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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기독교회기관과 브로커(2)
2022년 09월 03일 (토) 06:34:58 김태복 목사 www.cry.or.kr
브로커로 변신한 기독교기관들
 
그러나 기독교기관에 큰 위기가 닥쳐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서서 미국이 월남 전쟁에 휘말리면서 막대한 군사비를 정글에 퍼붓는 동안 세계 최강국을 자랑하던 미국의 경제는 휘청거리기 시작하고 그 여파로 선심 정책으로 일관하던 외교정책을 바꾸어 실리주의로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선교비를 삭감하고 선교사들을 귀국시키거나 점유하고 있던 건물과 토지를 팔아 버리기 시작함으로 기독교기관들이 심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기독교기관들은 외국선교부의 실리주의를 비난하고 급성장한 한국교회를 향해 미소를 띠기 시작했으나 이미 깊이 파여진 불신의 골을 메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아무리 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제적인 협조를 요청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므로 외국선교부에만 거의 의존해 오던 기관들은 자립 문제라는 큰 암초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기로(岐路)에 선 기독교기관 중 대다수가 택한 길이 무엇인가? 브로커가 되는 길이었다. 기관이 존속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경건의 색깔로 위장했으나 사실은 기독교를 빙자한 장사꾼으로 변신하였다. 이들의 눈에는 전국 6만여 교회가 자기들의 회원이며 자기들의 제품을 매입할 고객으로 계산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인 신앙 생활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며 각교회가 필요한 기물이 무엇인지를 늘 주시하고 있다가 재빨리 제조해서 경건의 십자가를 장식하여 판매하는 데 능하다. 그리고 자기들이 한국교회를 크게 돕고 있다고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성전 안에는 많은 장사꾼들이 매매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성전에 오는 모든 예배인들을 돕는 데 있었다. 먼저 돈 바꾸는 자들이 있었다. 원래 유대인의 장년은 성전세로 반 세겔을 바치는 의무가 있었는데 외국에서 들어온 유대인들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성전세로서는 특정한 은돈으로 내게 되어 있어서 돈 바꾸는 자들은 은돈으로 바꾸어 주는 귀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폭리(暴利)를 취하는 데 있었다. 성전세 반 세겔을 바꾸는 데 반나절 임금 정도의 돈을 수수료로 받았다. 또 가난한 자, 해산한 자, 성한 문둥이들의 결례를 위해서 비둘기파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흠 없는 동물을 산다는 것이 극히 어렵고 해서 성전 안에서 검사원의 검인(檢印)이 찍힌 짐승을 사기가 일쑤인데 문제는 그것도 10배나 비싸게 판다고 하는 사실이다.
 
종교 장사꾼들은 거룩한 목적을 표면에 내세우고는 실상 제사장들과 공모하여 순례자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실에 분노하사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자들을 쫓아내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책망을 받은 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나? 가슴을 치며 회개를 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예수를 은 30냥에 개처럼 사서 십자가에 매어 달고 살해해 버렸던 것이다.
 
한국교회 초기에는 기독교기관들이 철저히 희생적이었는데 비해 오늘의 기관들은 기관이 우선이요. 실리를 찾는 데 우선이므로 장사꾼 냄새가 물씬 풍긴다. 교회마다 우편물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데 많은 기관들로부터 보조청원이요, 많은 기독교기관들의 상품광고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성경이나 찬송가마저 상품으로 전락시켜 제각기 출간하고 이득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때로 기독교 병원이라고 가보면 일반 병원이나 다름이 없이 치료비를 받아 내고 치료비가 없는 이에 대해서 냉정하고 혹독하게 대우하는 것은 일반 병원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기독교 학교라는 곳이 고작 성경을 가르치고 상례(常例)로 예배를 드리는 것뿐, 일종의 기업이 되어 버림으로 많은 학생들을 오히려 비기독교인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사회사업 해서 망했다는 소리보다 돈푼이나 모은 자가 많다는 소리는 기독교의 큰 치소(嗤笑)거리이다.
 
차라리 기독교 간판을 내리고 장사하라.
기독교 간판을 내리고 세상적인 수단을 사용하라.
 
빛을 비추는 이들 있어
 
그렇다면 기독교기관은 유명무실한 것인가? 결코 아니다. 반드시 기관은 있어야 한다. 사령부와 특수부대 없는 야전군은 아무리 우수한 지휘관이 있어도 승리할 수가 없다. 기독교기관이 본부로서 해야 할 중대 임무는 복음선교, 교회갱신, 교회교육, 성도의 교제, 사회봉사, 사회정의 실현 등이다. 한국교회에서는 특히 교회연합이 그들에게 주어진 큰 임무 중의 하나이다.
 
교파간의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애쓰며 대화를 통해 한국교회의 진로를 모색케 하고, 또 모든 교파가 연합으로 교회 사업을 하고 사회를 향해 일치된 자세로 외치며 봉사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기관들이 그 직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파를 분열하는 일을 조장하지 않았는가?
 
수많은 교회들이 선교전선에서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는 동안에 기독교 기관이라는 본부에는 온갖 기독교 정치 브로커들과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자리다툼과 이권(利權) 다툼에 영일(寧日)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결과 그 브로커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한국교회는 사분오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배후에는 누구인가 밀알이 되어 희생을 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총회에서, 노동자 속에서, 군인들 속에서, 혹은 캠퍼스와 교도소에서, 고아원과 양로원에서, 아동과 여성 속에서, 문서와 신문과 방송 속에서, 그리고 불의한 정권을 향해서 세례 요한처럼 외치는 것을 통해서 주님을 대신해서 저들을 만나며 함께 고통을 나누며 새로운 자유와 평화와 소망을 주고 있기에 한국교회는 살아서 역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지교회가 하지 못하는 분야를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들은 프랜시스, 윌라드, 다미엔, 조지 윌리암스, 하천풍언의 후예들인 것이다. 오늘도 저 사회의 외진 곳에서 자기의 것을 바쳐 가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사랑하시고 역사하시는 줄 깨닫는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를 포함한 많은 자들이 삯꾼의 모습으로 살면서 대접과 칭찬은 도맡아서 차지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젠 본부는 이러한 사명감에 불타는 자들에게 맡겨져야 하는 것이다. 공연히 높은 상석에 앉아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이권이나 챙기려는 장사꾼, 정치꾼, 공론가들은 모두 추방하여야 한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먼저 기독교기관부터 갱신되어야 한다. 그 다음 지교회는 본부를 중심으로 기도와 물질로 도우며, 그 명령을 따라 오직 하나님을 위해 총진군을 하는 그리스도 군대가 될 때 이 사회는 강한 영향력을 받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 지금은 연합이 시급할 때다.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것은 교단간의 연합이다. 개교회 중심은 총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며 교단 중심은 전 한국교회 중심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대연합이란 한 총회, 한 교리, 한 신학교를 구성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식의 연합은 망상에 불과하다. 아니, 설령 그런 연합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더 비능률적인 집단이 되고 말 것이고 얼마 못 되어 다시 분열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대연합의 구조는 기존의 교리, 건물, 조직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내복음화, 북한복음화, 세계복음화라는 막중한 사명과 국내외 사회봉사를 위해서 상대 교단의 교리의 진수(眞髓)는 간섭하지 않은 범위에서 교단간의 대연합체를 구성해 보자는 말이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교단 간의 벽들이 많이 약화(弱化)되어 있다.
 
1960년대만 해도 각교단의 컬러는 너무나 분명했었다. 어느 교단은 바리새인처럼 보일 정도로 경건주의로 굳어 있었고, 어느 교단은 사회주의자처럼 보일 정도로 극단적인 사회참여로 치닫고 있었다. 어느 교단은 성령의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어느 때는 그 교단의 예배에서 푸닥거리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교회성장에 대한 강한 집념들이 교파를 초월해서 서로의 장점들을 과감히 흡수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각 교단 나름대로 발전시켜 온 예배형식, 교리의 특유성, 교회제도, 각종 교육재료를 서로가 활용하기 시작함으로써 1980년대에 와서는 교단들의 특유성이 사라지고 많은 면에서 동질감을 공유(共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것은 얼마나 희망적인 사실인지. 대연합의 밝은 전조(前兆)가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1990년대는 각 교단 간에 협력체제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교리적인 벽은 두꺼운 것은 사실이나 ‘사도신경’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교단이라면 큰 가슴으로 서로 포용함으로 본격적인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것은 시대적인 요청이다. 세계는 지금 한국교회로 하여금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고 있다.
 
그러한 대연합은 불가능한 망상인가? 아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이미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졌었다. 한국교회 초기에 선교사들은 ‘선교공의회’를 만들어서 선교부 간에 선교구역을 배정했다. 캐나다 선교부는 함경도, 호주 선교부는 경상남도, 남장로교 선교부는 충청도, 북장로교 선교부는 평안도와 황해도, 경상북도를 맡았다. 그리고 남감리교 선교부는 강원도 북부와 서울 이북의 경기도 지방을, 북감리교 선교부는 강원도 남쪽과 서울의 동쪽과 서쪽을 각각 맡았던 것이다.
 
100여 년 전에 이러한 연합이 이루어졌는데 선교 2세기를 맞는 성년(成年) 한국교회가 연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고개를 들 수가 있는가? 무슨 변명으로도 못한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연합에의 요구가 점증(漸增)되는 시점에서 1989년 4월에 한국개신교의 협의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창립되었다. 신구약성경으로 신앙고백을 같이 하는 40개 이상의 교단과 10여개 이상의 연합기관, 그리고 건전한 교계 지도자들의 협력기관이라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그러나 당초 기대에 비하면 활약상이 크지 못함에 실망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합체를 계속 육성하여야 마땅하다. 그 동안 연합운동의 교두보 역할을 해 왔던 NCC와 많은 교단을 포용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서로가 확보한 연합운동의 장점들을 높이 사면서 이제는 하나의 연합체가 되어 명실공히 한국교회의 대표로서 한국사회와 정부, 북한과 세계 앞에 서서 일한다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개신교의 가장 큰 과제는 어떤 형태로든지 교회가 연합하여 한 목소리를 내고, 일치된 모습을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교회의 공신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분열된 상태가 지속할 경우 기독교는 한국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대로는 선교를 아무리 하려고 노력해도 선교가 안될 것이고, 정말 매력 없는 집단으로 전락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중략)
최근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거듭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리고 있다. 에큐메니칼운동의 요람인 교회협이 잘 운영되면 한국교회의 전망이 밝아지게 될 것을 확신한다. 교회협이 가을 총회 때 더 많은 교단을 연합해야 명실공히 한국교회의 단합된 모습을 세계 교회와 한국사회 전체에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한기총도 건실하게 자리 매김을 해서 교회협과 연대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통합된 기구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손인웅:「한국기독공보」96년 3월 2일자)
 
그리하여 우리 한국교회에게 주시는 남한복음화와 북한 복음화, 그리고 세계복음화라는 거대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제 통일은 하나의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통일을 위한 준비를 정부는 나름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물론 교회에서는 NCC를 비롯한 교계 일각에서 평화통일의 원리적인 제시와 북한 선교기관에서 복음전도적인 노력이 있어 왔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각 교단에서 전개하고 있는 3천교회, 5천교회, 1만교회 운동의 일환으로 각 교파의 교회를 심어 놓는다면 오늘의 남한 교회의 분열의 연장을 가져올 것이다.>
(전병금:「기독교연합신문」)
 
그러한 주장은 해외선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각 교회와 각 교단이나 선교단체들이 제각기 선교열정에 불탄 나머지 같은 선교지역에 가서 교회를 설립하다 보면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아니, 이미 그러한 일들이 피선교지역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 한국교회는 그러한 일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연합하여야 한다. 그러한 연후에 그 기관을 통해서 선교사 훈련, 선교지 설정, 선교정보 제공, 선교 지원문제, 피선교지 정부와의 협조 문제 등을 선도해 준다면 그 선교 효과는 너무나 달라질 것이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 13:12).
 
한국의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깊은 미망(迷妄)의 잠에서
또 하나의 역사의 새벽을 열라.
하늘은 한국에게 세계에 대한 큰 열쇠를 맡기고 계시니 한국교회여, 일어나 역사의 새벽을 열고 세계 앞에 빛을 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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