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그 역동적인 모습과 질긴 생명력에서 찾아보는 인간과 사회 **
 
                                             
산이나 숲에서 흙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를 볼 때면 
꿈틀거리는 듯한 힘찬 생명력을 느낀다. 
뿌리는 생명의 탯줄이고, 생명을 향한 몸부림이며 생명 그 자체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다. 뿌리를 잃으면 생명도 잃기 때문이다.
  
뿌리의 영역은 흙 속이다. 흙에 묻혀 있어야 뿌리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분과 영양분을 흙에서 흡수하여 줄기와 가지와 잎으로 보내 주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또 흙 속에 뿌리를 깊게 내려야 나무가 흔들리거나 뽑히지 않는다. 
곧게 설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강한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뿌리의 역할이다.

그런 뿌리들이 밖으로 노출되었다는 것은 생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일까? 폭풍우와 빗물에 파이고 등산객들의 발길에 파여 길 위에 노출된 
나무뿌리들을 보면 더욱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대지를 부여 안고 처절한 몸부림과 아우성이라도 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무뿌리는 환경에 따라 그 스스로의 물리적인 힘보다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나무는 뿌리가 뻗어나갈 방향을 가로막은 바위를 타고 넘어 
흙 속으로 뿌리를 내린 것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커다란 바위 사이를 뚫고 들어가 
그 무겁고 단단한 바위를 둘로 갈라놓은 것도 볼 수 있다.

뿌리는 스스로를 지키는 생명력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까지 품어 안고 지키는 역할도 한다. 
흘러내리는 물로 파여 나가는 흙을 보듬어 안아 
산사태를 막아주고 약한 풀이나 생태계를 지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뿌리의 한계는 이동성이 없다는 것이다. 
고정된 위치의 일정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이동성의 한계가 뿌리의 슬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뿌리는 그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를 붙잡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 않을까. 
산길 한가운데 등산객들의 숱한 발길에 채이고 짓밟히는 뿌리를 보라. 
그 처절한 몸짓을 보라. 노출이 심하면 심할수록, 짓밟는 발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강한 힘으로 흙 속을 파고들어 대지를 껴안는 저 처절한 몸부림을 보라.
 
등산길에서 길 위에 노출된 뿌리를 탓하지 말 일이다. 
발길에 걷어차인다고, 걸려 넘어졌다고 뿌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곳은 본래부터 뿌리의 영역이었다. 생명을 일구어 가던 삶의 터전이었다. 
그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지를 끌어안고 몸부림치고 있는 뿌리가 안타깝지 않은가.

"나 좀 밟지 마세요, 나 아프단 말예요" 하고 나무뿌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직 선 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없고, 그 터전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나무에게는 선택의 여지란 없다.



그 뿌리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인간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뿌리가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대지는 인간이 뿌리를 내려 발붙이고 사는 삶터가 아니던가. 
인간들도 나무뿌리처럼 삶의 터전을 짓밟히거나 빼앗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결코 과거만의 일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들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삶의 대지는 꼭 땅만은 아니다. 
농토일 수도 있지만 공장이나 회사, 시장도 또 다른 형태의 삶의 터전이며 
생명의 대지인 것이다. 그 삶의 터전에서 밀리고 잘리고 짓밟히는 모습이 
등산로에 노출된 나무뿌리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인간들의 삶의 뿌리인 것이다.

그래서 뿌리라는 말은 다양하게 사용되고 이해되기도 한다. 
속담에서 한 번 찾아보자. "뿌리 깊은 나무 가뭄 안 탄다"는 
근원이 깊고 튼튼해야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인간의 삶에 비유되는 속담이다.

또 "뿌리 없는 나무에 잎이 필까", "뿌리 없는 나무가 없다"라는 말도 
근본이 있어야 결과를 기대할 수 있고,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역시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뿌리를 뽑다"와 "뿌리가 깊다"라는 말도 
인간의 원한이나 인연을 일컫는 말로 주로 사용되며 
특히 '뿌리를 뽑다' 라는 말은 사회악이나 범죄, 또는 질병을 
근본적으로 없이 하거나 치료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뿌리라는 말은 질긴 생명력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셈이다. 
특히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뿌리라는 단어는 좋은 쪽보다 
부정적인 면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가령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역사에 얽힌
중국과 일본에 관련된 문제들은 떨쳐버리고 싶은 기분 나쁜 잔뿌리일 것이다. 
다른 나무의 삶의 영역에 침범하여 공생하지 않고 
오히려 빼앗고 죽이는 아카시아나무 뿌리처럼 말이다. 

그 질긴 생명력으로 말하면 친일의 뿌리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길 위에 노출되어 고귀한 생명을 향한 몸부림으로 아름다운 
나무뿌리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 어둠에 깊게 뿌리내리고 
빛에 노출되기를 거부하는 그 음험하고 간교한 뿌리 말이다.

성경에서는 일만 악의 뿌리는 욕심이라고 말한다. 
욕심이야말로 모든 악한 마음과 행동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악의 뿌리라는 말이다. 
지나친 욕심은 밝은 눈을 어둡게 하고, 양심의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한다. 
그 지나친 욕심이라는 악의 뿌리가 부정부패와 각종 범죄를 발생케 하는 원인인 것이다.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한 소위 "재벌 관련 X 파일"이나 
언론사 사주의 재벌과 검찰의 연결고리 역할 등을 보면서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의 국가와 민족, 정의를 외면한 부도덕성과 
뿌리 깊은 비리의 일면을 보는 듯 하여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얽히고설킨 그들의 인맥과 각종 비리의 사슬들을 그림으로 그려놓으면 
아마 저 흙 위에 드러난 나무뿌리보다도 더 복잡한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어둠의 세계는 언젠가는 반드시 빛에 노출되도록 되어 있다. 
친일의 역사도, 특권층 그들만의 오만한 잔치 속에 숨겨진 추악한 모습도 
깊은 흙 속에 묻혀있던 나무뿌리들이 드러나듯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비리와 부정, 정의를 외면한 지도층의 부도덕한 악의 뿌리는 
반드시 파헤쳐 잘라내야 한다. 종교계의 고질적인 잘못된 관행과 
짠맛을 잃은 소금, 꺼져버린 등불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숲 속이나 등산길의 드러난 나무뿌리들은 흙으로 덮어주어야 한다.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힘없는 약자들이 보호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뿌리를 덮어주고 세워줘야 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교회들이 
그들의 편이 되어 주고 보듬고 안아 보살펴 주어야 한다. 
밝은 대지에 깊이깊이 뿌리내리고 힘찬 생명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이승철 (시인 수필가 홍익교회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