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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2018년 10월 14일 (일) 12:02:24 김태복 목사 webmaster@cry.or.kr
(마28:16-20)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웨슬리 목사님을 위해 세워진 기념비를 보게 되는데 그 기념비에는 웨슬리의 세 가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세계는 내 교구다. (2)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가신다. (3)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라는 내용인데 이는 웨슬리 목사님이 죽음을 맞으면서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처럼 귀하고 좋은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하셨고, 심지어 범죄하고 도망치는 야곱에게도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에게는 반드시 단서가 있습니다. 어떠한 자와 함께 하십니까? 많이 배운 자인가? 아니면, 재력이 있는 자인가? 아니면,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한 청년인가? 아니면,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자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말씀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가, 아닌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명령을 하시기 전에 먼저 축복의 약속을 먼저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신 전에 약속하시기를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라고 하시면서 먼저 약속하시기를 출3:12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의 학벌과 재력, 성품과 건강, 나이를 보지 않으십니다. 다만, 약속의 말씀을 믿느냐, 안 믿느냐, 말씀대로 순종하느냐, 아니 하느냐를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1. 하나님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느 분은 하나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고함고함 소리를 지르며 간구할 때에만 오셔서 도와주시는 분으로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어려움이나 위기를 당할 때만 우리 양떼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시23편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목자가 양떼와 언제나 함께 있으면서 푸른 초원,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보호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에 낮에는 시원한 구름기둥, 밤에는 따스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매일같이 만나와 생수를, 며칠마다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나 하셨습니까?
 
광야 생활이 끝나는 40년 동안이나 계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감격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가 자연적으로 임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에 처하여 고통을 받을 때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만날 때에만 하나님의 임재를 새삼 느끼고는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감각함을 우리는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달을, 공기와 물, 때를 따라 비와 땅의 열매, 더 나가서는 건강과 자유를 주십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감사하더니 어느 날부터 저절로 생기는 것인 양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안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자기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과 매일 함께 계십니다. 신28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나가도 들어와도 복을 받고, 자녀와 땅과 가축도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유명한 저술가 데일 카네기가 한번은 뉴욕의 어느 교회에서 신앙 간증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울먹이며 간증했는데,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라면서 얼마나 가난했는지 일 년에 용돈이 50센트, 우리 나라 돈으로 600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가정은 아무리 열심히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서 완전히 파산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쳐버린 아버지는 47세 나이에 6개월뿐이 못 살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때에 그 가정이 일어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신앙 탓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살림을 맡아서 온갖 거친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찬송하기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라고 했고, 밤에 아이들이 잠들 때에는 곁에 와서 “하나님이 너희를 돌봐주신다.”라는 말을 잠들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음에도 저녁에 굶고 잠자리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음을 이야기하며 “한 조각의 빵 속에는 어머니가 계셨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라고 간증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어머니의 믿음 속에서 아버지는 89세까지 장수하셨고 훌륭한 자녀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으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심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하나님은 큰 환난 중에도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시23편에 보면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매일같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갈 때도 자기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해 받지 않도록 특별 보호하신다고 했습니다. 낮에는 아무리 별을 보려고 할지라도 보이지 않지만, 여름 밤하늘을 보십시오. 수많은 별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평안한 낮에는 주님의 손길을 잘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서 주님의 손길은 더 분명하고 강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의 날은 괴롭지마는 그러나 한 가지 유익은 그때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더 강하게 체험할 수 있는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환난은 더 좋은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살수록 점점 환난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꿈을 숨김없이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들의 미움을 사서 마침내 노예로 팔려갑니다. 보디발 아내의 노골적인 성적인 유혹 앞에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라고 하면서 신앙으로 순결을 지켰더니 이번에는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두렵습니다. 절망감이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그러나 요셉을 보십시오. 그런 환난 중에도 조금도 믿음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창39:21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게 하셨고 나중에는 그 환난이 총리대신이 되는 지름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끌려갈 때에 타고 가던 배가 큰 풍랑을 만나 여러 날을 표류합니다. 언제 배가 전복되어 죽음이 닥쳐올 지 몰라 276명의 선원과 승객, 군인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장정도 용사도 없습니다. 바울도 ‘이제 여기서 익사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불붙는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행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바울은 즉시 아비규환에 빠진 276명에 “안심하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다 살려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고 전하면서 안정을 시켰습니다. 결국 그 약속대로 바울 뿐 아니라 276명이 모두 무사하게 살았습니다.
 
그 당시 그런 큰 배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은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에 갔을 때 바울의 능력에 대해 소문을 듣고 수많은 상류층의 사람들이 찾아옴으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때로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이 몰려올 때라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시고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근심하거나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만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결정적인 나쁜 영향을 줍니다. 어느 분이 상자 속에 쥐를 100마리를 넣고 철망을 친 뒤, 그 주위에다가 고양이를 묶어 놓았다가 100일 후에 꺼내어 해부해 보았더니 거의 모든 쥐가 위장병과 심장병, 그리고 암병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근심과 두려움 대신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십시오.
 
의사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에 따라 우리 몸을 장악하는 단백질의 분해방법이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시련이나 역경에 직면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엔돌핀과 부신피질이 몸에서 나와서 건강과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토요 리뷰’의 편집장 노만 카슨이라는 사람이 500명 중에 겨우 한 명만 살아남는다는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목부터 손에 있는 관절까지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카슨의 담당의사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뼈저린 고통과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던 어느 날 노만 카슨은 「건강법」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사람이 부정적인 정서와 생각을 가지면 신체에 아주 나쁜 영향을 초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노만 카슨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책을 보지도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도 슬픈 것은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웃을 수 있고 기쁨을 줄 수 있는 희극 영화를 보고 노래도 기쁜 노래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한 지 1년이 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난치병이 깨끗하게 나았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평안할 때에든지, 환난 당할 때든지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 옆에 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시고 오직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후, 이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힘쓰는 자에게 그 사명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명만 주시지 않고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지금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음에도 17절에 보면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제자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비겁자요, 의심자요, 도망자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주님이 떠나신 다음에 그 사명을 감당할 자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10일 후에 그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큰 담대함, 큰 능력으로 온 땅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반대자들이 위협할지라도 저들의 불타는 열심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하루에도 3천 명, 5천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아니,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던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킨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다락방에 모여서 10일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한 결과 성령의 강한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받기 전에 모세는 다만 마른 막대기를 들고 양을 치는 목자에 불과했으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믿음으로 나갈 때에는 강한 능력을 부어주셔서 그 막대기를 10가지 기적을 나타내고 200만 이상의 백성들을 광야생활 가운데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명을 받기 전에 여호수아는 모세의 종에 불과했으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믿음으로 나갈 때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가나안 땅이 점령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님으로부터 사명은 받았으되 부담을 느끼며 삽니다. 마지못해 충성합니다. 이 사명의 짐 벗어 놓고 도망칠 궁리만 합니다. 그러므로 열매가 신통치 않습니다.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능력도 부어주실 줄 믿으시고 열심히 기도하시면서 담대히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가십시오. 그러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친히 도와주십니다. 그때 우리 앞에 막고 섰던 홍해나 여리고성이 무너집니다. 사탄이 장악하고 있던 완악한 심령이 무너지고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도 요한이 일생동안 전력을 다해 주님을 위해 충성하다가 결국 90세의 나이를 맞게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평안한 노년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무도 살지 않는 밧모섬에 유배를 보내셨습니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오직 망망대해만 보이는 아주 외진 섬이었습니다. 이제 자기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사도 요한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기도를 할만 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남은 생애동안 기도하다가 하늘나라에 가라는 사명인 줄 알고 이마에 혹이 나도록 기도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면서 주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마지막 때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시는 놀라운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리빙스턴이 처음 선교사로 아프리카를 향해 떠날 때에 많은 식구들이나 친지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때 그는 오늘 본문을 큰 소리로 읽어주기를 “볼지어다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여러 해를 보낸 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주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에, 사자의 공격으로 불구가 된 한쪽 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로 저는 인사말 겸 간증하면서 자기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힘들었던 길고 지리한 낮과 고독한 밤들, 백인들의 얼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 어려운 상황을 모든 사람들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기를 “여러분이여, 내가 그 힘든 곳에서 어떻게 지탱할 수 있었던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내 곁에 서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면 나는 그 어려움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힘으로는 주님의 일을 못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연약할지라도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줄 믿고 순종의 길로 나갈 때에 매일의 삶에서, 때로 큰 환난 가운데서라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강하게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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