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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행하시는 이”
2024년 06월 06일 (목) 11:12:13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빌립보서 2:12-16)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늘 우리에게 뭔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사인(sign)을 끊임없이 보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을 캐치(catch)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에 부응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성공합니다.
 
오래 전에 본 광고 중에 나폴레옹 복장을 한 이가 전장에서 군사들에게 ‘나를 따르라’하며 그들을 이끌고 산 위의 고지로 고생고생하여 올라가서는 이런 소리를 하여 군사들을 다 뒤집어 지게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여기가 아닌가 벼”
 
우리의 인생길, 이런 실수 안 하려면, 이런 탄식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좋은 길 안내자를 가져야 하고, 그 안내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정말 감사하옵게도 오늘 성경에 보니, 완벽한 인생의 안내자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신이 개척하여 세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걱정하며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전에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개척하고 함께 했을 때는 바울이 일일이 신앙의 도리와 신앙생활에 대하여 가르쳐 주어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 교회를 떠나와 있기에 바울에게는 늘 그 교회를 향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권하는 것입니다.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말씀에서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 있죠?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완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 다시 이루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아직 미완성이란 것인가요? 내가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알고 있는데, 나중에 취소될 수도 있다는 것일까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성도로서의 삶을 채워가라는 것입니다. 명분은 얻었으나, 호칭은 얻었으나 실제 그렇게 사는 것은 아직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안수를 받음으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목사가 된 것인가요? 완전한 목사가 되었으나 또한 완전하지 않은 목사입니다. 부족함 투성이 입니다. 특히 젊은 시절 한 때, 내가 제일 충성스럽고 성결한 목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나는 너무 부족한 목사임을 깨달았습니다.
 
뭘 뜻하는 걸까요? 목사로 계속 노력해 가야 합니다. 안과 밖이 온전한 목사로 채워지고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아마 세상 떠날 때 쯤 되어 ‘아, 나는 진짜 목사가 되었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린 모두 여전히 부족합니다.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 주의 일군이라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족하고 부끄러운 게 하나 둘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힘을 써야 합니다.
 
3.
그런데 무작정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인가요? 노력?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 그 방법, 노하우가 뭔가요? 언제나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흉내 내야 하는가요?
 
한때, 젊은 시절에 목회에 성공하고 싶어서 교회 성장 세미나에 쫓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세미나에 참여해 보면, 이건 완전히 기가 죽어서 흉내도 못 내겠더라구요. 목회 성공했다는 큰 교회 목사님들이 강사로 나와서 강의를 하는데, 이건 애당초 출발부터 흉내도 못 낼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적용을 하고 싶어도 강남과 강북이 다르고, 아파트 단지와 주택단지가 다릅니다. 성공한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존심만 상하고, 열등감만 생기고, 은근히 화가 납니다.
 
이른바 성자(聖者)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도 그러지 않는가요? 40일 금식을 하고, 매일 철야를 하고, 1시간씩 걸리는 길임에도 매일 새벽 기도를 다니고, 집 팔아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고, 장기가 필요한 이에게 장기를 떼어주고, ... 들으면 은혜는 되는데 그렇게 하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은 절망감, 딴 나라 이야기 같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우린 성자가 되고, 성도가 되고, 온전한 목사가 되기는 틀린 것인가요? 천만에!
 
13절을 봅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안에서 뭔가 행하시는 분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나님이시랍니다. 이 하나님이 누구신가요? 두말하면 잔소리,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주일 우리가 성령강림주일로 기념한 이 땅에 임재하신 그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임하신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답니다. 그것도 우리 안에 계신답니다. 할렐루야! 나는 비록 흔들리고 나는 비록 휘청대도, 때로는 추해져도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그 추함과 비굴함의 환경을 이를 악물고 견디며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서 수시로 우리 안에서 감동을 주시고, 생각을 주시고, 느낌을 주시고, 그리곤 결단하게 하십니다.
 
남편이 교회에 나오기를 10여 년 동안 꾸준히 기도 해오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낙망하지 말고 소망을 갖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10여년을 기도해 오긴 하지만, 그러나 집사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기 남편이 교회 나오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지독한 술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가자고만 하면 “술 먹으면서 어떻게 교회를 가나, 내가 술 끊으면 가지” 했습니다. 예의도 바른 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은 평생 교회 못 나옵니다. 술을 끊고 교회 나온다구요? 천만에! 그냥 그대로 나오라고 하십시오.
 
이 집사님이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 어느 날 남편에게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당신, 교회에 가면 내가 술 사 드릴테니 같이 갑시다.” 남편이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모처럼 잔소리 듣지 않고 아내가 사주는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요! 그래서 그 뒤 교회를 같이 나갔고, 그리고 일요일 오후엔 어김없이 부인이 사다 주는 술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에 목사님이 점심시간에 남자의 직장으로 심방 갔는데 남자가 심각하게 말합니다. “목사님, 요즘 제게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너무나 진지해서 목사님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어렵게 겨우 교회 나오기 시작하더니 안 나오겠다는 건가요?
 
“무슨 고민이십니까?” 했더니 이 사람 왈, “목사님, 요즘 이상하게도 술맛이 자꾸 떨어집니다. 아무도 나에게 술 끊으란 소리를 안 하는데, 이상하게도 술맛이 자꾸 떨어지니 이거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술꾼에게는 아주 심각한 고민이다. 왜 술맛이 떨어질까요?
 
이상하게도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자꾸 드는 것, 왜 그런가요? 이상하게도 주일 날 그냥 놀러 가면 뭔가 허전한 것은 왜 그럴까요? 이상하게도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 그냥 지나치면 마음이 무거운 것, 왜 그런가요? 할 일이 몹시도 많은데,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는 왜 그런가요?
 
기도를 하면, 찬송을 부르면, 말씀을 읽으면, 십자가를 생각하면 뭔가 속에서 꿈틀거리고, 괜히 눈물이 핑 돌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내 안에서 무언가 역사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뭔가 말씀하시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인가요? 그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13절을 다시 봅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그 성령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뭔가 거룩한 욕구가 일어나는 것, 누가 하신 일인가요? 성령 하나님! 뭔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아니 뭔가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거룩한 감정으로 감동하십니다. 거룩한 영,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신 거룩한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뭔가 그 거룩함, 그 온전함을 위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신답니다.
 
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습니다. 이때, 육신의 갈등이 일어나지만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면 내 영혼의 만족함, 그 희열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내 뜻대로 하기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는 그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때로는 당장에 그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귀찮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 열매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기에 나에게 감동을, 욕구를,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4.
그리스도인으로 좀 더 나은 신앙을 위해 느낌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이런 식으로 신앙 생활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되는데..... ”하고 깨닫고,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있습니다. 거기에 즉각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생활에 열심인 사람과 미약한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주의 말씀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즉각 순종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즉각 순종하고 길을 떠나거나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미루고 미루는 이들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대열에 서기 힘듭니다. 대개 미루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이들입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이들입니다.
 
이것은 신앙적 차원에서는 교만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모처럼 선한 욕구를, 충동을 주셨는데, 그래서 당장에 이렇게 습관을 고쳐야지, 이것을 버려야지 하고 느낌과 생각이 오는데, 그것을 자꾸 뒤로 미루며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나중에 언제라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행할 수 있다고 미루는 이들은 평생에 변화되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 순간 순종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영적 성장이 치솟아 올라가자, 마귀들이 회의를 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누를 것인가요? 핍박을 하자! 아니다, 초대 교회를 핍박해 보았더니 도리어 복음이 불똥 튀듯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더라. 파산 시키자! 아니다, 옛날에 욥이란 사람에게 해 보았는데 안 되더라. 유혹을 하여 타락시키자! 아니다, 한 사람 그렇게 시켰더니 다른 사람들이 더욱 정신 차려 무서워지더라. ... 다들 난감하였습니다.
 
그러자 늙은 마귀 제안하였습니다. ‘별수 없다. 이젠 우리가 나서서 전도하자. 예수 믿으세요, 교회 나가세요, 기도 하세요! 그런데 이거 하나 슬쩍 덧붙이자. 기도하세요, 그런데 지금은 바쁘니 다음부터! 예배드리세요, 그런데 지금은 말고 내달부터! 결단하세요, 허지만 지금은 말고 내일부터 ... ’ 오늘까지 이 마귀의 계략에 걸려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신도들이 허다하답니다.
 
성령께서 기쁨을 주시면, 그때 웃으십시오! 성령께서 감사를 주시면, 그때 감사를 표하십시오! 성령께서 기도를 주시면, 그때 만사를 제쳐두고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뭔가 생활을 고치라고 명하시면, 미루지 말고 그때 그 생활을 고치십시오! 성령께서 용서하라고 명하시면, 핑계대지 말고 그때 용서하십시오! 성령께서 구제하라고, 도와주라고 속삭이시면 이유를 대지 말고 그때 도와주십시오! 미루다가 모든 것을 놓쳐 버리는 수가 허다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복종하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회를 주셨는데도 무시하고, 중요성을 두지 않고, 다음에 다음에 하며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시간만 가지면 언제든지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다는 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5.
정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할렐루야!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영생을 얻는 것, 모두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 동사가 모두 현재완료형입니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되어 가는 것을 보아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이롱 신자가 될지라도 구원은 그 순간에, 단번에 완전히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았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는가요? 아닙니다! 모든 생활이 180도 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거친 세상에서, 제 정신 갖고 바르게 살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빛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 얼마나 힘이 드는가요?
 
모든 가치가 왜곡되고 진실이 통하지 않고 대접도 못 받는 이 세상에서 진실되게 산다는 것, 믿음 생활 올바로 해간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가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가요? 나야 목사니까 늘 교회 안에만 머무니 별로 모르지만, 여러분은 삶의 현장이 교회 밖입니다. 받은 은혜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는 현장은 세상입니다.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 밖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드는가요? 그러나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내 안에 역사하시는 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소망을, 소원을, 뭔가 선한 욕구를 갖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기쁘신 선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신 줄 믿는가요? 그분이 계속 자신에게 뭔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을 아는가요? 21세기는 영성의 시대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나를 터치하시는 것을 느끼는가요?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요? 맨날 목사가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가요?
 
아닙니다. 우리 안에 이미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 분께서 내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주시는 감동을 받으십시오. 영성의 사람이 되십시오.
 
6.
요즘 어떤 선한 욕구가 생기는가요? 뭔가 신앙적 부족함을 느끼는가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더 좋은 것들이 있기에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자극하시는 것이며,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한 욕구와 느낌과 자극, 도전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충동! 거기에 순종하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삶을 주께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성자(聖者)는 하루아침에 마음먹었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교회의 나이 드신 장로, 권사님들을 존경합니다. 왜? 그분들은 바로 이런 성령의 내적 역사에 순종하며, 일생을 선한 싸움을 하여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반열에 설 이들이기에!
 
여러분의 신앙 여정에 언제나 따뜻한 감동, 선한 감동이 찾아들기를 바랍니다. 선한 욕구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권능에 사로잡히는 성령 충만한 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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