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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중심한 교회
2022년 12월 16일 (금) 20:27:30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주님 중심한 교회 (2022. 12. 11)
    (롬8:1-11)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 뵈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늘 집에서 영상으로만 예배를 드리다가 모처럼 교회당에서 나와 찬양단과 성가대를 통해 찬양을 들으니 너무나 감동과 은혜가 넘칩니다. 설교 전에 아무래도 저의 가정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7월 7일 집사람이 혼수상태로 119에 실려 가서 폐렴 진단받고 중환자실로 들어갈 때는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습니다. 여러 시간이 지났음에도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는 80대 나이에 홀아비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깨어나기는 했으나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콧줄로 음식물을 취하고 목관으로 숨을 쉬는 상태로 한 달 동안 중환자실에 지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온 식구들이 그처럼 열심히 기도했던 때가 있을까 할 정도로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저도 틈만 나면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그렇게 많이 불러보기가 처음입니다. 또한 우리 홍익교회 교우들과 많은 분들이 기도해 준 탓에 집사람은 5개월이 지난 지금은 화장실도 혼자 다니고 어느 때는 요리도 할 정도이고 제가 설교하러 간다고 오늘 아침식사를 차려주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이런 연단을 주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이 나이에 난데없이 ‘운전기사 하랴, 가정부 노릇 하랴, 간병인 노릇하랴’ 왜 이런 힘에 겨운 시련을 주시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깨달은 것은 우리 가정에 특별한 사명을 주시려는 뜻 같습니다. 지난 5개월 동안 큰아들이 목사고시에 합격하고 11월 24일 기장측으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막내아들은 자기 달란트를 발휘하여 10월 4일부터 선교방송을 시작하여 지금 세 번째 작품을 유튜브를 통해서 방송함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은혜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영국 부르더호푸 신앙공동체에서 사역하던 딸과 사위는 한국에도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공동체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영월에 6천 평의 대지를 구입하고 대부분 공사를 거의 마쳐가고 있습니다. 그런 큰 사명을 우리 가정에 주시기 위해 온 가정이 전력으로 기도하면서 신앙훈련을 시키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계속 중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교회 창립 62주년을 맞으면서 본문을 가지고 “주님 중심한 교회”란 제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주님 중심한 교회가 되려면 주님 중심한 교인들이 많아야 합니다. 아무리 교인들이 많고 열심히 충성한다고 할지라도 주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충성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목회자나 중직들이나 평신도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오직 주님 중심으로 충성하는 교회를 향해 “착하고 충성된 교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주님 중심으로 살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때로 어느 교인이 찾아와서 “목사님, 나는 바르게 살고 싶은데 생각대로 안 됩니다. 가족들에게나 교인들에게 사랑으로 대해야지 하지만 어느 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나를 이길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또한 어느 교우는 말하기를 ‘나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고 남을 사랑하고 전도하고 싶어 결심하지만 3일도 못 되어 넘어지고 마니 나는 어쩌면 좋습니까?’라고 합니다. ‘가시나무새’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이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에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남편도, 아내도, 자녀들도, 다른 교인들도 깃들 곳이 없습니다. 왔다가 자기 중심이라는 가시에 찔려 견디다 못해 떠나갑니다. 이러한 나를 어쩌면 좋습니까? 이러한 안타까운 고백을 롬7:24에서 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서 주님 중심으로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1. 육에 속한 사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자연인 그대로의 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내추럴 맨(natural ma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교회는 출석하고 있으나 예수님 밖에 거하므로 아직도 영적인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로,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자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분 중에 아직도 예수님밖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속히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영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그 영이 죽은 상태였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끊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영들을 살리시고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생명의 길을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 들어오는 자는 하나님과 연결되면서 그 영이 살게 하셨습니다. 씨앗은 그 속에 생명체는 있으나 그대로 두면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씨앗을 땅에 묻으면 껍데기는 깨어지고 그 속에 생명체가 살아나 마침내 새 몸을 입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속에는 영혼이라는 생명체가 있으나 그대로 두면 죽은 상태지만 예수님이라는 땅에 들어가면 나 중심의 겉사람은 깨어지고 내 속에 죽은 상태와 다름없던 영이 살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바로 ‘거듭 났다.’ ‘중생 받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순간에 이제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주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여기서 ‘정죄’라는 말은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어야 구원을 받게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만도 613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그 하나만이라도 위배하면 다 죄인이라는 언도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간 모두는 죄인으로 정죄되고 죗값을 받게 되었는데 그 죗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요, 모든 인간들은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며 지옥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은 율법 안에서 저주를 받은 인간들을 위해서 새로운 법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즉, 예수님을 도피성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도피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율법을 어기고 아무리 큰 죄를 진 자라도 도망쳐서 도피성으로 들어만 가면 어떠한 죄라도 형벌을 면할 수 있었던 제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예수님이라는 도피처에 들어가 회개하고 그 품에 거하면 그 순간부터 죄와 사망의 법에 저촉을 받지 않습니다. 자기를 이기는 길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씨앗이 땅에 들어가면 그 속에 생명체가 사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품에 들어가 자기 중심으로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 중심으로 살기로 고백하면 그 때부터 죽었던 내 영이 살기 시작합니다. 변화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 아직도 예수님밖에 살면서 죄와 사망의 법에 시달리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안 됩니다. 이 시간이라도 예수님 앞에 엎드려 지금까지 자기 중심으로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서 모든 죄는 사함 받고 의의 자격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는 능력과 복을 받을 줄 믿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2. 육신에 속한 사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고전 2장, 3장에 보면 ‘육신에 속한 자’라는 말과 ‘육에 속한 자’란 말이 나옵니다. 같은 말 같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한국 말로는 육신 혹은 육으로 표현했으나 헬라어나 영어에서는 아주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헬라어에서는 육이라는 말은 ‘피쉬키코스(ψυχικο'ς)'이고 육신이라는 말은 ’사르키(σαρκι)'입니다. 영어로는 ‘육에 속한 자’를 ‘내추럴 맨(natural man)'으로, ‘육신에 속한 자’라는 말은 ‘후레쉬 맨(flesh man)'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밖에 거하므로 예수님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자인 반면,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그 영에 생명이 있어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영적인 어린이 상태이므로 육신에 의해 영이 넘어지는 자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넘어지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육신에 속한 자는 빨리 성장하여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왜 많은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안에 살면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면 저절로 성장합니다. 주는 음식대로 먹습니다. 아플 때 주는 약대로 먹습니다. 가르치는 대로 따라 행하면 날로 자라서 어린 상태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엄마의 법을 따라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5개월 동안 간병인과 가정부 노릇하면서 하루 왼 종일 수고해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주부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분들은 ’하루 종일 뭘했냐?‘며 핀잔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심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중환자실 때부터 콧줄과 목관 때문에 말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마치 아기 같습니다. 그러다가 두 달 만에 콧줄을 빼고 미음을 먹기 시작합니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는 아기를 보며 기뻐하는 엄마 심정이 됩니다.
 
그러다가 두 달 만에 말하기 시작합니다. 온 식구들이 기적이라고 기뻐하고, 석 달 만에 앉고 일어서자다 박수를 치며 사진도 찍습니다. 의사의 지시를 따랐더니 이렇게 날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어린아이 상태에서 장성한 신자가 되려면 주님의 법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목회 때 보면 이것저것 가려먹는 편식하는 신자가 적지 않습니다.
 
무엇을 시키면 이것저것 핑계대며 피하는 사람들은 5년 가도 10년 가도 잘 자라지 못합니다. 말씀대로 간절히 사모하여 무슨 설교 할지라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힘쓰는 자들이 쑥쑥 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목회자는 잘 자라는 신자들을 볼 때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말씀을 따라 살다 보면 많은 손해와 억울함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놀라운 체험을 함으로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성도들은 주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 때 자기 중심 대신 주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령한 사람은 육신보다 영적인 면이 더 강해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전에는 마음이 원한다 할지라도 육신이 더 강해서 번번이 넘어졌으나 이제는 영이 요구하는 대로 육신이 따라줍니다. 영이 기도하기 원하면 육신이 움직여 기도 자리 나갑니다. 영이 충성하기 원하면 육신이 충성의 땀을 흘려줍니다. 영이 구제하기 원하면 육이 구제의 손길을 내밀어 줍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김으로 성령에 의해 점령당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중심은 항상 신령한 것에 관심을 가지며 모든 것의 판단을 주님의 뜻에 기준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의 생각은 무엇이고 영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육의 생각은 자기 중심, 자기 욕심을 위주한 것이요, 영의 생각은 주님 중심의 생각을 말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모든 행동의 기준이 자기 중심에 있습니다. 언제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매여 지냅니다. 그 결과 그의 생각은 사망의 검은 그림자로 가득차 언제나 시기와 질투, 우울함과 절망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신령한 성도는 모든 행동의 기준이 주님 중심입니다. 그 결과 그 마음은 언제나 주님의 생명과 평안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신령한 성도가 되었을지라도 기도 생활, 말씀 생활, 순종의 생활에 게을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점점 그 마음은 허망한 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고 후에는 예전에 배설물처럼 버렸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매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령한 성도들이라고 해서 육신의 생각이나 자기 욕심에 의해 유혹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수없이 이러한 생각, 이러한 욕심으로 시험을 받고 삽니다. 어느 날은 그 유혹으로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주님 중심이 되므로 빛이 어둠을 물리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하기 위해 야한 잠옷을 입고 노골적으로 붙잡으며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지금 젊은 욕망으로 가득찬 나이입니다. ‘에라 모르겠다.’라면서 못 이기는 척 그 성적 유혹에 넘어가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또한 마음으로부터 ‘만약 노예의 입장에서 주인 마님의 요구를 거절하면 여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함으로 결국 목숨까지 잃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다 내 형편을 이해하시겠지.’라는 속삭임도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혹 속에서 요셉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그런 큰 위기 속에서 주님의 입장에 선 것입니다. 창 39:9에서 보면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 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외치면서 담대히 물리쳤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포기한 요셉에게 엄청난 역사를 베푸셔서 당시 최강국이었던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수많은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 살지라도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주님 중심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주님 중심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교회입니다.
 
최근 아주 귀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미국 미조리(Missouri)주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미용실에 그날따라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마다 하나같이 삭발을 요구했습니다. 미용사는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그 마을의 50여 명 출석하는 작은 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미용사는 처음엔 이상한 광신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연이 있었습니다.
 
교인들로부터 늘 사랑받던 여자 중학생이 있었는데 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까지 마쳤지만 교회를 나오지 않자 목사님과 몇몇 성도가 심방을 갔습니다. 밀어버린 머리 때문에 창피해 외출은 물론 교회 출석도 못 한다는 소녀를 보고 목사님은 교회에 돌아와 성도들과 의논한 결과 교인들 모두 머리를 깎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연을 듣고 감동한 미용사는 방송국에 연락했습니다. 여학생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주일날, 그 소녀의 엄마는 소녀를 간곡히 설득하여 모자를 씌워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취재진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문을 연 순간에 50여 명 까까머리 교인들을 본 소녀의 눈은 커졌습니다. 모자를 벗어야 되나 잠시 망설이던 소녀는 결국 모자를 벗었습니다. 중계하던 리포터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언젠가 내가 교회를 나간다면 이런 교회를 나가고 싶습니다.” 방송을 보던 많은 사람들도 눈물을 닦았습니다.
 
정말 이 교회야말로 주님 중심한 교회입니다. 머리는 사람들의 자존심과 같습니다. 특히 여자 분들에게 더 합니다. 그런데 고작 어린 소녀 하나 때문에 50명 모두가 삭발하였다니 주님 중심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62주년 되는 홍익교회는 앞으로 더욱더 주님 중심한 교회가 되도록 힘씁시다. 저는 우리 홍익교회가 어느 교회보다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은퇴하시는 중직들을 보십시오.
 
학식이 높은 분들, 권세가 높은 분들, 돈이 많은 부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외모를 보지 않고 믿음을 보고 중직으로 선출해 주셨습니다. 교회 내 빈부격차나 지역색 등으로 인한 갈등이나 차별이 없는 교회, 제자공부를 해야 중직이 되는 교회, 동네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결손가정 등 불우이웃을 열심히 돌보는 교회, 지역전도와 해외선교에 힘쓰는 홍익교회입니다.
 
무엇보다도 홍익교회 미래가 밝습니다. 교회 주보 표지를 보면 교회에 출석하는 아기들로부터 청소년들의 단체 사진이 있습니다.
 
서울 시내 대부분의 교회는 교회학교가 텅 비다 싶을 정도가 되고 점점 노인교회가 되고 있는데 비해 우리 교회학교는 젊음의 활기가 넘칩니다. 사랑하는 홍익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주님 중심한 교회로 목회자와 당회원, 제직들과 성도들 중 주님 중심한 교인이 많은 교회입니다. 우리 홍익교회는 언제나 주님 중심의 교인들이 점점 증가함으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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