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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모든 일에”
2023년 11월 14일 (화) 11:19:01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이사야 45:5-10) 
 
1.

뉴욕의 한 주택가, 저녁 무렵에 한 사람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불빛이 들어오는 집들을 바라보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에 불이 들어와 집안의 모습이 불빛에 드러나는데, 어떤 사람이 한 여자아이의 옷을 벗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저항하고 있고 벗기려는 사람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이 사람은 직감적으로, 아이만 있는 집에 강도가 들어가 아이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큰일이다 싶어 얼른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경찰이 출동하여 급습하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창문을 깨고 들이닥쳤습니다. 경찰은 아이의 옷을 벗기려는 사람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을 아동 성폭행 미수와 강도 용의자로 체포한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 아이는 내 딸인데, 새 옷을 입히려는데 구질구질한 옷을 벗지 않아 벗기고 있는 중이오!”
 
벗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옷을 벗기는 것은 아이에겐 고통이요 고문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강제로라도 옷을 벗기는 것은 그보다 더 좋은 옷을 주려는 것입니다. 모르는 이가, 남이 옷을 벗기는 것은 고통이지만 부모가 벗기려는 것은 사랑입니다.
 
올해 어땠습니까? 많은 것을 잃은 이들이 있을 겁니다. 건강, 직장, 지위, 명예, 친구, 돈, 사업체, ... 잃은 이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그러나 그것을 가져간 이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새것을 주시기 위해 옛것을 가져가신 게 아닐까요?
 
요즘에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는 손경식 목사의 ‘감사’라는 찬양 가사를 보면 이런 게 있더라구요.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돼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 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감사, 내게 고난주셔서 주 뜻 알게하신 것, 모든 것 감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모든 것, 모든 일에 감사하는 찬양입니다.
 
2.
오늘 말씀을 보자. 5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여호와, 스스로 있는 자! 누구에 의해, 무엇에 의해, 경기 흐름으로 인해 할 수 없이 망하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의 뜻에 의해 역사하시는 분!
 
이 여호와 하나님을 내가 모른다고 하나님의 역사와 나는 상관이 없는가요? 아닙니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내가 의식하든 못하든,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내 삶의 띠를 동이십니다.
 
띠를 동인다구요?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선한 뜻으로 나를, 내 인생을 이끄신다는 것! 내가 그것을 의식하든 못하든,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나를 이끄십니다.
 
어떤 방법으로 이끄시는가요? 7절,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 하나님은 평안만 만드시는 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환난도 만드십니다. 빛도 어두움도 그 분께서 만드셔서, 필요에 따라, 당신의 선한 뜻을 따라 사용하십니다.
 
내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은 내 인생에 빛을 비추시고, 때로는 어두움도 깃들게 하십니다. 여러분, 햇빛만 비추면 뭐가 되는 줄 아시죠? 사막이 됩니다. 빛만 비추는 인생, 결국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황량한 사막 같은 인생이 됩니다. 늘 인기 연예인 같이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살고 싶죠? 곧 삭막한 삶이 됩니다. 옆집에도 맘대로 못 가고, 슈퍼도 못 갑니다. 삭막해집니다.
 
내게 빛을 주시는가 하면 어느 순간엔 어두움을 주십니다. 형통하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엔 하는 일마다 막힙니다. 답답해 죽겠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어두움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옳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극과 극이지만 적당히 공존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 빛이 들어 세인(世人)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환한 기쁨! 그리곤 어두움이 깃들어 세인에게 잊혀진 듯한 적막감, 외로움, 그래서 걱정!
 
그러나 그 빛과 어두움엔, 그것이 내 인생에 비추이고, 깃들 때는 다 이유가 있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들입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심심해서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과 환난! 평안만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환난도 따라옵니다. 그렇다면 환난을 당해도, 거기엔 하나님의 의도가 있지 않을까요?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찬송가 373장 1절이 이렇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얼마나 감사한가요! 고요한 바다, 불어오는 순풍! 과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
 
그런데 조금 있으니 2절 가사,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큰 물결, 풍랑이 일어납니다. 쉴 수가 없습니다. 염려스럽고 피곤하고 불안해 죽겠습니다. 맘 졸이며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이어지는 가사를 아시죠?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물결 때문에 쉬지 못하고 근심 걱정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 빨리 가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소원의 항구로!
 
그러므로 많은 것을 잃는 환난을 당해도 이 믿음과 신뢰 위에 감사합시다. 적어도 그 환난조차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믿고 감사합시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요! 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갖고 뭐 하시는가요? 왜 내 인생에 불을 껐다 켰다 하시는가요? 8절,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를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대조적인 이것들을 갖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내 인생에서 무엇을 맺으시는가요?
 
의(義)!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리곤 계속 붙들어 의로운 삶을 살도록 하시며, 의의 열매를 맺도록 내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의, 올바르게 살게 하십니다!
 
3.
그러므로 여러분, 이어지는 9절을 보십시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그 하나님과 더불어 나를 왜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냐고 다투어 무엇 하겠는가요? 어리석은 짓입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만든 것, 다 의도가 있어서 만든 것!
 
중요한 것은 그 모습, 그것을 갖고 자신의 삶을 극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평생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의 내 인생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자신의 가치를 최고조로 올려놓으십시오. 어디에서나 쓰임 받을 수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십시오!
 
요9장에 보면,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겁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조상 죄 때문입니까? 어쩌다가 이렇게, 누구 죄 때문에 이렇게 불쌍한 인생이 된 겁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십니다. 그 누구의 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무슨 뜻인가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 핸디캡이 있으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는 시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뭔가 그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거랍니다. 즉 그는 훌륭한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붙드신 훌륭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런 자식이 있을까요? 자기 부모를 향하여 “왜 나를 낳았소? 이 팔자 책임지시오. 왜 이 모양으로 날 낳았냐 말이오!”하는 자식은 없습니다.
 
TV에서 모델 선발대회를 보던 뚱뚱한 딸이 옆에서 같이 시청하던 엄마에게 투덜댑니다.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뚱뚱하게 낳아서 저런 데도 못 나가게 하는 거야?” 그러자 엄마가 그럽니다. “얘, 말은 똑바로 해라. 내가 너 낳을 때 넌 분명 2.8k였다!”
 
부모 보고 왜 나를 이 모양으로 낳았느냐고 하는 자녀들,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그런 자녀들에게는 “화있을진저!” 잘 될 게 없습니다. 그런 자녀는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는데 어찌 잘 되겠는가요?
 
세상에 이런 자식도 잘 될 게 없는데,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왜 이 모양, 이 꼴로 나를 만들었냐고 한다구요? 그 질문, 불평, 투덜댐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어 각기 다르게 만들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핸디캡, 어려운 상황을 놓고 왜, 왜, 왜 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를 찾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그 오묘하신 이끄심을 신뢰하고 노래하는 하늘 백성들입니다. 할렐루야!
 
4.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를 감사하라면, 우리들은 늘 벌은 것, 출세한 것, 얻은 것 ... 등등 내 손에 움켜쥔 것만 챙깁니다. 그것만 해도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내 인생 끝나지 않았다면, 올해 나에게 일어난 모든 것에 감사하십시오. 기쁨과 눈물, 빛과 어두움, 취직과 실직, 건강과 병듦, 승진과 명퇴, 평안과 환난, ...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에 감사! 마음 저리게 아팠던 것들조차 감사, 밤새 뜬눈으로 새웠던 것들조차 감사! 부끄러워 숨어 지내고 싶었던 일들까지 감사!
 
왜? 나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 기쁨과 슬픔, 환희와 분노, ... 이 모든 것들을 갖고 내 인생을 멋지게 이끌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결코 하나님은 내 인생을 파멸로 끝맺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신뢰하기에!
 
그러기에 성경은 엡5:20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하되 범사에, 그리고 항상! 시간적으로 항상 감사! 사건을 놓고는 모든 일에 감사!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 나에게 일어난 모든 것에 감사합시다. 그 감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선하심을 신뢰하는 감사가 마침내 내 인생에 의의 열매로 가득 맺힐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손경식 목사님의 찬양 ‘감사’, 함께 불러봅시다.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돼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 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감사, 내게 고난주셔서 주 뜻 알게하신 것, 모든 것 감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항상 주안에 있음 감사, 참된 소망주심도 감사, 나 같은 사람도, 자녀 삼아주신 것, 모든 것 감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일어난 모든 일에 감사합시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꼭 그리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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