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4.7.21 일 07:58
 
 
전체기사  기사모아보기 후원방법
> 뉴스 > 신학
     
인생은 예측 불허』(부제:노점상 이야기) 독후감
2024년 06월 08일 (토) 08:21:41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유경재 목사는 같은 교단, 같은 노회에서 40년 이상 동역하며 형처럼 따르는 분이다. 둘째 따님이 책을 발간했다고 해서 인사차 구매했다. 『인생은 예측불허』라는 제목의 책으로 실제 내용은 실제로 노점을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밑바닥 삶의 이야기’였다. 국문과 출신이어서인지 진솔하면서 생동감 있는 필체로 묘사해서 마치 현장에 있는 느낌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 서민들의 애환(哀歡)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 부모, 양반교회의 담임목사 가정에서 곱게 자란 따님이 1년 동안 허접한 노점상을 운영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도 ‘나꼼수 출신 김용민 목사’라는 그런 별난 아들이 있어서 아픔을 동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유 목사의 따님 유의선 님은 동덕여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실업자 지원단체에서 상담하면서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활동가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무국장으로 절감한 것은 그 사회적인 약자들을 돕는 위치에 있을 뿐 고통을 받고있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언제나 그들과 물과 기름같이 겉돌 뿐이었다.

그러므로 마침내 활동하던 단체에서 나와 노점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로 결단했다. 겨울에 시흥사거리에서 잉어빵 노점을, 봄에는 떡볶이 노점을, 가을에는 핸드폰 케이스 노점을 하면서 1년을 버티었다. 생존경쟁이 따로 없었다. 특별히 구청 단속반으로 끝없이 시달리는 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1년 동안 단속받은 날이 단속받지 않은 날보다 많을 정도였다. 그나마 초짜 노점상이 갖은 수고를 다해 만든 잉어빵이나 떡볶이나 순대가 잘 팔렸으면 좋으려만, 팔리지 않은 채 판매대 쌓여 식어가는 것을 보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유의선은 잉어빵을 팔면서 모든 금액이 잉어빵으로 환산되는 것을 배웠다. 소주 한 병은 잉어빵 네 개, 3천 원 커피는 잉어빵 열 개, 휘발유 3만 원이면 잉어빵 40개. 이제 유의선은 노점상의 마음과 시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돈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이 오늘도 거리 수많은 골목 귀퉁이에서 생존 전쟁을 겪으며 사는 노점상들의 참담한 밑바닥 삶인 것이다. 그렇다. 유의선은 노점상을 마감했지만, 지금도 엄청난 서민들이 밑바닥 삶 속에서 생존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 자기 몸을 던져 노점상을 하고 있는 딸을 보면서 유목사 부부는 얼마나 아파하며 안타까웠을까? 유목사는 자신이 설교에서 예수님처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라고 강조했기에 딸의 그러한 삶을 탓하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엄마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나는 아내에게서 늘 발견할 수 있었다. 아내는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위해서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아들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 안타까워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목사 가정과 우리 가정은 흡사한 점이 적지 않다. 유목사과 나는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점도 많다. 유목사는 서울대 출신인 반면 나는 지방대인 강원대 출신이고, 유목사는 경신고 교목과 윤보선 전직대통령이 출석할 정도의 상류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안동교회에서 장기 목회했다면 나는 농촌교회와 청계천 하구와 산동네가 위치한 서민교회에서 일생 목회했다. 한 마디로 유 목사는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면 나는 변두리 코스를 걸어온 셈이다.

그런 반면 비슷한 점도 의외로 많다. 30대 나이에 부임하여 한 교회에서 30여 년 동안 큰 과오 없이 소신껏 목회한 후 60대 중 반에 조기 은퇴한 점, 노회 임원 7-8회 연임할 정도의 성실성, 교단 정치에 조금도 욕심내지 않았던 선비정신, 한국교회와 한국정치에 대해 개혁 의지 등이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유 목사는 노회나 총회, 대사회를 향해 부당한 일에는 단호하게 나서 직언(直言)하는 분이라면 나는 글로 많은 지면이나 책에서 그러한 주장을 펼쳤다.

유목사의 아내나 내 아내도 공통점이 많다. 유목사이나 나나 선비적인 올곧은 성격은 좋으나 반면 차거운 성격이다. 그러나 아내들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오지랖이 넓어 퍼주기를 좋아한다. 교사 출신인 점도 비슷하다. 목갑수 사모는 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반면 내 아내 최재희 사모는 중학교 교사 출신이다. 한국 사회의 교사 출신들의 맹점은 학생들을 점수로 평가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런 입장에서 두 사모는 자녀들의 점수에 대해 너무나 민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최재희 사모는 누나나 막내는 성적이 좋으므로 별 간섭을 안했으나 김용민에 대해서는 유달리 간섭이 많았다. 대학 입시에 총력을 기울이어야할 시기에 김용민은 아빠의 워드프로세서를 몰래 사용하여 ‘푸른계시록’이라는 고등부 회지(會誌)를 발간했다가 엄마로부터 엄청난 타박을 받았을 정도였다. 아마 목갑수 사모님도 별종인 유의선 때문에 너무나 많은 신경을 쓰며 아픔을 겪었을 줄 추측된다. 아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12살 때에 예루살렘에 함께 상경했다가 잃었을 때에 찾은 곳은 놀랍게도 성전(聖殿)이었다. 그곳에서 귀한 학자들과 신앙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흐뭇했을 것이다. 앞으로 성장하여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과 높은 교류를 나누면서 대활약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아들은 어부들이나 빈자들, 세리나 창기들, 온갖 병자들을 찾아다니고 심지어 유대인들의 금지구역인 사마리아까지 찾아감으로 온갖 비난을 받을 때 신앙적으로 너무나 힘에 겨웠을 것이다.

더욱이나 날마다 십자가 죽음을 향해 나가는 아들이 엄마의 입장에서 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그럴진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인간들과 세상을 구하려고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은 천한 이 세상에 오실 때 가장 작은 나라, 가장 작은 고을, 천한 목수의 가정으로 오시었고 일생 사회적인 약자들과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이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유의선이나 김용민이나 하나님이 예수님의 사역을 대행할 자로 우리 가정에 보내셨다고 믿는 것이 가장 옳은 답이라고 스스로 자위(自慰)해 본다.

ⓒ 소리(http://www.cry.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읽은 뉴스
예장통합 김의식 총회장 사퇴 촉구 성
서울 한강의 피서와 물놀이, 기억나세
그 날이 온다
전 1: 8-18 지혜가 많으면 번뇌
우리에겐 복병이 있습니다. 
『인생은 예축 불허』(부제:노점상 이
성경통독과 믿음의 그릇
매주일 장례식
신천지가 다시 움직입니다.
최근 올라온 기사
교만과 죄의식
선교 보고
7월 선교편지
7월 선교편지
CCM 라이브
"김민진(버블시스터즈)의 CCM 라이...
『인생은 예축 불허』(부제:노점상 이...
전 1: 8-18 지혜가 많으면 번뇌...
서울 한강의 피서와 물놀이, 기억나세...
매주일 장례식
편집자가 추천하는 기사
[NCCK 공동선언문 파문] 기독자교수협은?
이만희 "나는 구원자 아니다"
옥한흠 목사 장남 "오정현 목사는..."
변방 목회 40년
지금은 절망 아닌 기다림의 시기
회사소개 | 후원안내 | 저작권보호 | 광고안내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크리스천웹진 소리 | 등록번호 경기도아00217 | 등록연월일 2009. 7. 3 | 발행인 김태복 | 편집인 김태복
발행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986-1 두산위브아파트 101동 506호 | 전화 및 FAX 031-577-9411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태복
Copyright 2007 소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r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