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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기독교회기관과 브로커
2022년 08월 26일 (금) 14:12:18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12-13)
 
기독교 기관의 목적
 
한국교회 내에는 상당수의 기독교 기관이 있다. 한국교회 교회 주소록에만 수록된 교단 총회 본부가 95년을 기준 해서 약 150여 처, 기관만도 약 300여 처, 선교회가 약 200여 처나 되고, 기독교 계통의 방송과 신문, 잡지가 70여 처, 또한 기독교 계통의 대학과 중고등학교, 병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모든 기관들은 최초의 설립 당시는 그 이념(理念)이나 강령이나 목표, 사회계획이 하나같이 교회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고난자(苦難者)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정신으로 충일 하였다.
 
더 효율적이고, 조직적으로 전 교회가 연합하여 선교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친교 하려는 데 있었다. 즉, 교회를 갱신시키고 교파 간에 연합하며, 구호사업과 치료사업, 사회계몽과 봉사, 교육을 통해서 세상 속에 교회의 교두보가 되어 세인(世人)들로 복음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배우며 아울러 하나님의 의(義)를 실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 기관들 중에 적지 않은 기관들이 줄기차게, 때로는 압박을 받으면서 희생의 십자가를 지기를 서슴지 않으면서 그 목적을 위해 일해 왔다. 서적을 출판하고 잡지·신문·방송의 매체를 통해서 외치며, 성경을 배포하고 교사를 양성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교육 교재를 만들고 희생적으로 자선사업과 병원 사업을 전개해 왔다. 혹은 판자촌에서, 혹은 아골 골짜기에서, 혹은 교도소와 고아원과 양로원에서, 혹은 파편이 난비(亂飛)하는 전선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의 종들은 인고하면서 빛과 소금으로 사랑의 빛을 비추고 사회정의 구현에 전력해 옴으로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큰 이바지를 했던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최초의 교회로 시작하기 전 기독교기관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외국의 선교의 교두보는 결국 기독교 기관이라는 매체로부터였다. 1800년대 후반에 이 땅은 암울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둡고 끈적끈적한 기운은 영원히 가실 것 같이 보이지 않던 절망적인 시기였다. 만약 그 때 기독교가 10년이라도 늦게 들어왔더라면 절망의 기운이 이 사회를 침식해 버려 좀체 소생할 기력마저 상실할 뻔했다.
 
이 사회에서 기독교의 전래(傳來)와 활동은 여명(黎明)의 빛 그대로였다. 병원이 세워지고 선교사들은 철저한 희생정신으로 봉사에 임하고 있었다. 병원도 일정한 곳에서만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순회진료반을 조직하여 전국적으로 찾아다니면서 진료했고, 교육도 인원에 구애됨 없이 힘을 다해 가르쳤다.
그런 가운데서도 속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선교(宣敎)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이 백성을 하나라도 더 그리스도인을 만들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즉, 기독교기관은 매체가 되었지, 그것에 얽매이거나 기관을 위해 전력한 것은 아니었다.
 
<언더우드는 도착하는 즉시로 알렌의 광혜원에서 일하면서 한국말을 습득하여 곧 거리나 골목, 혹은 시골에 나가 한국인과 직접 대화하며 전도했으며, 1886년 7월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스크랜튼은 당시 창궐하는 호열자의 유행 도중에도 헌신적으로 여러 환자들을 치료하여 헌신의 산 표본을 보여 주었다.>
(민경배:「한국 기독교회사」61-62페지)
 
이에 비하면 오늘 한국 기독교 기관이 수백 처가 되는데 선교 교두보 역할을 하기보다 선교의 장애적인 존재가 되기 일쑤이니 한심하다. 기관 존속과 이득을 위해서 기독교 간판을 걸고 있는 곳이 대다수이다. 기관이 중점인 동시에 기독교는 하나의 매체가 되어 버린 셈이다. 차라리 기독교 간판을 떼어놓고 사기를 치든 부당한 이득을 취하든 했으면 좋을 것이다.
 
기독교 기관의 필요성
 
대부분의 다혈질의 기독교인들은 곧잘 흥분해서 말하기를 ‘모든 기독교 기관을 없애 버려야 한다. 더러운 교회정치의 온상이요, 선교비의 낭비처요, 부정부패의 발원지이다. 또한 교회분열도 사실 기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혹평하면서 차라리 기독교 기관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독선적인 편견이다. 기독교 기관은 절대 필요하다.
 
각 지교회는 세상이라는 최전방에 전선을 설치하고 사탄의 군대와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대의 예하 단위부대(單位部隊)라고 한다면 각 교단 본부는 야전군(野戰軍)들을 독려하고 방향을 지시하며 적극 보급품을 후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신문·방송·잡지 등과 같은 여타 기관들은 마치 야포부대처럼 후방에서 적극 지원하는 중대한 책임이 부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본부의 상황실이 그 임무에 나태할 때, 전군(全軍)의 야전군들은 혼란에 빠지거나 방향감각을 잃은 오합지졸의 모습을 사회에 보이고 말 것이다. 특히나 본부에서 파당을 짓는 정치에 몰두하거나 자기에게 뇌물을 바치는 야전군 사령관들에게 승진의 계급장을 달아 주며 몫이 좋은 보직(補職)을 마련해 줄 때, 또는 보급품을 마음대로 유용(流用)하여 자기의 사리(私利)의 배를 채우는 등, 부정부패가 만연될 때, 전선의 야전군들은 수없이 곤욕을 치르며 때로는 엉뚱한 골짜기에서 생(生)과 사(死) 속에 헤매며 수만 대군이 포로가 되기도 하고 몰살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본부가 언제나 조망대에서 적의 군세와 위치, 그 화력(火力)을 탐지하고 그에 대처하는 전략을 짜서 시급히 하달하면 야전군은 자기 책임 구역에서 그 전략을 따라 공격할 때 모든 전선에서 사탄의 군대는 패퇴(敗退)를 면치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본부요원은 강한 사명감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각 야전군의 일시적인 실수는 전군에게까지 큰 타격을 주지 않으나, 본부에서 행한 하나의 잘못된 시달이 전군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하고, 본부에서 붉은 버튼(button)을 잘못 누르므로 새로운 사태를 유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관과 지교회의 관계는 이만큼 긴밀한 것이다. 이 관계의 원활한 밀접도에 따라 한국교회가 사회 속에서 활기 있게 승전고를 울리느냐, 패배의 쓰라림을 맛보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관과 지교회의 관계는 불신으로 얼룩져 있다. 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눈에는 각 지교회가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졌으며 목사들은 신학의 빈곤증에 걸려 있고 자기 교회나 치장하며 자족하는 개인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다.
 
반면에 지교회에서는 한국교회가 무기력함과 사회에 대한 계도(啓導)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사회 풍조에 휘말리는 근본 이유가 기독교 기관 책임자들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그들은 탁상 위에 앉아서 낡은 상황판을 보며 선교 전략을 짜는 자들로 순전히 선교비나 축내는 자들인데, 그들의 대부분이 한국교회의 병적인 신학을 주입하는 자들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은 속된 풍조에 휘말리어 부정에 가담하고 뇌물을 바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심지어는 때로는 주석(酒席)을 베풀고 작부와 농이나 나누는 자들로써 그들의 기관은 교회의 정치꾼이 모이는 복덕방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강하게 불신하고 있다. 심한 오해는 피해야 되지만 여하튼 기독교 기관이 주는 냄새는 향기보다도 악취가 더 강함을 부인할 수가 없다.
 
사실상 기독교 기관에서 오래 근무한 이들을 보면 독특한 스타일이 배어 있다. 세련된 매너, 말의 부드러움, 금테 안경을 쓴 서구적인 품위가 풍긴다. 무슨 일이건 노하지 않는 관용이 있어 보이고 유머와 위트가 번뜩인다.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맹이를 잃었다. 신앙이 없다. 말은 번지리 하게 늘어놓으나 희생의 손은 굳어 있다. 회의 석상에서는 열심히 떠드나 교회의 궂은일은 피하거나 아예 교회 출석에 열심이 없다.
 
철저한 실리주의자, 현대의 바리새인이다. 심지어는 어느 기독교 기관의 근무하는 직원들 상당수가 기독교인지 의심할 정도로 술 담배는 보통이고 세례를 받지 않은 자도 적지 않다는 소문은 속이 타게 만든다. 그러한 종류의 사람들이 기독교 기관에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기에 지교회는 경계하며 불신하며 비협조적임을 스스로 변명한다.
 
지금 한국교회 성도가 1,200만이라고 하면서 한국사회에 도덕적인 영향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함으로 부도덕한 사회를 향해 한없이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을 방치하는 무기력함의 원인은 이와 같이 본부인 총회나 기관들과 야전군인 지교회와의 만성적인 불신감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원적 정책이 그 원인
 
어디서 이러한 불신은 엄청난 골을 이루게 만들었을까?
왜 서로의 공리(功利)에만 탐을 내고 있을까?
그 근원은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의 이원적(二元的)인 정책에서 기인된다. 한국교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은 어느 의미에서 외국 선교부(宣敎部)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왔다. 모든 기독교 기관이 선교사의 젖을 먹으며 훈계를 들으며 양육되었다. 20년 동안 버터 냄새나는 선교비로 급속히 성장되었다.
 
그래서 1900년대 들어서서는 스스로 사고할 줄 알게 되고 행동할 줄 아는 정도까지 되었다. 1907년 당시 장로교는 목사 7명, 장로 53명, 신자만도 7만에 달하고 있었다. 자립하고도 남음 있는 교세(敎勢)였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한국인 스스로 운영되는 듯 나타났으나 실상은 선교부가 모든 정책을 주도하고 있었다. 언제나 우월한 위치에서 치리(治理)에 참여하고 관여하며 모든 정책을 책정, 운영하다 싶이 했다. 마치 해방 후 주한(駐韓) 미군과 국방군 사이에 미묘한 관계와 같았다.
 
<지금까지 치리권을 점유하고 있던 선교공의회에서 치리와 조직의 권한을 한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교회와의 완전 단속(斷續)은 어려웠다. 선교사들은 치리면에서 한국교회에 응당 맡겨야 할 것을 자기들이 보존하고 있었다.>
(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38페이지)
 
각지교회는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한국인 스스로가 자립하기 시작하고 한국인 목사가 급증함에 따라 선교부의 정책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교사들은 지교회를 한국인에게 내어 주는 반면, 기독교기관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막대한 선교비를 거의 기독교기관의 시설비와 운영비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기관은 한국인 스스로의 간절한 요망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점과 그 모든 기관이 선교사에 의해 운영되고, 또 선교비에 의존되고 있다고 인식이 각지교회에게 무관심과 비협조적인 습벽을 형성케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기독교기관들이 한국인 스스로 성장한 후에 절박한 필요성에 의해서 설립되었다고 한다면 오늘에 와서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사회를 향해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이 이미 성숙되어진 외국교회가 이 땅에 상륙하면서 본국의 기관을 모방하여 설립하다 시피 했고, 특히 각 교회나 각 선교부가 지나친 경쟁을 나타냄으로 온 부작용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 여러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침체 상태에 빠지게 된 까닭의 일부분은 선교사들이 기관 사업에 너무 과도하게 기울어지는데 기인하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명원:「한국교회 성장사」221페이지)
 
이미 설립했으면 신학교육을 통해서 이 기관을 물려받을 후임 요원을 속히 배출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자기들의 안주할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인상만 나쁘게 풍길 뿐, 한국인에게 넘겨주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기관에 대한 결정적인 불신은 사회에 대한 교두보 역을 해야 하는 기독교기관에 앉아 있는 선교사들의 불투명한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00년을 전후해서 시국(時局)은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동학란, 청일전쟁, 노일전쟁, 일본의 침략 등으로 국왕 고종(高宗)은 강제로 퇴위(退位)를 당하고 국가 대권이 일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군대는 해산당하고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가는가 하더니 마침내 한일합방(韓日合邦)되는 큰 비극 속에 조국은 찢기어 가고 있었다. 이 때 교회는 복음전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백성을 선도해 왔던 교회가 교회구실을 할 때였다. 이에 앞장서서 전 한국교회를 주도할 곳은 기독교기관이었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은 앞장을 서려고 들지 않았다.
 
기독교기관은 조국의 존망 위기 속에서 아무 구실도 못한 채 허수아비처럼 무능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기독교기관이 존속할 명분을 잃고 있었다. 선교부에서는 훗날 마지못해서야 한국인에게 물려주기 시작했지만 선교비를 댄다는 위세로 간섭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모든 기독교기관들은 한국교회를 주도하는 일에 힘쓰기보다도 선교비를 계속 보조받기 위해서 외국선교부에 아부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은 지교회들로 하여금 슬픈 비소(誹笑)를 금치 못하게 했고 심한 수치감을 느끼게 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기관들은 한 얼굴로는 외국선교부에게는 비굴한 웃음으로 아양을 풍기고, 또 하나의 얼굴로는 한국교회를 향해 버터 냄새를 풍기면서 우월감에 찬 표정으로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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