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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삯꾼(2)
2022년 07월 15일 (금) 07:48:18 김태복 목사 www.cry.or.kr
저질 목회자 양산 막아야 한다.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 중 저질 목회자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량신학교들 탓이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임의로 설립, 운영하고 있는 소위 신학교 및 사이비 신학대학원의 난립과 이를 통해 양산되는 저질 목회자들의 과잉 배출이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엄청난 신학교가 난립되어 있다. 2009년「한국교회연합주소록」에 보면 정규신학교 및 비인가 신학교의 수가 무려 280개교 이상이 수록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신학교 중에는 대부분이 비인가 학교로 교실 서너 개와 교수 몇 분(대부분 그 교단 출신 목회자)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나 2년 이내 단기코스로 졸업하여 안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니 얼마나 문제투성인가? 이들의 80퍼센트 정도가 한자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요, 영어 수준은 아예 말할 것이 없고 기말고사 답안지를 보니 전체 수준이 논술은커녕 중학교 작문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들 모두가 이렇게 교육을 받은 후 소위 3학기 째에 형식상 준목 고사 라는 것을 치르고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아 목사로 임직을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한심한 일들이 아닐 수 없다. 형편없는 시설로 신학교를 설립하고 이런 무자격자들을 입학시키어 1-2년 적당히 교육을 시킨 후에 불량목회자를 배출함으로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한국사회까지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의 명예욕과 물질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런 신학교를 설립하고 엄청난 저질목회자를 양산하고 있는 자들이야 말로 하나님과 한국교회 앞에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시급히 오염원이 되고 있는 불량신학교부터 속히 폐쇄해야 한다. 그리고 각 교단의 대표로 구성된 책임 있는 기구로 하여금 목사고시와 목사재교육을 관장토록 함으로 미자격 사이비 목사들이 설 자리를 잃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단호한 조치를 하지 않고는 엄청난 저질목회자들이 배출되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어지럽힘으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로부터 더 엄청난 비난과 반대를 직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주기철, 최봉석 목사를 보라
 
사실, 현재 한국교회에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우리 목회자들은, 일제(日帝)나 한국동란 시에 순교적으로 목회했던 분들의 저 희생의 열매를 먹으며 호화로운 대접을 받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민경배 교수가 저술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라는 책을 보면서 깊은 찔림을 받았다.
 
<주기철이 고문의 아픔을 얼마나 겪었는가 하는 것을 그의 자술(自述)속에 눈물겹게 기록되었다. '인간의 육체라는 것이 그렇게도 아플 수 있는가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좀 더 주님이 힘을 주시겠지요.' 신앙은 불꽃같았다. 그리고 그 신앙은 육체를 가진 인간 주기철의 신앙이었다. 그는 고문의 쓰라림에 인내하지 못할세라 힘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미 감옥 생활을 오래 한 주기철이었다.
마지막 감옥 생활은 계속 4년을 끌었다.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다만 안이숙과 1년간 한 감옥에서 멀리 바라보고 지냈고, 그리고 다른 아무도 감옥 안 생활을 목격하고 전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는 격리된 감방에서 외롭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감옥에서의 조식(粗食)과 감식(減食)에 시달리고. 그리고 ‘손가락 회화’로 안이숙에게 ‘갖가지 음식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고 이른 일이 있었다. 그의 창백하고 안질로 붉어진 눈매에 인간의 약함이 보였다.
그는 쑥갓이 먹고 싶었다고 한다. ‘쑥 갓, 파란 쑥갓으로 소고기롤 어떻게 요리하는지 몰라도, 쑥갓 물에 쟁긴 것을 슬쩍 슬쩍 집어먹으면서 국물을 훌훌 마시면, 그것은 참 진미고, 나는 본래부터 그것을 좋아했어요.’라 했다. 주기철이 캄캄한 감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그의 노모나 아내가 옆에서 들었다면 땅을 쳤을 것이다.>
 
또한, 주기철 목사가 감옥에 있는 동안 일제의 사주(使嗾)를 받은 평양노회가 창동 예배당에 모였을 때, 산정현교회의 목사관을 평양신학교 사택으로 쓰게 해 달라고 하는 평양신학교의 청원을 이의 없이 가결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가 1941년 1월경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산정현교회가 갖은 방법으로 그러한 만행을 막으려고 했으나 역부족으로 목사관에서 노모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이 쫓겨나 그 추운 겨울에 헛간에서 사흘을 보내야 했고, 해방이 될 때까지 그 가족들은 무려 열세 번이나 집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때일수록 온 교회가 힘을 합쳐서 주기철 목사를 도와야 할 판에 오히려 가해자(加害者)가 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통탄할 일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은 자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공경한다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것과 어쩌면 그렇게 흡사한 모습인지 가슴이 너무 아프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러한 만행을 보고만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그 결과가 지금의 북한의 모습이 아닌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로 인해 유대인들이 2,000년 동안 나라를 빼앗긴 채, 모든 나라에서 추방과 학살을 당하는 형벌을 면치 못한 것처럼,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기독교의 성시(盛市)를 이루던 북한 땅이 가인의 후예들에 의해 강탈당하고 그들이 그처럼 경건히 여기던 예배당들과 평양신학교가 공산당의 집회실이 되어 바로 사탄의 소굴이 되었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던가?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의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 1:4)
 
김광수 목사가 저술한 「한국기독교 인물사」에는 최봉석 목사의 헌신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다.
 
<최 목사가 만주에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그의 만주 전도 기간 14년에 모두 합치면 28교회이다. 넓은 만주 벌판에 널려 있는 이 교회들을 심방 하려면 몇 달이 걸려야 했다. 그 고생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어떤 날은 시장기가 들어 기진맥진하였다. 얼마를 걸었는지 알 수 없지만 촌락 가까운 논두렁길을 걸어가다 가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 잃고 있다가 졸졸 물 흐르는 소리에 깨어 본즉 올챙이와 물고기가 있는 것을 보고 잡아먹고 기운을 회복하여 동리에 들어가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다. 언젠가, 또 한 번 끝없는 벌판을 가다가 길가에 쓰러져 깊이 잠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깨어 보니 아침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소를 끌고 지나가는데 최 목사는 소리 지를 힘도 없다.
소가 지나가면서 똥을 눴는데 그 쇠똥 속에 노란 것이 있었다. 콩알이었다. 그 콩을 모두 집어서 껍질을 벗기고 입에 넣었다. 약간 삶은 콩이어서 딴딴하기 때문에 소가 소화를 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최 목사는 그 콩을 주워 먹고 기운을 차렸다. ‘예수님, 쇠똥에서 익은 콩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힘이 났으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그는 또 길을 재촉하였다.>
 
아, 위대한 종들이여.
그가 주워 먹던 콩마저, 그릿 시냇가에 은둔해 있던 엘리야에게 날라다 주던 까마귀의 떡과 같이 거룩하구나.
어찌 그들뿐이랴.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종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순교적인 삶을 살면서 굶기를 얼마나 밥 먹듯이 했던가? 그럼에도 그들은 고매한 인품을 잃지 않았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의 목회적 삶은 얼마나 추한 세상 욕망으로 얼룩져 있는가?
 
아니, 이렇게 점잖게 훈계조로 떠들고 있는 필자 자신도, 30여 년 전만 해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촌 교회에서 박봉(薄俸)에, 나무를 때면 연기가 온 방 안에 자욱해지는 사택(舍宅)에서, 그리고 하루에 서너 번 지나다니는 시외버스도 장날에 타려면 짐작 꼴이 되는 것이 싫어서 아예 포기하고 십리 길을 터덜거리며 걸어 다녀도 가슴 깊숙한 곳에는 의기(義氣)가 넘쳤는데, 오늘의 모습은 어떤가?
 
적지 않은 사례금에, 제법 큰 목사관에, 많은 서가(書架)를 비치해도 넉넉한 넓은 당회실에, 쩍하면 당회장이라고 푸짐한 대접과 과분한 선물을 받는 입장에도 황송한 마음은커녕, 때로 교인의 칠순잔치나 교계의 무슨 행사 때에 큰 호텔 뷔페에서 음식 먹을 기회가 있으면 ‘이 호텔은 음식 맛이 있니 없니.’라고 품평이나 하는 등, 배부른 소리를 하기 일쑤이고, 고급 승용차를 굴리는 목회자를 보고 돌아오는 마음은 마치 필자만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글을 쓰다 말고 갑자기 파란 쑥갓에 소고기를 넣은 국을 먹고 싶어 하던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주 목사와 쇠똥에서 익은 콩을 골라 먹던 최 목사가 떠올라서 목이 메어 온다.
 
어느새 우리는 이처럼 바산의 암소처럼 기름져 버렸는가.
오, 간사한 입맛이여, 채워도 채워도 자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이여.
그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구나.
이대로는 안 된다. 언제인가 「기독교신문」의 칼럼을 읽다가 ‘아니, 어쩌다가 우리 목사들의 세계가 이런 식으로 평가받게 되었는가?’라고 개탄한 적이 있었다.
 
<목사의 등급은 자가용 목사, 택시 목사, 버스 목사로 3등분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그랜저 목사, 쏘나타 목사, 엑셀 목사, 택시 목사, 버스 목사로 5등분되고 말았다. 차 한 대에 기천 만원 호가하는 그랜저 목사와 몇 천원의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버스 목사의 차이는 그러니까 4등급의 차이가 난다.>
(복음연구소 최일호 소장)
 
아무리 자동차 문화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다 할지라도 정신적인 지도자인 목회자가 자동차의 차종에 따라 그 등급이 매겨지고 있다는 사실은 심히 부끄러운 전락이다. 물질로 평가되는 목사의 등급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물질욕에 매여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짜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들의 추한 소식, 그리고 기독교계 신문마다 게재된 대문짝만한 광고에 나타난 무슨 대회 조직표에는 무슨 부회장, 무슨 총무가 그리 많은지. 그것은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명예욕의 종이 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최근에는 교인들과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목회자들의 소식들과 유인물들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으니 ‘어쩌다가 우리 목회자들이 이 모양까지 되었는가?’라는 생각으로 안타까움에 싸이게 된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기 전, 우리 목회자들 모두가 가슴을 찢으며 회개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너무나 배가 기름져서 영적으로 무딜대로 무딘 상태가 되었기에 이런 목회자들의 비행이 속출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무나 안타깝다.
 
때로 나라의 정치가들이나 재벌들의 비리가 강하게 나타날 때라도 이렇게 문제투성이의 기독교가 이 일에 대해서 나단처럼 단호하게 그들의 더러운 탐욕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수년 동안 각 교단의 교단장이나 연합회 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수억 원의 자금이 뿌려지는 금권 타락 선거를 자행해 왔기 때문이다.
목사들이 그런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분명 대부분 교회의 경상비에서 염출되거나 교인 중의 유력가로부터 후원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성도들의 땀과 눈물로 바친 그 거룩한 헌금을 자기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서 남용하다니.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다. 오,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는 저 굳어진 양심들이여. 굳어진 양심들이 교회와 사회를 향해 뿜어내는 영적 공해들이여.
 
정신에는 선각자, 물질에는 후진자(後進者) 되어야
 
나라가 맑아지려면 윗물이 되는 상류층이나 지도급 인사들의 생활이 맑아져야 한다. 특별히 나라의 도덕이나 윤리 의식이 맑아지려면 종교계의 지도급 인사들부터 경건과 절제 생활에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특별히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종교가 기독교라면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의 생활이 맑아져야 한국교회가 맑아지며, 한국교회가 도덕과 윤리의 맑은 샘이 될 때 동시에 사회도 점점 순화(純化)되어 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목회자들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는 과욕으로 치닫던 우리의 태도를 큰 결단의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목회자는 영적, 정신적인 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의 눈으로 역사를 조망(眺望)하고 닥쳐오는 시대의 상황을 직시하고 분별하여 백성에게 옳은 방향을 예언해 주어야 한다. 때로 높은 파수대 위에서 암운(暗雲)처럼 몰려오는 어두운 풍조의 위험을 예지하고 경고의 나팔을 높이 불기도 해야 한다. 또한 물질적인 면에서는 선비적인 검소 검약이 나타나야 한다.
 
인간은 정신의 풍요와 물질의 부요를 동시에 누릴 수 없다.
어느 편이 강하면 어느 편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정신계에서는 선각자가 될지언정 물질적인 면에서는 교인이나 백성들보다 결코 앞서가서는 안 되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다. 종교의 창고에 물질의 부요로 넘칠 때 속화(俗化)된 것을 역사는 수도 없이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사례금이나 사택이나 승용차나 세상적인 소유 면에는 교인들의 중간층 수준보다 조금 앞서는 정도가 알맞을 것이다. 교인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목회자도 함께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들의 주택이나 승용차가 고급화된다면 목회자의 것도 고급화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문제는 많은 목회자들이 물질 면에서 교인들보다 앞서 가지려고 하는 데서 비판의 화살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흥사들이 오도(誤導)한 탓이다.
목회자에게 최상의 대우를 하는 것이 그 교회와 교인들이 복 받는 길이라고 열심히 강조한 탓이다. 그런 주장은 지금도 한국교회 많은 강단에서 정설(定說)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러한 길은 예수님이나 바울, 그리고 많은 위대한 종들이 앞서간 좁은 길이 아니고 분명히 넓은 길이다.
 
위에 소개한 최일호 소장의 글 뒷부분은 이렇게 맺고 있다.
 
<검소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되어 이 사회에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할 주님의 종이 아무리 안전하고 편안하다손 치더라도 주님의 핏값인 교회의 헌금으로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어려운 목회자들이나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면서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어찌 덕이 되겠는가? 더 나은 승용차로 바꿔 드리겠다고 하는 데도 굳이 거절하던 김 추기경의 속마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우리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의 목회자들이여, ‘오늘 주님이 오신다면 무서운 책망을 받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욕망의 신발을 벗고 각자의 강단에 엎드리어 반성하고 회개하자. 젊은 목회자들이여, 영적 공해가 너무 심해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풍토 속에서도 오직 좁은 길을 따라 담대히 가 주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마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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