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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강 95편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2022년 06월 17일 (금) 13:53:15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아름다운 사람들 보면 기분 좋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아름다워요. 어떤 게 아름답지요 아름다운 게 요즈음은 사람들이 자꾸 겉모습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쓰는데 사실은 겉모습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만 아름다운 것 같지 않아요 왜냐 하면 년세가 드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 보고 못 생겼다 추하다 이렇게 하면 사람이 아니지요. 그래서 그 어머니 아버지의 희생과 그분들이 우리에게 베푸셨던 사랑을 생각하면 철든 사람은 그러지요 세상에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장 아름다웁다고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 아름다운 것이 예배당 가실 때 솝 잡고 가실 때 그 모습 너무 아름다워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에 직면하고 나면 사람이 착해지기도 하고 따뜻해지고 이런 것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진자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 줄 시는 시편 95편입니다.
 
우리가 도입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 하였더니 어머니 아버지가 손을 잡고 교회를 향해 가시는 뒷모습 생각만 해도 그림만 그려보아도 아름답네요. 노인들이 손잡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좋지요 왜 잡을까요. 서로 기대는 것이어요. 현실적으로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잡아 주는데 그래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상대가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으로 손을 잡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요
 
사람은 비스듬이 서로 기대고 있을 때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이야기 했어요 두 가지가 세상에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는데 하나는 내 자식의 입에 밥이 들어갈 때가 보기가 좋데요 이것이 부모님들의 마음이어요.
 
옛날에는 가난하고 힘겨울 때는 그런 것이지요. 먹들 것이 없으니까 옛날에 아주 구차한 살림인데 손님이 없으면 먹을 것이 없지 않아요. 그래서 손님 먼저 상을 차려 드리고 혹시 손님이 밥을 남기시면 그것을 먹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손님이 오셨는데 이제 아이가 밖에서 손님이 음식 드시기를 기다리고 그리고 문구멍을 뚫고 들어야 보고 있는 것이야 손님이 남겨주어야 돼 아이는 초조해요 저분이 다 드시지 않을까 보니까 손님이 다 드시지 않을까 이 손님이 다 드시고 거의다 드시고 나서 밥그릇에 물을 붇는 것이야 옛날에 물을 말아 먹지 않아요
 
아이가 밖에서 울었지 않아요 엄마 물 말았어 그 마음 아시겠어요. 요즈음에는 풍요속에 살기 때문에 이러한 실감이 나지 않지마는 내 자식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이 아름다웠지요.
 
옛날에는 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니까 내 논에 물이 들어가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았다고 그래요 어른들이 그런데 어느 분 책을 읽다 보니까 세상에서 가장 보기 아름다운 모습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시므온의 이야기인데 시므온이 아기 예수가 성전에 찾아오신 것을 보고 품에 안고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이든 분이 어린 아이를 축복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또 어떤 것들이 아름다울까요? 또 기억나는 것이 있어요 저는요 어떤 사람이 해가 비추어 지는 창가에 앉아 가지고 마루바닥에 앉아서 꿇어 엎드려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가슴이 뭉클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단정하게 기도하는 모습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들이 인간다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 다 잃어버리고 살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시는 대게 어떤 내용이냐 하면 예배자들이 성전을 향해 나오고 있고요 이제 막 성전 뜰로 접어들려고 하는 때입니다. 그 때 그들의 예배를 인도하는 이가 그들을 안내하면서 이제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1절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하고 말합니다.
 
첫 단어가 오라입니다. 예배를 향해 나오고 있는 사람에게 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지요
6절을 보아도 똑 같은 단어가 반복이 됩니다. 오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6절에 나오는 오라라고 하는 단어는 가자 이렇게 번역될 수도 있는 단어입니다. 가자라고도 번역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오라 그리고 함께 가자 알 수 있겠지요 이 행렬의 추이를 우리가 알 수 있는 데요
 
우리가 여호와 앞에 즐겁게 나아가야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그 분에게 노래해야 되는 까닭은 구원의 반석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석이라고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데 반석은 베드로이지요 베드로가 반석이라는 뜻이지요
 
우리가 시편 40편에서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마치 늪 속에 빠져 든 것처럼 빠져 들어가고 있을 때 주께서 우리를 건지셔서 흔들리지 않는 반석위에 세우신 것 이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편 40편과 똑 같은 경험을 하기에 반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2절 똑 같은 경험을 시인이 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를 반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성경에 나오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게 나오는는데 하나님은 피난처라든지 요세 산성 빛 목자 이렇게 이야기 할 때 그 말을 그냥 표현이라고 지나가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을 목자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경험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내 삶이 평안하고 내가 가는 곳 마다 푸른 풀밭이 있고 그리고 마실 물이 있다고 한다면 구지 하나님을 내가 목자라고 고백할 이유가 별로 없겠지요
 
그런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그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 세계는 무엇이냐 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사는 경험이겠지요 그 경험속에 나의 경험이 혹은 내가 가지고 지식이 나를 이끌어 온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돌보심이 나를 세워 주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여호와가 빛이라고 이야기 할 때 여호와가 빛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내 삶이 어둠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었는데 불현듯 내 마음에 환해지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어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빛 이야기 하고 있어요
 
여기 지금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것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터전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얼마나 많아요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터전이 든든해야 우리들이 살 수 있지 않아요. 그런데 든든한 줄 알았던 이 터전이 속절없이 흔들리는 것이어요 그러면 여러분 얼마나 힘겨워요. 한국에 소설가 가운데 한 분이 아주 좋은 소설을 쓰시다가 미국으로 이주해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안타까웠어요 그분의 작품이 안 나온다는 사실이 그런데 한 20년쯤 지나가지고 작품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 분이 미국에서 켈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가 무엇을 경험했느냐 하면 지진을 경험한 것이어요.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역시 소설가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지만 내가 딛고 있었던 안전하도 살고 있었는데 지진을 경험하고 나니까 내 삶의 토대가 흔들리더라는 것이어요 흔들린다는 것이 땅만이 아니어요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가 이런 것을 절실히 경험하는 것이지요 흔들리는 터전이어요
 
그러니까 그 속에 살고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무엇이 되어 주신 것이어요 반석처럼 든든함이어요 흔들리지 않는 것이어요 이것을 경험했어요 그러니까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즐거히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히 외치자 하고 합니다.
 
예배의 초대여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생각을 2절에게 이렇게 표현하지요.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히 노래하자 하고 말합니다.
 
여기 참 재미있는 부분인데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람들 기도가 대게 이렇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뢰올 말씀은 자 이것이 상투어야 감사합니다는 상투어이고 그래서 이런 것을 무슨 기도라고 하느냐 하면 쇼핑리스트 프레어 shopping list pleyer 쇼핑피스트 기도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뢰올 말씀은 첫째 무엇도 주시고요 둘째 무엇도 주시고요 이렇게 하고 믿습니다 이럽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러 갈 때에 써서 가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 하나 사는 것 하고 같아요. 마치 제가 서점에가면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사야할 책을 메모를 해 두었다고 가면 탁 어디 있는지 찾아보고 찾지요 그렇게 하는 것 처럼 기도가 꼭 그래요
 
하나님은 그 기도 들으시면서 앞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말을 진정성 있다고 받아드리실 이가 없어요
 
그래서 기도를 셋으로 이야기 한다면 나는 어떻게 보아야 되느냐 하면 기도의 1/3은 감사에 바쳐져야 한다 여러분 기도하는 시간이 예컨대 10분이라고 한다면 10분 가운데 3분이상은 한번 하나님 앞에 내 삶이 무엇때문에 감사한지를 한번 돌아보라는 것이어요
 
의도적이라도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감사라고 하는 단어는 영어로 탱크 thank인데 그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어요 씽크 think하고 관련이 있지요. 생각하다 탱크는 과거형 아니야 나의 지난날을 생각하지 않을 때 감사가 없어요. 생각하는 사람만 감사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정말 깊이 감사를 하라
 
그 다음에 기도할 때 물론 감사속에는 참회도 포함이 되어야 하겠지마는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해야 되지만 항상 자기의 기도속에 1/3은 타자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라 왜냐하면 그렇게 기도를 해야하는 까닭이 내 문제만 가장 심각한 문제인지 알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게될 때 나만 인생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이 아니고 더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구나하고 생각되면 내 문제가 상대화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될 때 하나님 앞에 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달라져요
 
이것이 자기를 위한 청원 기도를 하는데 대게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감사의 기도는 지나는 말 그리고 중보기도는 대게 없고 그리고 대부분 청원으로 되어 있어요. 해 주세요 거의 해 주세요하는 기도합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하면서부터 나온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해도 기적이다고요 그렇지요. 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어요 침 삼키는 것을 기적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병든 사람에게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이 대지에 발을 딛고 서 보는 것이 꿈인 사람도 있어요.
 
세상을 떠나는 내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일지를 기록을 하셨는데 그 돌아가시기 전날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제 4월인데 밖에 피는 꽃도 보고 싶고 그러나 내가 그것을 누릴 수가 없구나 무심히 돌아가시기 전날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무심히 넘어가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간절하고 절실하고 그런 것들이 있지요 그래서 생각하지 않는 한 사람은 감사가 없어요 오늘 우리가 감사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어요
 
오늘 우리 시대에는 생각보다는 감각적인 것들에 반응하도록 자극에 대한 반응만 가지고 살거든요 그래서 생각지 않아 삶이 너무 피상적이 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시인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2절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의 앞으로 나아가자
그러니까 어떠 어떠한 잘된 일들만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내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감사한 것이지요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가자.
 
2절 시를 지어 즐거히 노래하자 그러는 데 사람들이 그러지요 나는 시 못 쓰는 데 시를 지어 그 앞에 나아가자 그러는데 여러분 재미나는 게 시는 특별한 사람만 쓰지를 안해요 누가 쓰느냐 하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 시인이어요
 
연애해 봤지 않아요 연애하면 어떻습니까? 표현이 달라져요. 시 좀 한번 써 보세요 수도 없이 썼어요. 재미나는 게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정오승이라고 하는 시인의 시 가운데 예수님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당신은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그런 이야기 해요
 
물론 이것은 시인 예수라는 시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분과 만나고 났더니 모두가 시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시인은 우리가 시집 내는 시인이 아니고 시인은 어떤 사람이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아내는 사람이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생활 가운데서 그냥 흘러 지나가는 일상이어서 알지 못했는데 어떤 순간이 도드라지게 내게 광휘를 띈 채 언어로 포착해 내는 사람이 시인이어요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 있을 때만 새로운 언어가 나오지요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이전에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해요 사물 하나하나를 보아도 그냥 보통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어요
 
전에도 이야기했는데도 연애하고 두 젊은이가 비밀스럽게 사귀고 있었는데 그런데 같이 엠티를 갔어요 농활을 갔어요. 그런데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이 일하니까 얼마나 가슴 벅차 늘 만나면 저녁되면 헤어지고 그래야 되는 데 그런데 노골적으로 그 옆에 가서 이럴 수 없어 그래서 둘이 약속을 했다지 않아요. 내가 일어나서 허리를 피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으면 네 생각하는 것이야 그렇지요.
 
그러니 여러분 그렇게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사물 하나하나도 달리 보이는 것이야 그게 바로 무엇이냐 하면 시인이 되게하는 것이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도 우리가 늘 상투적인 노래를 부르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이야기 할 때 늘 성호씨에게 새로운 곡 작곡해 와 이런 소리가 아니고 내가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면 이것이 새 노래인 것이어요.
 
그러니까 새 노래로 시를 지어서 즐거히 그를 노래하자 자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새롭게 노래해야하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그분은 크신 하나님이여 여러분 이게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내가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은 나의 시선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전망이 이렇게 좁아진 것이 아니고 확 넓어진 것이야 그렇지요 큰 지평 안에서 자기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 믿음의 생활이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크시다 크신 하나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크다고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느냐 하면
3절 모든 신들 보다 크신 왕이다 땅의 깊은 것이 그의 손안에 있고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다 바다도 그의 것이다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하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익히 하는 이야기 반복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어떤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느냐 하면 그 큰 세게 우리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시선을 부딪치고 있는 그 일에 몰두하도록 만들고 있거든요 여기에 이렇게 몰두하고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간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야 몰두하고 있는 내 눈을 들어서 저 큼의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야 내 삶을 큰 전망 속에서 바라는 것이 믿음의 길이다 이게 중요한 것이야
 
그래서 예배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 분의 크심 앞에 서는 것이 예배여요. 그 크심 앞에 그래야 일상생활을 통해서 좁아진 삶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어요. 여러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감정들이 있어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내게 올 때 내가 소유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가 느낍니다.
그렇지요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이 있을까 저는 생각나는 게 책밝에 없어가지고 요즈음 나온 어떤 책 전집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정말 재미나는 일은 있었어요 간절함은 찾아와요 외국에서 책을 사는 데 외국에서 어느 작가의 책을 10여권을 주문을 하는 데 배송비하고 그러니까 돈이 꾀들어 그러다가 그분의 책 가운데 제일 큰 책 이렇게 두꺼운 책이 있었어요
 
그 책을 주문하고 싶은데 너무 비싸 망설이다 아 이것 나중에 그랬거든요. 우리 교인 한 분이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 오더니 목사님 책 한권 사왔는데요 그것이야 그것 그런데 그 책을 딱 사왔어 어떻게 아셨지 그러니까 무언가 통했나 봐요. 너무 행복했지요. 정말로 행복했지요.
 
그런데 꼭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무언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바라는 것을 내가 획득하게 되었을 때 행복하지만 인간의 진자 행복을 어디에서 오느냐 하면 아름다움 앞에 섰을 때 무언가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사람은 행복해져요.
 
지금 정규씨가 격하게 공감을 하고 있는데요 자연 이렇게 좋은 것만 봐도 그렇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감탄사인데 아 이것을 종교체험을 어떤 분은 아하 익스피어린스라고 그러는데 아하 경험
 
그러니까 그냥 일상에 갇혀 살면 아하 그럴 때가 없거든요 그래서 때때로 자연앞에 가면 아하 그러거든요. 그래서 자꾸 고개 드는 연습을 해야 돼 우리가 수영을 하면서 수영하다가 고개를 들어서 숨을 쉬지 않아요.
 
그것처럼 여기에서 몰두하지 말고 가끔 고개를 들어서 큰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의 현실의 인력에 속절 없이 끌리지 않아.
 
여러분 프리드리 힐러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독일 작가인데요 이분은 괘퇴하고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분이어요 이 힐러라는 분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힐러 이야기로는 아름다움을 그들속에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인간을 가장 아름다웁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해요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 인간은 그래서 힐러가 하는 이야기가 아름다움을 경험하도록 해 주어야 하고 또 하나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것이 놀이야 함께 놀 수 있어야 해 노는 인간이 좋아 너무 일만 하는 인간 말고 노는 인간이 좋아
 
그 프레드리 힐러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유용성 이것이 유용한가 꼭 해야 하는 일인가 따지지 않아요. 이것을 유용성의 사슬이라고 표현 하는 데 그분은 유용성의 사슬에서 벗어나서 아름다움 그 자체를 열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도리래
 
그러니까 우리는 유용하기 때문에 노는 게 아니라 그냥 즐거워서 놀아요 그렇게 놀게 될 때 아름다워져 사람이 그런데 요즈음의 교육을 보면 노는 일이 별로 없지요.
 
내 생각에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의 인생 전체로 따져 본다고 하면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 아름다움 앞에 멈추어 서서 감탄할 수 없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 보다 좋은 교육은 없어요
 
또 하나는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행복해 지는 또 하나의 감정은 숭고함의 감정이야 어떤 일을 보면서 우리가 숭고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대게 숭고함은 신적인 무한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어요. 숭고한 감정은 거기에서 와요.
 
숭고함은 어떤 큼에 대한 경험이어요. 정신적으로 큰 세계를 경험했을 때 숭고함을 느껴요 사람들이 그러니까 대단히 위대한 사람인데 자기의 위대함 속에 버물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자기를 낮추고 낮추고 희생하는 그가 겪는 비범한 고통속에서 인간은 숭고함을 느껴요.
 
다시 이야기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 하는 그 광경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무엇입니까 숭고함인 것이지요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아름다울수 있는지 보여주지 않아요
 
그런 것 앞에 서게 될 때 인간은 자기속에 행복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야 이 시인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다고 하는 것은 어까 이야기 한데로에 무엇을 주세요 조세요가 아니라 내 삶을 큰 세계앞에 세우는 것이야
 
하늘도 땅도 그 분의 크심 앞에 나의 존재를 정의 시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분앞에 우리들이 무릎을 꿇자 그 큰 세계 앞에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6절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하고 말합니다.
 
아까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정말 하나님 앞에 두 손 모으고 있는 이 자세가 아름답다고 말했는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도 참 아름다워요 맞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굴욕적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갑질하는 이들이 있지요. 무릎 꿇리고 아 여러분 악마적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과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그래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무릎 꿇어한다는 것은 그 내면 속에 굴욕감을 만들어요. 부정적 존재성을 만들어요.
 
그 때는 모면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었다고 하더라도 무릎을 꿇었던 굴욕스러웠던 한 평생 지우기 어려운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헛된 권위 앞에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진정한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 때 참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헛된 권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치환이라는 시인이 있는데 그 시인이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어요. 무릎이 구부러지는 것 세상에 아름다운 곳을 보았을 때 굽히며 경배하라는 것이고 세상에 올곶지 못함을 보았을 때 솟구쳐 일어나라는 뜻이다 때를 가리지 못함이 무릇 몇 번이던가
 
이 시인이 하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는 무릎을 꿇어 경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세상에 올곶지 못함을 보았을 때는 솟구처 일어서야 하는 데 오히려 그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해 이것을 분간하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이 시인의 고백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헛된 권위 앞에 주저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라고 아세요. 순교 당하셨지요.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 참배를 거절하다가 순교를 당하신 목사님이신데 1935년 12원 17일 부터 20일까지 평양 신학교 학생들을 위한 학생 부흥회가 열렸어요
 
이 목사님이 설교하셨는데 설교 제목이 일사각오 일사는 죽음에 대한 각오이지요 이 목사님은 디두모라고 불리었던 도마가 자신의 동료 제자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아요 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 예수님이 고난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니까 도마가 그러거든요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
 
그 본문이 요한복음 11장 16절을 본문으로 삼아서 신학교 학생의 가슴에 불을 부치는 설교를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최후의 피 한 방울 없이 다 쏟으셔서 죽으셨는데 우리가 죽은 다는 것을 두려워 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믿는다고 일사의 다짐이 있을 뿐이다
 
그 설교 가운데 한 대목만 읽어 드릴께요
사랑하는 나의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를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 같이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더럽게 무릎을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각오와 다짐과 정절을 지켜 나갑시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 각오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그 다음에 이야기 이렇게 나갑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렇고 백합화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례 요한도 스데반도 청장년의 때에 뜨거운 피를 흘려 주님을 향한 그의 다짐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렇게 말해요.
 
이것이지요 금방 반칠환 시인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것 보고 숭고한 것 보면 우리가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되어요. 올곶지 못한 것 볼 때는 솟구쳐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뒤집고 산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도록 초대하며 하는 이야기가 방금 그것입니다.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께 무릎을 꿇자
 
우리가 그분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절 그분이 우리 하나님 우리는 그가 기르는 백성이고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다고 말합니다.
8절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하고 말합니다.
자 완악하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닫힌 마음이어요. 폐쇄된 마음입니다. 그런데 폐쇄의 방향이 무엇이냐 하면 완악한 마음은 자기에게로 폐쇄된 마음이어요 안으로 그러니까 자기중심성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어떤 의미에서 완악합니다.
 
여러문 자아 할 때 아자를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마는 이 자아자에는 이 我자에는 손수(手)자가 있고 창과(戈)자가 있거든요 손에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어요. 그러니까 자아가 강한 사람 옆에 가면 찔려요 언제나 창을 들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보아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났더니 우리 마음이 후련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입고 돌아올 때가 많은데 그가 자기 속에 닫혀 있는 사람이 이것이 완악함이지요
 
닫혀 있는 마음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현실앞에서도 마음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게 문제여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속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자꾸 닫힌체 살고 있단 말이지요
 
그래서 므리바나 맛사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알다싶이 어떤 일일까요 출애굽 공동체가 죽 이제 애굽을 탈출해 나와 가다가 신 광야를 지나고 느비딤이라는 곳에 당도했는데 마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실 물이 없으니까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어요. 왜 우리를 데리고 나와서 죽음의 자리로 우리를 몰아 넣는가 그런데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원망의 마음은 일수 폭력으로 바뀌어요
 
누군가를 원망하면 자기 속에 들끓고 있는 분노의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풀어야 하는데 이것을 외부를 향해 푸는 사람은 타자에 대한 폭력을 가하는 것이어요 자기를 향할 때는 자해를 해요 분노의 감정이어요.
 
이것이 원망하는 마음이어요 원망하는 때문에 모세를 죽이려고 까지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지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이제 지시를 내려요 호렙산 반석에서 물을 낼 것이다 그럽니다.
 
과연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갈랐던 그 지팡이를 들고 가서 치지요 그러니까 반석에서 물이 솟구쳐 나옵니다. 그래서 그 일을 두고 사람들이 르비딤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 지도자를 원망했던 이야기를 두고 그 땅을 므리바 이것은 다툼이라는 뜻이고요 맛사 이것은 시험이라는 뜻이어요
 
므리바와 맛사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현존해 있는대도 불구하고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을 닫아 놓고 하나님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닫고 있었지요 그렇게 완악하게 닫힌 마음이 되지 말아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10절 내가 40년동안 그 세대를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10절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완악한 백성이다
11절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근심합니다. 무엇 때문이냐 미혹된 백성 때문에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는 백성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시인은 들어오지 못한다 하는 말로 끝납니다.
 
어떻게 보면 서운하지요 일이 잘 해결 되면 좋겠는데 그런데 때때로 시는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왜 그 뒤를 이어서 우리의 삶의 경험으로 그 시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반면교사라는 것이 있지요 반면 교사 그것은 무엇이지요. 나는 저렇게 하면 안 되겠어 생각하는 것이 반면교사여요 거꾸로 된 말은 정면 교사입니다. 나는 저분처럼 살아야지
 
반면은 거꾸로 반자니까 얼굴 거꾸로 하는 것이야 나는 저렇게 안살아 므리바와 맛사에서 이스라엘에서 조상들이 했던 태도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어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짐해야 하는 일이지요
 
아까 처음부터 이야기했지요. 이것이 성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노래라고 이야기 했었지요 그러니까 성전에 나오는 사람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좁아졌던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의 크심 앞에 내 놓음으로 내 삶을 그분에게 비끌어 매는 것 그렇게 될 때 좁았던 마음이 새 노래가 됩니다.
 
정오승 시인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우리가 시인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시 전체 이렇게 보면서 여러분 궁금한 것이나 깨달은 것 있으면 누구 이야기 해보겠어요 저는요 완악한 마음이 제 안에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이 확신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때는 너무 제 안에 확신이 차 있어 가지고 타인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닫힌 마음이 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정말 완악해 지기 쉽습니다. 특별히 종교 체험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체험이 너무 깊기 때문에 자기와 체험이 다른 사람이라든지 체험을 못하는 사람을 판단한 때가 많습니다.
 
진정한 계몽되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교양이 있다 계몽되었다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나는 이것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내가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어요 그래서 자기 확신이라는 함정에 빠져 가져가고 오히려 자기 몰락에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하는 대로 우리가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그 크심 앞에 설 때만 완악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여러분 그 크심 앞에 날마다 다가가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아하 야 그런 감탄사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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