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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6.25 민족화해주일)
2023년 06월 26일 (월) 10:52:06 김용민 목사 www.cry.or.kr
성경 : 요한복음 8:3~11 (새한글성경)
제목 : 평화의 길
설교 : 김용민 목사
 
[벙커1교회 6.25민족화해주일예배 (2023.06.25)]
(https://www.youtube.com/live/5MN6mxFGYds?feature=share)
 
# 요한복음 8:3~11
 
3 그런데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한 여자를 데리고 온다. 배우자 아닌 남자와 잠자리하다가 붙잡힌 여자였다. 그들이 그 여자를 한가운데 세웠다.
 
4 그러고는 예수님께 말한다. “선생님, 이 여자가 배우자 아닌 남자와 잠자리하다가 그 자리에서 붙잡혔습니다.
 
5 율법에서 모세가 우리에게 명령하기를, 이런 여자들을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6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예수님을 떠보았다. 예수님을 고발할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아래로 몸을 구부려 손가락으로 땅에다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셨다.
 
7 그들이 줄기차게 물어 오자, 예수님이 몸을 시고 말씀하셨다. “당신들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맨 먼저 그에게 돌을 던지시오.”
 
8 그러고는 다시 몸을 아래로 구부려 땅에다 쓰셨다.
 
9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떠나 버렸다. 예수님이 혼자 남게 되셨다. 그리고 그 여자가 한가운데 그대로 있었다.
 
10 예수님이 몸을 펴시고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자매님, 그들이 어디에 있나요? 자매님을 죄 있다고 판가름한 사람이 아무도 없나요?”
 
11 그 여자가 대답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 자신도 자매님을 죄 있다고 판가름하지 않습니다. 가 보세요, 이제부터 더는 죄를 짓지 마세요!”
 
# 평화의 길
 
## 너무 유명해서 무수한 패러디 낳은
‘간음한 여인’ 사건
 
이른바 ‘간음한 여인’ 사건은 예수 안 믿는 분들도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무수한 패러디를 양산한 것 아십니까? 한 음란영화 출연 여배우에게 사람들이 돌을 맞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비디오를 찍다니 천박한 것!”이라며 저마다 사람들이 돌 던질 준비를 해요.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한 말씀 해요. 다들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돌아가요. “이 중에 야동을 안 본 사람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물론 영화 찍은 게 간음에 비유될 것이 아니지요. 오늘의 잣대에서는 비난받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하여간 당시엔 그랬다고요.
 
## 예수 미워 골탕 먹이려던 자들
바리새인 율법학자
 
6.25 남북화해주일을 맞아 오늘 저는 이 본문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미워한 나머지 어떻게든 곤경에 빠트리려고 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지요.
이들은 간통하다 붙잡힌 여인을 붙잡아옵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물어요. “율법대로라면 돌을 던져 쳐죽임이 마땅한데 어찌하면 좋겠냐?”라고요.
 
자, 이걸 보면 한가지 짐작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가 이 동네를 지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간음 사건이 우연히 발생했고 그래서 바리새인과 율법학자가 이 여성을 끌어내 예수 앞에 내동댕이쳤느냐?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신명기 율법 따르면
“간통했으면 남녀 모두 죽여라”
 
이걸 보면 “간통한 남자와 그 여자는 둘 다 죽이라”라고 돼 있어요. 그런데 잡혀 온 여자는 있어도 상대 남자가 보이지 않아요. 둘 다 죽이라고 했는데 왜 여자만 끌어냈냐 이거예요.
 
여기서부터는 상상의 영역입니다. 여성은 남편과 진작에 이혼했지만, 남편이 이혼증서를 써주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사실상 파탄 난 상태였던 거예요. 그런데 당시는 여성이 지금처럼 이혼한 후 독립된 삶을 살기 쉬운 시대가 아니지요. 따라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성과 사실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평소에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이 눈여겨봤다가 예수가 오면 끌고 나와서 물어보자, 이렇게 마음먹은 것 같아요.
 
### “여자 죽여라” 하면 살인 교사
“여자 살려라” 하면 율법 위반
 
한마디로 고도로 기획한 겁니다. 이 가설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사실상 꽃놀이패를 쥐고 있었어요. 만약 예수님이 “이 여자를 돌로 치라”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동안 사랑을 가르친 게 어떻게 돼요? 예수 자신이 모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뿐 아니지요? 사형 집행은 최소한 로마 총독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간인 예수가 월권했다는 비난을 받게 돼요. 살인 교사죄를 뒤집어쓸 가능성도 있어요.
 
반대로 예수님이 “이 여자는 잘못이 없으니 보내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지요? 아마 바리새인 율법학자는 예수가 여자의 명백한 잘못을 눈감아 줬다며 산헤드린 공의회에 넘길 것이 확실해요. 예수님은 이들의 잔꾀를 다 알고 계셨어요.
 
### 요한복음 저자, 유대인 극도 혐오…왜?
유대인 “예수교인 지옥으로”
 
자,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유대인이 참 나쁜 놈들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요한복음은 내내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같은 장인 8장 44절을 보면 유대인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도 했어요.
 
요한복음이 쓰일 당시에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에 갈등이 최고조였어요. 대략 AD 80년에 쓰인 게 요한복음이 아닐까 하는데요, 유대인들은 매일 세 번씩 모여 암송하게 되어있던 18개의 기도 중에 이런 내용도 넣었다고 합니다. “나사렛인들과 이단자들을 한순간에 죽게 하옵소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하시고,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라고 돼 있었어요. 나사렛인들, 누굽니까? 이단자들, 누굽니까?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요한복음에서 이런 유대인들을 악한 사람들로 묘사했던 거죠.
 
### 로마와 결탁한 유대인, 기독교인 탄압
유대교는 쪼그라들고 기독교 융성하고
 
유대인들은 율법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했고, 또한 로마와 타협했던 유대인들은 권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억압했어요. 잡아가고, 매를 흠씬 두들겨 패고, 가두고, 사잣밥이 되게 해요. 그랬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유대교는 쪼그라들고 그리스도교는 엄청나게 확산했어요.
 
참 이상하지요. 거꾸로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리스도교는 확장일로를 걷고 유대교는 갈수록 축소됩니다. 이러면 이럴수록 유대인 자기들의 우월성에 몰입합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타민족을 우습게 여겨요.
 
이게 16세기까지 이어진 듯해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보세요. ‘대금업자 샤일록’, 유대인 아닙니까?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살을 1파운드씩 내라는 황당한 계약을 맺는 냉혈한으로 묘사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저자가 가졌던 유대인에 대한 앙심(怏心)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야당 대표 탄압하면 지지율 올라갈 거라고 기대했던 어떤 돌대가리 대통령을 보는 것 같습니다.
 
### 근데 “죄 없는 자 돌 던져라” 이상
그 말 했다고 다 돌 놓고 돌아가?
 
예수님은 이때 누구도 반박 못 할 말씀을 합니다. “너희 중에 죄 있는 자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아, 그랬더니 모여있던 남정네들, 들고 있던 돌을 버리고 돌아가요.
 
근데 말입니다. 저는 좀 이상해요. 이 말을 했다고 현장을 떠난다는 건 이해되지 않아요. 정말 폼 안 나는 일 아닙니까? 아니 그러면 자기가 이 여자만큼 죄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인데. 거기 모인 인간들이 이렇게 자기 성찰이 가능한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을 농락하려던 패거리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성서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상상합니다. 여자를 끌고 나온 바리새인 율법학자 또 남정네들을 향해 “너희 중에 간음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이 여자에게 돌 던져라” 이게 아닐까. 그냥 상상이니 머리에 새기진 마시고요. 혹시 보편적 남자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대충 “죄 없는 자”라고 에둘러 말한 것은 아닌지
 
### 성경에서 여성은 왜 박대당하나?
예수 진의와 달리 ‘기록자’의 한계 때문
 
여러분, 성경이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논란의 여지가 없게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의 교훈 즉 가르침은 한 치의 오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록한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고, 그 시대의 통념과 환경, 지식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성경에 기록하는 사람 안에 편견과 선입견이 개입됐을 수 있다는 판단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성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특히 그렇습니다. 당시 기록했던 이들에게 요즘 같은 성평등 관념이 거의 없었어요.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람 숫자를 세면서 여자는 빼요. 오병이어 기적으로 배불리 먹은 사람 중에서 여자는 빼요. 실제 예수를 따르던 여성의 이름은 초기 복음서에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결정적으로 고추 달린 열두 명의 제자 말고 얼마나 많은 여성 제자들이 있었는데요. 온갖 허드렛일을 했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마지막까지 지켰던 그들은 성경에서 철저하게 주변인 취급 받았지요. 여성이 하나님 나라 운동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 확실한데 제대로 기록이 안 돼 있어요. 이러다 보니 성경에 나온 건 보탤 것도 뺄 것도 없고 있는 그대로 진리라고 믿으면 여성은 불필요한 존재가 돼요.
 
그런데 예수님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셨다는 점입니다. 성서의 저자들이 예수님의 그 모든 진의를 수렴하기엔 주님은 너무나 큰 분이었습니다.
 
## 올해 7월 27일은 휴전 70주년
남북 아닌 미국 vs 북·중 협정
 
오늘은 6.25 민족화해주일입니다. 올해 7월 27일은 정전 70주년 기념일입니다. 정전협정의 공식 이름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입니다. 그러니까 남북한 간이 아니라 유엔군과 북한군 중국군 사이에 맺은 협정입니다.
 
## 한국전쟁 왜 발생했나?
“북은 남을, 남은 북을 못 견뎌 해”
 
전쟁은 왜 발생했을까요? 브루스 커밍스의 책 ‘한국전쟁의 기원’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전쟁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선제 침략한 북한은 남한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남한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견딜 수 없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남침 당한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존재하는 것은 눈 뜨고 못 볼 일이었어요.
 
더욱 일찍 휴전할 수 있었지만 못하게 한 사람이 이승만이었어요. 그 정서로 만들어진 게 우리 헌법입니다. 법으로 보자면 북한은 회복해야 할 미수복 지역입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 또는 헌법 및 법률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거든요. 그렇다면 북한 정권은 헌법상 용인될 수 없는 반국가단체입니다. 그렇다면 군사력을 동원해서 북한 영토를 수복하는 것은 주권행위입니다.
 
그러나 이걸 근거로 북한을 침략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진통일’, ‘땅크로 주석궁을 점령하자!’라고 떠드는 이들이지요. 70년 전에서 사고가 멈춘 사람입니다.
 
## 왜 종전 못 하나?
분단에 기생하는 자들 때문
 
그게 옳습니까? 전쟁이 있던 시대의 지도자들이 모두 죽었고, 70년 동안, 남북 모두 유엔에 가입했고,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대화도 하고, 교류도 하고, 심지어 군사적 적대도 포기하기로 다짐했단 말이지요. 휴전을 종전으로 바꿔서 평화의 시대를 열지 못할 명분이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이건 이런 서로를 적대하는 구조에 덕을 보는 자들이 기득권이 됐기 때문입니다. 남북 간 적대가 없으면 국민의힘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또 수구세력은 어떻게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북쪽도 그렇습니다. 강성군사 대국의 기치 속에 사회의 엘리트로 굳건히 자리한 군벌들이 과연 용납하겠습니까?
 
남북한 냉전 고착 추구 세력의 인프라는 70년 동안 아주 견고하게 뿌리내렸습니다. 이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한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 율법에 따르면 여자는 죽어야
그러나 예수 “율법은 사람 위해 존재”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은 절대적인 진리였습니다. 누가 율법에 반하는 해석을 하면 그 자신이 이단이 되고 사이비가 될 시기였습니다. 바리새인 율법학자는 예수의 명령 없이 간음한 여인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자들이 언제부터 예수의 말씀을 믿고 따랐다고요. 결국 예수를 시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입에서 ‘죽여라’ 이 말이 나오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들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율법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성에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엎은 게 아닙니다. 율법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을 해하려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에게 옳고 그름을 일러주고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이 율법입니다.
 
## ‘사람 우선’ 율법에서 빠트린 것
‘용서하고 기회 주는 것’
 
예수님은 율법 플러스알파, 율법이 다 담지 못하는 하나님의 인격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완성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였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죽을 수밖에 없던 여자는 복음으로 인해 새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교도소, 구치소를 뭐라고 합니까? 형벌 집행기관이라고 합니까? 아니면 교정기관이라고 합니까? 교정기관이라고 하지요? 우리 모두도 예수님 앞에 그런 존재입니다. 날마다 율법을 어기지만 복음 안에서 용서받고 새 인생을 사는 존재이지요. 예수님을 기점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전면적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인생도 따르기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문익환 목사님이 눈물로 씨를 뿌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기쁨으로 단을 거둔 한반도 평화의 위대한 성취, 성과를 봤다면 우리는 예수 이전의 유대교와 예수 이후의 기독교가 다르듯 분단된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 율법에 사랑을 불어넣은 예수
휴전에 평화를 불어넣은 문익환
 
사랑하는 벙커1교회 교우 여러분, 간음하다 잡혀 나온 여자는 율법에 따르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용서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복음으로써 구원받았습니다.
 
70년 전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전쟁을 벌여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통일의 사도인 문익환 목사를 보내 분단을 끝장내고 화해하도록 했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소련군 때문에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고 그래서 남쪽으로 피난 온 분입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통역관으로 일했습니다. 말하자면 보수와 우익입니다. 그런 그가 김일성과 손잡고 전쟁 없는 한반도를 합의했습니다. 문익환의 이 행동은 끼리끼리가 아니라 통 큰 용서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의 정신 아닙니까?
 
문익환이 씨뿌리고 다져놓은 밭에서 평화의 열매가 열렸습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그렇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더는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이 분단 논리를 파괴하고 평화의 세상을 열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 문익환 어머니 “목사가 김일성
끌어안지 않으면 누가 끌어안나?”
 
어떻게 북한과 손잡냐고요? 문익환 목사 어머니 김신묵 권사님 말씀입니다. “목사가 김일성을 끌어안지, 누가 끌어안느냐?” 그리스도인이 이 분단을 파괴하지, 누가 파괴하겠습니까?
 
이제 한반도에 복음의 바람이 불게 합시다. 그 김신묵 권사님은 92세에 72세 된 문익환 목사를 앉혀놓고 “내 아들아, 너는 이 민족의 통일 사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같은 형제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원수로 살아가는 이 분단의 땅에 네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너를 통일의 일꾼으로 부르신 거야. 네 손안에 이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다”라고 하십니다. 그해 문익환은 이 가르침을 듣고 북한에 갑니다. 통일을 위한 가시밭길을 걷습니다.
 
제가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를 읊어보겠습니다.
 
난 평양으로 갈 거야 (그래)
기어코 가고 말 거야 (그래)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그래)
농담이 아니라고 (그래)
이건 진담이라고 (그래 그래)
역사를 산다는 건 (그래 그래)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고
(그래 그래 그래 그래)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고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그래 그래)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그래 그래)
휴전선은 없다 소리치는 일이라고 (그래 그래)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 이렇게
주장하는 일이라고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먼 (그래 그래)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그래 그래)
돌아도 한참 돌았다 (그래 그래)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래 그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으면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 냉전 추구 세력에 예수 말씀하실 듯
“분단으로 덕 보지 않은 자, 돌 던져라”
 
아무리 수구냉전 세력이 시간을 겨울로 돌리려고 해도 역사의 시침은 앞으로 향해 갑니다. ‘북한은 전범국가이고 그러니 반드시 박멸해야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 물을 때, 예수님은 말할 것입니다. “너희 중에 분단으로 덕 보지 않은 사람이 돌을 던져라.”
 
평화의 길을 가는 하나님의 사도로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수구냉전 세력이 시간을 겨울로 돌리려고 해도 역사의 시침은 앞으로 향해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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