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치료를 위한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 답답한 마음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앞으로도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며 암담한 진단을 하였습니다. 부족한 종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성도님들께 감사하고도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이번 침묵의 기간 중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독일 사람 '쿠르트 파이페'라는 분이 쓴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Dem Leben auf den Fersen)』란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쿠르트 이 분은 아주 평범한 정원사입니다. 그는 3년 전 의사로부터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인생의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암은 수술을 하고 다음은 화학요법에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지만 치료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는 모든 치료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별을 준비하고 유언장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3년을 더 버텼습니다. 그러다 결국 염려하던 장폐색이 왔고, 1m 정도의 장을 떼어내고, 방광에 있던 암 종양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곤 인공항문 기구를 몸에 달았습니다. 3개월 후 다시 장 조직검사를 하였을 때, 그의 대장은 암세포로 완전히 퍼져있었습니다. 의사도 이제는 포기하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쿠르트 파이페는 더 이상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마지막 소원을 아내에게 말하는데, 바로 "유럽 걷기 여행"입니다. 그런 엄청난 수술을 하고 한 달 뒤에 그는 유럽 걷기 여행의 대장정을 떠납니다. 배에는 인공항문 기구를 차고, 온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의 독일의 국경인 쿠퍼밀레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3,350km 걷기에 도전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의 8배의 거리입니다. 25-30kg의 배낭을 메고 166일 동안 그는 결국 걷기에 성공하고 맙니다. 그는 길을 가는 도중 산속에서 쓰러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 여행이 아니니 도중에 길이 끊어지고, 강과 산을 수도 없이 넘어야 했습니다. 이정표도 쉽게 나타나지 않아 길을 잃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게다가 폭풍우와 짐승의 위협 등이 끊이질 않았고 계속해서 장루주머니를 교체하며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살아남았고, 그 먼 거리를 성공적으로 걸었습니다. 그는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인생은 너무 짧아요... 일어나서 함께 걷지 않을래요?"하고 속삭입니다.

저는 360페이지짜리 걷기 여행 기록이었지만, 너무 흥미있고 재미있게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남산을 걷고, 10일 전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다녀왔습니다. "올레"는 제주도 방언으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말입니다. 문(門)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오래"가 제주에서는 "올레"로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오마이뉴스"의 서영숙 본부장이 산티아고 길을 걷고 돌아와, 제주도에 만든 길입니다. 2007년 9월에 개장되어 지금까지 15개 코스, 260km정도가 개발되어 있고, 개장 후 1년 만에 약 3만 명이 이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6-9코스를 걸었습니다. 6코스(쇠소깍-외돌개), 7코스(외돌개-월평포구), 8코스(월평포구-대평포구)ㅡ 그리고 새롭게 개발된 중문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한 마디로 "환상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의 해안길을 따라 길이 만들어져 있기에 그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 오름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올레길은 재밌게도 표시가 있습니다. 길에 녹색으로 그려진 화살표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때론 리본을 따라 걷습니다. 이정표가 없으면 내가 맞는 길을 가는지 약간 불안한 마음이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정표가 나와 안심시킵니다.

하루 20km를 걷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68살의 독일 정원사는 166일 동안을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렇게 걸었습니다.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도 다시 걷고 싶습니다.

/약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