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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부딪힐 때에”
2024년 01월 25일 (목) 10:16:00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요한복음 6:1-15)
 
 

1.
우리는 연초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앞길은 어떻게 될까요? 축복을 확신했고, 믿음으로 기도했고, 그대로 이루어질 줄 소망했으니, 우리 앞길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이 만사형통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집사님이 이러한 믿음과 소망 속에 출발했는데, 곧 큰 어려움에 봉착하였습니다. 어려움 속에 마음고생이 심한 집사님은 마음에 시험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그것을 굳게 믿었고, 주님께서 축복하심을 믿고 출발했는데 왜 이리 어려움이 생기는가? 왜 이리 일들이 꼬이는가?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심한 회의감에 집사님의 영성은 날로 침체되어 갔습니다. 이럴 경우, 여러분은 어떤가요?
 
2.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의 배에도 풍랑이 밀어닥쳤고, 폭풍우가 일어났으며, 그들은 때로 굶주렸고,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확신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그런 일들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예수님과 함께하면 그런 일은 근처도 오지 못하고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이라 여겨지는데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 일행에게 그런 어려움들은 계속 찾아들었습니다. 오늘도 그런 난처한 일을 당한 제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뱃새다 들녘에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 많은 무리에게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가르쳐 주시며 불쑥 이렇게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얼마나 난처한가요? 후에 그 수를 세어봐서 알지만 장정만 5천명이나 되는 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자 어른과 아이들까지 친다면 족히 만 명은 넘는 수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무슨 재주로 먹인단 말인가요?
 
예수님은 제자 빌립에게 물으셨지만, 사실 이것은 물은 것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그들을 먹이라!’
 
난처한 제자들입니다. 눈치 없어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요, 자기들은 가진 것이 없고, 설령 돈이 있다 해도 어디 가서 그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사다 먹일 것인가요? 그들은 당황하였습니다. 도무지 그들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궁극적으로 그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어떻게 해결되었을까요? 해결책이 어디 있었는가요?
 
예수님이 해결책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6절에 '친히 어떻게 하실지 아시고'라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지 답을 갖고 계신다는 것 아닌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해결될 것인지 다 아십니다. 그 문제 제기 자체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라면, 예수님의 일을 하다가 부딪친 문제라면 해결책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십니다.
 
그 뒤의 예수님의 행동을 보십시오. 친히 다섯 개의 보리떡을 손에 들고 축사하셨고, 친히 떼어 주셨고, 친히 두 마리의 작은 고기도 그렇게 주셨습니다. 그리곤 친히 남은 조각을 버림이 없이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다 하셨습니다. 문제에 부딪힌 제자들이 한 일이라고는 친히 행하시는 예수님께 순종한 것뿐입니다.
 
이 예수님을 신뢰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또한 친히 행동하십니다. 어려운 문제는 나에게 어려운 문제이지 예수님께조차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3.
그러면 이 어려운 문제들은 왜 우리들에게 생기는가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데도 왜 그런 난처한 일들에 부딪히는가요? 6절 하반절은 이렇게 그 이유를 말합니다. ‘시험하시려고.’
 
예수님은 때때로 당신의 제자들을 시험하십니다. 이미 자신이 해결책은 갖고 계시면서 우리들이 어떻게 하는 가 보려고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시는 문제들, 우리를 시험하시는 문제들은 사실 우리를 절망시키고, 주저앉히기 위해 내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증거하기 위해 하시는 시험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보여주기 위한 시험입니다. 사단이 주는 시험은 우리를 패망하게 하려고 이지만, 예수님이 친히 주시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한 선의의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최선을 다하여 나가는 데, 문제에 봉착했을 때 두려워 마십시오. 신경질 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내신 시험 문제입니다. 즉 이것은 내가 능히 풀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어떻게 풀 수 있다는 건가요? 우리의 능력으로? 천만에! 우리가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비록 하찮은 것일지라도 ‘예수님께서 하신다면 야’ 하는 심정으로 그저 순종하여 모든 것을 드릴 때에 쉽게 풀릴 수 있는 그런 문제입니다.
 
빌립을 보십시오. 그는 계산만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 조언합니다. 예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며 참견합니다. 그는 머리가 좋은 사람, 셈이 빠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벌써 척 보고는 예수님께 조언합니다. '어려울걸요.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힘들 걸요?' 그의 계산, 그의 리포트는 정확하였습니다. 그만큼 합리적이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는 이는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이는 이렇게 머리 좋고 지혜로운, 견문이 넓은 사람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이러쿵저러쿵 지적하며 논하는 사람이 교회의 역사에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필요로 하는 이는 그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잘난 것이든 못난 것이든 그저 어떻게 하시려면 하십시오 하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내놓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몇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늘 남의 것을 갖고 일하려고 한답니다. 남이 헌금하는 것, 남이 내놓는 것들을 갖고 일을 합니다. 자기의 것은 결코 내놓는 법이 없이 교인들이 내놓는 것으로만 일을 하려고 합니다. 누가 헌금 좀 안 하나... 이런 문제가 있는데, 이런 재정이 필요한데 누가 좀 헌신 좀 안 하나 ...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자기의 것을 정성껏 내놓고 그저 말없이 일하고 봉사합니다. 남이 내놓든 아니 내놓든 그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으며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필요한 이는 어떤 이인가요?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예수님께 드리는 이, 말없이 순종하여 일하는 이입니다.
 
보십시오, 안드레는 한 아이의 작은 것을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른다는 부정적인 의식이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그럼에도 그는 내놓습니다. 주님께서 하시겠다면 야 하면서 말입니다.
 
4.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예수님처럼 살자며 모두 열심히 앞을 향하여 나아갈 때, 순종하여 한 걸음 더 딛으려고 할 때 난처하고도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어찌할 것인가요?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던지시는 시험이라는 사실을! 진정 나의 믿음이 자랐는지, 과연 나에게 그러한 예수님의 일을 할 만한 믿음의 분량이 있는지 나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내 믿음이 그 놀라운 일을 감당할 만한, 한 걸음 더 딛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을 만천하에 입증하려는 예수님의 시험입니다.
 
그리곤, 한 가지 더 기억하십시오. 이미 예수님께서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인지 다 알고 계시다는 사실! 예수님이 해답입니다. 그저 예수님께 의탁하고 의뢰할 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감당하실 것입니다. 예수에게 해답이 있고, 길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그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정답은, 해결책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십시오. 맡기십시오. 헌신하십시오. 그러면 보잘것없는 나의 것들이지만, 예수님의 손에 들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친히 떼어 나누어주실 때 그것들은 내 삶 속에서 놀랍고도 풍성한 이적, 오병이어의 역사로 일어날 것이요, 부스러기만 모아도 12광주리에 가득 차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그 혼란스러운 상황, 그 두려운 현실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그 하나님께서 내가 가야할 길을 지도하십니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32:27) 하나님께서 묻는다. 네 길을 지도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그 하나님에게 못할 일이 있겠느냐?
 
“...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렘 32:17) 아멘! 이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산다고 모든 일이 순풍에 돛 단 듯이 만사형통으로 나아갈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을 것입니다. 분명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당할 것입니다. 어찌할 것인가요?
 
주님의 뜻이 아닌가봐 하며 뒤로 물러설 것인가요? 신앙의 묘미(妙味) 중에 묘미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가능해지는 놀라운 이적들을 경험하는 것 아닌가요! 자신이 볼 때는 다 틀렸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쉽게 풀리는 초능력적인 일들을 경험할 때가 아닌가요! 의사가 틀렸다고 진단 내린 것을 눈물로 기도함으로 평안함을 얻고 치유되는 경험, 다 망했다고 하는 데 간구와 부르짖음 속에 재기하는 경험, ... 이 짜릿하고 신바람 나는, 모든 것이 역전되는 그러한 삶의 경험들이 신앙의 묘미 아닌가요!
 
 
5.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계획대로 되어가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세운 그 치밀한 계획에 따라, 자기의 시간표, 설계도대로 자신의 삶이 그렇게 풀려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는 차라리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이 내 계획표대로, 내 설계도대로 되어가지 않기를! 때로는 우리의 일들이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여 뒤죽박죽, 쩔쩔매는 경우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별수 없이 주님께 무릎 꿇고, '주여, 주여'하며 기도로 매달리는 경우들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어, 나는 절망적이야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절망감 속에 휩싸여 정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매달리는 일들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내 계획표는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 대신에 내 삶이 주님의 계획표로 옮겨져 주님의 의도, 주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내 계획표대로 되어간다면 거 무슨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무슨 짜릿한 은혜의 세계가 있겠습니까? 내 모든 계획과 의도와 능력은 물거품이 되어도, 내 삶은 주님의 손에 들어가, 주님의 뜻대로 인도함 받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능력의 삶이 열릴 것입니다.
 
늘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인생을 이끄는 이들은 더 이상 놀라운 주님의 능력과 은혜의 세계를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함 속에, 문제 속에 쩔쩔매며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이들, 이젠 다 틀렸습니다 하며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은 놀랍게도 태산같은 문제가 쩌억 갈라지고, 굳게 닫혔던 문들이 활짝 열리며, 넘실대며 내 모든 것을 삼키려던 바다가 쫘악 갈라지는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차라리 이런 경험들이 여러분 앞길에,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여러분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때때로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물을 쏘옥 빼놓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철렁하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잠을 더 이상 이룰 수 없어 한밤중에라도 성전으로 달려오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금식을 하며 맘을 졸이며 주님께 기도하고 기도하는 그런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왜? 여러분 골탕 먹으라고 그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의 능력과 은혜의 세계 속에 살라고, 그 놀라움, 그 희열과 기적적인 삶을 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주민들이 도무지 교회에 나오지를 않았습나다. 그러는 중 그 마을 유지의 외아들이 들에 나갔다가 방울뱀에 물렸습니다. 의사는 없고, 이웃 마을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겠고 하여 할 수 없이 교회로 사람들이 이 아들을 데리고 몰려왔습니다. 그리곤 목사님께 기도로 고쳐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주님, 이 불쌍한 아이를 살려주옵소서. 꼭 살려주옵소서. 그리고 주님, 더 많은 방울뱀들을 보내어 주옵소서. 이들이 이제야 주의 전이 기억나 찾아오기 시작했나이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잘 살다 보면 기도할 일도 없어지고, 눈물 흘릴 일도 없어지고, 겸허해 질 일도 없어집니다. 마음 졸일 일도, 철야할 일도 없어집니다.
 
이런 이를 다시 주님 앞에 나오게 하려면, 주님의 그 은혜의 세계에서 살게 하려면 인생의 방울뱀들이 가끔은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방울뱀에 물리기 전에 주님 앞에 바른 신앙적 삶을 살면 되는데, 아쉽게도 인간은 대개 그렇지 못합니다. 물려야 정신 차립니다.
 
뜻밖의 실패를 맛보고, 몸이 병들고, 우환이 들고, 삶의 현장이 무너질 때, 우리는 그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는 거야.’ 맞습니다. 그러나 말이죠, 당하기 전에 주님 앞에 바른 삶을 살고, 기도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어려움을 당하고 무너질 때, 더욱 예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십시오. 예수님이 해결책입니다.
 
6.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예수님의 씨앗으로 예수님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겠다고 나아가는데도 어찌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힐 것입니다.
 
문제 중의 문제에 쩔쩔맬 일이 생길 것입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냉가슴 앓는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 때 기억하십시오. 정말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그 해결책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어떻게 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뢰할 때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가능해지는 신앙의 세계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내 믿음을 시험코자 던지시는 예수님의 인생 시험문제에 낙제하지 마시고, 굳센 믿음과 소망, 그리고 인내함 속에 주님께 인정받고, 주님 주시는 그 놀랍고도 놀라운 신앙의 기적 세계 속에서 한 걸음 더 딛는 복이 있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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