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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세우신 이유”
2024년 02월 17일 (토) 08:13:52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마태복음 16:13-20) 
 
1.

미국 교회들의 주보 광고문 중,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광고문들을 모아 놓은 글이 있다.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내일부터 사흘간 금식 기도회가 있습니다. 참가비는 50달러, 여기에는 숙박비와 식비가 포함됩니다.”
 
“오늘 당회장님의 마지막 고별 설교가 있은 후 할렐루야 성가대의 특별 찬양, ‘기뻐 뛰며 노래하라’가 있겠습니다.”
 
“오늘 아침 갑자기 스미스 장로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다같이 유족들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마지막 찬송 ‘이런 기쁨 또 어디 있으리’를 부르시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마리아 집사님의 특송이 있겠습니다. 그 후 목사님께서 ‘견딜 수 없는 괴로운 경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시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여전도회 주최로 각 가정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 싸게 파는 재활용 세일을 가질 예정입니다. 각 가정마다 잊지 마시고 남편들을 꼭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에 있을 예정이던 ‘평화와 화합을 위한 기도회’는 회원들의 의견 충돌로 인하여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앞뒤 상황이 맞지 않는 광고문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 교회가 이런 모습이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교회가 정말 교회답지 못하고,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모습 속에 자기 정체성을 잃고 쇠약해졌습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 이를 찾기 위해선 최초 교회가 만들어진 장소로 가 봐야 합니다. 교회는 왜 만들어졌는지, 교회는 대체 이 세상에서 왜 필요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2.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마쳐가는 막바지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제자들과 더불어 3년 동안 복음을 전했던 예수님, 이제 그 열매, 그 결과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들은 그대로 대답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 또는 엘리야, 또는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합디다.’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했을까요? 무엇보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복음 선포 내용이 비슷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하는 복음의 주제가 같았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너무 아쉽게, 갑작스레 죽었기에, 그 요한이 예수님을 통해 현현했다고 믿었습니다.
 
엘리야, 왜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생각했는가 하면, 엘리야는 최대 선지자로, 수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한 선지자입니다. 이는 그만큼 예수님께서 기적과 이사를 많이 행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럼 왜 예수님을 예레미야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은 많이 그리고 자주 우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망하는 자기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회개하라고, 회개하면 살 수 있다고 외치며 얼마나 울었던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선지자’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그렇게 많이 우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자기들이 갖고 있는 성경 상식, 경험을 통해, 위대한 선지자, 위대한 스승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만하면 괜찮은 편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의 평가를 맘에 들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피상적으로 나를 접한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그러면 3년 동안 내 곁에서 동고동락한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고백하느냐?’
 
이에 베드로가 나서면서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고백한 이 내용 중에 오해할 만한 번역의 오류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한 말은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자이신 하나님의 그 아들이시니이다.’입니다. ‘주’라는 말이 없고 강조형 ‘당신은’이 앞에 있고, ‘그리스도’, ‘아들’ 앞에 정관사 ‘그’가 붙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고백하기를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 예수를 향하여, 당신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시마 약속된 그 메시아, 그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향해 ‘위대한 스승’에 머물러 있는데 반하여 베드로는 거기서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 예수인 당신은 나에겐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예수님 마음에 흡족하게 찾아들었는지, 예수님께선 베드로를 축복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에 대해 배워서 깨닫기보다 하늘의 영감으로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혈육을 통해 알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게 체험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신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은 혈육, 즉 인간적 공부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주시는 체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영적 직관에 의해, 영적 감동에 의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깨닫고 고백하는 체험 신앙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뻐하신 예수님, 이렇게 흡족하셔서 축복하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께서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바로 이 장면입니다! 세상에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첫 장면입니다. ‘교회’라는 단어가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교회는 왜 세워졌는가요? 예수님께서는 왜 교회를 세우시려고 했는가요? 여태까지 교회 없이도 잘만 계셨는데, 왜 갑자기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는 걸까요?
 
3.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언급하시는 시점에 주목합시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을 다 하셨습니다. 보여주실 것, 가르쳐 주실 것을 다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 하는가 확인했더니 ‘위대한 스승’ ‘위대한 종교인’ 정도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존경합니다. 심지어 그를 따르지 않는 무리들까지도 예수는 위대한 스승이라고, 4대 성인 중 한 분이라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고백이 나올 때까지도 ‘교회’를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교회’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러저러한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존경스러운 스승으로 이해들 할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교회가 필요 없습니다. 세미나실이면 족합니다. 강의실이면 다 됩니다. 강연장이면 오케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향해 용기 있게 ‘당신은 메시야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나의 구주 입니다!’라고 외치는 이들이 나타날 땐, 교회가 필요했습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역사를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가치관에 목을 매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세속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해 생긴 곳이 아닙니다.
 
그런 시각은 교회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 교회는 그 이상의 가치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인간 예수’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구세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모이는 여러분, 때로 세상은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신앙을 이해 못 하고 평가 절하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여러분은 좌지우지되지 마십시오. 그런 세상의 분위기에 함몰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여전히 여러분이 세상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런 분위기, 그런 세속적 가치에 여러분의 심령은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이 세우신 교회에 들어와 있다면, 더 이상 그런 세속적 가치관에 무너지지 마십시오.
 
종종 우리 교회 젊은이들은 회사에 취직하고 받은 첫 월급을 모두 교회에 들고 옵니다. 성경에 보니 첫 소득은 하나님의 것이니 온전히 드리라는 말씀이 생각나,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온전히 들고 왔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이해 못 할 일입니다. 어렵게 공부를 하고, 힘들게 취직하여 마침내 첫 월급을 탔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요! 그런데, 그걸 모두 하나님께 드린다? 세상에선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부모가 다 달래도 서운해하고 쭈뼛거릴 겁니다.
 
그러나 우린 그걸 할 수 있는, 그런 가치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예수님은 나에게 소중한 분, 가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선 이해 못 해, 심지어 ‘광신’이라고 평가 절하할지라도 그러나 그걸 도리어 아름다운 헌신이요 가치관이요, 신령한 용기임을 인정하고 존경하라고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의 세계,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세속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런 가치관으로 재단하지 마십시오.
 
요 몇 년 사이, 우리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쩔쩔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잣대로 교회를 평가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다고 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함에 한국 교회는 쩔쩔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들어야 할 것은 들어야겠지만, 고귀한, 성결한,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가치에 대해선 그걸 지켜야 합니다.
 
이 교회, 왕십리중앙교회, 지난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수많은 헌신들, 수많은 눈물들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이 교회는 찬란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해 왔습니다. 눈물겨운 봉사, 눈물겨운 헌신, 눈물겨운 섬김을 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세상의 가치를 멀리하고,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가치를 따라가는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로 인해 교회는 오늘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서는 서로의 믿음을, 그 신령하고 영적 가치를 존중하고, 격려하십시오. 세상 가치로 형제들을 판단하지 말고, 하늘의 영적 가치로 서로를 붙들어 주십시오.
 
가끔 교회만 오면 시험받고 간다고 속상해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살림 가운데서도 자기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여 교회를 섬기고,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하는데, 교회에 오면 몇 분들이 ‘아이구, 너네 집 애들이나 잘 키워라.’하고 눈치를 준답니다.
 
교회에선 세속의 가치관으로 형제와 자매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가치관, 신령한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족하다면 우리 예수님, 교회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세우지도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그런 가치로 가득하기에, 그런 가치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위해 만든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란 헬라어 단어가 ‘에클레시아’인데, 세상에서 불러내었다는 뜻입니다. 세속의 가치가 횡행하는 곳에서 하늘의 가치를 갖고 사는 이들을 불러낸 곳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 왕십리중앙교회에서는 신령한 가치로, 아름다운 신앙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성도의 거룩한 교제가 언제나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4.
이러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세상의 권세에서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권능을 교회에 부여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세속의 권세 중 가장 막강한 음부의 권세, 죽음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교회를 죽이기 위해 세력을 확장해 왔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말살하려고 역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에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종종 목사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교회 위기론’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큰일 났다고, 이대로 가다간 한국 교회는 망한다고, 문을 다 닫아야 한다고, 이미 닫는 교회가 있다고 걱정을 태산같이 합니다.
 
그러는 자리에서 내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왜 무너집니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음부의 권세가 이긴다고 주장하십니까?” 이렇게 말하면 많은 이들이 유럽의 교회들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유럽의 교회가 텅텅 비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관광지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유럽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는가요? 하나님의 교회들이 음부의 권세에 무너졌다고 생각하는가요?
 
그건 하나님의 뜻에 의한 일시적인 심판일 뿐입니다.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남은 자, 긍휼 얻은 자를 남겨놓으신, 언젠가고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증언해 주시는 바에 의하면, 음부의 권세는 결코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믿는가요?
 
그런데 왜 실제로 무너지는 교회들이 있는가요? 하나님의 다른 심오한 뜻이 있기에 그렇다고 여겨지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천국 열쇠를 가진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능력과 권세를 가진 교회가, 그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구중궁궐 깊은 곳에,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절대 비밀 금고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능력이 있는 교회가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부지런한 교회, 가장 영적 기운이 왕성한 교회는 능치 못함이 없는 천국 열쇠를 갖고 부지런히 하늘 창고를 열어 이 세상에, 교회 안에 베푸는 교회라고 믿습니다.
 
중보기도 사역으로 건강의 문, 회복의 문을 열어 연약한 이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성공의 문을 열어 무너지는 이들을 세워주어야 하고, 격려와 충만의 문을 열어 연약한 이들을 세워주어야 하는데, 그런 엄청난 권세를 갖고 있는 교회가 중보 기도의 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평생을 기도하며 살았는데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도했지 남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중직자이면서도 한 번도 기도회에 나와 남을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교회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간직만 하고 있지 역사가, 힘이 없습니다.
 
열망을 품고 간구하고 역사하여 하늘의 창고를 열어 교회 안에, 지역 사회 안에 듬뿍 듬뿍 베푸는 교회, 곧 축복의 통로, 생명의 통로가 되는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입니다.
 
5.
왕십리중앙교회, 오늘 교회 창립 119주년입니다. 119주년이라고 하니까, 몇 분 목사님들이 어제 내게 이렇게 축하해 왔습니다. ‘119? 우와 왕중교회는 한국 교회의 119이네요. 축하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한국 교회의 119가 됩시다.
 
119년 전, 이곳 왕십리, 우상과 미신이 횡행하던 이 땅에 외롭게 하늘의 역사를 따라가는, 주 예수를 고백하고 믿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가 왕십리중앙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가 하늘로 향했던가요! 이 교회를 통해 얼마나 많은 역사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왔던가요! 그 하늘의 축복과 격려 속에 얼마나 많은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이 이 교회에서 배출되었던가요!
 
이제 이 119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를 통하여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부디 주님께서 이곳에 왕십리중앙교회를 세우신 이유를 헤아려, 성도들간에는 더욱 뜨거운 사랑의 교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외부적으로는 더욱 활발한 영적 교류를 통하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하늘과 직통하는 권세 있는 교회가 되어 동네교회로 왕십리의 중앙 교회가 되는 새 역사를 쓰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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