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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죽는 예수 신앙”
2023년 12월 01일 (금) 09:52:18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마가복음 12:1-12) 
 

1.
언젠가 어느 여 교수가 이런 간증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연 과학 계통의 교수인데 남편과 함께 일류 대학을 나왔고, 남편은 한 회사의 사장으로, 지성과 재산 어느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도 어려서부터 다녀 기독교적인 교양이 몸에 배어 있는 외형적으로 볼 때 좋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녀에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이 안 계셔도 불편한 것이 없고, 믿음을 안 가져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구나.” 자신이 가진 재능, 학식, 재물, 경험, 인간관계를 십분 잘 활용하고 열심히만 살면 1등도 하고, 존경도 받고, 인정도 받으며 언제나 남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세칭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기에, 구태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맨날 야단만 치고, 듣기 거북한 말만 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늘 자기를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 들려 왔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주일날 일거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핑계로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매를 드실 때까지 그리하였다고 간증하더라구요.
 
2.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 그야말로 부족함이 없는 좋은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주인은 세를 받을 때가 되어 종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포도원 농부들이 그 종을 잡아 때렸습니다. 왜 때렸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농사도 잘 안됐는데 세를 달라고 하니 화가 나서 그랬는지 종을 때리곤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주인은 화가 났지만, 그래도 참고 또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농부들이 그 종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습니다. 모욕을 준 것입니다. 기가 막힌 주인이었지만, 꾸욱 참고 계속 종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계속 찾아와 주인의 소출을 달라고 요구하는 종들이 귀찮아서 이젠 때릴 뿐만 아니라 급기야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포기하겠지 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농부들의 위세가 그만큼 커진 모양입니다. 얼마나 많은 종들이 농부들에 의해서 맞고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주인의 태도였습니다. 주인은 당장에 쫓아와서 모두 내쫓아 버릴 만한 데 그러지 아니하고 끈기 있게 계속해서 종들을 보냈습니다. 계속 종들이 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자, 주인은 생각하기를 아마도 종들은 권위가 안 서서 그러나 보다 하여 이번에는 유일한 자기의 아들, 자기나 다름없는 외아들을 보내어 합당한 세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주인의 기대와는 달리, 주인의 아들을 보자, ‘잘 됐다 이 아들마저 죽여 버리면 상속자가 없기에 이 좋은 포도원은 우리 것이 될 것이다’ 하여 주인의 아들을 살해하여 성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마침내 아들마저 살해당하자 주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이들에게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표면적인 이야기 보다 그 안에 감추어진 내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더구나 이것은 예수님의 비유로 예수님께서 하시고픈 말씀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누구에게 말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12절,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그들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누구인가요? 11:27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당대 유대교 지도자들, 교권주의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예수가 자기들을 빗대어 한 말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기들의 권력으로 붙잡으려 했지만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야기에 빠져있기에 사람들이 무서워 못하고 말았습니다.
 
3.
그러면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몇 가지가 보입니다. 그중에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만들어 주신 내 인생의 포도원은 완벽한 것이란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16:6)
 
그런데 왜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믿음의 원리로 말한다면 간단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6-17)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살면 행복한데, 세상에 있는,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려고 하니 늘 불만이요 불평이요 부족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내 삶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주셨는지, 얼마나 완벽하게 세우셨는지를 알게 되는데, 쓸모없고 쓸데없는 것에 마음 뺏기고 사니까 불행이요 불평인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단란한 가정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 세상 사람들의 가치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돌아보니 자기처럼 답답하고 불쌍한 인생이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고백은 했지만, 사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늘 눈물, 근심, 걱정, 분함, 도망다님, ...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기에!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그 모든 것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복을 받았다, 축복 받았다 라고 할 때, 어린 애 같은 생각마십시오. 아무리 복을 받았어도 이 세상에 실제로 아무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만족함 속에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살면서 다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뭐? 신뢰, 믿음, 기대감!
 
어떤 신뢰? 어떤 믿음? 어떤 기대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의 삶의 현실은 늘 부족함 투성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족함이 없을 것을 고백합니다. 어째서? 지금은 비록 그러하여도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채우실 것이다, 벗어나게 하실 것이다 하는 기대감이 충만했고, 그러다 보니 현실은 힘들어도 그의 마음은 천국이었습니다.
 
마음마저 힘들 때에는 자신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11) 노래가 있는 한, 찬송이 있는 한 내 인생, 내 삶은 괜찮은 겁니다.
 
4.
이렇게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때가 이르자 소출을 원하십니다. 열매를 원하십니다. 2절의 ‘때가 이르매’에, ‘때’라는 단어 앞에 원어 성경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때가 이르매’, 무슨 소린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냥 포도원을 만들어 주시고 네가 알아서 해라 하셨다면 별 거 아닌데, 때를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 인생을 우리에게 주시며 약속하신 그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이르매, 원하십니다.
 
못들은 체 하는 우리들에게 계속 종을 보내시며 원하십니다. 삶의 열매를 원하시고, 삶의 결단을 원하시고, 삶의 헌신과 나눔을 원하시고, 돌아서기를,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때, 약속한 때, 작정한 때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새 성전에 입당한 후에 한때 우리 교회에 초신자들이 많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도대를 내보내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교회는 전도대가 아예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타 교회들이 하듯이 전도, 전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으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삶의 자세로 살아갈 때 우리의 변화된 삶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받아 같이 교회 따라 나오는 것이 참 전도라고 믿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등록하는 초신자들은 그 누구의 전도도 받지 않고 교회에 나온 이들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가 이르매’ 그분들에게 종들을 보낸 것입니다. 말씀의 종, 감동의 종, 감성의 종, 이성의 종, 연륜의 종을 보내어 교회로 나올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젠 교회 나가 보지?’ 또는 ‘이젠 교회 나가 볼까...’하는 마음을 주시고 결단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곤 이분들은 정말 귀하게 그 부름에 순종하여 교회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등록하신 어느 분의 등록 카드에 이렇게 적혀 있었던 것을 내가 기억합니다. “처음 기독교를 믿습니다. 잘 인도해 주세요.” 이 얼마나 귀한 분들인가요?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이들, 이들로 인해 천국은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이들은 그 감동, 그 부르심에 철저하게 반기를 듭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까지 다 자기 것이라고 반기를 듭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고, 약속을 한 것인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계약서를 쓰고 준 것인데 세월이 지나가자 마치 본래부터 영원히 자기 것인 양 행세를 합니다.
 
내가 지금도 인상깊게 기억하는 것이 있는데 1997년 7월 1일에 홍콩 반환식이 있었습니다. 1898년부터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지고 영국에 99년간 사용권을 주어다가 99년 만에 중국이 돌려받는 것인데 그 반환식에서 영국 사람들이 얼마나 아까워하는지, 얼마나 눈물을 흘리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마치 자기 거였는데 빼앗기는 그런 감정이더라구요. 굉장히 인심 쓰는 것 같이 돌려주더라구요. 자기 게 아닌데 말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움켜쥘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는 감동들을 죽여 갑니다. 하나님께선 때가 이르자, 내 인생에 계속 뭔가를 요구하시고 돌아올 것을 원하시는 감동을 말씀을 통해, 설교를 통해,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하시는데, 그런 감동들을 죽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핍박하고 미워하고 살해하고, 그러더니 마침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5.
정말 이상한 일은, 농부들은 왜 주인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자기들이 그렇게 하면 결국 주인이 돌아와서 자기들을 진멸할 것이란 사실을 왜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계약서가 있는데, 분명히 자기 것이 아닌데, 세 얻어 살고 있으면서 왜 그랬을까요?
 
죄악에 빠지는 이들,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이들은 다 이렇습니다. 실지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진멸하신다는 사실을 그냥 추상적으로만 받아들이게 합니다. 설마하니 그러겠어 하는 자세를 갖게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선 그 좋은 파라다이스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탄이 찾아와 그럽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는데, 사탄은 ‘설마 그거 했다고 죽이겠어? 괜히 겁주는 거야’하는 식으로 내게 속삭입니다. 농부들이 그랬을 것입니다. 설마 주인이 그렇게까지 하겠어...?
 
자기들이 행하는 악에 대해서,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모욕주고 살해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상대방, 주인이 그렇게까지야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설마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하시겠어? 아무리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다지만, 그거야 성경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설마하니 요즘에도 그러시겠어 하는 그 자세는 사탄이 심어주는 자세이며, 그 설마가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징계 앞에 꼼짝 못 하게 합니다.
 
6.
주인이 종들을 보내고, 아들까지 보낼 때는 징계하려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합당한 소출을, 다시 말해 합당한 성도의 삶을, 올바른 청지기 생활을 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그만큼 신앙 생활했으면 이젠 영적 강골이 되라고, 예수의 사람이 되라고, 성도답게 살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생활 자세를, 신령치 못한 가치관들을, 습관들을 죽이고 성도로써 바른 자세를 갖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죽여야 할 것은 죄와 탐욕, 욕심과 교만인데, 도리어 그것들은 살고, 그것을 지적하는 예수는 죽입니다. 신앙 양심을 죽입니다! 죽어야 하는 것은 나인데, 실지 죽는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란 삶의 자세로 예수가 살아나게 하라고 말씀을 주시고, 감동을 주시는데, 그렇게 하기엔 부담스럽다고, 손해 본다고, 바보 소리 듣는다고 죄와 탐욕, 욕심과 교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예수 신앙, 예수 양심을 죽입니다. 예수 신앙이 살아나야 하는데 말입니다.
 
말씀의 도전을 받고 죽어야 하는 것은 세속적인 나인데, 도리어 기분 나쁘다고, 자존심 상했다고, 시험들었다고, 예수 신앙만 죽이고, 기도 시간만 죽이고, 묵상 시간만 죽이고, 교회 출석만 죽이고, 봉사 시간 줄이고, ... 그리곤 마침내 그 말씀조차 죽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통하여 죽어야 하는 것은 나의 욕망, 세속적 가치, 온전치 못한 생활, 미움과 증오, 쑤군거림, 정결치 못한 습관, ...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렇게 가책받는 것이 싫다고 아예 교회 출석을 안 하고, 기도도 안 하고, 봉사도 안 하고, ... 예수 신앙이 죽어 가고 있지 않은가요?
 
7.
오늘은 교회력으로 연말입니다. 이제 다음 주일부터 대림절, 교회력으론 새해가 시작됩니다. 교회력, 신앙인들의 달력에 의하면 연말이 오늘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 주님께서 때가 되어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신앙인의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가요?
 
혹시 예수님이 아직도 매일 내 안에서 죽어 가는 것은 아닌가요? 예수가 살고 나는 죽어야 하는데, 자꾸만 예수가 죽어 갑니다. 예수님을 살리고, 나를 죽이십시오. 그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6-8,13)
 
말씀을 들을 때, 기도를 드릴 때, 찬송을 올릴 때, 설교를 경청할 때, 죄악이 죽고, 몸의 행실이 죽고, 자존심이 죽고, 예수님이 살아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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