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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40년, 후회되는 4가지
2023년 10월 18일 (수) 11:05:28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서울노회 은퇴목사회 수련회 특강 원고: 10월 16일 춘천)
 
목회 40년, 후회되는 4가지 
(마25:41-46)
 
때로 교회에서나 무슨 집회에서나 간증하는 분들이 하나님이 자기만 특별히 사랑하여 은혜와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처럼 말할 때에 듣기가 거북합니다. 간증이나 회고담의 기본은 자기는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나 하나님이 은혜로 붙들어 주셔서 여기까지 오게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40년 목회 중 잘한 것보다 못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특강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목회 40년을 되돌아보면 후회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제목으로 특강을 하는 이유는, 은퇴한 70대, 80대 우리 입장에서는 새롭게 무슨 사역을 할 수도 없고 이제는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고 정리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한 점은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은 회개하기 위함입니다.
 
첫 번째 후회되는 점은 부교역자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56년 전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장신대에 입학한 후 고향교회인 춘천 성결교회에서 7개월 교육전도사 일을 했고 그 교회에서 설립한 개척교회에서 3개월 동안 전도사로 사역했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부터 마석에서 10리 들어간 천마산 밑 가곡교회에 교육전도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농촌교회로 가게된 이유는 제가 농과대학 출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서울서노회 도원동교회에서 시무하시던 이동섭 목사님이라는 분이 담임목사로 부임했는데 그 목사님은 북한에서 혼자 월남한 분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북한에 아내를 두고 월남한 분들은 남한에 와서 재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목사님도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에 멋쟁이에 돈도 어느 정도 있는 어느 과부 집사님이 항상 사택에 드나들면서 반찬이나 양복이며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지 결국 정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게 됨으로 그 교회에서 사임하고 시골교회에 부임하면서 일체 사례금을 받지 않는 대신 농과대학 출신 신학생을 쓰고 싶다고 실천부 담당교수에게 요청하는 바람에 제가 선정된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꿈은 그 마을을 선린촌과 같은 곳으로 만들어 많은 청소년들을 상록수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양계장을 운영했습니다. 저는 그 교회 교육전도사로 일하면서 토요일밤은 청소년회를 지도하고 주일날은 교회학교와 성가대, 밤에는 설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동섭 목사님은 신설동 장로회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던 분이요, 도원동교회에서 하던 원고설교를 그대로 들고 나와 설교하는 탓인지 농촌교인들이 듣기에 너무나 어려운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중 ‘도그마’니 ‘케리그마’니 ‘카이로스’ 등 헬라어 원어가 섞어 나올 정도니 알아듣겠습니까?
 
그런데다가 설교시간도 40분 정도이니 교인들 대부분은 졸기 일수였습니다. 그런데 비해 신학교 2학년짜린 저는 밤에 설교할 때 성경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인들이 말하기를 “담임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어려워 알아듣기가 힘든데 전도사님의 설교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이 소리가 담임목사님의 귀에 들어가니 그 분이 저를 이유없이 미워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 분의 추천으로 강도사나 목사 고시를 치루어야 했으나 그저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목사고시에 합격한 후 다른 교회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하던 양계장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분이 일꾼들을 두고 운영하려니 계속 적자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 목사님은 양계장을 팔고 다른 교회로 가게됨으로 억지 춘향으로 제가 담임목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담임목사 됨으로 은근히 어깨에 힘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기목회에 입장에서는 목사고시에 합격되자 담임목사가 된 것이 마이너스가 되었다는 것을 훗날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담임목사는 40대 초반에 됩니다. 그렇다면 10년 정도는 어느 훌륭한 담임목사님 밑에서 부교역자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훈련했다면 내 목회가 훨씬 풍성한 열매를 맺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생깁니다. 목사안수를 받자마자 31세에 농촌교회 담임목사가 되었고, 35세 나이에 서울 홍익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했으니 누구에게 지도 받았겠습니까? 그런 관계로 거의 제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목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기도하다가 떠오른 목회안을 그냥 고집스럽게 밀어붙임으로 당회나 교인들이 당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목회 방법이 어느 때는 교회발전에 큰 도움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어느 때는 시행착오를 일으킴으로 리더십에 심한 상처로 남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담임목사 밑에서 철저히 훈련받았다면 저의 목회는 훨씬 발전하고 성숙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부교역자는 어느 담임목사 밑에서 훈련받던지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습니다. 물론 어쩌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담임목사 밑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들도 다 똑같지 않습니다. 세상에 만점짜리 목회자는 없습니다. 받은 바 은사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적으로 보면 다 각각 장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면에서 뛰어나면 저런 면에서 부족한 것입니다. 어느 목회자는 설교를 잘하나 행정에 미숙해서 많은 허점이 보입니다.
 
어느 목회자는 사랑이 많아서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나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지 못해서 실수가 많습니다. 어느 목회자는 서재에서 깊이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심방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므로 교인들의 불만을 사기도 합니다. 어느 목회자는 장례식이나 심방도 잘하고, 혹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큰 가슴이 있으나 강대상에서 외치는 그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답답합니다.
 
그러므로 부교역자들은 자기가 섬기는 담임목사를 통해서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배우고 단점은 단점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세 지도자가 나옵니다. 먼저 위나라 조조인데 장군으로 표현하면 용장(勇將)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장군입니다. 독재자로 의론형이 아니고 지시형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부하들도 사정없이 몰아세웁니다.
 
실리에 별로 도움이 안 되거나 자기보다 월등한 느낌이 들면 가차 없이 제거합니다. 결국 성공의 자리에 앉지만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오나라의 손권으로 지장(智將)입니다. 지략이 뛰어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용병술이 뛰어난 지도자입니다. 매사를 부하들과 의론하고 추진하는 형으로 현대 지도자가 따라야 할 유형입니다.
 
세 번째는 촉나라의 유비입니다. 그는 덕장(德將)입니다. 그는 뛰어난 면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때는 얼마나 무모한지 수십만의 군사로 추격하는 조조에게 수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쫓겨 가면서도 신야로 갈 때에 백성들이 울면서 따라오는 것을 거절하지 못함으로 제갈량이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뤘지만 그 일로 인해서 제갈량은 유비가 큰 그릇임을 발견하고 자기 주군(主君)으로 섬기기로 결단했던 것입니다.
 
유비는 인재를 진심으로 아낄 뿐 아니라 자기보다 탁월해도 큰 가슴으로 부하들을 진심으로 아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수하의 부하들은 그를 진심으로 따르면서 목숨을 다해 충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셋 중에 어떤 인물에 가깝습니까? 용장입니까? 지장입니까? 덕장입니까? 여하튼 제가 30대 나이에 위의 세 가지 유형 중 어떤 담임목사이든지 그 밑에서 훈련을 받았다면 저의 40년 목회는 더 원숙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후회되는 점은 성공과 복을 너무 강조해 왔다는 점입니다.
1975년 35세 나이에 한양대학교 뒤편 아주 빈촌인 사근동 마장동에 있는 홍익교회 부임했습니다. 그때 당시 청계천 변에 가득 메웠던 판자촌들을 철거하고 성남으로 대거 이전시키던 때였습니다. 그런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교회에 부임한 후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감이 그 당시 크게 영향을 주고 있던 번영신학(繁榮神學)을 추종하게 되었던 것이라 반성하게 됩니다.
 
홍익교회 부임했을 때 노회 안에 농촌교회 외에 서울시에 위치한 42교회 중에 끝에서 3번째로 작은 교회였습니다. 110평 정도의 대지 위에 세워진 30평의 낡은 교회당과 사택이 건물 전부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려면 버스 장으로부터 15분 정도 언덕으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그 언덕도 한양대학교 부지가 대부분이어서 거의 공지(空地)로 방치된 채 몰래 버린 쓰레기와 분뇨 동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하여 코를 막고 다닐 정도이니 교인들이 모여 들기에는 너무나 불리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탓인가, 노인목사님이 목회하는 7년 동안 주일 장년 집회수가 50여명 선에서 멈추어 있었습니다. 부임하고 받는 압박감은 교회성장에 대한 부담이었습니다. 내세(來世) 설교를 주로 했던 노인목사님과 달리 그 당시 한참 붐을 일으키던 로버트 슐러식의 긍정적인 신앙, 영적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임 당시, 교회 부근이 산동네와 청계천 판자촌 지역이었기 던 탓에대부분의 교인들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전임 교역자인 김관호 목사님은 가난한 교우들이나 환자들을 심방하면서 이불 밑에 돈을 두고 오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렇게 길들어진 탓인가, 교인들은 목회자를 대접할 줄도, 혹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전임 교역자를 그리워하면서 도움받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면서 받기에만 익숙한 교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패배의식으로 가득찬 교인들을 보면서 영적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언제까지 성전 앞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와 같은 신자의 모습을 보일 것인가? 성전 가까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치던 베드로와 요한의 목회 방법을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교회 나오지만 여전히 앉은뱅이 신자로 사는 저들을 일으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리라(행3:1-10).
 
어느 주일 아침에 왕상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중심으로 설교했습니다. 엘리야가 한 끼 뿐인 밀가루와 기름만 가지고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먹을 물과 떡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엘리야는 삯군 목자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엘리야가 그런 몰인정한 명령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르밧 과부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려는 뜻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3년 이상의 가뭄 속에서 살 수 있는 기적의 밀가루통과 기름병을 받게 하시려는 뜻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우리 교우들도 이제는 만년 가난을 떨치고 일어나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자가 대심방할 때 물 한잔, 라면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고 정성껏 심방헌금을 바쳐보라고 강조했습니다.
 
생판 남에게 만 원 한 장도 제대로 꾸지 못하는 소극적인 제 성격에 ‘대접하라,’ ‘헌금을 바치라’는 설교를 얼굴 두껍게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교우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욕심 많은 목회자로 비쳐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설교하기 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설교준비에도 심혈을 기우렸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설교하기 전에 우리 가정부터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주방시설이 없던 때라 주일날 늦게까지 수고하는 교사들이나 봉사자들을 위해서 식사 대접을 하고는 했습니다. 사실, 박봉에 불과한 목회자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부부가 앞장 서서 봉사하면서 설교한 탓인지, 상처를 받기는 커녕, 많은 가정들이 웅크렸던 손을 펴고 점점 대접과 헌금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접하면서 어둡던 얼굴에 환한 기쁨이 피어나고 지지궁상의 늪에 빠졌던 생활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전세방에서 자기 주택을 구입하는 등, 교인들의 삶이 점점 윤택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교인수가 많아지고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목회를 강행하는 동안, 거지 나사로 같은 연약하고 소외된 교인들이 남몰래 상처받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십일조도 열심히 하고 새벽기도와 수요예배, 구역예배에 참석할 정도로 충성하는 교인들 중에 그런 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일등 신자라는 자부심이 있음에도 사업이 위기를 만날 때, 자녀들의 진학이나 취업이 부진을 만날 때, 점점 몸이 병들어 갈 때, 부부 관계가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이 자기들을 외면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에 시달리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했더니 이처럼 많은 복을 받았다는 간증을 당당하게 하고 싶은데 세상적으로 무엇 하나 내놓을 것이 없는 초라한 모습을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보여 부끄럽다는 말을 할 때 몹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지금 영국 공동체 브루더호푸에서 살고 있는 딸의 큰 아이가 자라면서 ‘지체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런 가정들의 아픔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성경이 말하는 복과 은혜를 바로 설교함으로 기복주의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목회 후반전에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 교인들이 시험에 듭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고 말할 때, 그 복을 세상적인 개념에서 이해하고 믿으면 실족하게 됩니다. 기복신앙이 왜 잘못되었습니까? 세상 기준의 복인 물질과 출세, 건강과 성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기복 신앙에 빠지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설교자가 기복적인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에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한 교인들은 복 받은 교인으로 높임을 받고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분들은 실패한 교인으로 취급받는 풍토가 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런 기복주의 기준으로 본다면 예수님도 실패한 인생이요, 사도 바울도, 대부분의 선지자들도 실패한 신자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바뀌면 법이 바뀌고 가치 기준이 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분명 세상의 가치 기준과는 다릅니다. 눅16장에 나오는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실패자요, 나사로는 성공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무하는 동안, 성공한 다섯 처녀들과 많은 달란트를 남긴 성공한 신자들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후회됩니다. 교인들을 마25:1-13에 나오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과 마25:14-30에 나오는 달란트 남긴 충성된 자들로 열심히 양육하는 동시에, 마25:31-46에 나오는 사회적 약자인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졌어야 옳았습니다.
 
한번은 충성을 많이 하던 교우의 시골집을 초청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립식 주택이며 잔디 정원이며 온상이며 너무나 잘 꾸며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니, 서울에 아파트가 있으면서 여기 시골집은 한 달에 몇 번 올 정도인데 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꾸며 놓았는가?”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20대의 큰아들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었을 때 부부가 너무 힘들어 이 시골집을 꾸미는 데 온 신경을 쓰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을 때마다 부부가 땀 흘려 일하면서 틈만 나면 시골집 기도실에 들어가 울면서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고백을 듣는 순간, 시무하고 있는 동안 이 가정의 너무나 어려운 고통의 과정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도 여전히 성공과 복을 강조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성공과 복을 설교하는 동안 상처받았을 가난하고 병든 교인들은 생각하며 돌아오는 승용차에서 너무나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배 목회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과 은혜를 가르칠 뿐 아니라 소외된 사회 약자들을 돌보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세 번째 후회되는 점은 종말론에 너무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30대 목회 초기에 가장 소홀히 취급했던 성경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아무리 해석하려고 해도 너무 난해하고 이 주석, 저 주석을 읽어도 명쾌하지 않았습니다. 설교 본문을 택하는 경우는 고작해야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나 20장부터 22장까지를 중심으로 장례식 때에 본문으로 택하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만난 책이 홀 린세이(Hal Lindsey)가 저술한 ‘신세계의 도래’였습니다, 계시록을 장별로 현대 세계정세에 맞추어 해석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책은 난해하기 짝이 없던 요한계시록 내용들을 너무나 확실한 논조로 해석해 주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그 책을 독파하면서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독특한 주장들이기에 더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 유사한 주장들을 담은 많은 책들을 구입해서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들은 구약에 다니엘서와 에스겔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24장의 예언들, 더 나가서는 노스트라다무스나 진 딕슨 같은 예언가들의 주장을 모두 엮어서 미래의 세계를 전망해 주고 있었기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주장들 중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계시록이 가장 강하게 예언하고 있는 적그리스도에 해석이었습니다.
 
계13:1에 보면 적그리스도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책의 저자들은 해석하기를, 성경에서는 뿔은 정치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계 6장부터 19장에 나타나는 7년 환난 중에 적그리스도가 다스릴 10개 연방국을 나타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단7-8장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가서 이 연방국은 1970년대 10개국이 결성한 EEC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 연방국의 지도자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모든 인간들의 이마에 짐승의 표인 666으로 인 맞게 함으로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독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계16장에 나타나고 있는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는 주역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소름끼치는 해석을 666과 컴퓨터 바코드, 신용카드를 연관해서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니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리겠습니까?
 
여하튼 그때부터 저는 그들이 해석하는 ‘요한계시록’에 심취하게 되고 그것을 본 교회에서 뿐 아니라, 어쩌다 초청받은 부흥사경회에 가서도 그런 내용들을 설교했던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바탕으로 해서 설교했으니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종말론자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종말론의 시기가 언제인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유혹입니다.
 
저도 종말론에 심취한 나머지 끝까지 그날과 그 시기를 알아보겠다고 파고 들었다면 시한부종말론자가 되어 우리 교단은 물론이고 교계에서도 이단자로 몰리어 곤욕을 치루지 않았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하튼 분명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고 말씀을 했음에도 시한부종말론자들은 주님의 재림의 때를 알려는 시도는 끝없이 나타냈던 것이다.
 
그러한 시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구절이 마24:32-34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이 구절에서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가지가 잎사귀를 낸 것은 이스라엘 독립이 이루어진 1948년으로 해석합니다. 이스라엘은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추방당한 채 2000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갖은 멸시와 핍박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2차대전 때는 독일 히틀러에 의해 600만이나 학살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 기적가운데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독립을 하였습니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은 이때를 종말의 출발점으로 잡았습니다. 좀 전에 말씀 드린 예수님의 예언 중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을 다 이루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종말의 시기를 계산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한 세대는 40년이라면서 1948년에다가 40년을 더해서 1988년이 바로 종말의 때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한부 종말론으로 인해 ‘다미선교회’같은 엄청난 실수가 계속되고 많은 이단들이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종말론에 깊이 심취해 있으면서도 재림의 시기가 임박했음은 자주 강조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시기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 너무 감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시무하던 시절에 내 의식은 은퇴하기 전에 주님이 재림하실지 모른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탓에 총회연금에 가입하는 일도 등한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6년 홀 린세이의 저서를 통해서 깊은 영향을 받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47년이 흘러갔습니다. 수많은 시한부 종말론자가 주장했던 1988년, 1992년, 2000년, 2012년도 무사히 지나갔을 뿐 아니라, EEC 10개국을 통해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국가가 총 28개국이나 되었으니 그들의 주장에 혹했던 저 자신에 한심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더욱 노년을 위해서 총회연금이라고 가입했었다면 교회에서 원로목사에게 주는 매월 사례비도 사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더욱 은퇴한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언제 주님이 오실지라도 깨어 근신하며 충성에 전념했더라면 목회의 열매가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하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고 단언했던 스피노자의 말이 가슴에 젖어옵니다.
 
그러나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주장하던 시기가 무산되었을지라도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종말에 대한 예언들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년이 하루 같기 때문에 100년 인생을 사는 인간들이 하나님이 펼치시는 역사를 어찌 감히 계산할 수 있습니까? 다만 지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지구 이상 현상, 난리와 난리, 기근과 지진, 중동에서의 전쟁 등을 보면 종말의 시기가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날과 그 시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 남은 세월 동안 롬13:14절 말씀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더욱 깨어서 기도하고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될 줄 압니다.
 
네 번째로 후회되는 점은 반듯한 교회당을 건축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교회를 은퇴한 지 16년이 되어가면서 또 하나 후회되는 것은 번듯한 교회당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65세에 은퇴하겠다는 마음을 굳히면서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나름대로 멋진 교회당을 건축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천명이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는 예배당, 유경재 목사님이나 소의수 목사님이 건축하신 안동교회나 금성교회 정도의 예배당을 목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갈 때마다 가운데 커다란 세 개의 기둥이 서 있는 볼품없는 본당을 보면서, 후임 목사에게나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는 합니다. 지금도 후임목사는 매달 첫날 새벽마다 건축 위해 기도회로 개최하면서 열심히 헌금하는 홍익교회를 보면서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특별히 임직식 때나 무슨 행사 때 교인들과 많은 내빈들이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후회를 품고 돌아오고는 합니다.
 
1982년 교회당을 신축할 때 1충과 중삼층을 포함해서 500여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설계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건축과정에서 옆집과 트러불이 일어나면서 볼품없는 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다른 교회처럼 강대상에서 중삼층의 교인들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한 본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옆집에 사는 분이 자기 집 대지와의 거리 문제와 일조권을 트집 잡아 구청에 고소함으로 몇 주 동안 건축이 중단되는 사태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건축 설계한 분은 같은 노회 소속 교회의 안수집사였는데 좀 더 유능한 분이었다면, 옆집 분과도 잘 타협해서 원래 설계대로 건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집이 강한 분으로 구청 건축과 담당자와도 심하게 다툼으로 건축 중단 기간 동안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구청 건축과의 지시에 따라 원래 높이보다 조금 낮게 교회당을 짓도록 설계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지붕을 받치는 콘크리트 빔(beam)을 1미터 굵기로 만들게 함으로 본당 실내 높이가 더욱 낮아지게 됨으로 강대상에서 중삼층 후면이 보이지 않는 구조가 되고만 것입니다. 요즈음 대부분 교회들이 건축하는 것처럼 철골과 칼라강판으로 지붕을 덮었다면 강대상에서 중삼층에 앉은 교인들까지 훤히 바라보면서 예배를 인도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40세 초반에 이른 나는 건축에 대한 조예도 없었고 옆집 분들을 잘 다독이는 데도 너무나 쑥맥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기회는 1991년 10월 교회 화재로 본당 내부가 전소된 후 1달 동안 복구공사를 이어 증축공사를 시작함으로 교회당을 배나 증축하여 연건평 450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서둘러 공사함으로 본당 구조가 볼품없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 때에 너무 서둘기보다 좀 더 신중을 기해 설계하게 하든지, 주변의 대지를 더 확보한 후에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당시 우리교회 대지는 원래 110평에 1987년 30평, 1991년 42평을 구입함으로 188평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처럼 교회 아래 대지 128평(1995년 구입)을 확보한 상태였다면 천정공사와 중삼층 공사를 제대로 함으로 제법 반듯한 본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서 교회 주변 공지(空地)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한양대와 산동네 개발추진위원회 간 활발한 협상이 이루지기 시작했습니다. 온 교인들이 교회당 건축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게 되었습니다. 한양여고와 인접한 산동네는 한양대에게 넘기고, 교회 주변 공지는 산동네 주민들의 아파트 건축부지로 제공하자는 제안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양대가 무산시킴으로 교회 건축의 꿈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회 건축을 하면 담임목사가 앞장 서야 합니다. 건축헌금도 앞장 서야 합니다. 그래서 유경재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안동교회 건축할 때에 고등학교 교사이셨던 목갑수 사모님이 퇴직하면서 받으신 퇴직금을 몽땅 바치셨다고 하십니다. 집사람은 목사모님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은퇴 직전에 건축을 했더라면 우리도 퇴직금을 바치고 나왔을지 모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불행중 다행일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은퇴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 다시 홍익교회는 건축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양대가 홍익교회 부근 땅에 기숙사를 두 동 크게 짓기 시작하면서 서울 시가 본격적으로 다시금 그 지역에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후회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혼자 살게되어 생활비가 적게 들므로 틈틈이 건축헌금을 모았다가 홍익교회가 건축을 시작할 때는 원로목사로 한 몫 감당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야 후회로 인한 아픔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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