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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53강 97편 악을 미워하라
2022년 07월 02일 (토) 19:48:19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오늘 여러분의 표정이 좋으네요 보니까 환히 웃는 사람도 있고 또 미소 짓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사람들 보면 표정들이 제 각각이고 또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르고 그렇지요.
 
세상을 살면서 기쁠 일만 있지도 않고 슬픈 일만 있지도 않고 때때로 그런 다양한 정서들이 모아가지고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데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지요. 오늘 하루라는 것이 점철 되는 것이 인생이지요.
 
점은 면적이 없지않아요. 선이라고 하는 것은 점이 모음이 선이지요. 오늘 하루 내가 어떤 점을 찍느냐 하는 것이 내 인생 전체와 관련이 되지요 그래서 내 삶을 다 다스리면 좋겠다 생각이 되는데 살다보면 우리 인생이 마치 음악으로 이야기 하자만 장단이 있고 고저가 있고 강약이 있고 그렇지요. 이게 조화롭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이 어지러워지지요
 
그것을 잘 높낮이를 맞추어 가지고 잘 배치해 가지고 아름다운 선율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인생을 잘 산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겠다 생각을 해 봅니다. 다스린다는 말이 있지요 무엇인가 다스린다 그 말은 내가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힘으로 내 마음에 맞게 변화시킨다든지 내 뜻을 그에게 강요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자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배치를 함으로서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그래서 배치를 잘하면 그 속에서 어떤 정서도 표현이 되고 음악을 통해서 흥도 돋구고 이렇게 되지요 그래서 잘 다스리는 사람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요.
 
평안함을 주기도 하고 그것을 넓혀서 이야기 하자면 한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좋겠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하나도 허비되거나 잊혀지지 않고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좋은 자리에서 저 마다의 소리를 낼 수 있는데 그 전체가 다 개별자가 아니라 모두가 다 하나의 운명을 만들어 내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잘 다스리는 사람들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안타갑게도 그런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세상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 상상을 해 보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을 일컬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 이렇게 말하지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무엇일까요 어떤 정서를 우리에게 줄까요. 자 이것이 오늘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공부하려고하는 시편으로 가 보겠는데 시편 97편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분 이 시편을 보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인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 시가 어떤 때 나왔을 까 시의 삶의 자리는 무엇일까 이것이 우리가 첫 번째로 가져야 할 관심인데요
 
사실은 이 시가 어느 때 나와 있는지 정확히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옛날 문헌을 누가 기록해 놓지 않으면 그래서 시의 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 시의 그 상황들 지금 시를 말하고 있는 시적 화자가 어떤 상황속에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사용된 언어들이 주로 어떤 언어들인지 이런 것들을 면밀히 대조해 봐야해요.
 
거기에다가 이 시가 배치되어 있는 자리 시편이 150편까지 있는데 그 가운데 배치된 자리 이런 것을 정밀히 확인해 가면서 이 시가 어느 시대에 나왔을 것이야 짐작합니다. 짐작이니까 꼭 맞는 것은 아니어요
 
대게 시편 97편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알렉산더 대왕이 갑자가 세상을 떠나고 알렉산더는 어떤 나라의 왕이었지요 마케도냐의 왕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알렉산더가 지중해 세계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강력했던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았던 이 알렉산더의 영화로움이 갑작 스럽게 끝난 것이어요. 그리고 나니까 사람들이 숨어 있던 사람들이 숨쉬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를 억압하고 있던 저런 사람도 일식간에 사라지는구나 이런 것을 느끼지요.
 
그러면서 예민했던 유다인들은 결국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세속의 임금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이제 느끼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이 시의 첫 머리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1절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역사의 어두움이 짙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어요 70년대에 양성우라는 시인은 자기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런 시를 남기지요 겨울 공화국 계절로서 겨울이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의 어두움 역사가 질곡속에 있음을 겨울 공화국이라는 말 속에 표현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거기에 잔득 짓눌렸던 사람들이에게 소망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이것이 선언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억압적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때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즐거움에 나 혼자만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지요. 온 땅 초대하고 있어요.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 지어다 땅과 섬을 이야기함으로 온 세상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한 계시록에 가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의 기쁨을 찬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땅과 섬만이 나옵니다. 온 우주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오거든요 아름다운 노래이지요.
 
저는 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찬양의 광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이 있고 네 생물이 주위에 있고 24장로가 있고 천군 천사가 있어요 그런데 보좌에 가까이 있는 네생물부터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러요. 보좌 곁에 있는 어린 양에 대한 찬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24장로가 아멘으로 화답하고 천군 천사가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 온 우주가 합창하는 것이어요. 온 우주의 노래가 들려오는 완성된 그 세계를 바라보고 있던 그 때가 언제이냐 하면 계시록이 쓰여진 시기는 로마가 포악한 지배를 한 시기이거든요.
 
숨 쉬기 어려울 때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런 조화로운 세상에 꿈 꾸고 살았던 것이지요 그 꿈이 그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데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2절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다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필이면 왜 구름과 흑암이 주님을 둘러요 좀 번쩍 번쩍하고 조명이 터지고 그러면 좋을 터인데 구름과 흑암이 그분을 둘렀어요. 무슨 뜻일까요. 어두울수록 빛이 강하게 비추기 때문에 정진규 시인의 시 제목 가운데 그런 것이 있어요. 별들의 바탕은 어두움이 바땅하다.
 
사실은 밤하늘에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그 어두움에 배경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하늘이 파란 것처럼 보이지만 검거든요 그래서 천지 현황 그런단 말이야 하늘이 검다 땅은 누렇고 검을 현자요. 천지 현황 천지현황이 어디에 나온 것은 아세요 천자문 하늘天 따地 검을玄 누루黃 그러니까 하늘은 검고 땅은 누런 것이지요.
 
그런데 보면 우리는 하늘은 파랗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낮에 보는 세상이 우주라는 게 검은 것이지요 그래서 요한씨가 이야기 한 대로 별들의 바탕이 어두움이 마땅한 것처럼 어쩌면 어두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찬란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이런 것이지요. 그것도 아주 훌륭한 사고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게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낮낮이 다 알려준 분입니까? 아니면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이 다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하나님의 신비 구름과 흑암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리어져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언듯 언듯 보여 주신 것만을 알 수 있어요 그것을 라틴어로는 디우스 fp베라투스(Deus Revelatus)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도 하느냐 하면 스스로를 숨기시는 분이기도 해요 데우스 아브스콘디투스(Deus Absconditus) 이렇게 이야기 해요 어둠 가운데 숨기시는 하나님이단 말이어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위험한 사람이어요 그렇지요 그 사람들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훔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되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부분적으로 알 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할 수 있어요. 그래서 너무 신념에 차서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데 이렇게 말하면 그 분을 따라가면 안 돼 주의해야 돼 이게 무엇이냐 하면 이단들을 분별하는 방식입니다.
 
꼭 교리적인 이단뿐만 아니라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도적질하기 위해서 자기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할 때도 있어요 위험해요 이런 사람들은 그래서 시인이 이야기 합니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다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만 온전히 다 드러나 있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했는데 그 다스림의 요체가 둘로 나오고 있습니다.
 
2절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에 기초다 이야기 하고 있지요.
의와 공평 그랬는데 여러분 의와 공평 이것은 우리가 공부 많이 했는데 의(義)와 公平(공평)이어요.
의로움 이것은 세다카라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이것은 회복적 정의와 관련된 것이어요 회복적 정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여기 네 사람에게 골고루 땅을 나누어 주었는데 살다보니까 어느 하나가 병약하고 가족관계도 어렵고 누구의 지원도 못받아서 점점 어려워 졌어요.
 
살기가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운도 좋고 그래가지고 부유해졌어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요한씨가 어려워졌어 정규씨가 아주 좋아졌어 그런 경우에 이것이 점전 이렇게 커 가다 보면 요한씨가 너무 불행하지 않아요.
 
삶이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이것을 사회가 너무 불공평하게 된 것을 바로 잡으려고 애를 쓰지요 어떤 것들을 통해서 여러분 안식년(安息年) 희년(禧年)이런 것을 통해서 땅이 원주인에게로 돌아가고 빚이 탕감되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시 한번 일어 설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지요 그게 회복적 정의야 회복시켜 주는 것이어요.
 
예를 들어서 나하고 누구 사이에 문제가 생겼어 미란씨하고 나 사이에 서로 미워하는 문제가 생겼어 그래서 굉장히 힘들어 졌는데 나 용서했어 그리고 안 보면 되지 뭐 이러면 용서한 것이어요 안 한 것이어요
 
진자 용서라는 것은 대면해야 되고 대면해서 관계가 회복될 때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어요 이것이 회복적 정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공평이라고 하는 것은 사법적 정의와 관련이 있어요. 사법적 정의는 어떻지요. 법이 정한 방법에 의해서 처벌하는 것이어요. 사실은 법이 살아 있어야 사회가 안심하고 살 만한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은 조금만 잘못해도 감욕에 들어가고 부요한 사람은 큰 잘못 저질렀는대도 부유하니까 풀어주고 이런 세상에는 공평이 없는 세상이어요. 그렇지요. 인간 세상에는 이런 공평도 없고 의도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오늘 이 시인이 이야기 하고 있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의 기초는 의와 공평이다는 것이어요. 이 두 가지가 함께 탁 서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요체이다 여러분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산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이지요
 
정치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국회에 들어가 있는 국회의원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저것만 마음속에 탁 담고 살아도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요
 
여하튼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은 의와 공평을 당신의 다스리심에 요체로 삼으시는 분이시지만 의와 공평을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 여기에서 표상되고 있느냐하면 하나님이 불의에 대해서 심판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3절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서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도다.
4절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하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은 다시 말하거니와 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요. 심판의 엄중함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앞에서 불이 나와 가지고 불의한 사람들을 사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번게가 세계를 비추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여러분 번게가 치면 모두가 다 알지 않아요.
 
번개치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급작스럽고도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천둥 번게칠 때 괜히 무섭지요. 우리 이렇게 이야기해요 죄 지은 것도 없는 데 무섭다고 정말 죄 지은 것이 없을까 천둥 번게치면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가끔 천둥 번게가 필요해요. 나를 돌아보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5절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산들이 여호와 앞 곧 온 땅이 주 앞에서 밀납같이 녹았도다하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산들은 유형의 산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또 산은 산처럼 우뚝한 사람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요. 하나님의 심판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작은 존재로 깨닫기 때문에 마치 밀납처럼 여기 녹는 것이지요.
 
그런데 반면 우뚝한 그런 사람들은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불의한 사람들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움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기쁨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세상에서는 정의와 공평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 약자들 세상에서 힘없다고해서 짓눌리고 살고 있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면 어떼요 자기들이 기를 펴고 살수있게 되지 않아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6절 하늘이 의를 선포하자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다고 이야기 했지요.
 
여러분 천국이라고 하는게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 마태복음 천국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 나라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나라 국(國)자가 있어가지고 어느 장소로서 사람들이 많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말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입니다. 그러면 정규씨의 마음속에서 정규씨의 욕망이 다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이 정규씨를 다스리면 무엇이 이루어졌느냐 하면 내심 천국이 이루어 진 것이야 그렇지요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하고 말합니다. 너희 속에 있다 누가 복음에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인 유(in you)이기도 하지만 어몽 유 (among 전치사 - 사이에 -중에) 너희들 가운데 있다 그 말이어요.
 
여기 있는 네 사람의 페널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가 서로 이익에 따라서 치열하게 다투는 관계라고 한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어요.
 
그런데 이 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기 시작했어 그 관계의 중심속에 하나님이 들어왔어 연민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그리고 내가 그에게 선물이 되기를 바라고 살고 저가 고통 받는 문제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지려는 마음으로 살고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우리의 관계속에 오게 될 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온 것이어요.
 
천국이 이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심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에서 있는 것이 이런 것들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 나라 천국을 믿으며 산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불의한 세상이 힘겨우니까 나는 이 세상 말고 죽어서 여기가 소망이 있어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것이어요
 
결국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런 세상으로 바꾸어 가야 되어요
 
마태복음 6장 33절과 같은 맥락이어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고 이야기 했지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하는 것을 내세에 관련된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요 죽어서 가는 나라 그래서 세상에서 내가 고생해도 내가 하나님 믿었으니까 예수님 믿었으니까 나는 좋은 대 갈 것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힘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할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우리가 누리는 그런 세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어요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상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기독교인들 특히 성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사회 책임을 질 수 있어야해 많은 사람들이 개인 구원이냐 사회 구원이냐 따집니다.
 
이 둘은 절대로 나뉠 수 없는 것이어요. 개인은 사회 속에 있고 사회가 개인속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온전해 지지 않으면 사회가 온전해 지지 안해요. 사회가 건걍해 지지 않으면 나 또한 건강해 지지 않아요 이 둘은 나눌 수 없어요 기독교 신앙은 영적인 문제만 다루어야한다고 하는데 영적인 문제만 다루는 기독교 신앙은 없어요.
 
여러분 인간이라고 하는 게 복합적 존재여요. 나라고 하는 존재가 처해있는 사회적 역사적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불의와 차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어야 되고 지금 차별과 불의속에 있다해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쪽 방향으로 내 삶을 바꾸어 나갈 수 있게 될 때 바로 그는 책임지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7절을 보세요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데요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 지어다.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 보면 우상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게 심판의 소식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상이 섬기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고요
 
우상이 무엇이지요. 한 마디로 이렇게 이야기 합시다 우리 마음의 지성소속에 가장 소중한 곳에 모셔져야 할 분이 하나님인데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앉은 것이 우상이어요. 그러니까 때때로 돈이 우리 우상 노릇하고 현대 세계 속에서는 어떤 경우는 학벌이 우상 노릇하는 경우도 있고요 때로는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자기 자식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상론을 길게 이야기 우상이라고 본디 헛 것이지요 그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십시다 대게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까닭이 있어요. 우상을 섬기는 까닭이 두려움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불안이기도 하지요. 불안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은 것이지요
 
하나님은 눈에 안 보여요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는 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 가시적인 것을 손에 잡고 싶어해요 어두운 산길 걸어가는 데 혼자 가는 것 보다는 애기라도 손 붙잡고 가면 마음이 평안해 그런 것 있지요.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은 결국은 불안과 두려움 때문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불안을 잊을 수 있는 대용물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불안을 잊을 수 있는 대용물인데 무엇인가 가시적인 것이어야 돼
 
그래서 그야말로 깎아 만든 신상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든지 집에 모신다든지 이래서 마음에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데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현대인들에게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집에다가 부적 부쳐놓고 상을 모시고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고요 무엇이 우상이 되고 있느냐 하면 이 시대로 이야기 하면 돈이어요.
 
어떤 신학자는 이야기 합니다. 출세 이게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어요. 돈과 출세 이것을 위해서 자기 양심도 팔기도 하고 자기의 주체도 내려놓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보면 이것을 확보하는 것이 불안을 잊을 수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요
 
이런 마음들이 가득차 있는 세상에서는 그 세상에서 인간은 존엄한 주체가 아니어요. 여기에서 보세요. 인간은 다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어요. 여기에서는 돈과 출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인간이 존엄한 주체 혹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항상 그들이 무엇이냐 하면 수단으로 변해요.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변하지요 수단은 교체할 수 있지요. 언제든지 불필요하면 제거될 수 있습니다. 제거할 수 있어요. 목적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었을 때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인간 소외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인간이 소외된 것이어요. 소외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지요. 세상이 낯설어 지는 것이야 세상이 낯설어지고 험한 곳으로 변해 버리고 만 것이지요. 소외감이 내 속에 있으면 감사해요. 참 소외감 느끼니 행복해요 그런 사람이 없지요 그런 사람이 없지요.
 
원망이 생기지요. 그 세계는 결국 무엇으로 표현 되느냐 하면 폭력이어요. 자기에 대한 폭력은 자살로 나타납니다. 자해로 나타납니다. 그 폭력이 타자로 향하게 될 때는 구체적 폭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은 보니까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으로부터 쭉 가다보니까 무엇이 되었어요. 폭력 이렇게 되지요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속에서는 소외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못하게 되느냐 하면 두 가지를 못하게 됩니다.
 
하나는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어져요. 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대도 내 코가 석자야 지금 그래서 내 삶이 바빠 그래서 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 곁에 머물 수가 없게 되어요.
 
우리 살다보면 누군가 고통 받는 사람 보면 안 되었다 하고 돌아 설 수 있지 않아요 이것이 무엇이 되느냐 하면 내가 많이 소외 되었어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너무 많이 멀어져 있는 것이어요.
 
어린 애 마음으로 바라보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우상이 인간에게 빼앗아 간 것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어요. 공감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이냐 하면 공감한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인 것이어요.
 
예를 들어서 정규씨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 책임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책임진다고 하는 것이 여러분 어떤 것이어요 영어로 책임 그러면 리스판스 빌리티인데요.
 
그 책임이라고 하는 말에 형용사는 리스판스 동사 반응하는 것이지요. 응답하는 것이지요 응답과 책임이 함께 가고 있어요 책임을 진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너의 필요에 내가 응답할 줄 아는 능력이어야.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능력이 없어요 우상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면 내가 세상에 중심이 되는 것이어요 나만 보이는 것이어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부터 나만 보이는 것이어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대서부터 나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어요 그래서 여러분 과시같이 대용물을 찾는다고 하는 데 대용물을 찾다 보면 남에게 나를 돋보이게 만들고 싶은 것들을 갖고 싶어 하지요.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 희귀한 것을 그것을 내가 얻었어 희귀템 그런 것 결국은 그게 무엇이냐 하면 그게 교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소비하기보다는 나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자랑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심지어 그런 태도가 내면화 되면 어떤 문제가 되느냐 하면 하나님조차도 거래의 대상으로 생각을 해요 내가 하나님께 이만큼 드렸으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시겠지 이 생각이 우리 속에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어쩼던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가 하는 것을 우리가 보았는데요 반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두려움이 그에게 안겨지는데
 
8절에 보니까 여호와여 시온이 주의 심판이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나이다
 
주의 심판이 불길한 소식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이어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이것은 무서울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그 사실 자체가 오늘을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미국에 소설가가 있는 데 쬰 치버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그 사람이 팔코너라고 하는 소설이 있어요 그 소설은 대학 교수인데 마약을 하다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감옥에 들어간 이야기여요
 
거기에서 그가 주교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는 사랑이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렇게 써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오늘의 삶을 의미있게 살도록 만든다는 것이지요 이게 시편 97편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통치는 심판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하나님은 모든 신들위에 계신 분이지요
 
그래서 10절이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하고 말합니다.
악을 미워하라 하나님의 심판을 이제 믿는 사람들은 악을 미워하라고 이야기 하는데 여러분 악(惡이)라고 하는 글자가 그림으로 그려 보자고 한다면 우리가 약자로는 이렇게 씁니다마는 원래 이렇게 되어 있지요 버금아(亞)자이어요.
 
버금아자인데 버금아자에다 마음심 心이 있지 않아요 버금아자는 중국에서 무덤을 그린 그림이어요. 그래서 이 악한 마음 아심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상대방에게 무덤을 안겨 주고 싶은 마음 이것은 재앙을 안겨 주고 싶은 마음이고 불길한 것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악이어요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내면화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 무엇이냐 하면 악을 미워하는 것이어요 내 속에서 상대방이 잘못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해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 이야기 하고 있어요.
 
우리가 악을 미워할 때 저런 마음을 내 속에서 버리게 될 때
10절 하나님이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시고 그리고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살전 5장 22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자 그러면 여러분 오늘 이야기 결론을 내려보십시다.
11절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 도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의인입니다. 마음이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 앞에 하나님이 빛을 뿌리십니다. 기쁨을 또 뿌리십니다. 우리는 추수하면 되겠네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기뻐하는 일입니다.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에게 분명히 확신한 것은 결국 세상을 심판하시고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도 어떤 의미입니까? 주님이 이미 승리자가 되신 것이어요 나는 이 세상에서 싸우다가 패배해도 괜찮아요. 내가 패배한 자리에서 주님이 다시 시작하시기 때문에 이것이 부활 신앙이어요.
 
져도 괜찮아 주님은 지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 내면속에 자유로울 수 있어요. 기쁨과 즐거움을 뿌리시는 그 분 참 아름답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다스리심 이것이 역사 또 온 우주 가운데 나타나야 하지만 여러분의 관계속에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그 다스림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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