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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린 산행 후에 달콤한 복숭아로 피로를 씻다
2022년 07월 02일 (토) 19:20:22 이승철 장로 www.cry.or.kr
 
 
 
 
 
 
 
 
"히야! 부드럽고 달콤한 이 복숭아 맛, 끝내주는구먼."
"그러게 말이야. 땀을 많이 흘려 후줄근하게 늘어졌던 몸이 생기를 찾는 느낌인 걸."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서 먹는 복숭아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껍질을 벗겨내고 한 입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달콤한 맛과 향기가 기분 좋게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피로가 쌓여 파김치처럼 늘어졌던 몸이 어느새 생기를 되찾아가는 느낌이었다.
 
8월25일 조선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경기도 양주의 진산 불곡산에 올랐다. 서울에서 느지막하게 11시에 출발하여 전철을 타고 양주역에서 내려 다시 133번 버스로 바꿔 탔다. 양주시청까지는 한 정거장, 시청구내로 들어가 불곡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정오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날씨가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따가운 햇볕이 사정없이 내려쬐어 그야말로 불볕더위였다. 계단길과 임도를 지나니 숲속길이다. 오르막길은 완만한 흙길이어서 발바닥 느낌이 포근하다.
 
 
 
 
 
 
 
 
이 길이 정상인 상봉으로 오르는 동남쪽 능선자락이다. 완만한 능선길로 올라서자 뒤쪽으로 양주시가 바라보이고, 왼편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조망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한 것은 이 산이 양주 분지의 중앙에 솟아오른 산이기 때문이다.
 
옛 삼국시대 전략요충지로 고구려 보루성 유적이 남아 있는 능선길
 
그렇게 허위허위 비지땀을 흘리며 정상인 상봉 중턱쯤 오르자 '보루성'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이 보루성은 옛 삼국시대 고구려의 유적이다. 이 불곡산은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도락산과 더불어 둥글게 자리 잡은 양주분지의 중심부에 해당된다.
 
임진강에서 양주를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고대교통로가 도락산과 불곡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지나가고 있었다. 당시의 교통로 중 하나가 지금도 교통량이 많은 3번 국도다. 더구나 불곡산은 주변 산들과 더불어 병목구간을 형성하고 있어서 남쪽의 의정부 일대와 동쪽의 3번국도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런 지형적 여건 때문에 옛 고구려는 이 불곡산 능선을 따라 9개의 보루성을 쌓아 지켰던 것이다. 능선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불곡산 산자락은 푸른 삼림이 빈틈없이 펼쳐진 수해(樹海)였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골이 깊고 기암괴석과 숲이 어우러진 비경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본격적인 바윗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위능선을 타고 조금 더 오르면 불곡산의 주봉인 상봉이다. 상봉으로 오르는 옆 넓은 바위 위에는 마치 바다코끼리처럼 생긴 바위 하나가 의젓하게 앉아 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바위 옆면에 새겨 놓은 이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기괴한 모양의 바다코끼리바위와 등산로 공사가 한창인 능선과 봉우리들
 
정상은 날카로운 바위봉우리, 그 봉우리로 오르는 길에는 두 개의 나무 사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거의 수직에 가까운 한 사다리 위에는 밧줄까지 걸려 있어 밧줄을 붙잡고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바위봉우리 꼭대기에 오르자 공사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불곡산은 지금 한창 등산로 정비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봉에 올라 둘러보는 조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정상이래야 해발 465미터밖에 안 되는 높이지만 산세의 웅장함은 결코 다른 높은 산에 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발 아래 내려다보이는 나무들의 바다가 싱그럽고 시원하기 짝이 없다. 북쪽 골짜기 건너편 산자락은 온통 무덤천지다. 눈길로 골짜기를 훑어 내려가노라면 동두천으로 이어지는 3번국도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쏘옥 들어온다.
 
 
 
 
 
 
 
 
남쪽 들녘 푸른 벼논 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은 작은 언덕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푹 꺼진 곳을 지나 오롯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임꺽정봉이다. 오늘 등산에서 마지막 코스로 오를 봉우리였다.
 
"예, 공사 중인 계단을 이용하셔도 됩니다. 임꺽정봉도 공사 중이지만 등산하시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정상 주변에 온통 공사자재가 흩어져 있어서 다음 코스로 갈 수 있는지 묻자 공사중인 인부 한 사람이 괜찮다고 한다. 무거운 공사자재를 어깨에 메고 오르는 인부들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능선은 거친 바윗길이었지만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별로 위험하지 않았다.
 
"어, 저 바위 좀 봐? 투구처럼 생겼네."
 
조금 걷다가 일행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말 투구처럼 생긴 상당히 커다란 바위가 능선 길의 큰 바위 위에 얹혀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힘센 사람이 힘껏 밀기라도 하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저 투구바위도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을 저런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불곡산은 참 아기자기한 산이었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산길이 있는가 하면 아슬아슬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바위절벽 길도 있다. 마당처럼 펑퍼짐한 넓은 바위가 있고 날카롭고 뾰족한 바위도 있었다. 더구나 기묘한 바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볼거리가 여간 많은 산이 아니었다.
 
조선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깃든 봉우리
 
밧줄에 의지하여 어렵사리 상투봉과 420봉을 지나자 작은 고개를 지나 눈앞에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바위절벽길이 나타난다. 맞은편에서 바라보기엔 전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던 임꺽정봉도 밧줄을 붙잡고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불곡산 참 멋진 산이구먼, 작은 거인 같은 산이야, 또 오고 싶을 것 같은 걸."
 
다른 친구가 별 볼일 없는 산이라며 동행하지 않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왔다는 일행은 정말 아름답고 멋진 산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임꺽정봉에서 뒤돌아본 맞은편의 상봉이 우람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임꺽정봉은 제법 넓었다. 봉우리 위에는 표지석과 함께 안내판, 작은 쉼터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눈길을 확 잡아 끈 것은 우람한 모습의 바위였다. 절벽 위쪽에 서 있는 커다란 바위는 소설 속의 임꺽정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저 바위에도 임꺽정의 전설 한 자락이 배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바위 뒤 쉼터에서 잠깐 앉아 쉬며 간식을 먹고 바라본 하산길이 아스라하다. 남서쪽 비탈에 툭 튀어 나온 절벽으로 형성된 바위는 수류탄 바위였다. 그러나 내려가다가 그 수류탄 바위에서 바라본 임꺽정봉이 오히려 진짜 수류탄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다. 주봉인 상봉에서 남쪽으로 울퉁불퉁 꿈틀꿈틀 바위봉우리로 힘차게 뻗어 내린 능선이 '악어능선'이었다.
 
불곡산 남쪽 아래 자락엔 청송골, 청소골, 천연골 등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전의 초기 무대인 청석골과 비슷한 이름의 지명들이 전해오고 있었다. 임꺽정은 양주 유양리 태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임꺽정 생가'라고 복원해 놓은 집도 있었다.
 
그는 정치와 민생이 어지러웠던 조선 명종 때의 도적으로 장길산, 홍길동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의적으로 일컬어진다. 그가 정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실제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불곡산의 우람한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깊은 계곡은 천민출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웅적인 기개를 길렀음직한 풍경임에 틀림없었다.
 
내려가는 길 70여 미터는 될 것 같은 바위절벽엔 나무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절벽 몇 곳에는 계단이 생기기 전에 오르내리며 밧줄을 걸어 사용했던 쇠말뚝과 고리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아슬아슬 스릴이 넘쳤을 것 같은 옛길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절벽길을 내려서자 양주시 남쪽 지역이 한결 가깝게 다가온다. 바위 너덜길을 내려와 골짜기 아래로 접어들자 무속인들이 돌로 쌓은 듯한 제사터와 밀양 손씨 문중묘들이 길가에 고즈넉하다.
 
"어이쿠! 힘들어, 낮은 산이라고 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만만한 산이 아니었어. 도로까지 내려가기 전에 어디 잠깐 쉬어 갈만한 곳 없을까?"
 
 
 
 
 
 
 
 
높이가 500미터도 안 되는 산이라고 얕잡아 보았던 일행이 매우 피곤한 기색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왼편 길가에 복숭아밭이 나타났다. 복숭아밭 입구엔 작고 둥근 탁자 주변에 놓인 의자 몇 개, 그리고 원두막과 함께 마당가에 시원한 물이 함지박 위로 철철 넘치는 수도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땀 흘리고 지친 몸, 맛있는 복숭아로 회복하다
 
우선 의자에 배낭을 벗어 놓고 수돗가에 나가 손과 얼굴을 씻자 시원하기 그지없다. 마당가 함지박에 넘치는 물은 수도가 아니라 지하수였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조금 전에 수돗물에 복숭아를 씻었던 아주머니가 맛보라며 복숭아 두 개를 깎아 내놓는다.
 
"우와! 이 복숭아 맛이 그만이네. 복숭아 철이 지난 것 같은데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가 아직까지 나오고 있다니?"
 
"우리 복숭아 맛있지요. 지금 한창 수확하고 있답니다. 맛있으면 몇 박스 사가세요?"
 
일행의 감탄하는 말을 듣고 아주머니가 복숭아를 사가라고 권한다. 그러고 보니 원두막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일행이 복숭아 한 박스를 사서 두 개의 비닐봉투에 담아달라고 주문한다.
 
복숭아밭은 제법 넓었다. 주인 할머니에게 물으니 1200평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 해 복숭아를 수확하여 팔면 소득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모녀지간이었다. 복숭아밭 근처에 살고 있는 딸이 주로 밭을 가꾸고 있었다.
 
우리들이 복숭아밭에 들어가 복숭아 수확을 좀 돕겠다고 하자 모녀가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재미있을 것 같아 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어림없다고 한다. 복숭아 따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선 덤벼드는 모기 때문에 잠시도 못 견디고 도망쳐 나올 것이라고 한다.
 
"여기 보세요. 모기한테 쏘인 곳이에요. 얼마나 지독한데요?"
 
복숭아밭엔 모기가 엄청나게 들끓는다는 것이었다. 복숭아 농사가 보기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복숭아 봉지 씌우는 일만 해도 얼마나 힘든데요, 저거 제가 혼자 다했어요."
 
도란도란 복숭아를 고르는 모녀의 모습이 정겹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또 몇 개의 복숭아를 더 내놓는다. 우리들에게 내놓는 것은 떨어진 것들이어서 상품가치가 별로 없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렇지만 맛은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두세 개씩을 먹고 나자 피로도 풀리고 배도 불러온다.
 
정답고 고마운 모녀와 작별하고 발길을 돌렸다. 두 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담은 복숭아를 배낭에 짊어지고 내려오자 곧바로 도로다. 길 건너 맞은편 대교아파트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어깨에 멘 배낭은 묵직했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황도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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