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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2강 96편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2022년 06월 24일 (금) 14:13:28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조금 있으면 설일 터인데 설날 되면 하는 일 떡국하지요. 세배해요. 세상에 설날되며는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 드리지요. 기독교인들은 또 기독교인 아닌 분들은 차레 지내서 조상들의 음덕을 기억하기도 하고 그러지요 또 세배드리지요.
 
부모님에게도 하고 사실은 윗분들 하고 하기도 하지만 동기간에도 절하거든요.
설 때가 되면 제일 서운한 것 가운데 하나가 내 세배를 받으실 분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게 부모님인 경우도 있고요
 
또 다른 하나는 스승님이어요. 스승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는 것 참 행복할 일인데 아 이젠 세배를 드려야 될 어른들이 내 곁에서 한분 두분 떠나는 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참 찡해지지요.
 
그러니까 내 선생님도 살아계시면 가서 세배를 드리고 같이 간 제자들도 선생님이 너희끼리 절하라하면 절하고 그러니까 참 아름다운 전통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참 좋지요. 우리는 이상하게 신정설은 설처럼 잘 생각 안하거든요.
 
대게 설날 설날이라고 하는 게 어렸을 때는 세뱃돈을 받기도 하니까 설레는데 왠지 어른이 돼서는 설날의 의미가 별로 설레지 않아요.
 
설날이라고 하는 게 뭐 어원이 여러가지가 있지 마는 낯설다 그런 말에서 설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도 있고 왜냐하면 새로운 시간이니까 새로운 시간이 우리에게 도래하니까 설램도 있지요. 그럴 것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설날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일상에 지치면 시간이 좀 갱신되어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생각이 들지요. 수첩도 일년쓰던 것 내가 살아온 발자취처럼 누추한데 새로운 수첩 꺼내어 가지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요즈음은 수첩 정리도 잘 안하지 전부 요즈음은 기계에다 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우리 고민 많이 하지 않아요 이 사람을 내 전화부에서 지워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렇게 지우는 것은 괜찮은 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런 이들은 차마 지을 수 없어서 그냥 간직하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설날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까닭은 내 삶이 새로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설날을 굉장히 종요하게 생각 했어요
오늘 우리가 함께 볼 시는 설날과 관계된 시입니다. 시편 96편입니다.
 
소설가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마는 이청준 선생님이 계셔요 이청준 선생님의 중편 소설 가운데 비화밀교라고하는 책이 있습니다. 남도에 어떤 마을에서 섣달 그믐날이 되면 사람들이 한 밤중에 산에 다 올라가요. 조용히 올라갑니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피우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향해서 사람들이 다 올라갑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인사말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인사말들을 해요. 미안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하고 인사말을 합니다.
 
그리고나서 저 복판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오는 데 그것은 언어로 분절된 언어들이 아니라 소리지요. 아 하 하는 그런 소리들 이 소설을 어떻게 분석해야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은 그 소설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내식으로 이야기 하자만 우리가 일년동안 살면서 너무나 많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런데 언어는 어떤 일들을 해 내거든요 그렇지요.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들거든요. 그래서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면 상대도 아름다운 말을 우리에게 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 간단해요. 누구에게 빰 맞고 싶으면 별로 어려울 것 없어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욕을 한번 해 보세요 빰을 맞을 것입니다.
 
내가 친절함을 받고 싶으면 내가 친절하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살다보면 사용하지 말아야 할 말도 잘 사용하기도 하고 말로서 혼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이 되면 말로 풀어야 할 것을 말로 풀지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리고는 말을 거두는 것이야 그리고 말의 출발점으로 가는 것이야 소리의 세계 그리고 침묵의 세계로 가는 것이어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해를 맞는 것이지요.
 
때때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을 그치고 침묵 속으로 들어가면 참 좋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몇년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가 있는데 다큐리 멘타리 영화인데요 카르치루으스 침묵 영화입니다.
 
그 다큐멘타리 작가가 16전이나 부탁을 해서 허락을 얻어요. 그것은 침묵 수도원이거든요 말로 하면 안돼 그러니까 어떤 소리만 들려와요 사람들이 걸어온 소리 비가 오면 낙수물 떨어지는 소리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 그 소리 하나 하나가 신비롭게 들리는 것이어요.
 
그 다큐멘타리 영화가 위대한 침묵인데 침묵이 위대한 것이여 그래서 지루할 수도 있어요 왜냐 하면 말이 없고 심지어는 배경음악도 없는 것이여요 그냥 그 소리만 우리에게 들려주어요 오히려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중에 되지요
 
그리고 나중에는 거기에 있는 수사들 인터뷰해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나중에 집어넣기도 하는데요 때때로 언어에 지쳤을 때 정말로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저 나르는 솔개처럼 그 노래 있었지요.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그래서 막스 피 카트라는 사람도 이야기 한 바가 있습니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말은 소음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살지요. 그래서 때때로 설날이 된다고 하는 것은 시간이 갱신되어서 전혀 새로운 출발점 앞에 우리들이 서는 시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신년이 우리들처럼 1월 1일이 아니고 그들의 달력으로 1월 1일이기 때문에 9월이나 10월쯤 와요. 유대력으로 그 신년 축제를 로샤스스라고 하는 데 그 날이 되면 뿔 나팔을 불어요. 뿔 나팔 쇼파라고 하는 뿔 나팔을 요하고 불어서 새해가 도래했음을 알립니다.
 
그 소리가 뿔 고동 소리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지요. 뿔 가지고 부는 것이니까 고동은 아니지만 그런 소리가 나지요 그래서 나팔절이아고도 해요. 나팔을 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날이 되면 시간이 갱신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 시편 96편에서 어떤 배경이냐 하면 이 시의 배경은 신년 축제를 배경으로 한 시입니다. 그래서 쇼파가 울리는 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뿔 나팔을 길게 불므로서 그 나팔은 신년이 되었습니다라는 뜩하기도 하지만 몇가지를 우리에게 돌아 볼 것을 요구를 합니다.
 
(1) 첫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를 돌아보는 것이어요.
과거의 부분이지요 기억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관계를 돌아봄 기억이어요.
 
(2)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일까요 뿔 나팔 소리와 더불어 또 상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지금 이 시간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통치 이것은 무엇일까요? 현재이지요 이것은 기억하는 것이고 현재여요.
 
(3) 또 무엇이냐 하면 뿔나팔 소리와 더불어서 미지의 세계이지요. 앞으로 다가오지 않은 세상은 미지의 세계이지만 하나님이 당신과 언약을 맺은 그 백성에게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시지요.
 
그 하나님이 앞으로도 우리의 삶에 소망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어요.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스러운 삶입니다. 삶에 대한 소망이어요. 이것은 미래의 부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요.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어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미움으로 통치하시나요. 사랑으로 통치하시나요. 하나님이 사랑으로 통치하셔요. 그래서 사랑이고요.
 
하나님 안에서 삶은 든든한 삶입니다. 그래서 내 삶을 미래의 부분은 소망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오래된 미래야 역설적인 이야기이지요.
 
미래가 어떻게 오래 되었느냐 내 표현이 아니고 노르베리 호지라고 하는 분의 책 제목입니다. 이 분은 인도 북부에 있는 나다크라는 곳을 찾아가서 그 나다크의 그 때묻지 않는 문화를 깊이 보고 인류학자인데 그리고 책을 쓴 것이어요.
 
그래서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하면 어디로 가야되느냐 그런 나다크 공동체와 같은 전통적인 공동체 속에 가야 되어요 그래서 미래여요. 온고지신(溫故知新)이지요 오래된 일이어요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 든든할 것이라고 한 것은 소망이기도 하지만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 삶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안에서의 삶의 내용이 믿음 소망 사랑 이것을 나타내지요 뿔 나팔 소리와 더불어서서 시간이 과거의 시간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속된 시간이지요 현재라고 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시간이지요 미래라고 하는 시간은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인 것이지요
 
새해가 되면서 뿔 나팔은 그냥 부는 것이 아니고 저런 뜻으로 부는 것입니다.
탈무드를 보면 그 쇼파 소리 뿔 나팔 소리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잠에서 빠져 있는 잠꾸러기들아 잠에서 깨어나라 선잠에 빠져있는 자들아 정신을 차리라 너희 행위를 점검하며 하나님께 돌이켜 회개하라 남기지도 못할 이익을 헛되이 구하며 세월을 허송하는 자여 일상에 사사로운 일에 빠져 영원한 진리를 바라보지 못하는 자여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너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라 너의 삶과 행사를 높여라 너의 악한 행위와 비천한 계획을 포기하라
 
저 뿔나팔 속에 담겨있는 의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해가 이렇게 이제 열리게 되면 그들은 완전히 시간이 새로워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말이지요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새해를 맞는 이들을 부를 때 6개의 명령한 동사가 나옵니다.
1절 새 노래로 노래하라 온 땅에 여호와께 노래하라
2절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 그의 구원은 날마다 선포하라
3절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 지어다
6개의 동사가 겹쳐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신년 축제의 분위기는 우울한 것이어요 기쁜 것이어요 굉장히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은 노래를 부를 때 기쁠 때만 부르지는 않지요. 슬플 때도 부르지요 이상하게 슬플 때 슬픈 노래 부르면 굉장히 더 우울해 질 것 같은데 정화됨을 느낄 때가 있지요.
 
슬픔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래서 우리가 비가 같은 것 듣는 까닭도 그런 대 있지요. 깊은 슬픔의 노래를 들으면 내 속에 있는 슬픔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때도 있지요.
 
어떤 때는 노래를 부름으로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부를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정을 막 고양시키기 위해서 왜냐하면 그것이 종교적 체험에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노래만 부르면 안 됩니다. 감정을 고양시키는 노래도 불러야 하지만 감정을 정화하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여기 노래하는 사람들인데 고양시킨 노래도 부르기도 하지만 차분하게 가는 그러면 여러분 그 차분함 속에서 더 깊은 속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동할 때도 노동요를 부르지요 배틀 짜면서 노래 부르고 그렇지요. 어떤 경우에도 노래 불러야 해요.
 
우리 한 민족들이 노래 음주 가무를 좋아하지요 그냥 그런 줄 알았더니 외국 사람들이 보고 정말 놀래는 것이지요 노래를 정말 좋아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새 노래라고 하는 것은 지난번에는 이야기 하면서 새노래 이야도 했습니다마는 여기 96편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새 노래는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행위 혹은 구원 역사에 대한 경험과 관련이 됩니다.
 
새 노래가 그러니까 하나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드리라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구원역사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었는데 발견하지 못했어 우리들이 그것을 알지 못해 여러분 지금 숨쉬고 있지요. 숨 쉬어요.
 
숨 쉬고 있지요. 내가 말하기 전에는 숨 쉬는 것 의식 안 했지요. 분명히 그랬지요.
우리가 꼭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고 있는 대도 불구하고 그것이 은혜인지 알지 못해
 
돌아가신 강원용 목사님이 계신데 아주 한국 교회에 원로 목사님이셔요. 그 목사님이 88세 때 하신 강연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나는 햇빛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물 안 마시면 금방 죽습니다. 나는 숨 안쉬면 5분도 안되어서 죽습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입니까? 내가 햇빛이고 내가 물이고 내가 공기야 그것이 이루어졌어 나라고 하는게 그러면 나를 이루고 있는 햇빛과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결국 내 생명 죽이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것이어요
 
시인이 따로 없지요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아요 나라고 하는 게 나도 모르게 숨 쉬고 있는데 그 숨 덕분에 내가 살고 있지 않아요. 의식 못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늘 우리에게 그렇게 일상적으로 베풀어지고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일상적인 은혜에 눈뜨지 않고 언제나 특별한 것만 원합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이 신비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언제나 특별한 것만 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춘추 전국 시대에 철학자인 노자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다섯가지 색깔이 오색 영인목맹(五色令人目盲)그러는 데 다섯가지 색깔이 우리의 눈을 멀게한다 다섯가지 소리가 우리의 귀를 멀게한다
 
그러고 무언가 진귀한 것을 찾아다니려고 사냥에 미쳐 날 뛰는 것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발광한데 보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 흔하게 만들어 놓으셨어요. 그것을 은혜인줄 모르고 사는 게 인간이지요
 
그래서 돌아간 시인 구상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뜨니 세상에 말씀 아닌 것이 없다 두 이레 강아지 난지 얼마 안 된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떴어 나이 70 넘어서 겨우 그러자 세상에 그러자 그분의 말씀 아닌 것이 없고 신비가 아닌 것이 없어 젊었을 때 안 보인 세계가 보인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발견을 했어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발견했을 때 내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 새 노래입니다. 이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라
 
여러분 아름다운 세상은 무엇입니까? 온 땅에 있는 피조물들 전체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우리 찬송가에 그런 것 있지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정말 그렇지요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하나님 찬미하고 그 눈으로 보면 세상에 하나님 찬미 안 하는 게 없거든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노래하라 일상 속에 욕망이 지배하는 그 노래를 잃어버리고 살아 왔어 새 해에는 뿔 나팔 소리와 함께 무엇을 회복하는 것이냐 노래를 회복하는 것이어요 새 노래를 내 속에서 새노래 정말 내가 은총속에 살고 있구나 아는 것이어요.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고 그분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하고 그렇지요. 만민에게 행하신 그 귀하신 행적을 사람들 앞에 선포하고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셔요
4절 여호와는 위대하신 분이다 지극히 찬양 받으실 분이시다.
또 그 분은 두려워해야 할 분입니다.
이 때 두려워한다고 하는 것은 무서워 한다는 말이 아니어요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어요.
 
그래서 경외심이라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과 다르지요 존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어요. 이것을 이제 성도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여요 존귀와 위엄이
5절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다
여러분 신년 축제에 아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년 새로울 신(新)자 이렇게 썼지요 설립자가 있고 나무 목자가 있고 도끼야 도끼가 서 있는 나무 옆에 기대 서있는 모습이어요. 새롭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살아 있는 나무에 도끼질을 하는 순간 나무가 생생한 아픔을 느낄 것 아니야 은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것이 새로움이야
 
새로움은 마치 도끼가 나무를 치는 것 같은 거기에서 탁치는 순간 나무 향이 나오지 않아요. 이것이 새로움이라는 말이지요 시간의 새로움도 이렇게 도래를 해야 되는 것이지요 이 신년은 언제나 무엇과 관련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를 회상하도록 되어 있어요.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여러분 창세기 1장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고 창조하시니라 하고 이야기 한 다음에 하나님이 무엇부터 만드십니까? 빛이 있으라 빛이 있었다.
 
창 1장 3절 그 빛은 시간의 창조여요.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저절로온 게 아니야 하나님이 창조함으로 온 것이어요.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온 것이어요 그래서 언제나 창조와 관련이 되는 데 그 다음에 창조라고 하는 것이 결국 어떻게 이루어졌지요 혼돈을 질서로 바꾸어 내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는데 크게만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속에 혼돈들이 있어 내 마음이 여러 가지 것들로 작정되어 있거든요 하나님이 이 속에서 질서를 창조해 주어요.
 
질서가 창조되어야만 새로움이 오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신년 축제는 언제나 하나님의 창조의 재현과 관련이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 다음에 여러분 보면 이 신년축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재현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또 하나가 있는데 창조 재현인데 하나님이 왕으로 즉위하는 것이야 신년에는 다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이 역사에 주님이심을 상기하는 것이야 하나님이 역사뿐만 아니라 내 삶을 주관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받아 드리는 것이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드리는 것이 신년 축제의 핵심에 속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보면 7절에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만국에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영광과 권능히 마땅히 돌려야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지요.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신 그 분이지요.
 
마치 여러분 왕이 즉위할 때 많은 복속된 제후들이나 이런 이들이 와가지고 선물을 바치고 충성 서약을 하는 것처럼 왕되신 하나님의 즉위에 어울리는 선물을 가지고 와야 돼 그 선물이 무엇이냐 하면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권능을 그분께 돌리는 것이어요
 
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충성 서약은
9절 온 땅이여 그분에게 떨지어요.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라 그것이어요
 
우리는 그저 설날이 되면 세배하고 용돈 받고 이렇게 해서 그리고 식구들 모여 가지고 어떤 집 보면 박수치고 주부들은 전 부친다고 너무 힘들고 그런데 우리들도 신년이 이렇게 달라지면 가족들이 모여서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베풀어 주셨는지 고백하고 우리의 삶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은 재확인하고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 질서가 도래하는 것이어요.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는 것이어요. 이게 신년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하곤 했지요 예수님의 비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많이 들려 주셨는데 그 비유가 결국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아세요. 너무 당연한 것을 물으니까 이상하지요.
 
자 여러분 제가 번역한 책 가운데 비유에 관한 책이 있는데 그 책의 부제는 어떻게 되어있느냐 하면 세상을 다시 상상하다 예수님의 비유는 결국 예수님이 새롭게 상상한 세계입니다.
 
보면 예수님의 비유 이전의 세계는 어떻느냐 하면 예수님 당시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세상이지요. 여기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 힘이 곧 정의입니다. 힘이 정의가 된 세상입니다. 이게 여러분 트라스마 코스라고 한 사람이 한 이야기입니다. 힘이 정의돼 그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소크라테스가 노 그렇게 이야기하거든요. 여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힘을 가지기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지요.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누르고 지배하는 것을 당연시 되었던 세상이지요.
 
여기에서는 힘이 정의이니까 폭력이 정당화 되고 있어요.
약자는 유린당하는 당연한 세상이지요 이것이 사람들에게 문화속에서 당연한 세계였어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당연의 세계인데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당연의 세계를 깨트렸어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막 10장 44절 너희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누가 종이 되어야 해 종이 되어야 돼
 
폭력을 정의화 했는데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마 5장 39절 누가 네 오른 빰을 때리거든 왼 빰을 돌려대라 비폭력입니다.
주의해야 돼 이 말은 누가 와 가지고 빰을 때려 두게쇼 여기도 때려 주세요 그것은 바보가 되는 것이지요. 물론 주의 해야돼 그 말은 오른 빰을 때린다고 이야기 하는 데 보통 오른 손 잡이인데 내가 상대의 빰을 때리면 왼쪽이 맞지 않아요
 
오른 빰을 때렸데 어느 쪽이냐 손 이것이 중요해요. 등으로 누구를 때린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행위로 받아 드려졌어. 이 이야기는 오른 빰을 때린다고 하는 것은 또 때려 주세요 그 이야기가 아니고 이것은 모욕한 것 아니냐 나는 힘이 없어 당신에게 맞는 데 나를 모욕하지는 마 나를 인간적으로 모욕하지 마 이게 비폭력 저항이야
 
여러분 오리를 가자하는 자에게 십리를 가자고 이야기 하지요 로마법에 의하면 군인들이 민간인 징발해 가지고 오리를 지고 갈 수 있어 군수물품 오리를 동행하도록 할 수 있어요. 오리를 넘어서면 안 돼 이것이 아니야 오리를 가는 자에게 십리를 가겠어 내가 더 가겠어 하는 것은 이 사람의 불의함을 폭로하는 것이어요.
 
이것이 보면 비폭력 저항이라고 그러니까 맥없이 당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나를 인간이야 인간 선언이야 이것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당연의 세계 힘없는 사람들은 짓밟히고 무시당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인데 나도 인간이야 그 말이어요. 나 인간 대접해줘 그렇게 이야기해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언제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 속에서 거룩한 것 보아 내는 것 아니어요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했어요.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발견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종교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일상을 떠난 어디인가 먼데 있는 것이 아니요
 
여인들이 반죽하는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지요. 농부가 씨 뿌리는 대서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당연의 세계를 깨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이것이 요즈음 나오는 말로 하자면 갑질하는 세상이거든요.
 
이 세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이 아니야 분명히 그래서 이러한 세상으로 바뀌는 것인데 그래서 이것을 그 저자는 세상 다시 상상하기 리 이메진리 이메진 더 월드(Re Imagine the world)라고 이야기 하는 데 나는 그것을 세상을 다시 그리기 그렇게 번역을 했는데 세상을 다시 그리는 것이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주어져 있는 기존의 세계에 적음 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질서대로 만들어 지지않은 세상을 하나님의 질서의 세계로 바꾸기 위해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해 지금 이 시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것이어요
 
새로운 사회적 실제가 이 땅에 들어오는 것이어요 유입되는 것을 그래서 만국 족속들에게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리자고 해요 이것이 9절까지 계속되고요
 
10절에 보면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나오지요
10절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아니하니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리라 할지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는 보니까 흔들리지 않는 세계여요 그 세계는 결국 어떤 세계입니까? 공평이 있는 세계여요. 공평의 세계입니다. 공평이라는 것이 무엇이어요 하나님의 정의가 세어져 있는 세게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세계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공평이 무너진 세게이거든요 이 세상이 그래서 공평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세요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그 꿈을 오늘의 내 꿈으로 삼고 사는 것이어요 흔들리지 않는 반석위에 서 있다고 한다면 이제는 공평한 세상 만들기 위해서 서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탐욕과 이기심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제는 탐욕이 아니라 나눔과 이타적인 공동체적인 삶을 향해서 우리들이 가야하는 것이지요.
 
이 시가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은 이것이어요. 하나님의 이름에 함당한 영광을 돌려드린다는 것은 주님 영광의 박수를 돌려 드립니다 이게 아니어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무너진 공평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요.
 
이게 10절에 핵심이어요.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 주님이 다스리는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애써야 한다 하는 이야기여요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지금은 그런 이야기 안 나옵니다마는 옛날에 티브이 나온 광고 가운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줍니다해요.
 
그래요 이것이 얼마나 나쁜지 정말 누추한데 사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그 사람들에게 그 광고는 무엇입니까? 폭력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것이야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에게 돈 벌어주는 저 윗사람들만 바라보고 대신 이것을 누릴 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모멸감 느끼도록 만들지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절대로 노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것을 배려하기 시작해야 해요.
 
노래를 만드는 사람도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 상처가 되지 않을까 예민하게 생각해야 되어요 이런 세상입니다. 차별에 반대해야 되고요.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일어나게 될 때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이 무엇일까요 기쁨입니다.
 
11절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밭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 지로다
 
계속 즐거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주적 기쁨이어요.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세상은 바로 우주적 기쁨의 세상입니다. 결국은 피조 세게조차 하나님을 찬미하는 그런 조화로운 세상을 향해 우리들이 나가는 것이지요.
 
여러분 부정의와 착취와 불공평으로 얼룩진 세상에서는 피조물들 조차 생태학적으로 남용되거나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어요 피조물의 심음 소리가 들려오는 세상이지요. 이 속에 기쁨이 없는 것이어요.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아까 강원용 목사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우리가 누리고 사는 햇빛과 그리고 공기와 식물 이런 것들이 나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해 우리가 먹고 마시면서 내가 형성되는 것이어요
 
여러분 성찬이라고 하는 것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지 않아요. 이것이 우리가 무엇을 상징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을 상징하지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적인 숨 쉬는 행위도 성찬입니다. 물 마시는 행위도 성찬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내가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하시지 않아요. 그래서 일상의 모든 순간이 성찬이 되게 살아야 해 기독교인들의 삶이어요
 
하나님은 분명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통치하신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통치는 심판을 내포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저항하는 것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지요
 
그 심판을 무섭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은 약자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권리를 복권시키는 심판이어요 그래서 그 심판은 아름다운 심판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신년 축제때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자신의 허물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살필 때 비로서 새로워 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늘 시간을 갱신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설날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일상의 시간을 하나님의 마음에 비끌어 메고 살게 되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이 거룩한 삶으로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시가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삶의 자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누구러트릴 세가지가 있다고 유대인들은 가르칩니다. 첫째는 회개 둘째는 기도 셋째는 구제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심판을 누구러뜨린다고 가르쳐요.
 
여러분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을 새롭게 바꾸어 가는 누가 불지는 않지만 여러분 마음속에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와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 속에 내면화 되어서 살면 참 좋겠지요.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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