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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
2022년 06월 24일 (금) 13:39:51 양의섭 목사 www.cry.or.kr

(마가복음 5:1-20) 
 
1.
미국에서 한 아이가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구해내려고 포크레인과 차량 등을 동원하여 흙을 파내기 시작하여 마침내 아이를 건져내었습니다. 수렁에서 구원받은 아이는 주위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고, 작은 산만한 흙더미를 보고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과 저 작은 산은 왜 있는 거죠?”
 
아이의 아버지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이 다 너를 구해주기 위해 몰려왔고, 너를 건져내기 위해 이렇게 산더미 같은 흙을 파헤쳤단다. 너는 이렇게 소중한 존재란다.” 자기를 살려내기 위해 그 많은 사람이 동원되고, 그 많은 흙이 파헤쳐 졌다는 사실에 아이는 큰 감명을 받았답니다.
 
2.
한 인간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인간의 몸을 화학적으로 계산하였더니 1달러, 즉 1300원어치의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 물론 뭐 장기 판매, 몸 값 등 이런 거 말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영혼(靈魂)도 없고, 신(神)도 없고, 인간은 오직 물질에 의해 이루어진 존재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에 기초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대단치 않게 여깁니다. 자기들의 사상과 뜻에 동조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정치적 성향을 따르지 않으면 적으로 여기고 해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서슴지 않고 폭행을 하고 총질을 합니다.
 
이들에게는 인간의 가치가 하찮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오로지 자기들을 따르고 그 휘하에 있을 때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 탄압과 폭행, 고문, 살인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곳이 지상천국이라고 하는, 그런 세상을 동경하는 이들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와 유사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 중국과 친해지려고 기를 쓰는 이들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어느 목사님이 톡을 보내왔는데,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전쟁과 분규가 벌어진 국가들을 주욱 나열하더니 그 분쟁들에 미국이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다고, 은근히 미국을 부정적으로 비판하더라구요.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는 있습니다. 나도 미국은 별로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공적인 것 외에는 여행 한 번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 보니 국가의 체제가 나약한 나라, 주변의 강대국에 늘 침략을 당하는 약소국가들이 생존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누구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할 것인가요? 그 부당한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선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것인가요? 힘 있는 강대국이 뻔합니다. 그런데 강대국 중 누구에게 달려갈까요? 물론 강대국들의 속셈도 실은 엇비슷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국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래도 미국은 자유, 신앙, 인권, 생명의 존귀함을 아는 나라입니다. 나라와 나라의 경제적 이권을 추구하는 것이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의 기본권, 기본 가치에 무게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한 사람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살해당했다고 온 나라가 흥분하는 나라가 어디인가요? 중국인가요? 북한인가요? 러시아인까요? 보십시오,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입니다. 적어도 이들은 생명의 존귀함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나의 신앙,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내 신앙을 지켜주고 지지해줄 나라는 미국입니다. 북한에선 꿈도 꾸지 못합니다. 도리어 그곳에선 기독교인임이 드러나면 그 인생 즉각 수용소로 내팽개쳐지고 맙니다. 중국에선 표면적으론 신앙의 자유를 말하지만, 유물론의 공산당 가치를 결코 넘어서지 못합니다.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많은 선교사들은 추방당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 생명, 그의 인권, 신앙과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은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생명의 소중함은 예수님의 가르침, 복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 일행이 거라사 지방에서 한 귀신 들린 이를 만났습니다. 귀신은 이 사람을 얼마나 추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 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귀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름다운 인간을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파괴해 버립니다. 마치 하나님을 향해 ‘당신이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이 세상을, 인간을 내가 이렇게 추하게 만들어 버리겠수다’하려는 듯이 아름다운 인간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무덤에 거하며 하는 짓이라고는 돌로 제 몸을 상하는, 자학하게 하고, 이상한 소리나 지르고 다니며, 그러지 말라고 쇠사슬로 묶으면 엄청난 괴력으로 쇠사슬을 끊고....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단이 추하게 만든 인간의 존재를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요? 그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는 데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자 귀신은 어쩔 수 없이 쫓겨나가면서 주위에 돼지 떼가 있음을 보고 그리로 들어가게 해 달라 간청하고 허락하니 순식간에 돼지 떼로 들어가 2천 마리의 돼지들이 미친 듯이 날뛰다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몰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귀신 들렸던 사람은 악한 영에게서 해방되어 온전한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좀 거시기한 장면이 보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귀신에서 해방된 그를 보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몰살한 돼지 2천 마리의 가치가 더 아까웠습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봐, 다시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자기들 동네에서 예수님께 나가달라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한 사람의 가치보다 돼지 2천 마리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까짓 귀신 들린 추한 인간 하나 구하려고 우리 재산 돼지 2천 마리를 없애? 말도 안 돼! 돼지가 더 귀하지 그까짓 갈 데까지 간 말종 인간 하나가 귀한가!’ 이게 세상의 논리, 세상 가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 잃어도 인간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힘쓰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를 뒤에 두고 찾아 나선다고. 잃어버린 하나, 사망의 골짜기에서 추하게 죽어가는 그 하나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우리를 소중히 보십니다. 하나님은 비록 내가 못나고 못생겼어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무당이나 점장이를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대뜸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한답니다. ‘어떻게 왔어? 에그, 네 팔자가 더럽다’ 뭐 이런 식이랍니다. 인간을 그렇게 하대하는 것입니다. 귀신, 사단의 졸개들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종들이 대뜸 하대, 반말하는 것 보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귀합니다. 귀한 삶을 사십시오. 돼지 2천 마리가 몰사해도 추한 내 인생을 더 귀하게 보시고,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데 전엔 나도 돼지 2천 마리가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내가 아파 보니까 돼지 2천 마리가 뭔가, 있는 재산 다 털어서라도 고침받고, 나음받고,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로 대하니 돼지가 아깝지 내 이야기, 내 가족, 내 형제, 내 친구로 여긴다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성에 의한 가치보다도 우리가 누군가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절대 가치요 진리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요,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철저히 믿고 순종하는 하늘 백성들 아닌가요? 내 친구, 내 가족이기에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기시고 보시고 말씀하시기에 우리도 그런 가치관, 생명의 존중,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 보니 특이한 것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이 귀신은 자기 이름을 바로 댄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이 자기 이름이라고 말한 ‘군대’라는 단어는 ‘레기온’으로 이 단어는 일반 단어가 아닙니다. 이건 군사용어입니다. 로마 군대 조직으로 레기온은 6000명의 보병과 120명의 기병, 그리고 특수부대원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군단입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대답한 ‘군대’(레기온)란 자기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엄청난 힘, 대단한 권세의 소유자란 뜻으로 자기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인간 안에 군대, 레기온의 힘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굉장한 힘으로 뭘 하는가요? 벌거벗고 추한 모습으로 집도 아닌 무덤 사이에서 삽니다. 힘이 얼마나 센지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도 그것을 끊고 광야로 뛰쳐나갑니다. 도무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엄청난 힘입니다. 그 엄청난 힘으로 미친 짓이나 벌입니다. 추한 모습이나 만들어냅니다.
 
좋은 권력, 힘을 주었더니, 막강한 지지와 힘을 주었더니 한 짓이 군대 귀신, 미친 짓입니다. 막강한 군대 귀신이 그 영혼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아까운 힘, 아까운 권력, 아까운 권세, 그리고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귀신에게, 그것도 군대 귀신에게 사로잡히면 다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로(末路)는 다 이렇게 비참하게 끝이 납니다. 인간의 존귀함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그러고도 계속 파괴하려고 기를 씁니다.
 
6.25 전쟁 발발 72주년이 이번 주간에 있습니다. 군대 귀신에 사로잡힌 북한의 도발로 시작된 이 전쟁에서 몇 사람이, 몇 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는지 아는가요? 북한군만 52만 명이 죽고, 중공군은 무려 90만명이 죽었으며, 유엔군은 48,201명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전사, 부상, 실종, 포로, 행방불명으로 621,479명이 사라졌습니다. 소중한 생명들이 무수히 사라졌습니다. 그 외의 비극적 피해들, 경제적 손실 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100일 동안의 통계를 찾아보니 러시아 군인 7천에서 1만5천명이 전사했다고 나토(NATO)가 추산하고 있더라구요. 우크라이나 군인은 미국정보기관 추산으로 5,500명에서 1만 1천명이 사망했답니다. 한겨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은 3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모두 군대 귀신 레기온에 사로잡힌 자들이 벌이는 생명 파괴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요? 협상과 대화로? 말로 하자고?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니 협상과 대화로 약속된 협정서, 약정서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더라구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말을 바꾸는 존재더라구요. 어제의 약속, 오늘은 얼마든지 구실을 붙여 뒤집더라구요.
 
5.
평화는, 생명은 말로 이루어지고 지켜지는 거 아닙니다. 평화는, 생명은 힘으로 지켜집니다. 잠깐의 평화는 대화로, 협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항구적인 평화는 아닙니다! 힘입니다!
 
불행하게도 6.25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 그들의 핵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김정은은 지난달 26일 항일 빨치산 결성 9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해 이제는 자기들이 먼저 핵공격을 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동안 “핵은 미국을 향한 강력한 억제력”이라고 해 왔는데 속셈이 이제 드러난 것입니다. 핵 용도는 체제 방어용이 아니라 한국을 향한 공격용이고, 핵을 앞세워 ‘조국통일대전의 승리’를 완수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아무렴 북한이 자기들도 죽을지 모르는데 자기들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미국을 향해 핵 미사일을 쏘겠습니까. 그들의 핵은 우리를 향한 것입니다. 그것도 협박용입니다. 우리를 자기들 종속 국가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미 국제사회는 북한을 50~60여 발의 핵탄두를 보유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핵무장을 대화로 풀겠다고 회의와 회담을 한 것은 쇼판을 벌린 것입니다. 그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요?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바닥에 깔려있지도 않은 이들과 진실한 대화를 해서 그 폭력성을 약화시키겠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입니까!
 
우리의 평화는 말로, 대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화는 힘이 비등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없으면 우리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강자가 우리 말을 들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요? 인간의 기본권, 생명 존중, 자유와 신앙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이들에게 무슨 신뢰할 게 있다고 끝없이 대화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며 기다려 왔던 것인가요?
 
오늘 말씀에서 군대 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쫓겨납니다. 대화로 풀었다고요? 천만의 말씀! 군대 귀신은 상대방이 자기가 상대할 분이 아님을 애초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외칩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자기는 예수님 앞에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거룩하고도 막강한 하나님의 힘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분고분 물러난 것입니다.
 
6.
힘이 없어 일방적으로 당했던 그 슬픈 6.25가 다가옵니다. 힘을 키워야 합니다. 대화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힘입니다. 경제력이든, 사회적 단합력이든, 군사력이든, 종교적 영적 힘이든 우리 스스로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군대 귀신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자유, 생명, 인권, 신앙을 지키려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고, 우리의 자녀손들에게 당당한 나라를 물려줄 것입니다. 대화한답시고 깡패들에게 끌려다니다 보면 우리 자식들은 평생 그 나라의 노예로, 종으로 살다 끝날 것입니다. 늘 삥이나 뜯기고 살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거기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사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인 한국교회 성도들, 나라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그 가치를 지킬 힘을 기릅시다. 6.25 전쟁의 비극이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힘있는 나라, 인간의 가치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대한민국을 이루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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