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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 있을 때에”
2022년 06월 17일 (금) 12:32:10 양의섭 목사 www.cry.or.kr

(예레미야 33:1-9) 
 
1.
예전에는 우울증이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엔 공황장애라는 말을 더 자주 듣습니다. 삶이 힘들고 환경이 어려워서 그럴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오늘날은 예전보다 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감 등은 더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을 느끼는 인간이 더 약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도 십여년 전에 그런 것을 경험해 봤는데, 한 마디로 모든 문이 닫힌 것 같은, 그냥 도망가야겠다는 느낌만 들더라구요. 앞뒤 좌우를 둘러보아도 나를 이해해주고 붙들어주는 이들은 없고 다 방관자요, 어떨 때는 모든 이가 다 싸늘하게 바라본다는 느낌 속에 삶이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친구인 상담학 교수가 우연히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요즘 이래’했더니 대뜸 그럽니다. ‘양 목사, 그거 우울증 증세야.’ 그래서 말도 안 된다고, 목사가 무슨 우울증이냐고 했더니 그 상담학 교수님이 그럽니다. ‘사실은 상담학 교수인 나도 요즘 우울증 약을 먹고 있어. 우리 나이에는 그런 위기가 다 와.’
 
요즘 이런 느낌이 드는 분들이 있는가요? 나이 먹다보면 다 그런답니다. 그러려니 합시다. 목사뿐만 아니라 상담학 교수도 그렇답니다. 위로받고 힘을 냅시다.
 
2.
성경에 이런 비슷한 환경에 처한 인물이 나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그의 삶의 현주소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말이 이렇게 나옵니다. ‘갇혀 있을 때에’. 그는 갇힌 인생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어떤 상황이기에 그랬을까요?
 
‘예레미야’, 약관 20세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약 50년간 활동을 하다 70세에 애굽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 당하고, 남왕국 유다까지 바벨론에 멸망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입니다. 이때 그는 눈물로 호소하며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로 ‘눈물의 선지자’로 부릅니다.
 
그의 성격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그는 그렇게 거친 예언자 삶을 살만큼 터프(tough)한 성격의 사람이 못 된다고 합니다. 그는 정이 넘치는 사람이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정직히 아뢰며 사람을 잘못 고르셨다고 푸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죄에 대한 울분은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 듯 했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절망적인 위협이 다가와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감당하고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과 자세가 분명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다 갔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인기 없는 선지자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지무지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여러 번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렘11:21)
 
당시 성직자들은 이렇게까지 그를 협박하였습니다.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렘20:1-2)
 
폭행뿐만 아니라 목에 커다란 칼을 채워 가두어버렸습니다. 그들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고위 관료들도 그러했습니다.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렘37:15-16) 뚜껑 있는 마른 우물 같은 데 집어넣어 깜깜한 데서 며칠 동안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 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렘38:4,6) 깊은 진창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이게 얼마나 절망적이고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왕궁 내시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이런 탄원 속에 그는 가까스로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그런 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운지 그는 자기가 태어난 날이 저주받았으면 좋겠다고 한탄합니다. 태어나다가 차라리 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싫어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외로운 삶, 갇힌 삶이었습니다.
 
3.
그는 왜 그토록 미움을 받았을까요?
 
바벨론이 쳐들어오자 왕을 비롯하여 모든 지도자가 하나가 되어 바벨론을 물리치자고, 싸우자고 하는데, 실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 온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러니 결코 이스라엘은 바벨론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왜? 그건 하나님께로부터 온 채찍이기에! 그럼에도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저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요새요 산성이시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하며 허황된 것으로 백성들을 독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살길을 가르쳤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종으로, 심판의 도구로 우리에게 쳐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살고자 한다면 항복하라. 항복해야 살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예레미야, 지도자들이 볼 때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다들 싸우자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 라고 독려하는데, 혼자 ‘아니다,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 이건 하나님의 채찍이다’하며 백성들의 저항 의지, 싸울 의지를 꺾어놓으니 반역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슬프게도 예레미야의 선포대로 되었습니다. 나라는 망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다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바벨론 군대는 2년 동안이나 예루살렘을 에워싸 개미 한 마리 못 빠져나가게 죄어오고 있으며, 나라가 망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밖에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국운의 쇠퇴함을 보며, 예레미야는 절망한 것입니다. 자기가 선포한 대로 사태가 그렇게 절망적으로 흘러감에 안절부절못하였습니다. 사방팔방 아무리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갇혀버렸습니다!
 
4.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시위대 뜰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
 
길이 없다고 절망하는데, 이젠 다 끝났다고, 망했다고 주저앉는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답니다! 그것도 예레미야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랍니다. 예레미야의 예상을 뒤집는 그런 새로운, 예상치 못했던 일이랍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6) 심판, 죽음과 멸망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랍니다. 회복과 축복의 역사를 시작하시겠답니다. 다시 말해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희망의 역사를 쓰시겠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루시겠답니다.
 
자신이 갇힌 상황에 처해 있다고 여기는 이들, 기도하십시오. 사방팔방 다 닫혔다고 절망하는 이들, 부르짖으십시오. 왜? 하나님의 다른 뜻, 계획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소개하시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리고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아무리 내 현실이 이러쿵저러쿵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플랜(plan)을 짜시고,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시면 그것은 얼마든지 새롭게 성취되고 역사의 열매가 풍성할 것입니다. 아무리 내게 불가능해 보여도, 나는 아무리 계산하고 또 계산해도 안 될 것 같다 싶어도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플랜 변경을 하셔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루시겠다면 얼마든지 새 역사는 펼쳐질 것입니다.
 
예레미야, 하나님께 받은 기존의 메시지는 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토록 싫어하는데도 하나님의 메시지,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으면 그렇게 망하리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현실은 실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망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갇혀버린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래도 나에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알려주리라!’ 그게 뭔데요?
 
‘이게 끝이 아니다. 끝났다고 너희들은 절망하며 뒤돌아서겠지만, 아니다, 속편이 있다. 새로운 부흥, 회복의 역사가 있다. 이거 느그들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 망했는데, 이제 내 수중에 있는 게 없는데 뭘 갖고 다시 일어선답니까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내가 누구냐? 일을 계획하는 여호와, 그 일을 위해 행동하는 여호와, 마침내 그 일을 이루는 여호와가 아니더냐!’ 아멘?
 
기도하십시오. 갇혔다고? 더 이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기운이 다 빠져서 더 기도할 기운도, 정신도, 아무 것도 없다고? 그렇다고 무너지지 말고, 그렇다고 넘어지지 말고, 그래도 기운을 내십시오.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나십시오. 죽을 힘을 다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지 않으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십니다. 감(感)을 주십니다. 아하 이거로구나 하는 그 필(feel)을 주십니다.
 
목회, 내 30년 가까이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그 많은 영감(靈感)은 어디서 받는가요? 새벽 기도 시간에, 홀로 주님 앞에 머리 조아리는 시간에, 그 때 주십니다. 생각해 보라. 도대체 설교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펼쳤습니까?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강단에서 설교하고 목회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머리 조아릴 때,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필을 주십니다. 이 영감으로, 이 영력으로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합니다.
 
나만 그런가요? 여러분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 주의 영, 성령을 받은 영의 사람들로 모두 같습니다. 영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영적 맹인입니다. 육신의 감으로 사업을 하고 육신의 계산으로 사람을 만나고 ... 그러니 실패합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부르짖지 않으면 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언젠가 전쟁 영화를 보았는데, 어느 특공대가 적진으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너무 깊숙이 들어가 적진 한 복판에서 포위를 당했습니다. 사방팔방이 다 적군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났을까요? 그 적군의 한 복판에서도 그들은 본부와 무전으로 대화를 하고 있더라구요. 본부의 지시를 받고, 본부에 자기들 상황을 보고하며 지시받으며 잘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몇 시, 어디로 가라. 헬리콥터가 갈 것이다’하는 지시가 옵니다. 그 전쟁 통에, 적군이 들끓는 데 헬리콥터가 와? 믿을 수 없는 지시입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그 시간에, 그곳에 갔더니, 아, 진짜 헬리콥터가 나타납니다. 그리곤 그것을 타고 구원을 받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이 뭔지 아는가요? 본부와 무전이, 연락이 끊어진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이 언젠 줄 아는가요? 물질을 왕창 잃었다고? 건강을 잃었다고? 천만에! 하늘 본부와 연락이 끊어졌을 때! 기도 줄이 막혔을 때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일에 파묻혀 살아도, 성도는 본부, 하나님과 기도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야말로 야곱의 사닥다리가 있어,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도의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사업하는 이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너무 여유있게 기도하다 어려움 당하는 거 아닌가요? 예레미야처럼 갇혀 있을 때에,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고 다 내게 등 돌렸다고 여겨질 때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크고 놀라운 기적적인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5.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십시오. 갇혀버린 그곳에서, 빠져버린 그 웅덩이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새 역사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감을 잡게 해 주실 것입니다.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한 개척교회 전도사가 평소 존경하던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다음 달 마지막 주에 남선교회 헌신예배가 있어. 그때 설교해주게. 그날 강사비로 도와줄게.” 가난한 전도사는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 그날 그 교회로 갔습니다. 그러자 선배 목사는 이렇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미안해, 약속을 깜빡 잊었어. 이미 다른 강사를 초청했어. 다음 달 마지막 주에 여전도회 헌신예배가 있어. 그때 오게나.”
 
전도사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작은 교회 전도사라고 무시당한 것 같아 못내 속이 상했습니다. 한 달 후 다시 그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선배 목사는 약속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전도사는 기도실에 들어가 서러움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목사에게 너와의 약속을 내가 잊게 했다. 사람에게 구하지 말고 내게 구해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아니란다.”
 
갇혔다고 생각되는가요?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립시다. 진퇴양난이라고 여겨지는가요? 벗어날 꼼수를 찾으려고 밤잠 설치지 말고 아예 철야하며 부르짖어 하나님이 주시는 필, 영감을 얻읍시다.
 
갇힌 곳이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엎드려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의 역사, 내 예상을 뒤엎는 통쾌한 역전의 드라마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6.
성도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온통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마치 자신의 삶이 뭔가에 갇혀 버린 것 같습니다.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3:3! 같이 읽어볼까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일러주시고, 건져주시어 갇혀있는 여러분을 마침내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시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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