차 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어느 목회자는 새로 부임하고 나서 지나치게 서둔다. 교회성장 세미나 마다 참석하고 좋다고 생각한 성장방안은 무엇이든지 도입하고 시도해본다. 그리고 교인들을 사정없이 몰아세운다.

그래서 큰 효과가 나타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몇 년도 못 가서 자기는 물론 교인들도 탈진하게 된다. 어느 목회자는 너무 탈진한 결과 병을 얻게 되고 결국 40대 후반 나이에 세상을 떠남으로 교회와 그 식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토기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배워야 한다. 자기가 부임하여 급성장했다고 방심하여 자만의 잠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교회의 성장이 너무 느리다고 오버 페이스 하는 것도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거북이는 거북이의 페이스대로 달리다 보면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목회는 마라톤이다. 자기 페이스를 반드시 지켜야 장기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2. 스타식 목회보다 성자식 목회를 하라

지난 해, 잘 아는 후배 목사의 위임식에 설교 차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목사는 신도시에 교회를 개척한지 10년도 안 되어 500명 이상 모이는 대단한 교회였다. 노회에서 주관하는 위임식순은 다른 교회와 거의 같았으나 답사 순서부터는 그 교회 교인들이 꾸미는 이벤트 중심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위임목사 식구들을 강단에 세우고 교회 각 기관 대표들이 꽃과 선물을 증정하고 축복송을 부르는 동안 강단 위에서는 대형 현수막이 꽃가루와 함께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이어서 답사하는 순서가 되었는데 그 목사는 웃기고 울리면서 청중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음에 놀랐다. 엄숙해야할 위임식을 유별나게 이벤트화한 교회에 대해서 약간 냉소적이던 노회 임원들이나 내빈들도 그 목사의 말에 감동을 받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그 목사는 바로 스타 그대로였다.

필자는 승용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그 목사의 뛰어난 말솜씨하며 적절한 때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죽었다 깨도 그런 재주는 없다.’라는 생각에 이상하게 허탈감이 고여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독백처럼 한다는 말이 ‘나는 성자식의 목회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것이었다. 자위로 한 말에 불과하지만, 되씹어 볼수록 명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성자식의 목회가 별 것 있겠는가?

   
▲ 성자식의 목회는 일시적으로는 화려함과 번쩍이는 인기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교인들로부터 두고두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스타는 인기가 생명이지만, 목회자는 존경이 생명인 것이다. 사진은 필자가 홍익교회 담임목사 재임 시절 주일예배 설교 장면 ⓒ 홍익교회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방법대로 하려고 애쓰면서 예수님만 높이는 목회면 되지 않겠는가? 바울의 목회가 바로 성자식의 목회가 아니겠는가? 바울의 목회는 철저한 신본주의였다. 그가 쓴 서신 많은 곳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고, 빌 1:20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현세에서 과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과 자랑을 철저히 예수님 안으로 녹아들게 했던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전통적인 가문, 높은 학벌 등을 배설물로 여기었고(빌 3:8), 주님을 위해서 만물의 찌기같이(고전 4:12)되었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바울이 체험한 목회 비결은 자기가 약해질 때에 주님은 강하게 역사 하신다는 사실이었다(고후 12:9).

그 결과, 바울은 역사 속에서 우뚝 세움을 받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젊은 목회자들에게 성자식 목회보다는 스타식 목회가 구미가 당긴다. 성자식 목회로는 잘못하면 교세가 약화되기 쉽지만, 스타식 목회자에게는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들고 있지 않은가? 또한 한국교회 풍토는 성자형의 목회자보다는, 높은 학위, 헌칠한 외모, 뛰어난 설교, 기업가적인 능란한 운영술 등을 겸비한 스타형의 목회자를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한다.

스타식의 목회는 수많은 인파가 모이게 만들고 교회를 급성장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대단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대형교회가 된 후에 잘못하면 사울의 모습처럼 자고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앉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만만의 인기를 가진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면 그에게 인기와 팬들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단명의 날을 만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자식의 목회는 일시적으로는 화려함과 번쩍이는 인기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교인들로부터 두고두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스타는 인기가 생명이지만, 목회자는 존경이 생명인 것이다.

후배 목회자들이여, 스타식 목회보다는 성자식 목회를 지향하라.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인격 안에 자신이 녹아들게 하라. 때로 모든 자들이 만만 이라고 추켜세우는 날에도 오직 주님만 높이라. 때로 모든 자들로부터 천천이라고 낮춤을 당하고 만만의 인기를 가진 자들에게 몰려가는 날에도, 이제 모든 자들이 등을 돌리므로 다윗처럼 광야의 삶을 사는 날이 온다 할지라도 오직 주님만 따라 좁은 길로 의연히 나가라. 그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장기목회를 보장해 주실 것이 분명하다.

/ 본보 발행인, 홍익교회 원로목사

김태복 발행인의 다른기사 보기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1)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엄인영 목사
(121.XXX.XXX.181)
2013-04-29 08:23:42
귀한 글 잘 보았습니다!
김태복목사님!
건강한 목회자상을 제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보면, 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섬길 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스타식이 아니라 성자식 목회를 추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체기사의견(1)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총신 개혁에 진력해 주기 바란다”
극심해지는 中 기독교 탄압
서울동남노회 사실상 ‘분열’
인생승리(人生勝利)의 십계명
잠언23강 11:16-31 의인의 열
한국교회와 청소년 교육
교인들의 성질을 고치려는 노력(2)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
환난과 핍박 중에도
최근 올라온 기사
영화(부활)
필립핀 파이오이 성당
사도신경 해설-7 (“몸의 부활을 믿...
잠25강 12:15-28 공의로운 길...
위로하시는 하나님
마음 속에 가득 담고 있는 것과
어느 병실에 걸린 시(작시 미상)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통치자들
대법원 판결에 우려
"교단 소속목사 성추문 사건 깊은 유...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