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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5강 6:16-35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니
2018년 08월 15일 (수) 16:55:08 조무웅 강도사 webmaster@cry.or.kr
 옛날에 각설이 타령이라는 것 들어보셨어요 품바 타령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이렇게 연결이 되지요 이자 삼자 사자 이래가지고 하지 않아요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품바들이 각설이라는 사람들이 사방을 다니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방 다닌다는 것은 세상을 많이 안다는 것이어요 소문도 많이 듣고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 같은 것들이 있어요 숫자를 상징해서 시대를 풍자하기도 하고 각설이는 정색하여 말하지 않고 풍자해서 말하지요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괘 많이있어요 무슨 영화이지요 도는 도 도레미송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 송 여러분 그것 듣고 나면 기억도 잘 되고 그 다음에 또 무엇이냐 하면 변화할 수 있지요
 
  내가 아는 사물들을 가지고 변화할 수 있고 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즐거워요  그래서 우리들이 기억하기 위해서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숫자에 대한 상징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숫자 잠언이 등장했어요
  16절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데 예닐곱 가지
  곧 교만한 눈과 하나만 하나 둘이면 둘 이러면 좋을 터인데 두 서너게 데  여섯 개 여 일곱 개 고정해 놓지 않고 열려 있는 것이지요
 
  아까 이야기 한 대로 그렇게 하나 둘로 명료하게 느껴져요 분명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너무 숫자로 규정을 해 놓으면 답답한 느낌이 들어요 열려 있는 것이지요 네 다섯가지 그래서 학자들은 엑스하고 엑스 더하기 1 이렇게 이야기해요 여 일곱가지 네 다섯가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즐겨 쓰고 있는 숫자 잠언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아모스 1장 3절 다메섹의 죄 서 너가지가 있으니 그러면서 말해요 모든 것이 자주 등장해요 아주 명료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사람들로 약간 여백을 가지고 읽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여기 보니까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있답니다. 하나님도 미워 한 게 있다는 사실이 좋지요 왜냐 하면 좀 안심이 되어요 우리도 마음으로는 사랑하고 살고 싶지만 때때로 미워지는 사람도 있거든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이 너무나 성스러운 사람이어서 미워하는 사람 없습니까?  가급적 미워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때때로 미워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누군가를 미워하신다고 하니까 고마워요
 
 
  그런데 여기에서 미워하다라고 하는 단어는 원래는 역겨워 하다입니다. 강렬한 이미지인데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역겨워하신다 어떤 것들일까?
 
  어떤 것입니까? 교만한 눈 이것을 하나님이 역겨워 하신다 눈이 교만한 것 치켜 뜬 눈입니다. 이야기 합니다. 교만한 눈이라는 것은 깔 보는 것입니다. 깔 보고 남을 내려다보고 하나님이 어떤다고요 역겨워 하십니다. 굉장히 강력한 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7절 거짓된 혀를 미워하신다   그런가 하면 거짓된 혀와 거짓 증언하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증인을 세우는 까닭은 진실을 증언하려는 것이지요
 
  거짓 증언하면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실종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짓 증언이라는 것이 거짓 증언하지 말아라 거짓 증언의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회적 약자들이 거짓 증언의 피해자가 됩니다.
 
  왜냐 하면 힘 있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부추기거나 돈으로 매수하거나 거짓 증언하므로 이런 것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폭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거짓된 혀를 미워하신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실 여러분 세상에는 살리는 말이 있지만 죽이는 말도 있다 그래서 살리는 말 죽이는 말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어떤 말들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모욕하는 것 이것을 여러분 모욕하는 것을 모르티피케이션(mortification0이라고 이야기 하는 데 모르트(mort) 죽음을 뜻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모르트 모르티피 케이션 내 말로 누군가를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자는 시원할 지 몰라 누군가를 모욕함으로 자기가 어떤 권력을 가진 것 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모욕당하는 사람은 사회적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하나님은 진노하시지요. 하나님이 역겨워 하신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7절 무죄한 죄의 피를 흘리는 손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인것 생각해 보면 되겠지요. 그러나 무죄한 자를 죽이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어디에서 등장합니까? 십자가 사건이지요 아무 죄가 없음에도 극단적 폭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지요
 
  십자가라는 것은 인간이 고안해 놓은 처형 도구 가운데 가장 잔학합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옛날에 전쟁은 군인과 군인이 싸웠어요 민간인들이 죽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전쟁에서 민간인이 죽기는 했지만 민간인이 전쟁에서 죽기는 했지만 민간인이 전쟁에서 목표는 아니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테러라고 하는 게 무자비로 테러가 자행이 되지요 공중에서 테러가 자행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죽어가고 부상을 입고 그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평생 안고 가는 상처라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지요
 
  테러라고 하는 말이 프랑스 어에서부터부터 시작이 되는 데 프랑스에 대혁명기 1793년 이 무렵이지요 그때 권력을 잡았던 사람이 로베스피에르라는 사람이 쟈코베당이 권력을 잡습니다.
 
  그래서 왕당파의 사람들을 처단해 가면서 본건의 잔제를 없에겠다고 이야기 하는데 아주 공포정치를 해요 아주 사람들 잡아서 고문하고 처형하고 그 공포정치를 라테르르 그렇게 발음을 한데요 여기에서 나온 말이 테러여요 공포이지요
 
  누군가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이것을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그 다음에 18절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이렇게 말하는 데 우리 마음이 나쁜 일을 꾸미고 도모하고 이런 것들을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은 악에 인이 박힌 것이야 자기도 모르게 악을 저지르는 것이 습관처럼 되 있는 것이야
 
  여러분 주전 8세기 예언자인 미가는 그 시대에 아주 타락한 현실을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미가 2장 1절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고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음으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있을진저 나쁜 것 생각해 내고 날이 밝기 무섭게 악을 행하고 마는 것이지요 이것이 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19절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들 거짓된 것을 진실인냐 꾸미는 사람들 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들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형제 사이를 이간 갈라놓는 것이지요 이간하는 것
 
  여러분 전부터 이야기 했지만 사탄이 하는 일은 무엇이냐 분열을 일으켜요 사탄은 나누고 찢는 것이야 분은 나누는 것이고 열은 찢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탄의 전략은 나누고 지배하라 사탄의 전략을 사람들은 디바이드 엔드 루르(Divide and rule) 나누어요 그래서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야 사탄의 세력은 무엇이냐 하면 분단 세력입니다.  그렇지요 갈라놓는 것이야  이간질 시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갈라진 것을 잇는 사람들이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폰티펙스(potifax)라는 이 말은 옛날에 로마의 대제관을 뜻하는 말입니다. 대 제사장을 그래서 이 말에서부터 교황을 뜻하는 말도 여기서 나옵니다.
 
  폰티페스라는 말의 본래적 뜻은 다리를 놓는 사람이어요 그러니까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 통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에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을 갈라놓아서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
 
  여러분 우리 시대에 가장 슬픈 가운데 한자는 사람들의 경제력에 따라서 사람들의 사는 지역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이 여기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이 여기 살고 그래서 서로 소통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무엇이냐 하면 담을 만들어요  이들을 또 여기 갈 생각이 없어요 무엇으로 막아 놓지요. 씨씨 티브이 경비워 담장 이런 것들로 해요 담이 있기에 안 보여요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하느냐 하면 서로에 대해서 상상해 저 사람이 위험할 것이야 이것이 세상을 갈라놓는 방식이어요
 
  지역적으로 분할 되고 나면 이렇게 갈라져요 옛날에 우리가 살던 아주 오래전을 생각해 보면 마을에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다 소통하고 저 집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점점 모르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요
 
  어쩼던 이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해 놨는데 인간적인 의미에서는 발전이 아닙니다.
  어쩼던 이 다리 놓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는 것이어요  
 
  그 다음 이야기 보십시다
  20절 아들에게 아버지의 명령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명령과 법을 네 마음에 세기며 네 목에 메라 마음에 세기라 이것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목에 멘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외국에 나가면 우리가 제일 잘 챙겨야될 것이 무엇이어요 여권이지요 밤낮 여권이 제 자리에 있나 생각하지요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그마한 허리 백에 담거나 목에 메지요 소중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어요 목에 메라고 하는 것은 그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 품어야 하는 것이지요
 
  부모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명령 혹은 가르침 그것을 팽게치고 다니지 말고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야 된다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부모님이 전달해준 그 말씀이 22절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고 인도하고 우리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가르쳐 준다
 
  영화를 보면 서양 영화 같은데 나쁜 일을 저지르려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자기 가족사진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으니까 가족사진을 돌려 놔 그렇지요 그런 경우가 있지요 이제 그런 것이어요 항상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이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말로 미츠바라고 하는 데 이것이 히브리말로 명령이어요 몇 개의 미츠바가 있는가 하면 율법에는 613개의 미츠바가 있어요
 
  그래서 긍정적으로 하라 하는 미츠바가 248개입니다. 하지 말라 금령은 기억하기 좋아요 365개 정말 따져서 그렇게 했나 모르겠는데요 무엇 무엇을 하라라고 하는 미츠바는 미츠보트 아세라고 이야기 하고 하지 마라는 명령은 미츠보트 로 타세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어쩼던 하라와 하지 말라로 되어 있지요  그것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어요  할 것과 할지 말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
 
  훈계의 책망은 받아 드려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훈계라는 것은  디시프린 훈련하는 것이야 제자를 뜻할 때 디 사이플이라고 하는데 디 사이플이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나를 훈련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니까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삶의 지향이 분명해야 되어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안개가 낀 산에서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노프를 잡고 가야지요 부모로부터 전래되는 미츠바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안내해 주는 것이지요. 그것을 붙들고 가야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
  24절 네가 그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그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여인에게서 이방여인에게서 유혹하는 데 빠지지 않게 하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자칫하면 유혹자에게 넘어갈 수 있어요 여기에 악한 여인이 어떻게 유혹한다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25절을 직역하면 네 마음이 그의 아름다움에 탐하지 말며 눈꺼플을 흘리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눈꺼플이 어떻게 흘리는 것이어요  원래 보면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면 그 여자가 자기의 순눈섭으로 너를 붙잡지 않게 하라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라고 하는 소설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쌍테스 프로에 살고 있는 안나가가 오빠집에 가정사 귀족 청년이 브론스키라는 청년이 있는데 눈이 마주쳐요 사건이 벌어져요
 
  그 대목에서 브론스키가 왜 매혹을 느끼느냐 하면 짙은 속눈썹 때문에 강하게 빛나는 잿빛 눈이 사뭇 친근하게 그의 눈을 주시했다 속눈썹이 홀리지요
 
  24절 그 여인이 호리는 눈에 탐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보면 아름다운 것 보고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예쁘면 옛날에 어떤 일질범이 그랬지 않아요 유전 무죄 무전 유죄 그렇게 외쳤는데 요즈음은 바뀌었다고 하지 않아요 예쁘면 무죄 이상한 시대여요 미모 지상주의 시대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관능적 아름다움이어요 관능적 아름다움을 탐하는 순간 그의 영혼이 스올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분명해요  그 관능적 아름다움이 내 마음에 확호기 사모하는 순간 그것은 덫에 걸린 짐승과 같아요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아름다운 그 자체를 절대 가치로 여기고 있는 문예사조를 탐미주의라고 하지요. 탐자는 다른 탐자이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자체에 빠져 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관능적 아름다움이 너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하라 그것이 눈에 홀리기 시작하는 순간 네 생명은 스올로 기울어져 있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6절에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무슨 이야기이지요 여하튼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빵 한 조각조차 음녀에게 넘어간다는 것이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빼앗긴다는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음란한 여인은 그 음녀는 결혼한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유부녀여요 일종의 그 유부녀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망가뜨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면
  26절 그 여인이 귀한 생명을 사냥한다 그렇게 말했고요.
  27절 사람이 불을 품고서야 그 옷이 타지 않겠느냐 사람을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않겠느냐 부정한 관계의 그 결과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불을 품으면 옷 탈 수 밖에 없지요 숯 불 위에 서면 발 데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여기 발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자주 남성의 기관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것이야 성경에서는 자주 그렇게 사용되어요 발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  숯불을 밟는다 불을 품는다 여러분 히브리어로 보면 사람이 이쉬 인에 불이라고 하는 것은 에쉬여요 음성학적으로 비슷하지요 언어 놀이를 하고 있어요 불을 품는 사람은 망하는 것이야 구지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은밀한 죄 속에 이미 심판이 들어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30절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 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여러분 어떤 사람이 배가 고파서 도둑질을 합니다. 그런데 안 들키면 다행인가요 여러분 일전에 제가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어요
 
  텔레비전에 나온 것인데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어떤 분이 본인의 집이 없어요
  그런데 돈을 버는 데도 집이 없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버는 돈 가지고 노인들과 노숙자들을 위해 밥을 제공하는 것이어요 매일 점심을 제공을 해요
 
 
  이 분이 많이 배우지 못한 분이고 시골에서 어린 시절에 상경을 합니다. 서울에서 아무도 거두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배가 고파서요 너무 배가 고파서 찐 빵을 파는 집에 가 가지고 찐 빵 하나를 입에 넣었어요 주인이 나와 가지고 빵을 빼앗았어 입을 이렇게 쥐고 입안에 든 빵까지 이게 너무 큰 설음이었어요
 
  그래서 이 분이 작정한게 무엇이냐 하면 나는 배고픈 설음을 겪고 있는 사람들 도와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버는 것 가지고 이 분이 사는 집을 카메라가 따라 갔는데 아주 허름해요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지요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마음속에 감동이 배고픈 설음 이런 것들이 있지 않아요
 
  30절 도둑이 굶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 하면 사람들이 멸시하지 않지 오죽하면 그러나 들키면 칠 배나 갚아야 하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어쩌면 가진 것 다 주어야 할지 모른다 배고픔이 동기인 경우가 그렇다는 이야기이지요
 
  우리가 도둑질 해서 7배를 갚아야 한다는 규정은 별로 안 나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도둑질의 상황에 따라서 출 22장 1절 2배 4배가 나오는 데 7배를 이야기 하는 것은 무엇이냐 철저한 배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행위를 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알지요 그런 경우도 있지마는 문학으로 이야기 하자면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 비참한 사람들 이야기이지요 거기에 나오는 장발장 우리가 이야기한 장발장이지요 그렇지요
 
  정말로 배 고파서 빵 하나 훔쳤는데 그것 때문에 복욕하게 되고 쫓기고 이런 경우를 보여 주고 있어요 이런 경우와 연결해 볼 수 있는데 어쩼던 도둑은 멸시 당하지는 않아 자기의 것을 빼앗기기는 해도 도둑을 했다고 해서 배고픈 도둑질입니다. 사회적으로 매장 되지는 않는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런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도둑질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그 다음 이야기와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여기 무지하다는 말은 지각이 없다고 하는 말이어요
 
  그렇지요 지각이 없다는 말은  마음이 결핍되었다 지각이 없어 나도 어디가면 지각을 안 합니다. 농담이고요 지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결핍된 것이야 참 기가 막힌 이야기이지요
 
  마음이라는 것이 참 알기 어려워요 마음이 알기 어려운데 결국 마음이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이지요.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분별하는 일을 분별하는 것이 마음이 해야 할 일이지요.
 
  이 악한 충동 반응적 욕구 여기에 사로 잡히는 순간 강한 충동 프로이드가 강한 성적 에너지 이런 것들이 우리를 사로잡는 순간 자기의 마음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자기의 양심도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없는 것이지요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은 없는 것이지요  마음이 결핍되는 것이야 지각하지 않으니까 내 마음이 사라진 것이야 강렬한 열정이 여기 있으면 내가 어떤 분노의 감정에 사로 잡혀도 마찬가지인데 속으로 생각해요 내가 이러면 안 되지 그런데 통제가 잘 안 되는 그런 경우들이 있지요
 
  32절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왜 무지하냐 왜 마음이 결핍되었느냐 결국은 그 관능적 유혹에 넘어가서 순간적인 향락과 쾌락은 누렸는지 모르지만 결국 그것이 자기를 망가뜨리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지금 들려주고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망가뜨립니까?
  32절 이렇게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씼을 수 없게 된다
 
  34절에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받지 아니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매를 맞고 치욕을 경험하고 수치가 지워지지 않는 것이지요 결국은 이것은 사회적인 매장입니다.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에 대해서 상처가 났어 몸에 그러면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 딱지가 앉지요 처음에 짓물 나다가 상처가 앉아요 조금씩 빨리 떨어지면 좋겠는데 애가 잘 알 떨어져 긁어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떼어낼려고 하지요 그러다가 피가 나  
 
  김교신 선생님 이야기가 딱지가 떨어지는 것은 안에서 새 살이 돋아나야 떨어지는 것이지 내가 밖에서 뜯어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 무엇인가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의지적인 노력으로 끊지 못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면속에 무엇인가 차 올라야 돼 신앙이 해야 하는 일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속에 든든함을 주는 그의 속이 허해지지 않도록 든든함은 주는 일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러한 삶을 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서 하나님이 미워하고 역겨워 하는 거리를 두고 살 수 있어요
 
  우리의 소명은 분명합니다. 세상에는 분명히 그런 관능적 아름다움에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지할 수 있는 것은 하면 안 돼 이야기 하므로 저지가 잘 안 돼 중요한 게 그들 속에 새로운 질서가 들어와야 돼 그들 속에 새로운 내적 든든함이 생겨나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쩼던 내가 선물 되는 삶을 통해서 조금씩이나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을 잘 산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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