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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장로와 맘몬주의 자들(2)
2022년 07월 29일 (금) 10:20:26 김태복 목사 www.cry.or.kr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은 장로나 집사들이 맘몬주의(mammonism)에 물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교회가 듣는 치욕적인 비난 중의 하나가 돈이 있어야 장로가 된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교회들 중, 장로 투표 시 투표자들이 후보가 돈이 있느냐 없느냐를 우선으로 두는 풍조는 슬픈 사실이다.
 
실제로 대형교회에서는 장로로 임직하기 위해서 수천만 원을 기념품대로 내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앙이 있거나 봉사를 잘하거나 식견(識見)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정의 표준이 풍부한 재물에 두는 교회는 심판받을 파렴치한 일이다. 이는 완전히 예수님의 정신과는 역행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가 자연스럽게 그런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은 기가 찰 일이다.
 
맘몬 신(神)의 위력은 그만큼 크다.
돈으로 모든 이를 평가하고 돈으로 다스리고 돈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사려고 하는 풍조는 이미 그들의 신(神)이 하나님이 아니라 맘몬이다. 결국 그러한 교회는 맘몬이 주장하는 당회, 교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목사들의 모임에 가보면 목회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 당회원 간에 불화에서 교회가 삐걱거리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목사들의 잘못으로 생기는 경우도 많지만 무자격자에 속하는 장로들 때문일 경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장로들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돈이 많은 관계로 장로가 된 이들의 유형이다.
그러한 장로는 교회를 자기 기업으로 착각하기 일쑤이다. 목사도 그의 기업의 한 직원인 양 여기게 된다. 자기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자기의 재력(財力)하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목회자는 공장의 종업원을 갈아치우듯 교회에서 쫓아내면 되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소설의 일부분이 한국교회의 한 단면임에 슬픔을 느낀다.
 
<교회에서 그녀는 신앙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연보를 듬뿍 바치고 남편이 사업이 바빠 교회에 자주 출석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교회에 필요한 비품을 단독으로 기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부흥사의 집회에는 시간을 쪼개어 참석하고 신령한 안찰자(按擦者)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불원천리하고 찾아다녔다. 그녀는 정말 영육간에 행복한 여자였다. 아무런 고뇌도 없었다. 아니 고뇌를 갖기에는 너무나 분주했다.
세 자녀의 어머니이고 사업에 시달리는 남편의 안위자이며 교회의 피아니스트이고 동창회나 자모회의 핵심 멤버이며 몸을 날씬하게 하기 위해서 사우나탕과 보울링장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고뇌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영혼의 안식처인 교회에서 그녀를 괴롭히는 일이 생겼다. 부목사격으로 있는 월급은 삼만 원이고 다섯 명의 부양가족을 거느린 남자가 부인회 헌신예배 시간에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인들 중에 특히 신앙이 있다고 자랑하는 여신도들 가운데 이웃의 불행을 돌아보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만이 교회의 본질(本質)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신도 가운데서 삼사십만 원이 넘는 다이아 반지 같은 것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쌀 한 가마니에 만원의 시세라면 손가락에 쌀 삼사십 가마니를 걸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한 되의 쌀에 온 식구가 굶주리다 못해 집단 자살을 기도(企圖)하는 불행한 이웃들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심각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한 대목의 설교가 그녀의 가슴에 벼락같은 반향을 일으켰다. 공개석상에서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성스러운 자리에서 개인을 모욕하다니……, 아이 분해라. 그녀는 분노의 격정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오! 주여, 제가 이 모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그녀는 당장 달려가서 따지고 싶었다.
그녀가 교회를 위해 기증한 비품들 피아노·강대상·촛대·시계·꽃병·고무나무·화분·커텐 등을 하나하나 열거해 가면서 내가 교회에 이렇게 충성했기 때문에 백배나 천배의 보상을 허락하셔서 받게 된 이 은총의 증거물을 당신이 그렇게 모욕할 셈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이 소설은 70년대에 쓰였기에 부목사의 사례금이 삼만 원이라고 했는데 아마 지금은 30배쯤 잡아야 할 것이고 다이어 반지도 그 정도로 계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하튼 소설은 이 여인이 마침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부목사를 궁지에 몰리게 이야기해 준다. 온 교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녀 같은 여자를 놓친다는 것은 교회의 문을 닫는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온 교인들이 인정할 정도로 교회재정의 대부분을 그녀가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부목사로 하여금 그녀 앞에 사과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한다. 그러나 부목사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래서 부목사는 그 뒤의 어느 날 올망졸망한 식구들을 먼저 버스에 태워 보내고 자신은 삼륜차 운전석 옆에 앉은 채로 교회를 떠났다. 손을 흔드는 교인들에게 그는 마주 손을 저어 보이면서 눈물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행복해졌다.
월급을 사만 원으로 올리자, 그 교회에 와서 충성하겠다는 사람들이 십여 명이 나타났다. 그녀는 즐거워서, 즐거워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자기 집에 모여든 교인과 함께 지원자들이 보낸 이력서를 검토했다. 교인들이 그 서류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녀는 행복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그걸 왜 봐요? 교회 어른들이 보시고 결정하는 대로 저는 따르겠어요. 그녀가 이렇게 사양했으나, 교인들은 이번에 오는 부목사가 우선 그녀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겸손한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종달새처럼 즐거운 음성으로 제가 뭘 알아야죠. 아이구 제가 어떻게 알아요? 라고 노래하듯이 말하면서 이력서들을 그 예쁜 손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반지를 낀 고운 손가락으로 뒤적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백도기:傷痕―「제3일」誌 73년 12월호)
 
기독교 빙자한 장사꾼들
 
둘째, 기독교를 빙자한 장사꾼들의 유형이다.
때로 교회에는 많은 우편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데 상당수가 기독교 광고물들이다. 광고주들은 너나없이 자기는 장로나 안수집사로서 신앙이 신실하며 봉사가격을 내세우고 있고 또 담임목사의 추천서까지 첨부하고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 그들과 거래해 보면 너무나 세상적인 장사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차라리 기독교 이름이나 직책을 내세우지나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실망이 강하다.
 
또한 기독교 학교를 운영하는 자들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교사나 학생들이 기독교를 등지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근간에 어느 기독교 계통의 교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교행사를 대부분 기독교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갖가지 수단방법으로 학생들에게서 돈을 뽑아내는 것도 메스꺼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예배 중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그런 소행을 일삼는 것은 견딜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령, 추수감사절 예배 시 양로원으로 보낸다는 명목으로 쌀을 모으는데 반(班)별 대항을 시키며 그래프를 그려 붙이게 하고 양(量)이 부진한 교사는 호되게 꾸지람을 당함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심한 반발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해서 강제 헌납된 쌀과 헌금의 행방은 교목(校牧)조차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이 학교 기금에 들어갔다는 풍문에 교사와 학부형의 큰 빈축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또 고아원이나 양로원, 혹은 재활원 등, 사회사업을 한다는 이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이런 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가.
 
<삼갈진저! 너 고아원을 세워 하나님과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자여, 너의 자선심은 이미 사람에게 승인된 바로, 너는 공평무사한 자선가로 찬양을 받을 때 이 때야 말로 네가 지옥의 구렁에 타락하려는 위급한 찰나임을 알라. 더구나 이 물질적 세태에 처하여 사업이 정신보다 더 과장될 때, 이러한 위험은 큰 것이다.>
(내촌감삼:「求安錄」 27페이지)
 
셋째, 직업이 없는 유형이다.
돈이 있다는 부자 장로나 집사와 대조적으로 돈이 없어 소외된 장로나 집사들 중 일부는 그의 무기가 외고집이다. 한국교회의 풍속도 중의 하나가 중직이 되는 분들의 상당수가 뚜렷한 직업이 없거나 일찍 퇴직함으로 새벽기도회로부터 교인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애경사(哀慶事)를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니 믿음과 열심 있는 분으로 교인들에게 비취어져 장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거기까지는 상당히 이해가 되나 그들 중의 상당수가 임직하고 나서 태도가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목회자들의 중론(衆論)이다. 임직하기 전에는 그렇게 겸손하게 충성을 다하던 분이 어느 날부터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직업이 없는 탓인지 평일에도 교회를 자주 나와 돌본다는 노릇이 너무 지나쳐서 부교역자들이나 직원들의 시어머니 역할을 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러나 부교역자들이나 직원들이 과거 직장에서 거느리고 있던 부하 직원들처럼 쩔쩔매는 모습이 보일 리가 없다. 또한 자주 나가면 노골적으로 냉대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느끼면서 그러한 수모감을 목회자들이나 직원들의 잘못에 대해서 불평 일변도로 변하기 쉽거나 당회에서 직원들의 문제를 사사건건 거론하므로 자기의 위상을 높이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이기도 한다.
 
넷째, 성경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있는 유형이다.
때로 목회자가 무엇인가 새로운 방향으로 목회 하려면 번번이 성경구절을 들고 나와 반대하는 분들을 만난다. 번번이 성경을 들고 주장하고 따지는 이들을 보면 성경대로 살지 못하거나 성경 자체를 모르기 일쑤이며 신학(神學)은 아예 죄악시하므로 목회자들은 이들로 인해 보람 있는 목회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마저도 맘몬주의자들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무엇을 주장하다가 뜻대로 안 되면 들고 나오는 말이 목회자가 돈 있는 자만 우대하고 그들과만 의논한다고 한다. 이러한 돈에 대해서 지나친 적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지나친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이 갑자기 폭등하여 떼 부자라도 되면 그 횡포가 대단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지금 현재 돈 대신 임시방편으로 성경을 들고 나선 것뿐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장로가 되는 필수 조건의 하나가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딤전 3:3)"이라면 오늘 한국교회의 적지 않은 수의 장로나 집사들이 너무 돈을 사랑하고 숭배하며 무엇이든지 돈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다원화(多元化)되는 사회 속에서 맘몬주의자들과 형식적인 근본주의자들로 인해 세속화되는 교회, 아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교회로 퇴행(退行)하고 있는 것이다.
당회 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지금 많은 장로교회의 문제가 당회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당회가 독단적으로 교회를 운영함에도 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 장로교회는 헌법에 교회 정치력의 대부분이 당회에 집중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인 직책 임명, 중요 정책 입안, 성례식 거행, 재판 등, 교회 내의 정치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다만, 제직회는 재정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나마 제직회의 각 부장도 거의 당회원들이 거의 차지하고 있어서 재정권마저도 당회가 쥐고 있는 셈이다.
 
당회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고 있음에도 견제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부패하기 쉬운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헌법에는 당회 위에 공동의회가 있어서 당회의 잘못된 결정이나 문제를 일으킨 당회원을 견제할 수 있도록 했지만, 문제는 당회의 결의 없이는 소집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는 교회들의 당회가 교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지나친 독재를 하거나 횡포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리 제직회나 세례교인의 3분지 1의 청원이 있어도 당회의 허락을 받을 수 없기에 공동의회를 소집하기가 불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장로의 임기가 항존직(정년 만70세까지)으로 정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번 장로로 임직하면, 불미스러운 일을 범하지 않는 한, 아무리 자격이 미달된 행위를 한 자라도 그 직을 사임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일부 과격한 장로들이 담임목사가 크게 잘못이 없음에도, 무능하여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단의 힘으로 강단에 서지 못하게 하는 등, 강권적으로 사임하게 만들어 교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음에도 그 당사자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장로의 임기를 종신제(시무연한 만 70세까지)로 규정한 것은 장로교회의 전통과 어긋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로제도는 대의제도(代議制度)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평신도들의 대표인 장로와 성직자의 대표인 목사가 함께 교리위원회(당회)를 만들어, 교회의 일을 대의제도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처리케 하였다.
 
이처럼 장로교는 대의제도이기에, 국회의원들처럼 어느 기한을 정해서 다시 신임을 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장로직을 가진 분들이 언제나 교인들의 대표라는 의식을 잃지 않게 됨으로 교인들에게 바른 신앙과 행위의 본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장로의 임기제가 없는 교단은 한국과 스코틀랜드 교회뿐이다.
 
그러므로 장로로 시무하는 분들은 헌법에 보장된 항존직이라는 생각에 안주하면서 교인들 앞에 지나치게 당회의 권한만 강조함으로 문제가 되는 교회가 허다하다. 이제 한국교회 발전을 위해서 당회제도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저들이 살아 있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교회 속을 깊이 들여다보라.
오늘도 한국교회 속에서 남이 칭찬하든지 말든지, 화려한 표창패를 주든지 말든지, 기독교 계통의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리든지 말든지 그 모든 것에서 초연한 자세로 오직 주님을 위해, 오직 이 백성을 위해 땀 흘려 헌신하는 장로들이 적지 않음에 놀라게 된다. 그들로 인하여 교회는 성장되어 왔고 앞으로도 든든히 서갈 것이다.
 
저 퇴폐로만 치닫고 있는 사회의 어두운 골목을 보라.
저 위선자들과 악동(惡童)들이 득실거리는 속에서도 어떻게 교회와 사회가 점진적이나마 성장해 가는 가를 눈여겨 관찰해 보라. 그리고는 곧 깨달을 것이다. 그곳에는 오늘도 또 하나의 이상재가 헙수룩한 촌부(村夫) 차림을 한 채 흰머리와 수염을 날리면서 민중과 청년들에게 저 빛나는 꿈을 보여주고, 혹은 의기(義氣)를 길러 주며, 함께 땀흘리고 있음에 감동을 느낄 것이다. 때로는 그는 소탈하게 웃기도 하며 때로는 조국의 답답한 정국(政局) 때문에 분노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
 
어느 거리에서는 또 하나의 남강 이승훈 장로가 자기의 사재(私財)를 털어 가며 교회를 짓고, 학교를 건립하며, 고아원을 지은 후에 학생들이나 원아(園兒)들과 함께 유숙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들은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헐벗기도 하면서도 주님과 조국을 위해 사는 기쁨 때문에 그 지팡이를 놓지 않다가, 마침내는 자기 몸뚱이까지 내어놓을 듯이 하는 위대한 모습 앞에는 목이 메어지는 것이다. 우리 목회자들은 저들의 큰 가슴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음과 그들에 비하면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이 별로 없음에 부끄러워진다.
 
우리도 저들처럼 살리라.
혼이 떨림을 느낀다.
또한 고당 조만식 장로가 아직도 이 거리에 어디엔가 살아 있어 큰일을 감당하고 있음에 놀란다. 오산(五山)학교 교장, 신간회 평양지회장, 관서 체육회, 조선일보 사장, 조선 민주당 당수 등 헤아릴 수 없는 수다한 직을 맡기어도 그 그릇의 크기를 채울 수 없는 거성(巨星)이었으나, 교회에 와서는 사회적 지위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자기 제자인 연하의 주기철 목사에게 섬기는 자세로 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진한 감동을 느낀다.
 
저들은 오늘도 쉬지 않고 거리와 골목에서, 혹은 캠퍼스와 전방에서, 양로원이나 교도소에서, 혹은 농촌이나 외진 섬에서 죽도록 충성하고 있기에 한국교회와 이 사회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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