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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3)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도록 기도하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9년 05월 04일 (월) 07:27:05 이준구목사 bibleon@lycos.co.kr

   
 

(에베소서 강해 23)

제목 :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도록 기도하라    
성경 : 에베소서 1장 17-20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에베소서 1장 17-20절)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나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항상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한구절의 말씀도 온전하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말씀을 들으러 나올 때에 항상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보면,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복음의 비밀을 가장 많이 깨달은 인물입니다. 그가 복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날마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님께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가 복음의 비밀을 많이 깨달은 이유는 지혜와 지식의 영을 많이 구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통해 바울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영안이 열린다고 말하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실상 영안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열려야 합니다. 또 설교를 들을 때마다 열려야 합니다.


2.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영안이 열리려면, 준비기도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충분히 준비 기도를 드리십시오. 오늘 읽는 말씀을 열어서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얻게 해달라고 충분히 기도하십시오.

예배를 위해서도 충분한 준비 기도를 드리십시오. 예배시간 30분 전에는 기도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찬양을 부르는 시간이 있으니까, 30분 전에는 기도를 시작해야 적어도 15-20분 정도의 준비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때 준비기도는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열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설교에 담긴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나의 것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꼭 이것을 실천하십시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 시작 40분에는 교회에 오셔서 10분 정도 인사하실 분들과 인사도 하시고, 헌금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10분 안에 끝내시고 예배 시작 30분 전에는 기도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설교말씀에 담긴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얻어 설교를 듣는 것과 그냥 듣는 것은 천양지차로 다릅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다닐 때, 성공회 신학교 교수님이신 최영실 교수님의 강의를 한 학기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최영실 교수님께서 예수의 비유란 과목을 강의하셨는데, 정말 은혜가 있는 강의였습니다. 강의 도중 찬양도 부르고, 간증도 하셨습니다.

최영실 교수님은 복음에 저항하던 여성이었습니다. 교회 다니시는 부모님에게 억지로 끌려서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어서 부모님께 끌려서 참여했지만,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부흥회니까 특별한 것을 깨달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깨달은 것이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여 기도할 때에 기도원에서 마침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 집회에 참여해서 설교말씀을 듣는데, 인생에서 처음으로 설교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원에서 하는 설교는 길어서 보통 2-3시간동안 설교를 들었지만 그때는 너무 짧다고 느꼈습니다. 정말 목마른 사슴처럼 말씀을 빨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설교를 잘하는 목사님은 처음 만나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 집에 돌아와 그 목사님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부모님이 놀라운 사실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전에 교회 부흥회에 오셨던 목사님과 기도원에서 만난 목사님이 같은 분이셨던 것입니다. 같은 목사님의 같은 설교를 듣고도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을 수도 있고, 꿀송이보다 더 단 진리의 말씀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 하시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영적인 비밀을 많이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많이 기도하면 됩니다. 바울이 영적인 비밀을 많이 알았던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께 많이 구했기 때문입니다.   


3.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실 때, 우리가 3가지 부분에 대해 깨닫게 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의 자리로 부르신 자들에게 약속하신 미래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어떤 놀라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 풍성한 영적 유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나에게 어떤 영적 유산을 물려주셨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하십니다.

위의 이 3가지는 모두 영안이 열릴 때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을 깨닫는 자들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3가지의 영적 비밀들을 깨닫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온전한 깨달음을 위한 출발점이 되길 기대합니다.


4.
이제부터 영안이 열릴 때에 깨닫게 되는 영적 비밀 3가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우선 부르심의 소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8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18)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게 됩니다. 부르심의 소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영어성경 NLT에는 부르심의 소망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 you can understand the wonderful future he has pramised to those he called.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미래를 당신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미래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습니까? 그 일에 어려움이 많지요.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 때문에 심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6일에 이라크에서는 하루에 3명의 기독교인이 살해당했습니다. 살해 당한 수산 라티프 다비드와 무나 바나 다비드는 기독교인이 많고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키르쿠크의 도메즈 지역에서 괴한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날 같은 지역에서 바실 샤바도 괴한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으로 알려졌기에 괴한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보다 앞서 4월 21일에는 파키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에 의해 2명의 기독교인이 처형되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을 습격하여 교회를 폐쇄하고 두 명의 기독교인을 처형했습니다.

이날 100명의 탈레반이 이 마을 습격하여 가옥을 파괴했고 기독교인들을 곤봉, 철몽둥이, 채찍 등으로 폭행했습니다. 또 몇몇 기독교인 집에는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저항하는 기독교인들을 붙잡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을 했습니다. 그들이 공개처형 방식은 뒤에서 총을 쏴서 죽이는 것입니다.

이들이 탈레반에게 폭행을 당하고 집이 불타고 처형을 당한 것은 전부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전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어려움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 때문에 영광스러운 미래를 포기할 수 없기에 우리는 고난과 핍박을 받는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르신 자들에게 약속하신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스러운 미래를 깨닫지 못하니까, 핍박과 어려움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5.
그럼 영안이 열려서 부르심의 소망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첫째 예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은 이후에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6-21절입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16-21)

이것은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은 직후에 설교한 내용의 첫 부분입니다. 그날 베드로는 요엘서를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첫째 성령충만은 낯선 것이 아니고 선지자 요엘에 의해 이미 예언된 것이란 사실을 알려줍니다. 둘째 성령께서 제일 먼저 보여주신 것은 마지막 날의 환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 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믿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믿어야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3,000명을 회개시킨 베드로의 설교 첫 부분입니다. 성령께서 영안을 열어주시면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잘 믿는 것에 인생에 우선순위를 두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영접기도를 합니다. 영접기도는 영접시키는 자의 기도를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입술의 고백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진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앵무새에게 영접기도를 시킨다고 앵무새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 믿는 것이 내게 제일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영안이 열려서 부르심의 소망을 깨달을 때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마지막 날의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안이 열리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또 예수 잘 믿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예수 잘 믿는 법을 열심히 배웁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소망을 깨달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6.
둘째 영안이 열릴 때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미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하셨습니까? 에베소서 2장 3-7절을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 2:3-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미래는 어떤 것입니까? 죄인으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미래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게 될 하늘의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앉아계신 하나님 보좌 우편입니다. 예수님께서 앉아계신 자리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바로 그 자리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이 약속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하늘에 앉히신다고 했을 때, 이 말은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입니다. 이미 하늘에 우리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즉시 하늘에는 우리가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자리에 가서 앉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다스릴 영광스러운 자리가 우리를 위해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광스러운 미래를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런 미래를 보았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초의 순교자였던 스데반에게도 이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스데반에게 맡기신 일은 돌에 맞아 죽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다른 사역도 많은데 하필이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자신에게 맡겼느냐고 예수님께 따지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스데반이라면 분명히 왜 더 편하고 다른 사람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도 많은데 왜 저한테는 이런 일을 맡기시느냐고 따졌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스데반에게 설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스데반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면서, 너도 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본 스데반은 넉넉히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선포하고 죽었습니다. 스데반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령께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치 있는 일에 대해서 속을 때가 많습니다.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이 돌에 맞아 죽는 일이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맡기신 일이라면 그것은 아주 고귀한 일입니다.

‘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는 책을 쓴 최하진 선교사는 카이스트 연구원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겉으로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과학자였지만 본질은 무익한 일을 하다가 돼질(본인의 표현) 죄인이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연구원직을 그만두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위해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의미 없는 일을 가치 있는 일로 포장하기에 급급합니다. 최근 정부가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다시 재개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황우석 박사는 한때 우리나라 최고 과학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연구 대부분은 거짓이었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는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그는 많은 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연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치병 환자들을 만나면 몇 년 안에 완벽하게 치유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것에 희망을 두고 있을 환자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나쁜 짓을 하고 다녔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가 황우석 박사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세상은 이렇게 의미 없는 일은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입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초라해 보여도 속지 마십시오. 그것이 진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생명을 다해 충성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영광스러운 미래를 얻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에게 맡기신 것이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 일에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충성을 다하기로 결단하시길 축원합니다.


7.
오늘날 여러분이 왜 예수 믿는 것이 힘들고 짜증나고 불편합니까? 이유는 결국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게 되면, 저절로 예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맡기셔도 마음을 다해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이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예배드릴 때마다 영안이 열리도록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영원히 지치지 않고 피곤하지 않을 영적 은혜를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준비기도의 중요성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을 읽을 때나 예배를 드릴 때에 항상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어떤 상황에도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맡기셔도 능히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령의 도우심을 영안이 열려서 부르심의 소망을 깨달아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넉넉하게 이기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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